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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아슬아슬 비밀동거
작가 : 골드보이
작품등록일 : 2018.11.25

남자친구에게 차여, 직장에서 치여, 만신창이가 된 다나는 신비한 점집에서 소원을 빈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나 남자가 된 자신을 발견한 다나, 그 남자는 전날 계단에서 부딪힌, 아이돌 뺨치는 기럭지와 외모를 자랑하는 국회의원 강효성이다. 두 사람은 소원의 부작용으로 저녁 7시 반부터 다음날 아침 7시 반까지 12시간 동안 몸이 바뀌게 된다. 사라진 점집을 찾아다니다가 만난 다나와 효성은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동거하기로 하는데... 12시간씩 몸이 바뀌는 남녀의 신체 강탈 로맨스. 그들의 아슬아슬한 사랑이 시작된다!

 
소원성취 5만원
작성일 : 18-11-25 19:25     조회 : 284     추천 : 0     분량 : 5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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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 계산해요.”

 

 다나는 커피숍 계산대 앞에서 카드를 내미는 세욱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아니요. 제가 살게요. 안 보좌관님거랑 박 비서님 거도 사가려구요.”

 

 “아, 그래요. 제가 사가죠, 뭐.”

 

 “아니에요. 제가 사가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세욱씨는 인턴인데-”

 

 “엇, 지금 인턴이라고 무시하는 거예요?”

 

 세욱이 웃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건 아니지만...”

 

 “그럼 오 비서님은 그냥 고마워요, 라고 하심 되요.”

 

 세욱이 계산대 앞으로 더욱 바싹 다가가며 말했다.

 

 그들의 실랑이를 참을성 있게 기다려준 카페 주인이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세욱이 내민 카드를 받아들었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든 다나는 감사의 표시로 살짝 턱을 당기며 말했다.

 

 

 

 “오비서님, 다음부터는 커피 마시고 싶으면 같이 가요. 혼자 가지 말고.”

 

 “네?”

 

 “아, 저도 커피 좋아하거든요.”

 

 커피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세욱의 볼이 약간 붉어진 것 같았지만, 다나는 굳이 그 이유를 파헤치고 싶지 않았다.

 

 사무실에 돌아와 세욱이 커피를 나눠주자 뚱하고 앉아있던 안 보좌관과 박 비서의 입이 귀에 걸렸다.

 

 다나는 빨대를 물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쭈욱 흡입했다.

 

 오늘따라 커피가 유난히 쓰게 느껴졌다.

 

 아침부터 일진이 영 안 좋았으니 퇴근 후에는 곧바로 집에 가야겠다고 결심하는데, 옆 의원실 경희에게서 카톡이 왔다.

 

 [오늘 끝나고 맥주 한잔, 어때?]

 

 맥주라는 유혹적인 단어에 다나의 얄팍한 결심은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처럼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좋지.]

 

 다나는 경희에게 엄지척 이모티콘을 팍팍 붙여 날렸다.

 

 [의원님은?]

 

 [오늘 안 들어오심.]

 

 [그럼 6시 반에 같이 나가자.]

 

 [조와요.]

 

 정확히 6시 반에 사무실을 나온 다나는 경희와 택시를 타고 홍대에 있는 이자까야로 갔다. 정말 맥주 한 잔만 할 생각이었다.

 

 남친에게 차여, 보좌관에게 치여, 안 그래도 몹시 후달리는 하루였는데 술까지 과하게 마시면 그냥 확, 맛이 가버리기 딱 좋으니까.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만은 되지 않는 법이다.

 

 그래, 그게 인생의 참맛 아니겠어.

 

 두 번째 잔을 주문한 다나와 경희는 시원하게 건배를 외쳤다.

 

 “그래서, 니 남친이 문자로 헤어지자고 했다고?”

 

 “그랬다니까! 진짜 어이없지?”

 

 “다나야, 우리 그만 만나자. 정말 그게 다라고?”

 

 “그게 다라니까!”

 

 느낌표를 세 개쯤은 찍었을 것 같은 대답이 너무 처량하게 들린 것 같아 다나는 얼른 맥주를 마셨다.

 

 “너 그놈이랑 얼마나 만났지? 한 세달 됐나?”

 

 “78일.”

 

 “대박, 너 날짜도 세고 있었어?”

 

 “어? 어.”

 

 “근데 너 남친이랑 했어?”

 

 “뭐어?”

 

 “뭘 그렇게 놀래. 그 놈이랑 잤냐니까.”

 

 “아아니, 미쳤어?”

 

 “야, 뭐 미친 건 아니지. 사랑하고 좋아하면 그럴 수도 있지.”

 

 “아니, 아무리 사랑해도 난 싫어. 나는 정말로 확신이 있을 때-”

 

 “어? 너 설마... 아직 한 번도 안 해 봤냐?”

 

 “응? 아, 아니. 내 나이가 몇인데 그걸 안 해봐. 해 봤지, 해 봤어.”

 

 다나는 날다람쥐처럼 어깨를 쫙 펴며 말했지만, 사실은 한 번도 안 해본 게 맞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남자친구가 부쩍 투덜대긴 했었다.

