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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두 번째 첫사랑(화양연화)
작가 : 정연일
작품등록일 : 2018.11.15

6인(人) 6색(色)의 페이크 다큐멘터리.

건실한 직장인이자 가장이었던 강하늘. 대우조선 사태로 정리해고를 당하고 방황하다 알코올 중독자가 된 그에게 새로운 사랑이 다가온다.
‘나는 가정이 있는데….’

유명 사립대 교수로 젊은 나이에 성공과 실패를 맛본 김미영. 좌절 속에서 알코올 중독자가 된 그녀 앞에 나타난 남자.
‘난 친구보다 가벼운 연인이 필요해….’

실직한 남편을 대신해 일을하며 가정을 꾸려가던 신수아. 오직 남편과 아들, 가족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그녀에게 닥친 또 다른 시련.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방황하는 아들의 치료를 위해 노심초사하는 어머니 윤명희.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아들에게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외도는 크나큰 죄악이야….’

아빠의 부재가 늘 안타까웠던 아들 강 산. 어느 날 아빠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고 아빠의 입장을 이해해 보려 한다.
‘내게 여동생이 생겼다고?’

그리고 2049년의 그의 딸 강하영.

여섯 명이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 가족의 이야기.

 
1부. 나의 이야기(6화)
작성일 : 18-11-24 13:58     조회 : 332     추천 : 1     분량 : 7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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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으로 가기 전 몽키의 닭집을 먼저 찾았다. 내가 지난달 퇴원한 뒤 며칠 지나지 않아 퇴원했다는 연락을 받았었는데, 이 친구도 집이 거제이고 운영하는 치킨집이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인사차 먼저 들른 것이었다. 마침 가게 앞에서 배달하러 다녀오는 몽키와 만났다. 그가 먼저 반색을 하며 나를 반긴다.

 

  “형. 어쩐 일이에요? 연락도 없이.”

  “좋아 보인다. 장사는 잘되냐?”

  “그런 데로요. 먼저 연락이라도 하고 오시지. 식전이면 닭 한 마리 튀겨드릴까요? 시원한 생맥도 있는데.”

 

  몽키가 섬뜩한 농을 던진다.

 

  “그거 먹고 다시 들어가라고? 아서라 나 술 끊었다. 넌 어떠냐?”

  “가끔 주말에 장사 끝나고 맥주 한 잔 정도 하긴 하는데, 그 이상은 일절 안 마셔요.”

  “그래. 넌 잘 할 수 있을 거야. 죽을 고비도 넘겼는데….”

 

  순간 괜한 얘기를 꺼낸 것 같아 멋쩍어하는 나에게 몽키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죽다 살아났는데 뭔들 못하겠어요. 저 많이 강해졌어요.”

  “그래. 많이 강해 보인다. 활기차 보이고, 믿음직스러워, 보기 좋아. 며칠 내에 가족들 데리고 한 번 올 게 서비스 많이 줘라.”

  “에이 형한테 어떻게 돈을 받아요. 받은 가르침이 얼만데. 식구들 다 모시고 오세요.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그래 말만 들어도 고맙다.”

 

  내가 그만 일어서려 하자 몽키가 수줍게 묻는다.

 

  “형 혹시 그분이랑 아직 연락해요?”

  “누구? 미영 씨?”

  “네….”

 

  내가 그녀와 친하게 지냈다는 걸 아는 건, 오직 파마와 몽키 둘 뿐이었다.

 

  “그건 왜? 너 그 사람한테 정말 관심 있었던 거니?”

  “아니. 뭐.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말끝을 흐리며 얼버무리지만, 나는 안다. 녀석은 병원에 있을 때부터 그녀에게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도 녀석도 안아야 할 아픔이 너무 많은 사람들이다.

  나 역시 다르지 않지만, 난 이미 그녀를 사랑한다.

  아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 사람하고 앞으로 연락을 할 수 있을는지….”

 

  내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녀석은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했고, 나는 별일 아니라며 또 오겠다고 하고 가게를 나서 집으로 향했다.

 

 

  새로운 집. 아파트. 낯설다. 난 평생 회사 기숙사 생활을 제외하곤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답답해서다.

