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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바림: 다시 마주한 그 순간
작가 : 총수
작품등록일 : 2018.10.24

천상천하 유아독존! 싸가지 끝판'왕' 이산.
300년의 시간을 거슬러온 그가 처음 눈을 뜬곳은 다름아닌 첫사랑 나비의 자취방?!

서울 카페에서 혼자 자취를하던 만년 사진작가 지망생 '한나비'. 어느 날 주말을 맞이해 늦잠을 자고 일어난 그녀의 이불속에는 앞 선을 곱게 풀어헤친 조선의 왕 '이산'이 잠들어 있었다. 눈을 떠보니 현세로 넘어와 버린 이산이었지만, 그는 당황하기는커녕 평생을 그리워했던 과거 잃어버린 첫사랑의 모습과 똑닮은 나비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면서 둘의 웃프기만한(?) 아찔한 동거생활이 시작된다.

 
6. 너에게 닿기를
작성일 : 18-11-21 18:38     조회 : 257     추천 : 0     분량 : 7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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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에에엣-취!”

 

 하아-.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자 나비는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온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랑노래들 때문인지 아니면 보기만 해도 깨가 쏟아지는 커플들 때문인지, 오늘따라 홀로 걷고 있는 자기 자신이 한층 더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어느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온 탓인지 거리에 나무들은 금세 단풍으로 물들었고, 그렇게 해가지고 저녁이 찾아오면 이렇게 제법 스산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벌써 가을인가, 날이 진짜 갑자기 확 추워졌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커플들만 눈에 밟히지.

 

 괜히 더 외롭게 시리….

 

 저렇게 두 손 꼬옥 잡고 남친 이랑 거리를 걸어본 게 언젠지 인제 기억도 안 나네.

 

 퍽-.

 

 커플들에게 시선을 빼앗긴 나비는 미처 앞을 보지 못한 탓에 앞사람과 부딪혀 엉덩방아를 찧었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아니에요. 제가 똑바로 못 봐서 그런 건데요, 뭐….”

 

 아, 오늘따라 진짜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지.

 

 애처롭게 넘어진 나비를 바라보던 남자는 허리를 반쯤 숙이고는 그녀에게 넌지시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실 수 있으시겠어요?”

 

 “네, 괜찮아요.”

 

 예상치 못한 훈훈한 외모를 가진 남자의 모습에, 나비는 두 볼을 발그레 붉히고는 그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일어났다.

 

 뭐야, 자세히 보니 제법 괜찮네.

 

 얼굴도 반반하고, 매너도 좋고….

 

 그래, 운명이 뭐 별거야.

 

 이렇게 다들 우연히 만나서 인연이 되고 그 인연이 연인이 되는 거지….

 

 “괜찮다니, 다행이시네요. 제가 정신이 없어서….”

 

 “아뇨, 제가 앞을 제대로 못 봐서 그런 건데요 뭐.”

 

 그렇게 풋풋한 분위기가 감돌던 중, 남자의 등 뒤에서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했잖아.”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여자는 자연스레 팔짱을 끼며 남자를 올려다보며 얄궂게 미소 지었다.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둘의 달달한 모습에 나비는 헛웃음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그래, 내 주제에 무슨 로맨스야 로맨스는….

 

 “어휴….”

 

 그래, 그럼 그렇지. 무슨 드라마 주인공도 아니고.

 

 하긴 저렇게 생겼는데 여자 친구가 없는 게 더 이상하지.

 

 괜히 김칫국만 시원하게 마셨네.

 

 그야말로 선남선녀구만.

 

 “죄송해요, 저희 오빠가 원래 칠칠치 못해서. 안 다치셨어요?”

 

 여자는 자기보다 한참이나 위에 있는 남자의 머리를 끌어당기고는 함께 고개를 숙여보였다.

 

 “야, 끝말이 심히 거슬린다.”

 

 “맞잖아, 저번에도 오빠가 지나가는 사람이랑….”

