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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두 번째 첫사랑(화양연화)
작가 : 정연일
작품등록일 : 2018.11.15

6인(人) 6색(色)의 페이크 다큐멘터리.

건실한 직장인이자 가장이었던 강하늘. 대우조선 사태로 정리해고를 당하고 방황하다 알코올 중독자가 된 그에게 새로운 사랑이 다가온다.
‘나는 가정이 있는데….’

유명 사립대 교수로 젊은 나이에 성공과 실패를 맛본 김미영. 좌절 속에서 알코올 중독자가 된 그녀 앞에 나타난 남자.
‘난 친구보다 가벼운 연인이 필요해….’

실직한 남편을 대신해 일을하며 가정을 꾸려가던 신수아. 오직 남편과 아들, 가족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그녀에게 닥친 또 다른 시련.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방황하는 아들의 치료를 위해 노심초사하는 어머니 윤명희.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아들에게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외도는 크나큰 죄악이야….’

아빠의 부재가 늘 안타까웠던 아들 강 산. 어느 날 아빠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고 아빠의 입장을 이해해 보려 한다.
‘내게 여동생이 생겼다고?’

그리고 2049년의 그의 딸 강하영.

여섯 명이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 가족의 이야기.

 
1부. 나의 이야기(4화)
작성일 : 18-11-22 10:06     조회 : 309     추천 : 1     분량 : 8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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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오실 줄은 몰랐어요. 혹시나 해서 전화해 본 거였는데…. 진짜 오셨네요. 사실 연결해 줄 거라 기대도 안 했었어요. 그런데 부인이라 그러니까 별다른 확인 없이 바로 바꿔 주더군요.”

 

  반가운 표정에 나른한 목소리, 취기도 술 냄새도 느껴지지 않는다. 난 걱정스러웠던 마음부터 물어본다.

 

  “술은 얼마나 드셨어요? 무슨 일 있었던 거예요?”

  “많이 안 마셨어요. 어제 잠들기 전에 한 병 마셨어요. 별일 없었고요.”

  “다행이네요. 별일도 없고 술도 많이 안 드셨다니, 언제부터 여기 계셨던 거예요? 집에 안 가셨었어요?”

  “어제 외박 나와서 바로 여기로 왔어요. 집에 가기 싫어서요.”

  “부모님께 말씀은 드렸어요?”

  “네 어제 나오자마자 연락 드렸고 허락받았어요.

  “다행이네요. 별일 없는 거 같아서, 저 연락받고 여기오면서 걱정 많이 했어요. 무슨 일 있는 건 아닌가 해서요.”

  “미안하고 또 고맙네요. 걱정하게 해서, 걱정해줘서.”

  “괜찮아요.”

 

  별일이 없음을 확인하고, 난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테이블 옆 의자에 앉았다. TV에서는 오케스트라의 클래식 연주가 흘러나온다. 클래식 음악 채널 Arte, 순간 그녀가 첼로를 연주했으며, 클래식을 좋아하고 즐겨 듣는다는 편지 내용이 떠올랐다. 그녀는 맞은 편이 아닌 옆에 의자는 당겨와 붙어 앉았다. 내가 물었다.

 

  “왜 집에 가기 싫었는지까지 물어보면 실례겠죠?”

  “그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요. 그리고…. 하늘 씨랑 같이 있을 수 있다면 그러고 싶기도 했어요.”

 

  그녀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 내 뺨을 한 손으로 쓸어본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급하게 나오느라 면도도 못 했네요.”

 

  내가 손을 잡아 내리려고 하자, 그녀는 두 손으로 내 까칠한 얼굴을 쓰다듬더니 안기듯 다가와 뺨에 얼굴을 마주 대며 말했다.

 

  “좋아요…. 아빠 같아. 나 어릴 때….”

 

  그녀는 애교스럽게 소리 내 웃는다. 그리고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완전히 안겨 왔다.

  얼마 전 옛 생각에 우울했던 날, 혼자 계단에 앉아 스스로 자신의 등을 토닥이며 ‘괜찮아, 괜찮아’하고 위로했다는 그녀의 편지가 떠올랐다.