  난 문을 열면 마당이 있고 마루나 평상에 앉아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주택을 좋아한다. 이 아파트는 내가 병원에 드나드는 동안 아내가 혼자 계획하고 실천에 옮긴 일이었으나 나는 아무런 반대도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가장 노릇을 못 하고 있는 미안함과 나의 짐을 대신 지고 있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그리고 나에 대한 아내의 차가운 마음을 잘 알기에 그녀의 뜻을 따라 준 것이다. 이 아파트는 일종의 메시지 이기도 할 것이다. 아파트를 못 견뎌 하는 내게, 함께 살고 싶지 않음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리라.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나에 대한 아내의 마음은 오래전 그것과는 많이 변했다. 그 시작은 아마도 내가 처음 팀장이 되고 지방을 떠돌며 일을 다니던 무렵, 그러니까 대략 오 년쯤 전부터였을 것이다.

  그 무렵 나는 거의 일에 미쳐있었다. 20여 명의 팀원 대부분이 가장이었고, 난 그 20여 가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조선소가 있는 대한민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작업 계약을 따오고, 현장을 감독하고, 작업을 계획하여 지시하고 검사를 받아내고, 중간 정산금을 받아 임금을 배분해주고, 팀을 운영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였고, 당연히 집에 들어가는 날은 일 년에 몇 번. 휴가나 명절 등을 모두 합쳐도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일 년에 한 달이 될까 말까 했다. 그나마 집에 있을 때도 난 언제나 하나뿐인 아들의 양육에 집중했다.

  아들의 학교 교육을 확인했고, 읽어야 할 책을 골라주고 독후감을 확인하고, 교과목 이외의 필수 공부와 교양 교육을 챙기고, 고민을 상담해 주고 함께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틈틈이 집 안 청소를 하거나 빨래를 하고 요리와 설거지를 했다.

  난 이런 일들이 가족을 사랑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성실히 돈을 벌어오고 자녀를 정성으로 양육하고 틈틈이 아내를 돕는 것이면 다 된 건 줄 알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가장 살뜰히 챙겨야 할 대상과 그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외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한 참 뒤, 큰 것을 잃어버린 후였다.

 

  나는 한 가정의 가장 기본이자 밑바탕이 되는 부부간의 사랑을 등한시 생각하고 잊고 지냈었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서로의 사랑을 끊임없이 표현하고 행동하고 확인시켜 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음에도 나는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확인시켜 주는 데 인색했다. 마치 인사하듯 사랑한다는 말만 던질 줄 알았지, 정성으로 아내의 손을 잡아주고, 밤에 사랑을 나누고, 사랑을 담아 편지를 쓰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등의 소통하고 교감하는 사랑의 행위는 빼먹고 부수적으로 동반해야 하는 행위(사소한 것에 애정을 담는)만 하면서도 알맹이가 빠진 줄도 모른 채, 가족을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직장을 잃고 크게 홍역을 치르면서 비로소 아내의 부재를 깨닫기 시작했다. 아내는 이미 남편이 아닌 다른 것들에 애정을 쏟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을 키우면서도 작은 청소용역업을 하며 사회생활을 하고 교회를 다니고 봉사활동을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휴일부터 주말까지 그녀의 일정은 쉴 틈 없이 빡빡해서, 막상 내가 직장을 잃고 방황하고 있을 때도 그녀는 내 곁에 있어 줄 시간이 없었고 마음도 없었다. 그녀는 이미 그녀만의 생활이 있었고 나와의 사이에는 거대한 장벽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때(5년 전)의 나는 늘 아들과 무언가를 함께 하다 잠들기 일쑤였고 차츰 동침이 뜸해지다 결국 3년 전쯤부터는 아예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아내가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분명 그녀는 안간힘을 썼었다. 먼 지방까지 일부러 나를 만나러 다녔었고, 집에 있을 때도 자신을 좀 봐 달라고 신경 써 달라고 사랑해 달라고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왔었다. 편지를 쓰고 말을 걸고 먼저 안겨 왔지만 나는 미쳐 신경을 써 주지 못했었다. 그 신호를 전혀 몰랐던 건 아니었다. 알고 있었고 느끼고 있었지만, 우린 아직 젊고 앞으로 남은 시간이 많으므로, 나중에 하면 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번 꺼져버린 불꽃은 되살리기 힘들 듯, 이미 식어버린 그녀의 마음은 좀처럼 다시 뜨거워지지 않았다. 불씨가 남아있을 때 장작을 넣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이었다. 이제 와 그녀에게 무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나를 탓하고 원망할밖에.

  해고 후, 외롭고 힘들었던 때 나는 그녀에게 곁에 있어 달라고 위로해 달라고 격려하고 힘이 돼달라고 애정을 요구하며 떼를 쓰고 매달렸지만 돌아온 대답은 ‘바쁘다’라는 말뿐이었다.

