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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401 기동조사반
작가 : 칠미리
작품등록일 : 2018.11.4

주택가 골목에서 일어난 한밤의 폭행사건. 변호사 서유림이 사건을 맡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유력한 용의자는 현장에서 체포된 사설탐정. 그것도 하필이면 서유림의 첫사랑 엄기동이라니……. “정황에 가려진 진실이 있어. 난 범인이 아니라고!!” 사건의 규모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커지게 되고, 그 뒤에 감춰진 검은 세력들이 하나 둘 베일을 벗기 시작하는데……. 변호사와 사설탐정의 콜라보를 그린 좌충우돌 본격 수사 성장물. 과연 이들은 아름다운 러브라인의 결실을…… 아니,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낼 수 있을 것인가.

 
[9화] 줄여서 '기동 조사반'
작성일 : 18-11-21 20:34     조회 : 250     추천 : 0     분량 : 8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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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퍽! 퍽! 퍼억!!

 태성빌딩 5층에서는 아까부터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아이고! 아이고!”하는 곡소리가 들리더니 좀처럼 멈출 기미가 없다. 복도에서 대기 중인 신체 건강한 건달들도 긴장하게 만드는 소리였다.

 

 “사, 사장님! 너무 아파요. 진짜로 죽을 것 같단 말입니다.”

 

 날아오는 골프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일구의 흔들리는 엉덩이가 몹시도 애처롭다. 한 대 맞고 고꾸라지고, 또 한 대 맞고 고꾸라지고……. 이런 식으로 도대체 얼마나 버틴 걸까?

 

 “손모가지 부러진다. 손 안 치워? 에라~ 부러지든가 말든가.”

 “아악!!”

 

 가차 없이 휘두른 필살스윙에 구일구가 손목을 잡고 데굴데굴 구르고 있다. 아니, 지금은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손 맞았어, 손. 아우, 진짜로 맞았어.” 이런 고통 섞인 신음을 내뱉는 중이다. 최태성이 골프채를 내동댕이치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야! 이 모자란 새끼야. 괜찮을 거라며, 엉? 넌 지금 이 상황이 괜찮아 보이냐?”

 “저기요…… 아니, 아니, 형님……. 아니, 사장님.”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상황이라는 게요…… 이게 항상 똑같을 수만은 없는 거거든요. 그때는 분위기 정말 좋았단 말입니다. 저요, 너무 억울해요. 놈이 이렇게 용의주도하게 움직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용의주도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너 멍청한 건 생각 안 하냐? 너의 그 잘못된 판단이 새끼야, 응? 지금 회사 전체에 얼마나 막대한 손해를 끼쳤는지 알기나 해? 이 병신 같은 놈아. 어떻게 된 새끼가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 뒈져라. 뒈지라고!”

 

 이젠 그만 때리겠거니, 방심하던 구일구가 날아오는 발길질에 또 한 번 엄살을 부리며 죽는 시늉을 하고 있다. 엎드려서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있는 모습이 여간 안쓰러운 게 아니다.

 

 “이런 놈을 데리고 일하는 나도 참 신통하다. 진즉에 말아 먹었어도 이상할 게 없는데 말이지. 응? 말해봐.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할 거냐고?”

 “아야, 아아아! 아야!”

 

 최태성이 구일구의 두툼한 귓불을 사정없이 잡아당길 때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들어온 한기주가 최태성 곁으로 다가가서는 무슨 중요한 얘기라도 하듯 귓속말을 속삭인다. 가뜩이나 더러운 최태성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왜 귀에다 바람을 집어넣고 지랄이야?”

 “아, 죄송합니다. 직접 보시겠습니까?”

 

 한기주가 건넨 서류파일에는 제법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기사들이 스크랩되어 있었다. ‘안원동 재개발-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철거민들의 눈물’, ‘르포-안원동 폭행 주도한 최태성은 누구?’ 라는 헤드라인의 기사들이 최태성의 눈에 들어왔다.

 

 “뭐야 이거. 이게 언제 적 일인데 이제 와서 이걸 왜 내밀어? 이게 뭐 어쨌다고.”

 “그 기사 쓴 놈 말입니다.”

 

 ‘아, 그놈. 더럽게 귀찮게 하네.’라는 얼굴로 최태성이 다시 한 번 기사를 확인했다. 모든 기사는 <엄기만 기자>라는 이름으로 마무리 되고 있었다.

 

 “그래, 맞아. 엄기만이……. 오랜만에 보네, 이 이름.”

 “그 놈 동생입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다는 듯 최태성이 물었다.