  내가 가볍게 안고 어깨를 토닥이자 그녀가 말했다.

 

  “우리 밖에서 처음 만나는 건데, 희한하죠.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느껴져요. 편안하고, 전혀 어색하지가 않아요.”

  “그러게요. 예전에도 늘 이렇게 안고 토닥였던 것 같은 느낌…. 내가 상상을 많이 해서 그런가 봐요. 저 변태 같죠?”

 

  내가 키득거리며 웃는데, 불쑥 그녀가 묻는다.

 

  “하늘 씨, 저 사랑하세요?”

 

  난 안겨있던 그녀의 어깨를 잡고 가슴에서 슬며시 떨어트려 의자에 바로 앉힌 다음,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잠시 바라보다 내가 묻는다.

 

  “어떨 것 같아요?”

  “모르겠으니까 묻는 거죠.”

 

  난 진지한 얼굴로 계속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제가 편지에 연모의 감정을 느낀다고 썼던 거 기억해요?”

  “네.”

  “그래요. 제가 지금 미영 씨에게 가진 감정은 그냥 ‘좋아한다.’라는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훨씬 더 뜨거운 ‘그것’이에요. 20여 년 전 아내에게 느꼈던 것과 같은 감정이죠. 하지만 그걸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 단어를 사용할 만큼 우린 서로를 많이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사랑에는 단순히 마음만으로는 할 수 없는 책임과 의무라는 각자의 몫이 있어요. 아시다시피 전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입장이 못돼요. 그래서 ‘그렇다’라고도 ‘아니다’라고도 못하겠네요. 미안해요, 제대로 된 답을 못해서”

  “아니에요. 하늘 씨가 냉큼 사랑한다고 말했다면 전 아마 실망했을 거예요. 진심을 말 해줘서 고마워요.”

 

  그녀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잡은 채 내 다리 위로 걸터앉아 나를 꼭 안는다. 나도 그녀를 꼭 안았다.

 

  “그래서 말인데요…….”

 

  그녀는 뜸을 들이듯 조심히 입을 연다.

 

  “저 좀 안아 주실래요?”

 

  그녀를 꼭 안은 채 벽을 바라보던 나는 눈을 감고 잠시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답했다.

 

  “지금 안고 있잖아요.”

 

  잠시 말이 없던 그녀가 다시 말했다.

 

  “무슨 뜻인지 알잖아요. 제 말. 충동적으로 하는 말 아니에요. 오래 생각해 봤고, 깊이 고민한 후 하는 말 이 예요. 그리고 저…. 너무 오래 참았어요.”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얼굴을 외면하고 그녀는 말했고 나 역시 그대로 답했다.

 

  “알죠. 너무 잘 알죠. 여기로 오면서도 잠깐 그런 생각 했었어요. ‘왜, 하필 호텔일까…?’하고요. 그리고 이런 일 상상해 본 적도 있어요. 저도 아주 오래 참았거든요. 아마 미영 씨보다 오래됐을지도 몰라요. 아내와 각방 쓴지 삼 년 넘어가니까요. 하지만 상상과 현실은 다르죠. 전 이런 일을 오래 생각하지도, 깊이 고민하지도 못했으니, 솔직히 좀 당황스럽네요. 전 다만 미영 씨가 술을 더 안 드시도록 곁에서 함께 있어 주고 지켜주다가, 미영 씨가 원할 때 병원으로 모시고 가면 될 거란 생각만 했으니……. 순진하지도 못하면서, 어리석기까지 했네요.”

 

  잠시 아무 말이 없던 그녀는 안은 팔에 힘을 살짝 주며 말했다.

 

  “이래서 제가 하늘 씨를 좋아하는 거예요. 믿을 수 있는 좋은 사람이라서... 하지만 하늘 씨. 사람은 때로는 감정에 복종할 줄도 알아야 하는 거래요. 사랑에는 욕망도 함께 한다는 게 선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말이죠.”