  내가 이혼을 들먹인 적도 있었지만, 아내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술에 취해 있었고. 혹여 내가 온전한 상태였다 해도 그녀로서는 나와 이혼을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둘 중 누구에게도 혼인을 유지하기에 현저하게 문제가 되는 사유가 없고, 혼인을 파탄에 이르게 할 명백한 잘못도 없었으므로, 다만 나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 식었을 뿐, 나를 싫어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았다. 중독이 되기 전까지 나는 괜찮은 남편이자 아버지였고, 그런 나를 아내는 끝까지 믿고 있었다.

 

  아내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안식처가 없어진 내게 아들은 많은 위로와 의지가 되었다. 내게 가장 소중한 보물이자, 평생 가장 많은 사랑을 주고 정성을 쏟은 존재 아들 강 산.

  어린 시절 사고로 아버지를 여의었던 나는 아버지라는 존재의 크기와 무게를 누구보다 절실히 알고 있었고, 그래서 아들에게 내가 받고 싶었던 모든 것을 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많은 사랑을 주고 좋은 가정교육을 통해 올바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아들로 키우기 위해서 나는 다양한 방면으로 많은 공부를 했으며 내가 배운 모든 것을 아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다. 고맙게도 아들은 건강하고 올바르게 자라주었고, 지금 내겐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믿을 만한 내 편이 되었다.

 

  처음 찾아온 집. 현관 비밀번호를 몰라 인터폰을 눌렀다. 아들 산이 문을 열어주고 현관까지 나와 나를 반긴다. 나는 아들을 꼭 껴안아 본다. 벌써 키가 180이 넘었고 덩치는 나보다 컸다. 어느새 훌쩍 자라버린 아들이 새삼 대견하다.

 

  “어서 오세요. 아빠. 잘 지내셨어요?”

  “그래. 너도 잘 지냈니? 엄마는?”

 

 저녁 식사시간이 조금 지났을 시간. 집안은 맛있는 냄새로 가득하다. 현관을 지나 거실로 들어서며 아내를 찾는다. 아들은 오랜만에 보는 내가 반가운지 들뜬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잘 지냈죠. 엄마는 저녁 준비 중이세요. 식사 안 하셨죠? 엄마가 아빠 오신다고 갈비 구웠어요. 히히.”

 

  주방에 있던 아내는 고개를 돌려 나를 확인했을 뿐 인사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아내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것을 보았다. 아내는 웃고 있었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저. 왔어요.”

  “네. 잘 오셨어요. 식사하세요.”

 

  나는 거실에 가방을 내려놓고 욕실로 가 손을 씻은 다음 식탁에 앉았다. 몇 달 만에 가족이 모두 둘러앉은 식사시간. 아들은 그간 모아두었던 이야기보따리를 쉴 새 없이 풀어놓았고, 나는 맞장구를 쳐주며 들어주었다. 틈틈이 아내도 끼어들어 그간 아들의 실수와 잘못을 고해바치기도 하고, 잘했던 일들을 추켜세우기도 하며 이야기를 거든다.

  그렇게 오랜만의 단란한 가족의 저녁 식사가 끝이 났고, 우리 세식구는 모두 거실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파트 생활에 대해,(아내와 아들은 모두 아파트 생활에 만족해했다) 아들의 학교생활과 기숙사 생활에 대해, 아내의 일과 생활에 대해 그리고 나의 회복과 재취업 준비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늦게까지 나누었다. 그리고 평소처럼 아들과 함께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아내를 돕기 위해 일터인 시내 5층짜리 건물에 도착했다.

  아내가 하는 일은 일종의 청소용역업 같은 것인데 처음에는 일이 이렇게 커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단지 아르바이트 삼아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 한두 시간 짬을 내서 일하고 용돈을 버는 일이었다. 사무실의 출근 전 아침 청소, 치과병원의 진료 후 마무리 청소를 소개받아 시작했었는데, 아침에 한 시간, 저녁에 한 시간, 하루 두 시간의 노동치고는 수입도 나쁘지 않았다.