 

 “그러니까 누가?”

 “엄기동 말입니다. 15년 전에 죽은 엄기만의 동생이……”

 “그놈이라고?”

 

 어딘가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최태성에게 한기주의 설명이 전해진다.

 

 “네. 전에 한번 보셨을 겁니다. 혼자 사무실에 쳐들어와서는 싹 다 엎어놓지 않았습니까. 어린 나이치고는 상당했지요. 그때 죽지 않을 만큼만 해서 보내라고 하셨는데……, 약발이 다 떨어졌나봅니다.”

 

 어이가 없어서 실소라도 터뜨린 걸까? 한기주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던 최태성이 갑자기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과장돼 보이는지 미친 사람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어보였다. 슬슬 눈치를 살피던 구일구가 이때다 싶었는지 대뜸 자기자랑을 늘어놓는다.

 

 “그것 봐요. 제가 뭐랬어요. 제가 분명히 어디서 본 것 같다고 그랬잖아요. 아, 그때 눈치를 좀 채시지.”

 

 하지만 칭찬대신 돌아온 것은 “이 새끼가…….” 라는 사나운 눈초리였다. 실내는 한순간에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그러니까 뭐야. 그놈이 처음부터 작정하고 나한테 덤빈 거다, 이 말이야?”

 “처음부터 노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글쎄요, 이렇게 계속 엮이는 거 보면 악연은 악연인가 봅니다.”

 “치워버려.”

 “네?”

 “뒤탈 없게 치워버리라고. 뿌리째 뽑아버리란 말이야. 그 악연.”

 

 한기주가 난감한 기색으로 “저…… 그게.”라며 뜸을 들이고 있다.

 

 “또 뭐, 왜?”

 “당분간 몸 사리라는 강회장님의 지시, 벌써 잊으신 겁니까?”

 “그러니까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워버리라는 거잖아.”

 “가뜩이나 그 여자 일로 분위기도 어수선한데 공연히 다른 일까지 벌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만에 하나 일이 틀어져서 그분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마진동 개발, 그거 손가락 빨면서 구경만 해야 할 겁니다. 틈만 나면 정치판 쪽에도 기웃거리는 양반인데 괜한 말썽 일으켰다가는 우리 태성, 언제든 가차 없이 내쳐질 수도 있습니다.”

 

 한기주의 지적에 최태성의 생각이 복잡해졌다.

 고진건설 강진상 회장. 그저 그런 깡패 최태성을 사업가의 반열로 올려놓은 장본인이다.

 어떻게 보면 은인이나 다름없는 존재라고 여길 수 있겠지만 최태성의 입장은 달랐다. 고진건설이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데에는 그만큼 자신의 힘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쯤 되니 최태성은 사업파트너까지는 아니더라도 강진상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인물이라고 스스로를 치켜세우게 된다. 그런데도 아직 자신을 부려먹는 수하쯤으로 취급하다니, 최태성의 불만이 커져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 노인네 참, 누구 때문에 그렇게 호의호식 하면서 잘살고 있는데……. 아직도 내가 지 꼬붕인 줄 아나? 사람 참 섭섭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 안 그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강진상을 조심하는 눈치다. 최태성이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에도 괜한 자존심에 허세를 부려보는 걸 한기주가 눈치껏 받아준다.

 

 “그렇고 말구요. 어떻게 보면 고진건설은 사장님께서 키우신 거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강회장님도 분명 그 점은 인정하고 계실 겁니다. 다만……, 야망이 커지는 만큼 저희와 거리를 두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봐야겠지요.”

 

 그럴싸하게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강진상을 포장하려는 느낌은 아무리 단순 무식한 최태성이라 해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가만 보면 말이야, 난 네가 내 밑에 있는 놈인지, 아니면 강회장 쪽 사람인지 헷갈릴 때가 많아요.”

 “…….”

 “하기야 뭐 틀린 말은 아니지. 그래서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 놈을 그냥 보고만 있으라고?”

 “저한테 맡기십시오. 정 안되겠다 싶으면 그때 가서 처리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자신에게 맡기라니, 이 얼마나 믿음직스러운 말이던가. 물론, 그만큼의 책임이 뒤따르는 말이겠지만 어쨌든 한기주는 사회생활에서 사랑을 듬뿍 받는 방법을 훤히 꿰차고 있는 모양이다. 최태성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이래서 내가 한비서를 좋아한다니까. 자네만큼 일 잘하는 친구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어. 안 그래? 누구처럼 게을러터지지도 않았고 말이야.”