  “그래요. 맞는 말이네요. 하지만 저는 욕망 앞에 먼저 신중해지고 싶어요. 미영 씨는 지금 내게 대단히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가볍게 대하고 싶지 않아요. 조심스러워 지고 싶어요. 소중한 사람이라서.”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미영 씨는 이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다지만 전 그렇지 못했으니 불공평해요. 저한테도 시간 좀 주실 거죠?”

 

  그녀는 안고 있던 팔을 풀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요. 공평하게. 그럼 우리 일단 밥 먹으러 가요. 저 배고파요.”

  “그래요. 나갑시다. 그런데 온종일 식사는 어떻게 하셨어요?”

 

  나의 질문에 그녀는 침대 옆에 있는 빵 봉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빵 조금 먹었어요.”

 

  나는 그녀에게 코트를 입혀주고 외투를 걸치고 함께 호텔을 빠져나왔다.

  우리는 원래 늘 그러고 다닌 사이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고 시원한 저녁 공기를 가르며 시내 쪽으로 향했다. 몇 개의 식당을 지나쳤으나 그녀는 마뜩잖아 했고 나 역시 별로였다. 그러던 중 눈앞에 나타난 익숙한 간판 ‘김밥천국’ 우리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마주 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필요 없었다. 가장 만만한 식당. 수십 가지 메뉴에 저렴한 가격. 내가 문을 열어 주었고 그녀와 함께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우린 상의 끝에 돈가스와 라뽁이, 김밥 한 줄을 시켜 함께 먹기로 했고, 난 일어나 물을 두 잔 떠오고 냅킨을 깔고 수저를 세팅했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가 ‘피식’하고 웃는다.

 

  “왜 웃어요?”

  “아니에요. 아무것도.”

 

  우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나름 음식 품평까지 해 가며 돈가스와 라뽁이, 김밥 한 줄을 나눠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에 다녀온 그녀에게 코트를 입혀주고 가방을 들어주자, 그녀는 또 한 번 ‘피식’하고 웃었다. 내가 다시 왜 웃느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 말하며 웃었다. 계산을 치르고 밖으로 나와 우린 다시 손을 잡고 호텔로 돌아왔다.

  나는 습관처럼 문을 열어주고, 신발을 정리한 다음 그녀의 코트를 받아 걸었다. 나는 외투를 벗고 침대에 앉으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말없이 욕실로 들어가서 욕조 턱에 그녀를 앉히고 쪼그려 않아 바짓단을 접어 올리고 그녀의 발을 씻기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아무 말 없이 수줍은 미소만 지으며 따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하늘 씨 원래 이래요?”

  “뭘요?”

  “문, 물, 수저, 신발, 코트, 발 같은 거요.”

 

  나는 그녀의 발을 비누칠 하며 답했다.

 

  “아... 아내랑 있을 때만요. 원래 그래요. 발은 항상 씻어주는 건 아니고 이따금씩, 안마도 가끔 해주죠. 그런데 왜요? 이상해요?”

  “아뇨, 너무 자연스러워서요. 부럽네요.”

  “집사람은 그렇게 생각 안 할걸요. 몸에 배서. 그래도 전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애정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미영 씨는 발도 참 이쁘네요.”

 

  그녀의 발을 닦아 주고 발등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를 방으로 보낸 후 난 손발을 씻고 세수를 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걸터앉아 환하게 웃고 있던 그녀는 내게 말했다.

 

  “발만 씻었는데도 참 기분이 개운하고 좋아요.”

  “그러시다니, 고맙네요.”

  “그래서 말인데요. 하늘 씨. 저 소주 한 병만 사다 줄 수 있어요?”

  “안될 건 없지만……. 권하고 싶지는 않네요.”

 

  내가 머뭇거리자 그녀는 애교를 섞어 다시 한번 부탁한다.

 

  “괜찮아요. 어차피 어제도 마셨고 내일 다시 병원으로 돌아갈 거잖아요. 사다 줘요~”

  “그래요 그럼. 금방 다녀올게요.”

