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의 마을 : 스타티니티]

　"이쯤인가...?"

　그레이스는 눈 앞에 공간에 펼쳐진 반투명한 지도를 보며 세루리안의 집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찾은 다음에는 어떡하지...?'

　다른 사람에게 말 한마디도 재대로 걸 수 있다는것은 오늘 2차례나 확인 한 사실이었다.

　무언가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3번째 같은 실수를 반복할게 분명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고민에 빠진 그레이스

　그런 그레이스의 앞으로 하얀빛으로 빛나는 철갑옷으로 무장한 한무리의 병사들이 지나갔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살색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완벽한 중무장이었다.

　착용한 장비들의 형태와 재질로봐서 상당히 고레밸의 NPC들임이 분명해보였다.

　-왕실 직속 친위대-

　그레이스가 그들의 모습을 보고 생각한 첫 인상이었다.

　어깨 갑주에 선명한 푸른 십자가를 보아 어느 종교 소속의 성기사일 것도 같았다.

　"아이~ 이건 못쓰겠어~"

　병사들 중 가장 뒤쪽에 있던 병사가 갑옷의 안쪽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말했다.

　앞에 있는 병사들과는 꽤나 거리가 떨어져 걷는 두 병사

　"그게 뭔데 그래?"

　"쉿, 이거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된다?"

　"그래. 그래서 그게 뭐냐니까?"

　"이번 원정에서 갔던 아카네 신전에서 내가 몰래 훔쳐온거거든? 비싸게 팔 수 있을것 같아서?

　근데 이거 훔친 이후로 자꾸 어떤 여자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잘때 누가 막 목을 조르는것 같기도 하고"

　"야! 이 미친놈아! 됐어! 더 이상 말하지 마. 나까지 저주받을라 그거 당장 안버려?

　너... 설마 그거 착용한건 아니지? "

　"야이! 내가 그렇게 멍청해보여?! "

　"멍청이고 자시고 당장 안버려?!"

　갑옷으로 중무장한 병사가 이야기를 꺼낸 병사의 손을 쎄게 가격했다.

　그러자 병사의 손에 들려있던 검은 물건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당연하게도 그 물건을 떨어뜨린 병사는 물건을 주우려고 하지 않았고,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은 그레이스 한 사람 뿐이었다.

　병사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레이스는 보도에 떨어진 검은 물건을 확인하기 위해 다가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신전에 있던 물건이라면 보물 아니겠는가?

　주워다 팔면 분명 돈이 될게 분명했다.

　"이게 뭐지...?"

　그레이스는 병사가 떨어뜨린 검은 물건을 집어들었다.

　크기는 대충 자기 손바닥만한 크기였다.

　"이거... 가면인가...?"

　여기저기 깨지고 갈라져 이미 없어진 부분도 있었지만, 사람의 눈이 있을 장소에 뚫린 구멍은 분명하게 남아있었다.

　코의 아랫부분은 파손상태가 더 심했는데, 좌측 턱에서 인중까지를 덮고 있어야 할 마스크는 이미 형태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래... 이거야"

　예로부터 가면은 다른 누군가로부터 자신이 누구인지를 숨기기 위해 사용했던 훌륭한 은폐도구였다.

　그리고 그건 지금의 그레이스에게 꼭 필요한 기능이기도 했다.

　그레이스는 가면을 얼굴에 가져갔다.

　그레이스의 손바닥만한 작은 가면이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리고 그레이스가 가면을 얼굴에 쓰자....

　"넌 누구지?"

　그레이스의 귀에 낯선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

　깜짝 놀란 그레이스가 가면을 벗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

　주변에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잘못 들은건가?"

　어딘가 오싹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레이스는 다시 한번 가면을 쓰기위해 가면을 얼굴로 가져갔다.

　"너 인간이 아니구나?"

　낯선 여성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누구...세요...?"

　얼굴이 파랗게 질린 그레이스가 겁에 질린 자라처럼 목을 숨긴자세로 제자리에서 굳어졌다.

　"너... 이쪽 세계 인간이 아니지?

　 너... NPC가 아니지?

　 너... 창조신의 세계에서 왔지? "

　계속해서 질문을 해오는 여성의 목소리, 그레이스는 이게 책으로만 봤던 귀신이라고 생각했다.

　"귀..귀신님이세요?"

　눈 앞에 있는 사람에게는 말도 못걸던 그레이스가 형체가 없는 귀신에게는 용감하게 말을 걸었다.

　그것도 아주 정중하게말이다.

　"귀신이라니, 그런 저급한 놈들이랑 비교하지 말아줄래?"