 

 그러면서 못마땅한 얼굴로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자 구일구가 움찔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산뜻한 마무리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최태성은 보기만 해도 역겨운 미소를 가득 내뿜으며 문 밖을 나섰다. 여전히 풀이 죽어있는 구일구를 한기주가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다.

 

 “사고 좀 치지 마라. 맨 날 얻어터지기나 하고……, 애들 보기 쪽팔리지도 않냐?”

 “시끄러! 나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이게 어디서 잘난 척이야.”

 

 걱정이 돼서 하는 말에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려본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가지 못했다. “돈 좀 있냐? 나 약 좀 사다 발라야 할 거 같은데……. 아, 너무 아프다.”라고 말하는 구일구의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처량해보였다.

 .

 .

 .

 “그게 무슨 말이야. 최태성이라고 했어, 지금?”

 

 뜨거운 국밥을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엄기동을 장연성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깍두기를 크게 한입 베어 문 엄기동이 대답했다.

 

 “그렇다니까, 몇 번을 말해.”

 “이게 겁도 없이……. 하지 마. 여기서 그만 접으라고. 너 최태성 그 인간이 어떤 놈인지 몰라서 그래?”

 “알아. 그러니까 기회 왔을 때 잡아야지. 그리고……, 겁이 나도 해야 되는 일이라는 게 있잖아.”

 

 둘의 대화로 미루어보아 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경찰 장연성도 최태성의 존재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눈치다.

 

 “형. 그 피해자가 누군 줄 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태성캐피탈에서 자금관리 하던 여자야. 어디까지 관여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런 사람을 그 지경까지 만들어 놨다는 건 분명히 뭔가가 있다는 거잖아. 냄새 확 나지 않아?”

 

 난폭하고 사나운 개를 툭툭 건드려보려는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엄기동은 별일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다. 장연성이 또 한 번 말리고 나선다.

 

 “내가 할게, 내가. 내가 강력반에 있을 때의 경험을 잘 살려서…….”

 “아이고, 이거 왜 이러실까. 또 엉뚱한 데로 발령받으면 어쩌시려고. 형 계속해서 뺑뺑이 돈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니, 파출소에서까지 밉보이고 싶어서 그래요?”

 

 한심스럽다는 듯 비꼬는 말에 장연성은 15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형제와도 같았던 친구 엄기만의 죽음. 거기엔 의심스러운 정황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분명한 건 그 배후에 최태성이 있었다는 것. 그런데 어째서인지 상부에서는 단순사고로 서둘러 사건을 종결시키고 만다. 당시 강력반 형사였던 장연성이 강하게 항의도 해보고 별 지랄을 다 떨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영성은 단독으로 수사에 들어갔고, 결국 최태성을 소환하게 된다. 하지만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갑작스런 발령조치가 내려졌다. 그것도 전화 한통으로 말이다.

 넉살을 피우며 당당하게 경찰서 밖으로 나가던 최태성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잊혀 지지 않고 있다.

 

 “아픈 데를 찌르고 그러냐. 그리고……, 그때랑은 다르지. 위에 전부 물갈이도 됐고, 나도 생각이라는 게 있는 놈인데 아무러면 똑같이 당할까? 그쪽에 아직 아는 사람도 많고, 부탁만 하면 다 들어줄 거야.”

 “이번만 해도 그래. 조사도 안하고 그냥 퍽치기 쪽으로 방향 틀었잖아. 병실 앞에 경찰만 배치했어도 내가 이렇게 나서고 그랬을까? 물갈이됐어도 어차피 다 그 라인이야. 지금도 태성 커버치고 있다고.”

 “이 자식이. 어쨌든 하지 마. 너 이러는 거 기만이가 좋아하겠냐? 너보다야 내가 낫지.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너 싸움 잘해? 너 스무 명이랑 싸워봤어?”

 

 어깨를 으쓱거리며 괜한 힘자랑을 늘어놓는 걸로 봐서 두뇌활용을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진 않다. 강력반 시절 역시 그랬을 것이다.

 

 “누가 수사를 힘으로 해. 그러니까 맨 날 다치고 그러지.”

 “아니, 그래도 내가 명색이 경찰인데……, 네가 나서는 거는 아닌 거 같다. 위험해.”

 "그럼 형이 옆에서 도와주면 되겠네. 형 말대로 나 같은 일반인한테는 한계라는 게 있잖아. 그럴 때 형이 딱 나서서, 응?…… 어때, 내가 그림 한번 그려볼까?”

