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가 스스로의 함정을 만든 것은 몇년 전이었다. 아마 비스는 자신의 과거 행동이 자신의 발등을 찍는 결과를 낳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비스는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 또 그 규정을 만들게 된 크나큰 이유도 딱히 없었다. 비스에게는 단지 규정자체를 만드는 행위가 필요했던 것이다. 비스는 믿음과 철학, 생각에 따라 움직인 것이 아닌,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었던 것이다. 비스는 지역의 정당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일을 했을 뿐이었다. 지역 안의 갈등을 조절하고, 규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비스가 그 일을 추진하는 것은 그 일 자체가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점이 발생하였다고 한다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사람들이 목적과 수단이 제멋대로 뒤섞일 때 일이 엉망이 되어버리거나, 제 갈길을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비스의 경우는 그런 경우였다. 일반인들이 이해못하는 범위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정치인들과 행정가들은 때때로 일 자체를 위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일을 하기위한 일을 만들어 내어서 서류에대한 서류를 만들고 보고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고, 계획에대한 계획서를 만든다. 또 통계에 대한 통계를 만들고 회의자료를 위한 회의자료를 만든다. 이렇게 불필요한 굴레들은 어디서 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시작은 비스같은 자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비스같은자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은,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부끄러운 행동을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속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스는 처음 이 규정을 만들 때부터 만들 필요가 굳이 필요하지 않음을 알고이었다. 규정을 담당하는 이가 이미 상위법에 규정되어 있는데 뭣하러 도시 규정을 새로 만드냐고 반발을 했었고, 비스 자신도 이 규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하였지만, 단지 도시규정으로는 없는 규정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비스는 이 규정을 만들게 된 것이었다. 비스는 비스자신이 만들지 않으면, 그 전에 누가 선수를 쳐서 위원회에 대한 규정을 만들어 버릴 새라 서둘러 만들었던 것이다. 비스는 이런 일을 위한 일은 남들이 하기 전에 재빨리 처리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일을 위한 일은 남들도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서, 먼저 실행하고 완수하는 것이 그것에 대한 성과를 거머쥐고 주인이 될 수 있는 길이었다. 비스는 자신의 이름으로 그 규정안을 제출해 내었고, 물론 그 규정안을 만들 때부터 끝까지 그 옆의 도시의 규정을 복사해서 교묘히 편집하였을 뿐이지만 말이다. 비스는 규정안을 제출하였고, 규정안은 일을 위해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검토를 거쳤고, 일을 위해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승인을 받아서 시행되게 된 것이다. 그렇게 규정은 만들어졌다. 규정은 세상으로나왔다. 규정은 태어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법과 규율에 복잡한 사람들이 된다. 비스는 그 규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보며 흡족해했다.
비스의 사무실은 분주해졌다. 라니에게 연락을 취했던 비스의 비서라는 작자는, 이 일을 서둘러 해결해야만 했다. 비스가 위원회를 꾸리라고 지시했던 일을 처리해야할 기한이 곧 도래하기 때문이다. 비스의 사무실에서는 라니가 업무의 처리자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라니가 허가를 하느냐 마느냐하는 의사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비스의 사무실에서는 어떻게 되든 결국에는 비스의 뜻대로 움직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렇게 되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소규모 도시의 정당인을 막을 만한 것은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비스의 사무실은 어서 라니에게 허가증을 받아야한다는 조급함이 조금은 생겼지만, 한편으로는 태연했던 것이다. 여기서의 문제는 오직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이다. 비스의 영향력에 곧바로 허가를 내주느냐, 허가를 거부하였으나 압력으로 인해 허가를 내주게 되느냐말이다. 비스의 사무실에서 생각하기로는 라니가 허가를 내주건 말건 라니에게는 손해라고 생각하였다. 그 이유는, 라니가 만약 허가를 내줄 경우 라니는 관련 규정을 엄격히 지키지 못한 잘못이 발생하는 것이고, 만약 허가를 끝끝내 거부할 경우, 라니의 감독관과 최고감독관, 그리고 비스가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인사들이 라니의 미래에 불이익을 줄 수있기 때문이다. 라니가 불이익을 받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라니가 끝끝내 거절해봤자 그곳의 최고감독관은 다른 근무자에게 대신 허가를 내주라는 지시를 내린다면 비스 사무실의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비스 사무실의 비서는 상급비서와 논의를 하였고 상급비서는 비서에게 방침을 설명해주었다.
비스의 사무실은 여러장의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카드란 비스 사무실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를 비유한 경우의 수이다. 비스 사무실은 다양한 경우의 수를 논의하여 상황별로 어떤 가장 적절한 카드를 사용할 것인지 결정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비스의 사무실에서 라니와 연락이 닿았던 것은 한 번이었다. 물도 첫 모금에 목마름을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지만 만약 물을 계속 마셔도 목마름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다른 것을 의심해보아야 할 터이다. 비스 사무실은 전략과 문제해결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베테랑들이었다. 고작 위원회 허가 따위로 어려움을 느낄 작자들이 아니었다.
라니의 감독관은 자신의 욕망이 우선할 것이냐 규정을 수호할 것이냐는 갈등사이에서 자신의 선한 의지가 더욱 우선한 것으로 드러난 것 같았다. 사실 선한 의지라기 보다는 상식의 발현이었다. 감독관이 개관적으로 자신의 사적인 의지를 분리하고 판단해보았을 때는, 규정에 의해 '정치'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정당인 비스는 위원회를 구성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감독관은 라니가 자신에게 굳이 질문을 하러 온 이유도 이제 알 수 있었다. 라니는 자신의 판단에 힘과 확신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감독관도 다시 생각해보기로는 이런 명확한 사안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에는 자신도 감독관으로서 스스로 자존심이 상했다. 감독관은 이중적인 감정이 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