 

  난 외투를 다시 걸치고 호텔을 나섰다. 편의점 근처에서 담배를 한 대 태우며 나도 한 병 사 가서 같이 마실까 하고 생각하다, 이내 도리질 치며 떨쳐버렸다. 한잔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사실 좀 심란했다) 며칠 전 모임 때 까지도 단주 의지를 굳게 다지던 내가 그녀 앞에서 술을 마시게 된다면 그녀는 자책하게 될 것이다. 그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소주를 한 병 사서 방으로 올라가니 그사이 그녀는 샤워를 했는지 옷을 모두 벗고, 샤워가운만 걸치고 있었다. 놀란 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테이블에 술과 간단한 안주를 내려놓고 마주 앉았다.

 

  TV에서는 여전히 클레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소주를 조금씩 홀짝였고, 우리는 마주 앉아 그간 필담으로는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가족에 관해, 좋아하는 것들에 관해, 그리고 서로에 관해. 여행 이야기를 하다 그녀가 물었다.

 

  “그래서 아직 한 번도 비행기를 못 타봤다는 말이에요?”

  “굳이 따지자면 못 타봤다기 보다 안타 본 거죠. 다음에, 다음에, 하고 미루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그럼 하늘 씨 첫 비행은 제가 시켜드릴게요. 비행기 표는 제가 쏠 테니, 대신 여행경비는 하늘 씨가 대세요.”

  “그건 문제가 아닌데, 그럼 같이 여행 가자는 말이에요? 좋겠네요. 언젠가. 그럴 수 있다면.”

 

  그녀는 내 곁으로 다가와 내 다리 위로 걸터앉아 자신의 몸을 내 몸에 밀착시킨다. 내 손을 만지작거리던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그거 알아요? 우리 엄지손가락이 닮았어요. 어른들이 ‘뱀 대가리’라고 부르시는 손톱 모양이요. 엄지발가락 같은 엄지손가락. 얘기로는 이런 손 가진 사람이 똑똑하고 손재주 많고 잘 산다던데 다 좋은 얘기들이니 사실이라고 믿고 있어요. 믿거나 말거나지만.”

  “틀린 말은 아닌 거 같네요. 미영 씨는 재주도 많고, 똑똑하고, 예쁘고, 좋은 사람이니까.”

  “예쁜 거랑 좋은 사람인 거랑은 상관없는 거 같은데요?”

  “그럼. 오늘부터 예쁘고 좋은 사람인 거도 포함하기로 해요.”

 

  그녀는 내게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내 얼굴을 내려다보며 송아지처럼 둥글고 큰 눈망울을 끔뻑이며 물었다.

 

  “하늘 씨. 시간 더 필요해요?”

  “미영 씨는 저 사랑해요?”

 

  그녀는 즉답을 하지 못한다. 아니 하지 않는다. 그리곤 서로가 생각하는 사랑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분위기가 너무 진지했다.

  때마침 음악이 바뀌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선율, 클래식에는 거의 문외한인 나는 말을 돌린다.

 

  “미영 씨 이 음악 무슨 음악이에요?”

  “요한 스트라우스2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왈츠 춤곡이에요.”

 

  역시 클래식 마니아답다. 남은 술을 입에 털어 넣은 그녀는 분위기를 바꾸려는지 다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춤춰요.”

  “저 춤 못 춰요. 춰 본 적 전혀 없어요.”

 

  그녀는 무작정 일어서며 내 손을 잡아끈다.

 

  “나도 못 춰요. 그냥 음악에 몸을 맡겨봐요.”

 

  그녀는 내 발 등에 올라서더니 나를 꼭 껴안았다. 그녀의 관능적인 몸이 내 전신을 휘감았고, 나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다잡으며 음악에 몸을 맡겨본다.

  그렇게 곡이 끝날 때까지 우린 말 없이 춤이라고 표현하긴 모자란, 하지만 서로의 몸과 향기를 느끼기엔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 음악이 끝나고 내 발 등에서 내려온 그녀가 물었다.

 

  “혹시 성직자예요?”

 

  즐거운 표정이 아니다. 화가 난 건 아니지만 뾰로통한 얼굴.

 

  “어떻게 이 몸을 보고 느끼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요?”