 

 엄기동의 말에 장연성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이고, 참 나, 웃겨 가지고……. 네가 수사를 알아? 드라마 보니까 쉬워 보이지? 그렇다고 이게 아무나 막 하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우리한테는 말이야, 감이라는 게 있거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육감. 그거를 바탕으로 인마, 범죄를 인지하고, 응? 공소제기 가능성까지 따지면서……, 또 뭐냐.”

 “신의칙과 수사비례 원칙의 상당성을 고려해야 한다, 뭐 이 말이잖아. 나야 어차피 수사기관과는 별개고, 증거 잡는 데만 주력할 거니까……. 그런 면에서는 형보다 내가 더 자유로울 것 같은데.”

 “…….”

 

 과자 뺏는 얍삽한 어린아이 마냥 장연성의 말을 싹둑 잘라다가 자기 입으로 말해버린다. 허를 찔리면서도 신기하다는 듯 멍하니 엄기동을 바라봤다.

 

 “너, 어디서 공부했니?”

 “나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뭐를…… 해서 먹고 사는데?”

 

 그제 서야 엄기동은 기다렸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100% 만능해결을 지향하는 기동 민간조사 사무소, 줄여서 기동조사반! 안녕하십니까. 민간조사원 엄기동입니다. 탐정이지요.”

 “타, 탐정……?”

 

 이때 어디선가 푸흡! 하고 웃음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기동 옆에서 존재감 없이 국밥을 떠먹고 있던 서유림이었다.

 그렇게 서로 할 얘기가 많으면 끌고 오지나 말든가. 집에 가겠다는 사람을 한사코 말리며 데려다 앉혀놓고서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이렇게 방치해 두고만 있으니, 이 무슨 매너 없는 행동이란 말인가. 딴 사람들 같았으면 아유, 이걸 확 그냥!……

 어쨌든 불편한 기색을 감추며 적당한 때에 일어날 참이었는데 엄기동의 과대광고에 그만 반응을 보이며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엄기동과 눈이 마주친 서유림이 헛기침을 해가며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숟가락을 다시 들었다. 엄기동이 장연성에게 눈치를 주며 말했다.

 

 “형. 나중에 얘기하자. 나중에…….”

 “아,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이거 실례를 범했네. 숙녀 분을 앞에다 두고 우리끼리 뭐하는 거야. 하하하하! 어떻게……, 애인 사이?”

 

 한참동안이나 존재감이 없어서였을까. 갑작스런 관심과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아니에요, 그런 거. 그냥 친굽니다. 고등학교 친구.”

 “형. 얘, 기억 안나? 그때 장례식장에서 형 보고 웃음 터진 애.”

 

 얘가 뭐라고 하는 거야. 내가 언제?…… 하는 사이, 서유림의 기억 밑바닥에서 뭔가 하나가 스멀스멀 떠오르는 게 느껴졌다.

 15년 전 엄기만의 장례식장. 멀리서 엄기동의 슬픔을 말없이 지켜보던 서유림이 어디선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꼬릿한 냄새에 주변을 둘러보다가 웬 건장한 남자의 구멍 난 양말을 발견하고는 그만!……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웃지 말아야 할 곳에서 한번 터진 웃음을 참기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그 위력이 너무나도 강력하여 본인은 물론 주위사람들까지 미치고 환장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니까 말이다.

 

 “아, 기억난다. 기억나. 그게 이 친구였어?”

 

 그걸 굳이 기억해낼 건 또 뭐람! 서유림의 얼굴이 후끈 달아오를 때였다. 문득 뭐라도 기억났는지 장연성이 “어? 그러고 보니…… 맞네. 아, 그러네.”라며 서유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한다.

 

 “기동이 너 전에 맘에 드는 애 있다면서 사진 한번 보여줬었잖아. 이 아가씨 아니야? 그때 왜, 귀엽다면서 한번만 봐달라고 나 귀찮게 했던 거 기억 안 나?”

 “내가 언제? 형들이 뺏어 본 거면서…….”

 

 글쎄요, 저는 귀여움이랑은 거리가 멀었거든요. 더구나 사진이라니요…….

 두꺼운 안경알과 치아교정기를 장착한 리즈시절(?)의 사진은 서유림조차 몇 장 가지고 있지 않은, 그야말로 희귀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사진을 엄기동이 갖고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렇게 스스로를 후보에서 탈락시키고 있을 때였다.

 

 “그만 일어나봐야겠다. 내가 계속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서. 다음에 제대로 술 한 잔 하자. 아, 그리고…….”