 

 여자의 말에 울컥한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자 둘은 앞에 있는 나비의 모습은 안중에도 없는지 한참이나 티격태격 거렸다.

 

 나비는 그런 둘의 모습을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제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 마지막 연애를 떠올리니 더욱 더 아련해졌다.

 

 가끔은 저렇게 친구 같이 꽁냥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듬직하게 챙겨주는 남자만나서 예쁘게 연애하는 게 소원 이였는데.

 

 부럽다, 부러워.

 

 “아니에요, 제가 한눈팔다 넘어진 건데요. 그럼….”

 

 “아, 네 조심히 가세요.”

 

 크게 다치지는 않았는지 나비가 씩씩하게 웃음을 건네며 뒤돌아서자, 으르렁거리던 두 남녀도 그녀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남자가 말없이 멀어져 가는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여자 친구가 옆에 있는 남자의 팔을 끌어안으며 재촉했다.

 

 “오빠, 인제 우리도 가자.”

 

 “…어어, 그래그래.”

 

 알겠다는 대답과는 다르게 미동조차 없는 남자의 모습에 답답한 여자는 남자의 눈가에 손을 흔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오빠! 뭐해 빨리 가자니까!”

 

 계속해서 재촉하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손 안 씻고 자야겠다. 약간 내 스타일이야. 방금 저분.”

 

 “…야, 너 방금 뭐라고 그랬어?”

 

 남자의 말에 여자는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함께 차가운 눈초리로 남자를 노려봤다.

 

 “아니, 자기야. 그런 게 아니라….”

 

 뒤늦게 분위기를 파악한 남자가 그녀의 화를 풀어주러 애를 써봤지만 이미 허리춤에 손을 올린 그녀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나비는 천천히 걷다 혹시 아직도 거기 있을까 하는 마음에 잠깐 멈춰 뒤를 돌아봤다.

 

 “에휴, 진짜 좋을 때다~.”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사랑을 나누는 커플의 모습에 나비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무거워진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바라본 둘의 모습은 나비의 예상과는 제법 거리가 있었다.

 

 “아니, 자기야 나는 무슨 농담도 못해?”

 

 “어, 못해! 못해! 못해!”

 

 “잠깐만, 진짜 뼈 맞았어! 자기야 진짜 아파! 아! 아!”

 

 여자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있는 힘껏 때리며 남자를 몰아붙였다.

 

 그렇게 남자는 맞으면서도 끝까지 멀어지는 나비의 뒷모습에 눈을 때지 못했다.

 

 *

 

 “아아~. 거기는 부끄럽사옵니다앙, 전하.”

 

 새벽마저 잠이 든 깊은 시각.

 

 입에 담기도 힘들 망측한 교성들이 왕의 침실 깊은 곳에서 부터 들려왔다.

 

 궁궐의 가장 끝자락에 위치한 왕의 침실에서는 자욱이 낀 남령초 연기로 한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어둠이 짙게 드리운 침전 안에는, 왕은 주색에 취해 아찔한 차림의 궁녀들과 함께 방탕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전하, 오늘은 소녀를 상대해 준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요망한 것, 게 잠시 기다리고 있거라. 감히 잠들 생각일랑 하지를 말고.”

 

 “꺄악! 전하도 참….”

 

 왕이 궁녀를 뒤에서 거칠게 끌어안자 애교 섞인 콧소리와 함께 주위 궁녀들의 웃음소리가 다시 한 번 침실에 울려 퍼지자 민망함에 밖을 지키고 서있던 궁녀들과 내관들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발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경외감이 들어야 하는 경전이것만.

 

 어찌된 일인지 궁녀들의 간드러진 소리는 요 근래 들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아으, 전하….”