  아내의 일솜씨가 마음에 들었던지 고용주들은 소개에 소개를 거듭했고 아내는 다른 사무실과 개인병원을 추가해 하루 네 시간을 일했다. 그러던 중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건물의 전체 청소를 의뢰받게 되면서 아내는 주변의 친구와 지인들에게 아르바이트를 연결해 주며 한 명씩 고용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빌딩, 사무실, 치과와 개인병원, 미용실 등 십수 개의 고정 거래처를 가지고 4~5명의 아르바이트 직원을 둔 개인 사업 비슷하게 발전했다. 그렇다고 사업자 등록을 한 개인사업자는 아니고, 아내 역시 여러 군데 청소를 직접 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내가 실직을 하고 백수가 된 후에도 가정의 주 수입원이 되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아내의 혜안에 감탄하고 뛰어난 능력이 고마울 따름이다. 어찌 보면 이렇듯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 내가 더 쉽게 포기하고 술을 마시고 맘 편하게 게으름을 피웠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아침에 한 번 저녁에 두 번 아내의 일을 도왔고, 낮에는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이런저런 잡글이 대부분이었는데, 책을 읽고 느낀 점, 아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내용과 토론하고 싶은 이야기, 시 그리고 일기를 쓰듯 미영에게 편지도 썼다. 물론 전할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고 그냥 썼다. 그리워서, 보고 싶어서.

  나도 안다. 아내와 함께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여자를 생각하고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사악한 일인지, 만일 아내가 내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면 나의 마음을 찢어발기고 싶을 터였다, 나라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나도 어쩔 도리가 없으니 어쩌겠는가 계속 떠오르는 생각을 담아둘 수는 없으니 글로 써서 덜어내는 것이다. 지금으로선 나에게 최선이다.

  저녁이면 같이 식사를 하고 대화도 나누고 둘러앉아 인터넷도 했다. 밤이면 늘 그렇듯 아들과 함께 놀다가 잠을 잤고, 하루는 몽키의 치킨집에서 외식도 했는데, 녀석은 결국 돈을 받지 않았고 나는 접시 밑에 돈을 끼워 놓고 와야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주말 저녁, 아내를 돕기 위해 한때는 내 차였으나 지금은 아내의 차가 되어버린 차를 타고 일터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가끔 집에 와서 잠시 지내다 가는 건 좋아요. 아들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당신을 위해서도. 전화도 자주 하세요. 서로 안부도 잘 알아야죠. 가족이니까. 하지만 함께 사는 건 당분간 힘들 거 같아요. 같이 있으면 힘들어요. 갑갑하고…. 당신 술에 취해 있던 모습도 떠오르고…. 잘 모르겠어요. 너무 오래 떨어져 지내서 그런 건지…. 저 못됐죠? 이기적이고.”

  “아니요. 아니에요. 당신은 잘못한 거 없어요. 도리어 고맙죠. 나 대신 가장 노릇 하느라 힘드실 텐데도 날 미워하지 않으니. 미안한 건 저죠. 남편 노릇도 애비 노릇도 못 하고 이러고 있으니.”

  “당신은 이겨낼 수 있어요. 강한 사람이잖아요. 당신이 술을 완전히 끊고, 직업을 찾고,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며 원래 예전의 당신 모습을 찾아간다면 그때 함께 살아요. 그때까지는 따로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서로를 위해서.”

  “네. 그럴게요.”

 

  간단히 답하고 내리려 하자 아내는 다시 묻는다.

 

  “그렇게 쉽게 수긍해 버리면 어떡해요. 그깟 술 때문에 멀쩡한 남편과 별거를 요구하는 거냐고 화를 내고 바람이라도 났느냐고 의심도 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뭐가 그렇게 쉬워요? 난 힘들게 꺼낸 말인데.”

 

  그녀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난 담담하게 말했다.

 

  “그까짓 술 문제가 아니에요. 알코올중독은 무서운 병이에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망칠 수 있죠. 현명한 판단이에요. 모두를 위해. 그리고 당신 젊어서 운동했으니 잘 알겠지만, 당신 100미터를 10초에 뛸 수 있나요? 못하죠.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도 안 돼요. 이유가 뭔지 알아요? DNA에요. 당신은 100미터를 10초에 달릴 수 있는 DNA가 없어요. 마찬가지로 당신 유전자에 외도를 할 수 있는 DNA는 없어요.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거예요. 당신은 바람 못 피워요…. 나라면 몰라도.”

 

  내 마지막 말에 토끼 눈이 된 아내는 다시 묻는다.

 

  “그럼, 당신은 외도를 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어쩌면…. 그럴지도…. 일하러 갑시다. 늦었어요.”

 

  나는 차 문을 열고 나와 치과병원 계단으로 향했다. 그녀는 뭔가에 홀린 듯 잠시 앉아 있었으나, 이내 병원 열쇠를 챙겨 들고 차에서 내려 병원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갔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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