 

 호출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난 장연성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찌됐건 너 혼자서 뭘 해보겠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마. 허락을 받으라고, 나한테. 알았어?”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협박을 하는 건지, 아무튼 그런 무서운 경고에도 불구하고 엄기동은 생글거리는 미소로 “전화할게.”라는 짧은 대답만 하고 있을 뿐이다.

 .

 .

 .

 연북동에 위치한 목조건물 4층. 공간을 분리하는 인테리어 공사가 어느덧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알맞게 분할된 실내는 생각보다 답답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균형감 있고, 훨씬 사무실다워졌다고 해야 할까? 넓어서 휑해 보이던 공간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제 전기공사만 끝내면 가구와 집기들을 들여놓을 것이다. 하지만,

 흐뭇한 미소로 공사 진행을 바라보고 있는 박문수와는 달리 서유림은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찜찜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기, 문수 씨. 여기서 마무리 되면 뭔가 이상하지 않아? 이러면 뭐랄까, 그냥 내가 여기에 속해있다는 기분이 들잖아. 당연히 벽까지 막아서 하나의 독립된 공간을 만들어야지. 문도 따로 달고.”

 

 자세히 들여다보자.

 401호 출입구 앞에는 ‘기동 민간조사 사무소’라는 간판 옆으로 ‘서유림 법률사무소’라는 간판만 달랑 하나 추가됐을 뿐 법률사무소로 통하는 문은 따로 나있지 않았다. 실내로 들어서면 복도를 지나 중앙에 위치한 공용 응접실을 기준으로 마치 하나의 회사에 두 개의 팀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서유림 법률사무소'는 ‘기동 민간조사 사무소’에 속해있는 ‘법률상담소’ 쯤으로 보인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어, 아닌데? 이렇게 하라고 해서 한 건데? 소장님이랑 같이 상의한 거 아니었어요?”

 “상의는 했지, 했는데……. 지금 이거랑은 다르다니까? 기동이 어디 갔어?”

 “의뢰인 만나러요, 제가 전화해 볼까요? 이상하다, 왜 그러셨지?”

 

 난데없는 클레임에 박문수는 서둘러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계속되는 통화대기음에 서유림의 눈치만 살피던 박문수가 갑자기 몸을 돌려 입을 가렸다.

 

 “형. 어디쯤이셔? 어디? 아, 지금 좀 빨리 들어오셔야 될 거 같은데. 아니, 지금 이렇게 공사 끝내면 안 될 것 같아서. 변호사님이…… 아앗!”

 

 손으로 가린 채 속삭이듯 통화하는 박문수의 휴대전화기를 서유림이 사납게 가로챘다.

 

 “어, 기동아, 난데. 딴 게 아니라 뭐가 좀 이상해서……. 내가 준 평면도 있잖아. 그거랑 많이 좀 다른데. 아니, 그것보다 402호 출입문 자체가 없어. 어디서 착오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뭐? 다시 한 번 말해봐. 일부러?”

 

 전화기를 잠시 내려놓은 서유림이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기 위해 긴 한숨을 내쉬어보지만 이미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버린 듯 했다.

 

 “야! 엄기동! 누가 네 맘대로 결정하래. 너 이거 엄연한 횡포고, 갑질이야. 위법이라고. 알아? 뭐, 설명? 오냐, 그래. 딱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빨리 들어와서 당장 해명해. 뭐? 웃기지마. 지금 당장 안 들어오면 다 때려 부술 테니까 그런 줄 알아.”

 

 박문수의 눈에 비친 서유림의 모습은 마치 사납게 짖어대는 한 마리 투견과도 같았다.

 
작가의 말
 

 그랬다고 합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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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화] 우리가 원하는 것 2018 / 12 / 14 250 0 4695   
18 [18화] 함정에 빠진 기분이야 2018 / 12 / 13 267 0 6155   
17 [17화] 누구보다 뜨거운-회상4 2018 / 12 / 11 268 0 5181   
16 [16화] 누구보다 뜨거운-회상3 2018 / 12 / 9 268 0 6902   
15 [15화] 누구보다 뜨거운-회상2 2018 / 12 / 6 259 0 6800   
14 [14화] 누구보다 뜨거운-회상1 2018 / 12 / 5 289 0 5778   
13 [13화] 어렵게 얻은 정보 2018 / 12 / 4 275 0 6045   
12 [12화] 그거야 나도 모르지 2018 / 11 / 29 262 0 6172   
11 [11화] 그녀가 쥐고 있는 열쇠는? 2018 / 11 / 26 269 0 5827   
10 [10화]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2018 / 11 / 23 272 0 5049   
9 [9화] 줄여서 '기동 조사반' 2018 / 11 / 21 251 0 8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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