 

 초딩도 아니고 사귄지 두 달이 넘도록 손만 잡는 커플이 어디 있냐며, 요즘은 초딩들도 사귄지 1일이면 뽀뽀는 기본이라며.

 

 

 

 결국 다나와 경희는 500밀리 맥주를 석 잔씩 마시고 사케까지 병으로 주문해 사이좋게 나눠마셨다.

 

 “다나야... 지이금 몇시야아?”

 

 경희는 녹음기를 느리게 재생한 것처럼 말꼬리를 늘였다. 만취했다는 증거였다.

 

 “열한시.”

 

 “나 이만 집에에 가야겠다아아.”

 

 “그래, 가자.”

 

 먹고 마신 걸 대충 계산해보니 십만 원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 다나는 지갑을 열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항상 가지고 다니는 오만 원짜리를 꺼냈다.

 

 “아니야아... 오늘으은 이 언니가 낼 테니까아아.”

 

 경희가 손사래를 쳤다. 실연당했다는 말을 듣고부터 언니가 한턱낸다고 했던 참이었다.

 

 “알았어. 그럼 다음엔 내가 살게.”

 

 다나는 꺼냈던 오만 원을 다시 지갑 속에 고이 모셨다.

 

 “너는... 어떻게 갈라고오?”

 

 카카오택시를 부른 경희가 물었다.

 

 “난 여기서 걸어가면 돼.”

 

 “잠깐 너어 집이 광흥창이었나? 걸어가긴 좀 멀지 않아아?”

 

 “걱정 마, 술도 깰 겸, 천천히 가면 돼.”

 

 술기운에 근심걱정을 실어 보내고 기분이 좋아진 다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원룸으로 향했다.

 

 분당에서 여의도까지 통근하기에는 너무 멀다는 이유로 조르고 졸라 무기한 무이자 대출 조건으로 이모에게 보증금을 빌렸다.

 

 기왕 독립하는 거 국회 바로 앞에 있는 오피스텔을 얻고 싶었지만 이모가 빌려준 돈으로 여의도 오피스텔은 어림도 없었다.

 

 부동산 앱에도 나오지 않은 매물을 발바닥이 닳도록 근처를 찾고 또 찾은 끝에 광흥창역 근처의 원룸을 얻을 수 있었다.

 

 말이 좋아 원룸이지 지은지 오래된 다세대 주택이라 결코 쾌적한 환경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집이었다.

 

 게다가 산이랑 가까워 방바닥에서 이름 모를 벌레들을 만나는 건 다반사였다.

 

 가끔은 새빨간 몸통에 커다란 집게를 자랑하는 지네도 만났다.

 

 아, 집에 가서 벌레들을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우울해졌다.

 

 다나는 길 건너 보이는 Y아파트를 보며 저기 살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다나의 개인 노트북 바탕화면은 45평형 Y아파트 평면도였다.

 

 

 

 ‘타로, 사주, 관상.’

 

 길모퉁이를 돌아 골목으로 접어드는데 오른쪽 옆으로 타로집이 보였다.

 

 어, 못 보던 집인데. 저기 빵집 아니었나. 얼마 전 큰길 앞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새로 생기더니 결국 망했구나.

 

 딱히 자주 가던 집은 아니었지만 꽈배기랑 도넛이 맛있었는데... 다나는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시며 점집을 들여다봤다.

 

 임시로 들어온 듯 변변한 간판도 없이 불투명한 유리에 검은 펜으로 타로, 사주, 관상이라고 써놓은 게 전부였다.

 

 보통 저런 곳에서는 속옷이나 양말을 팔 던데, 주택가에 점집이라니 장사가 되려나.

 

 무심코 지나치려다 빨간 글씨 밑에 붙어 있는 흰 종이를 보고 우뚝 멈춰 섰다.

 

 종이에는 볼펜으로 쓴 듯 삐뚤빼뚤한 글씨로 ‘소원성취 5만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소원성취라니 취하지만 않았다면 귀엽다고 생각하며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제법 술이 오른 다나는 어느새 유리문을 밀고 있었다.

 

 딸랑딸랑, 문에서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안에 들어가 보니 테이블과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거란 짐작과 달리 그럴싸한 분위기가 풍겼다.

 

 짙은 와인색 커튼으로 둘러싸인 실내에는 연보랏빛 조명이 비추고 있었다.

 

 한가운데 놓인 둥근 테이블 위에서 커다란 수정구슬이 영롱한 빛을 발했다.

 

 “어서 와요.”

 

 테이블 뒤편의 와인색 커튼이 젖혀지며 할머니가 나타났다.

 

 할머니는, 점집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보글보글 파마한 브로콜리 머리에 노란 꽃무늬 티셔츠, 기하학적인 무늬가 들어간 몸빼 바지를 입고 있었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보고 상승했던 신뢰도가 바닥으로 뚜욱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도로 나가기도 그렇고, 피 같은 내 돈 오만원이지만 좋은 일 하는 셈 치고 할머니한테 주자고 생각하며 수정구 앞에 놓인 의자에 털썩 앉았다.

 

 “타로, 사주, 관상 중에 뭘로 볼라우?”