  “미안해요. 잠시만 더 시간을 줘요. 아직 확신이 서지 않네요... 우리 영화 한 편 봐요. 끝나기 전에 결정할게요.”

 

  그녀의 얼굴에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다.

 

  “그래요. 그럼”

 

  난 VOD를 검색했고 그녀는 ‘걸 온더 트레인’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선택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우린 나란히 앉아 말없이 영화를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술기운이 도는지 내 어깨에 기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난 그녀가 잠들기 편하게 어깨를 받쳐주고 잠시 더 기다렸다. 십 분쯤 지나자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잠시 더 기다려 잠이 깊어진 그녀를 두 팔로 조심스레 안아 올려 침대에 바로 뉘었다. 잠든 그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고 가만히 입을 맞춰본다. 달콤하고 부드럽고 알싸한 술맛도 난다.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는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와 소주를 한 병 사 와서 남은 영화를 보며 마셨다. 오랜만의 음주에 속이 살짝 달아올랐으나 취기는 전혀 오르지 않았다.

  영화가 끝났다. TV를 끄고 그녀의 옆에 누워 머릿밑으로 팔베개를 해주자, 잠결에 내 품으로 파고든다. 그녀의 향기가 달콤하다. 정말 편안했고, 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스르르 잠이 들었다.

 

  이른 아침, 창으로 들어온 햇살과 아침의 소리에 잠에서 깬 나는 품속에 잠든 그녀를 바라보았다. 크고 동그란 눈, 오뚝한 코, 작고 야무진 입술. 문득 어제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사랑은 욕망을 동반한 것이며, 때론 감정에 복종할 줄 알아야 한다.’

  순간 명료해진 머릿속에서 또 다른 자아가 내게 말을 건다.

 

  ‘너도 그녀를 사랑하잖아. 그녀도 널 원해. 뭐가 그리 두렵고 어려운 거지? 감정에 충실해. 아내에게 죄책감이 들어서 그러는 거야? 그녀를 마지막으로 안은 게 몇 년이나 지났는지 기억은 나니? 욕망도 사랑의 일부야 망설이지 마.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무의식 속 또 다른 나는, 나를 질책하듯 말했다.

 

  ‘그래. 나도 그녀를 사랑해. 안고 싶어. 그러고 싶었어. 하지만 그녀가 먼저 잠들었어.’

  ‘그럼 지금 그녀를 안아. 본능이 이끄는 데로.’

 

  난 본능이 이끄는 대로 샤워가운을 헤치고 그녀의 몸을 더듬어 나갔다. 그녀가 서서히 잠에서 깰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애무하기 시작했다.

  잠에서 깬 그녀는 순간적으로 나를 밀어냈다. 난 그녀의 몸에서 떨어지며 말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했다. 어제 그녀가 원할 때는 그토록 완강히 거부해 놓고 이제 와서 잠든 그녀를 건드렸으니, 나라도 화가 날 것이다. 샤워라도 하고 와서 그녀에게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그녀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리 와요.”

 

  그녀는 잠깐동안 무슨 생각을 했던걸까...? 따스한 그녀의 몸이 나를 감싸 안는다. 그녀는 몸을 활짝 열어 나를 받아들인다. 우린 이른 아침 햇살 속에서 그렇게 하나가 되었다.

  관계가 끝나고 그녀의 귀에 ‘고마워요’라고 속삭였는데. 그건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을 확인하게 해 줘서 고맙고, 나에 대한 당신의 감정을 보여주어 고맙다’는 의미였지만 설명은 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그녀를 향해 나의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나만의 사랑을.

 

  우린 샤워를 하고 체크아웃을 한 후, 호텔을 빠져나와 어제 갔던 김밥전문점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해변 쪽으로 내려와 오랫동안 손을 잡고 산책을 했다. 기껏 하루를 함께 했을 뿐인데도 우린 서로 오래 사귄 연인처럼 아주 자연스러웠고 편안했다.

 

  돌아오는 길. 그녀와 나는 병원으로 접어드는 길의 한 모퉁이에서 마주 섰다.