 

 밤이 깊었는데도 잠들지 않고 여흥을 즐기고 있는 왕에게 자중을 하라고 전해야하는 침전 밖 내관들과 궁녀들 이지만, 왕이 두려운 그들은 그저 숨죽인 채 서로의 눈치만 살피며 허수아비처럼 자리만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만이 감돌던 그때, 복도 끝에서부터 익숙한 걸음걸이의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림자의 정체는 밤새 궐내 순찰을 마치고 돌아온 운검 기연이었다.

 

 “전하는 잠에 드셨는가?”

 

 “아, 아직, 잠에 드시지는 않은 듯 하옵니다….”

 

 밤이 이리 깊었거늘 아직도 잠에 들지 않았다니.

 

 문 앞을 지키고 서있던 궁녀는 입에 담기도 민망한 안의 상황을 알고 있기에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피했다.

 

 기연은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궁녀의 태도에 자연스레 미간을 구겼다.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고 있어야할 궁녀가 왕이 잠이 들었는지조차도 몰라 말끝을 흐리다니.

 

 열 걸음 정도 거리를 두고 서 있던 둘 사이,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자 기연은 서서히 궁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때.

 

 “아앙! 전하-.”

 

 그렇게 된 거로군.

 

 때마침 침전에서 새어나오는 요염한 소리.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심기가 불편해진 기연이 문을 열려 하자, 앞을 지키고 있던 궁녀가 다시 한 번 간곡하게 고개를 숙이며 기연의 앞을 가로 막았다.

 

 닿으면 베일 듯 날 이선 기연의 눈빛에도 궁녀는 물러섬 없이 두 눈을 질끈 감고는 소리 쳤다.

 

 “전하께오서 그, 그, 누구도 들이지 말라고 엄명을 놓으셨습니다.”

 

 “운검인 나조차 안 된다는 것이냐?”

 

 “예, 설령 운검 이라 할지라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엄포를 놓으셨나이다.”

 

 단호한 그녀의 태도에 기연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후우-.

 

 의외로 기연이 쉽사리 물러나자 궁녀는 자신의 진심이 통했다는 기쁨에 긴장이 풀려 눈가에 살짝 맺힌 눈물을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스으으윽-.

 

 그러나 기쁨도 잠시.

 

 잠시 뒤로 물러난 기연은 허리춤에 찬 거대한 별운검을 서슬 퍼런 소리와 함께 꺼내들었다.

 

 그 모습에 파랗게 질린 궁녀는 체념한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침전 앞을 피로 물들일 셈인가. 그냥 조용히 들어가시게.”

 

 칼이 궁녀의 목덜미를 베려던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기연은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집어넣었다.

 

 “상선….”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상선이었다.

 

 기연은 낮게 깔린 목소리와 함께 원망 섞인 눈초리로 상선을 노려봤다.

 

 허나, 그런 기연을 마주하고도 상선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하게 뒤에서 떨고 있는 궁녀에게 물러나라며 조용히 눈짓만을 건넸다.

 

 상선의 눈빛을 읽은 궁녀는 다리가 풀렸는지 허리가 접힐 듯 연신 고개를 꾸벅이더니 얼른 자리를 피했다.

 

 기연은 자신의 복잡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칼집을 어루만졌다.

 

 그도 그렇듯 칼을 들이대고도 물러서지 않던 계집이 상선의 눈짓 한 번에 물러서는 꼴이라니.

 

 아직까지도 이렇게 밑에 것들을 잘 관리하고 있을 줄이야.

 

 하긴, 그 까탈스런 왕이 믿고 의지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인데 어찌 보면 이 정도는 너무나도 당연했다.

 

 “운검께서는 어찌하여 밤새마저 잠이 든 깊은 시각에 침전 앞에서 저 어린 것을 희롱하고 계십니까?”

 

 “흥, 저런 전하의 상태를 보고도 손 놓고 있는 상선내관 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저렇게라도 해서 잊으시려고 하는 분한테 이 늙은이가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허나….”

 

 “그 누구도 그분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더 이상 하실 말씀이 없으시다면 들어가시지요.”