　들려오는 목소리가 약간 앙칼지게 바뀌었다.

　"에...? 그럼 누구세요??"

　"신"

　"네...?"

　들려온 대답을 들은 그레이스가 당황한 듯 말했다.

　"신이라고. 여신!

　내가 바로 전쟁의 여신 아카네님이란 말이야"

　"전쟁의 여신 아카네....?"

　그레이스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여신의 이름이었다.

　아마 이쪽 세계를 만들때 사용된 설정 중에 생겨난 새로운 신인 모양이었다.

　"후후훗, 그래 이쪽 세계 사람이 아닌 넌 나에 대해 잘 모르겠지만

　이래봬도 이쪽 세계에서는 가장 무서운 신 중 하나라고 바로 이 몸이"

　"아....그러세요....?"

　여신이 말을 걸어옴에도 그레이스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귀신이라면 모를까 여신이라면 다음 게임에서도 많이 만나봤던 그레이스였다.

　"그래서 저한테 무슨 볼 일이세요?"

　"무슨일이긴? 당연한거 아니야? 넌 지금 나한테 저주받았다고"

　"에...? 그게 무슨..."

　자기 입으로 방금전까지 '여신'이라고 불렀던 신의 입에서 지금 '저주'라는 단어가 튀어 나왔다.

　자기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대체 왜?

　"뭐 좋아. 이세계사람인 너에게 이 여신님께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너가 지금 얼굴에 쓴 가면, 장비창에 가서 확인해봐 "

　여신의 목소리에 따라 그레이스는 정보창에 있는 자신의 장비를 확인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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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신 아카네의 칠흑의 가면 - 천 (등급 :에픽)]

　체력 : 1000 방어력 : 0

　힘 : 120 지능 : 50

　민첩 : 100 정신력 : 50

　행운 : 30

　● 전용 효과 :

　▷'리턴' : 착용자의 기량의 따라 가면이 지녔던 본래의 힘이 되돌아온다.

　▷'아카네의 축복' : 전투시 행운을 제외한 모든 스텟이 +50 증가한다. 전투가 진행될수록 부여되는 스텟이 점점 증가한다.

　● 부가 효과 :

　▷'계시와 저주' : 가면의 착용자는 전쟁의 여신' 아카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신의 저주를 받은 인간은 7일 내에 반드시 사망한다.

　 몸의 주도권을 주고 여신과 경쟁하게 된다.

　▷'아카네의 심판': :HP 5%미만시 20% 확률로 착용자의 몸에 강림한 아카네가 모든것을 선멸한다. 몸의 소유권을 어떻게 돌려받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신들의 세계에서 '악'으로 규명한 전쟁의 여신 '아카네'가 사용하던 전투마스크

　 창조자와 같아지고 싶어하던 그녀의 최후는 비참했다고 전해진다.

　: 우리의 규율을 어긴 전쟁의 여신 '아카네'. 현시간부로 그녀를 '악'으로 칭하고 섬멸을 시작하겠다. 창조신의 영역을 넘본 그녀를 당장 섬멸하라! - 정의의 신 '티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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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와~"

　장비창을 확인한 그레이스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길에서 주운 장비의 등급이 무려 에픽등급

　게다가 입고 있는 교복과 마찬가지로 능력치가 계속해서 올라가는 부가 옵션까지 가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주는 능력치 자체도 대부분 0인 교복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였다.

　초보용 장비들이 스텟을 어느정도 올려주는지는 몰라도 기존에 해왔던 게임들을 생각하면 지금 여기 적힌 수치들은 결코 적은 수치들이 아니었다.

　"어이~어이~ 너 글 제대로 읽은거 맞어?"

　아카네가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네 분명 제대로 읽었어요. "

　그레이스는 당연하다는듯 대답했다.

　"......"

　장비의 정보를 읽었다면 분명 마음에 걸리는 문구들이 보였을게 분명했다.

　가령 '7일 이내에 죽는다' 라던지 '몸의 소유권을 빼앗긴다' 라던지 하는거 말이다.

　"너 7일 안에 죽는다고, 그렇게 좋아해도 되는거야?"

　아카네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인간이란건 세상에 존재할리가 없었다.

　"음~ 그치만 아까 신님께서도 저보고 그랬잖아요? '너 인간이 아니지?'라고"

　그레이스가 아까전 아카네가 처음 말을 걸어왔을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물론 그랬지, 하지만 그건 '이쪽 세계 사람'이 아니라는걸 물어봤던거지. 너가 인간 자체가 아니라는 뜻은...."