 

 맞은편 의자에 앉은 할머니가 다나의 얼굴을 차근차근 뜯어보며 물었다.

 

 “저거...요.”

 

 다나는 유리문에 붙어 있는 하얀 종이를 가리켰다.

 

 “소원성취? 안 돼. 저건 오늘 마감됐어.”

 

 “네? 마감이요?”

 

 “소원은 하루에 한 명만 들어주거든. 조금만 일찍 오지 그랬어. 그 잘생기고 키가 훤칠한 총각도 방금전에 왔다갔는데.”

 

 오우, 이 할머니 보기보다 직업정신과 신념이 투철하네. 양심상 하루에 한 사람만 속이겠다는 건가.

 

 “아, 기왕 왔으니까 해주세요.”

 

 다나는 콧잔등에 주름을 잡으며 할머니의 팔을 움켜쥐었다.

 

 “아니, 이 아가씨가 어딜 만져?”

 

 할머니가 화들짝 놀라며 팔을 뺐다.

 

 매끈한 천 밑으로 느껴진 감촉은 사람의 팔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차갑고 마시멜로처럼 폭신한 느낌이었다.

 

 내가 취하긴 취했나봐.

 

 “아, 죄송합니다.”

 

 “정 소원 빌고 싶으면 내일 오던가.”

 

 “싫어요. 그냥 해주세요. 어차피 좀 있으면 열두신데. 그럼 내일이잖아요.”

 

 안된다니까 괜한 오기가 생겼다.

 

 가뜩이나 오늘은 안 되는 날이었는데, 이 할머니한테까지 거절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나는 얼굴 앞에 두 손을 모으는 시늉을 하며 사정했다. 할머니가 곤란한 표정으로 다나를 쳐다봤다.

 

 “아가씨가 하도 사정하니 해주긴 할 건데.”

 

 “앗, 네, 감사합니다.”

 

 “대신 잘못돼도 이 할미 원망하지 말어.”

 

 “알았어요.”

 

 잘못돼봤자 소원이 안 이뤄지기밖에 더 하겠어. 아니, 애당초 소원이 이뤄질 리가 없잖아?

 

 “진짜 할 거야?”

 

 “네.”

 

 “그럼 이 수정구에 양 손을 얹고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어. 반드시 같은 소원을 세 번 말해야 돼.”

 

 할머니의 목소리가 너무 진지해서 다나는 약간 긴장했다.

 

 “네.”

 

 “준비 됐어?”

 

 “네.”

 

 “지금부터 눈을 꼭 감고 천천히 수정구를 어루만지는 기분으로 손을 올려. 소원을 다 빌 때까지 절대로 손을 떼면 안 돼.”

 

 다나는 눈을 감고 조심스럽게 수정구에 손을 올려놓았다.

 

 손바닥에 뜨끈한 느낌이 들더니 수정구가 말캉말캉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눈앞에 빛이 어른거리기도 하고, 수정구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 술기운이 다시 오르는 건가?

 

 다나의 손등 위로 할머니의 손이 겹쳐졌다. 할머니는 아브라카다브라 비슷한,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 같을 걸 외우기 시작했다.

 

 앗, 큰일 났다. 소원을 미처 생각 안했다. 이런 똥 멍청이. 에라, 모르겠다.

 

 다나는 조금 전 머리에 스쳐 지나갔던 소원을 빌기로 했다.

 

 ‘Y아파트에 살게 해주세요. Y아파트에 살게 해주세요. Y아파트에 살게 해주세요.’

 

 소원을 빌고 나서 후회가 밀려왔다.

 

 차라리 한 백억쯤 생기게 해달라고 할 걸. 하지만 어차피 술김에 빈 소원이고, 내가 좀 모자라긴 하지만 이런 걸 진심으로 믿을 바보는 아니다.

 

 “자, 소원을 빌었으면 천천히 손을 떼고 눈을 떠봐.”

 

 다나는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고는 지갑에서 오만 원을 꺼내 할머니에게 건넸다. 할머니는 오만 원을 두 번 접어 몸빼 주머니에 넣었다.

 

 “안녕히 계세요.”

 

 그다지 개운하지 않은 기분으로 인사를 하고 돌아 나오려는데 할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아가씨. 기다려 봐.”

 

 “네?”

 

 “주의사항이 있어.”

 

 다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주의... 사항이요?”

 

 “그래, 사흘 동안 남자를 가까이 하면 안 돼. 손도 잡지 말고, 몸도 닿지 말고.”

 

 “아, 알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가까이는커녕 남자 냄새 맡을 일도 없어요.

 

 다나는 씁쓸한 기분으로 집에 왔다. 불을 켜자 딱정벌레 비슷한 놈이 후다닥 옷장 밑으로 들어갔다.

 

 아, 나도 벌레 안 나오는 집에 살아보고 싶다.

 

 침실에 덩그러니 침대만 있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

 

 드레스 룸도 있었으면 좋겠고, 책으로 가득한 서재도 있었으면 좋겠고, 욕조에서 보글보글 물방울도 나오면 좋겠고, 해바라기 샤워도 있으면 좋겠고...

 

 소원이 이뤄지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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