 

 괜한 입술만 곱씹는 기연을 향해 상선은 말을 끝마치며 고개를 숙였다.

 

 노련한 상선의 대응에 할 말을 잃은 기연은 미간만 찌푸린 채 연기 자욱한 왕의 침전으로 들어갔다.

 

 드르륵-.

 

 *

 

 침전 안에는 알 수 없는 연기들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수많은 무희들이 현란한 춤사위를 뽐내고 있었고, 그 사이로 보이는 왕의 자태는 방탕하기 짝이 없었다.

 

 양옆에 궁녀들을 낀 채 그녀들의 입에 물린 과일을 탐하며 무희들의 춤사위를 넋을 놓고 바라보는 모습에 기연은 참지 못하고 칼을 꺼내들고는 소리쳤다.

 

 “다들 썩 꺼지거라.”

 

 “꺄아아아아악!”

 

 춤을 추던 무희에게 다가가 목에 칼을 들이밀자 사태를 파악한 무희가 뒤늦게 소리를 질렀다.

 

 기연이 갑작스럽게 나타나 칼을 겨누자 겁을 잔뜩 집어먹은 궁녀들은 옷도 미처 입지 못한 채 괴성을 지르며 앞 다투어 침전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러한 난장판 속에서도 왕은 고개를 떨군 채 무심히 술만을 홀짝였다.

 

 무녀와 궁녀들이 빠져나간 장내가 이따금 조용해지면서 기연이 다가오자 왕은 고개를 들어 눈을 맞췄다.

 

 “뭐냐, 기연이더냐? 과인은 오늘밤도 자객이 이 목을 가지러 온줄 알았구나.”

 

 “…제가 있는 한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전하.”

 

 “그러냐. 그러하면 그날도 이리 빨리 와주지 그랬느냐.”

 

 피식 실소를 터뜨린 왕은 태연하게 남령초를 한 모금 빨아들이고는 일어나 휘청거리며 주섬주섬 용포를 걸쳤다.

 

 왕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자 기연이 이를 꽉 깨물었다.

 

 기연 자신 또한 아직 그날의 상처를 미처 다 지우지 못했기에.

 

 괜한 말로 왕의 상처를 벌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그저 침묵으로 일관 할 수밖에는 없었다.

 

 “오늘은 더 이상 피우시지 않겠다, 약조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기연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돌렸다.

 

 “해가 떨어지고 이제 달이 차올랐으니 이미 금일은 어제와 다른 날이니, 문제 될 것이 없지 않느냐?”

 

 왕은 자신의 논리가 썩 마음에 들었는지 끌끌 거리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얄미운 왕의 모습에 기연은 그의 입에 물고 있던 남령초를 잽싸게 뺏어들었다.

 

 “그 어느 때건 전하께서 군주라는 자각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전하, 그분이 이런 모습을 보신다면 어찌 편히 눈을 감으실 수 있겠습니까….”

 

 “그만.”

 

 어느새 미소를 거둔 왕이 기연을 죽일 듯 살기어린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거기까지 하거라.”

 

 “….”

 

 기분이 상한 왕은 잔에 술을 부어 그대로 쭈욱 들이켰다.

 

 왕은 그걸 로도 성이 차지 않는지 이내 병째 술을 다 들이켰다. 그러고는 이내 급히 상선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상선 영감, 게 밖에 있는가?”

 

 “예, 전하. 상선 밖에 있사옵니다.”

 

 기다렸다는 듯 상선은 침전 밖에서 왕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특유의 간드러진 목소리로 재깍 대답했다.

 

 “할 말이 있으니, 잠시 들어와보게. 어서!”

 

 *

 

 술에 취한 왕이 미처 몸을 가누지 못하자 상선은 거동이 불편한 다리도 잊은 채 침전 안으로 한 걸음에 뛰어왔다.