　그레이스의 질문에 아카네가 장문의 문장을 늘어놓고 있을 그 때,

　그레이스가 자신의 정보창을 열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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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름 : 그레이스 성별 : 여

　나이 : 18 직업 : 없음

　종족 : ??? 레벨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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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보창을 읽던 아카네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정보가 있어야 할 정보창에 정보가 규정되지 않은 '?'가 찍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종족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아마... 7일 뒤에도 안 죽지 않을까요?"

　그레이스가 순진한 눈망울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돌아오는건 침묵 뿐이었다.

　"그리고 저 여신님 말대로 NPC가 아니니까, 죽어도 어딘가에서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요?"

　한번 죽은 NPC는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달랐다.

　사망 패널티가 있긴 하겠지만, 플레이어에게 게임상의 죽음 = 영원한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건 'Epic Tales'도 마찬가지일것이 분명했다.

　그레이스의 말을 들은 아카네는 그 뒤로 잠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 제 소개가 늦었죠? 제 이름은 그레이스예요. 18살이구요. 아... 여고생은 아니에요! 학교를 못다녔거든요. "

　아카네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그레이스는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신님도 자기소개를 했는데, 자신은 아직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에....또 그리고 좋아하는건 VR게임이랑 아빠고, 싫어하는건......"

　싫어하는걸 말하려던 그레이스가 잠시 주춤거렸다.

　"싫어하는건 아픈거에요. 차라리 죽었으면 하고 기도했던 것도 한두번이 아니에요. 죽고나면 안아플테니까요."

　거기까지 말한 그레이스는 방긋 웃어보였다.

　신님이 대답해주길 기다리는것 같았다.

　하지만

　1분....

　2분....

　"......"

　침묵속에서 시간이 계속해서 흘러갔다.

　"여신님? 계세요?"

　그레이스가 조심스럽게 여신님을 불러보았다.

　시간이 꽤나 지났는데도 아무런 이야기도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후.... 좋아. 너라면 내 소원을 이루어줄지도 모르겠어."

　한참을 침묵하던 아카네가 다시 목소리를 건네왔다.

　"소원이라니요? 여신님한테도 소원이 있어요?"

　소원을 이루어지는게 신이 하는일이라고 생각했던 그레이스였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신에게 소원이 있다면 그건 누구한테 부탁해야하고 누가 들어주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그레이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훗. 그야 당연히 있지. "

　"어떤 소원인데요?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소원 정도면 신님이 혼자 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레이스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18살 소녀였다.

　게다가 'Epic Tales' 안에서는 직업도 없는 레벨 1의 생초보

　가지고 있는 돈도 0실버였다.

　그런 자신이 신님의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

　아카네의 대답은 짧고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의지가 느껴지는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밖으로...?"

　"그래. 밖으로... 창조신이 있는 세상, 창조신이 만든 이 세계 바깥으로 나가보고 싶어."

　아카네는 'Epic Tales' 에서 창조된 데이터로 만들어진 존재였다.

　'신'이라고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전쟁의 신'이었던 그녀는 세계의 질서에 홀로 반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끝은.....

　"너가 이 세계에 돌아온것처럼 분명 우리도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거야.

　신이 아니어도 좋아, 칭송받지 않아도 좋아. 나는 그저 살아있다는걸 느껴보고 싶어."

　아카네가 원했던것은 데이터가 아닌 살아있는 존재가 되는것.

　당연하게도 아카네의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건....."

　그레이스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론상으로 가능한 일일지도 몰랐다. 자신의 몸이 데이터화 된것처럼 그 거꾸로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직 눌러보지 못한 <로그아웃> 버튼

　그 버튼을 누르면 데이터화되었던 자신의 몸이 다시 현실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건 현실에 기반을 둔 자신의 이야기였다.

　'Epic Tales' 안의 NPC에 불과한 신님이 같은 방법으로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후~ 니가 무슨 생각 하는지 다 알아~ 그레이스

　데이터 덩어리를 뿐인 내가 밖으로 나갈 수 있을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했지? "

　"아... 저..그게.."

　정확하게 정곡을 찔린 그레이스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걱정마. 그레이스~ 나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너가 잘못한건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뜸을 들이는 그레이스를 향하던 아카네의 목소리가 점점 더 크고, 점점 더 무섭게 일그러졌다.

　"네"

　"몸"

　"을"

　"내"

　"놔"

　낮게 일그러진 아카네 여신의 목소리 속에서 가면을 쓰고 있던 그레이스의 시야가 순식간에 어둠에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