 

  “미영 씨. 지난 하루. 저는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늘 꿈꿔왔던 하루와 참 비슷했거든요. 정말 고맙고 행복했어요.”

  “저도 그래요. 우리. 다시 만날 수 있겠죠?”

  “물론이죠. 저는 며칠 후 퇴원이니. 미영 씨가 퇴원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함께 가까운 곳으로 여행가요. 미영 씨가 가고 싶어 했던 통영도 좋고 여수도 좋고 어디든 말이에요.”

  “네. 꼭 그렇게 해요. 저는 한 달쯤 더 있을지, 아니면 그전에 퇴원할지 아직 결정하진 못했지만, 미리 연락드릴게요. 병원 안에서는 더는 만나기 힘들 거에요. 당분간. 마지막 인사네요.”

  “네. 잠시 안녕이네요. 퇴원하면 자주 전화 할게요. 편지도 보낼 게요.”

  “저도 편지하고 전화 할게요.”

 

  우린 잠시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응시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같이 들어가면 이상하게 생각 할 거예요. 먼저 들어가세요. 저는 나중에 들어 갈게요.”

  “그래요.”

 

  우리는 서로를 꼭 껴안았고 난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병원을 향하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고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녀를 들여보내고 전화기를 켜 보니 부재중 어머니의 전화가 여러 번 찍혀 있었다. 바로 전화를 드렸더니 대뜸 ‘어디서 뭘 했는지’ 물으신다. 어머니는 나와 통화가 안 되자 아내에게 연락했을 것이고, 내가 거제에 내려가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을 터였다.

  난 일전에 함께 중장비 일을 배운 친구와 취업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만났었고, 지금 병원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왜.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며 꾸지람을 하셨지만,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외박을 나갈 수 없기에 그랬노라고 용서를 구했다. (아마도 어머니의 의심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리라, 생각한다.)

  귀원 후 음주 측정과 간단한 면담이 있었다. 나는 볼일을 잘 보고 특별한 상황 없이 돌아왔노라고 거짓을 말했다. 지난밤의 소주 몇 잔이 측정될 리도 없었고. 알리바이도 문제없었다.

  그녀가 걱정이었다. 혈액검사까지 하지 않는 이상 음주사실 이 발각될 리는 없지만 헤어지기 전 그녀는 병원에서는 더 이상 못 볼 것이라고 말했다. 외박 중 음주 사실을 자인할 생각이리라 거짓 없이.

  외박 중 음주는 한 달간 외출, 외박 금지와 함께 일주일간 병동 감호 조치된다. 치료 교육 프로그램은 물론 식당과 옥상 산책장도 이용할 수 없다.

  예상대로 내가 퇴원하는 날까지, 그녀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나흘이 지나고 퇴원하는 날 두 친구(파마와 몽키)는 작별인사를 하며 한가지 당부를 잊지 않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는 술에 빠지지 말라고, 다시 병원에서 만나지는 말자고.’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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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부. 그녀의 이야기(1화) 2018 / 12 / 2 298 0 5847   
12 1부. 나의 이야기(11화) + 에필로그 -하늘- 2018 / 11 / 29 308 1 6178   
11 1부. 나의 이야기(10화) 2018 / 11 / 29 320 1 5192   
10 1부. 나의 이야기(9화) 2018 / 11 / 28 322 1 8944   
9 1부. 나의 이야기(8화) 2018 / 11 / 28 306 1 8415   
8 1부. 나의 이야기(7화) 2018 / 11 / 26 313 1 8070   
7 1부. 나의 이야기(6화) 2018 / 11 / 24 332 1 7340   
6 1부. 나의 이야기(5화) 2018 / 11 / 23 312 1 6054   
5 1부. 나의 이야기(4화) 2018 / 11 / 22 310 1 8966   
4 1부. 나의 이야기(3화) (1) 2018 / 11 / 20 347 1 6297   
3 1부. 나의 이야기(2화) 2018 / 11 / 19 336 1 6247   
2 1부. 나의 이야기 (1화) 2018 / 11 / 18 326 2 6082   
1 인사, 목차, 프롤로그 2018 / 11 / 17 499 1 3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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