 

 그가 왕을 얼마나 아끼는지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밤은 아직도 이리 많이 남았거늘, 안타깝게도 누가 가져간 것인지 술이 벌써 동이나 버렸다네. 내 한잔 더하고 싶으니 밑에 것들을 시켜 술을 좀 더 가져와 주시게.”

 

 “전하, 술을 더 가져오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오나, 무희들도 빠져나간 지 오래인데 여흥도 없이 드시는 술은 방금 전의 맛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맞는 말이로구나.”

 

 화려한 상선의 언변에 납득이간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건들거리는 몸을 추슬렀다.

 

 능숙하게 왕을 다루는 상선의 모습에 기연은 저도 몰래 그의 처세술에 혀를 내둘렀다.

 

 저 개차반 같은 왕의 기분도 거스르지 않고 술을 입에 대지도 못하게 만들다니.

 

 역시 쉽게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영감이다.

 

 “그러면 상선 저번에 먹은 그 약이라도 가져오시게.”

 

 “지, 지금 당장 말이옵니까?”

 

 “그래. 지금 당장.”

 

 왕이 재촉했지만 어째선지 상선은 평소와 달리 망설이며 움직이기를 주저했다.

 

 도대체 ‘그 약’ 이 무엇이기에 저 능구렁이 같은 상선도 당황하는 것일까.

 

 “전하, 하오나 그 약은 약주를 하신 날에는 효능이 없는지라….”

 

 상선은 말끝을 흐리며 조심히 왕의 눈치를 살폈다.

 

 “괜찮으니 어서 내오거라.”

 

 “하오나, 전하….”

 

 “지금 과인이 괜찮다고 하지 않느냐!”

 

 역정을 내는 왕의 모습을 보면서도 상선은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상선은 애써 태연한척 해봤지만 이내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

 

 그가 이렇게 당황하는 까닭은 호통 치는 왕도, 명을 어긴다고 떨어질 형벌도 아니었다.

 

 상선이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상선 자신도 알 수 없는 약의 부작용이었다.

 

 왕위에 오른 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왕을 위해 상선이 직접 조선 팔도를 이 잡듯이 뒤져 겨우겨우 찾은 용한 무녀를 통해 구해온 것이었다.

 

 그렇게 이 약을 받아올 때 무당이 건넨 말은 단 하나.

 

 “절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약을 드시면 안 됩니다. 부디 명심하십시오.”

 

 “흥, 약조한 돈은 동이 트는 대로 보내줄 것이니 네년이나 그 천한 입 간수나 잘하거라. 내말 명심하거라.”

 

 “명심하겠나이다. 어르신, 살펴 가시옵소서.”

 

 가시 돋친 상선의 말에도 무녀는 내색하지 않고 예를 다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얇은 천 너머로 살며시 보이는 무당의 입가에 서린 미소에 궁궐에서 잔뼈가 굵은 상선조차 간담이 서늘해졌지만 그는 애써 덤덤한 척 물러났다.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고 있을 때 왕이 재촉하며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렀다.

 

 “어서! 약을 가져 오라고 하지 않았소. 상선!”

 

 “…명 받들겠나이다. 전하.”

 

 결국 마음을 굳힌 상선은 밖에 있는 궁녀에게 약을 대령하라 일렀고, 곧장 가져온 약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들이키는 왕의 모습에 상선은 떨리는 손을 곱게 모은 팔을 들어 자신의 눈을 가렸다.

 

 “인제 과인은 잘 것이니 모두 물러가거라.”

 

 “예, 전하.”

 

 동시에 대답을 끝마친 후, 상선이 먼저 문을 통해 빠져나가자 잠시 뒤 기연 또한 침전의 어둠속으로 천천히 모습을 감췄다.

 

 모두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왕은 조심스레 몸을 뉘우며 조심스레 눈을 감았다.

 

 그렇게 왕은 오늘도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며 버릇처럼 되뇌었다.

 

 “혜령….”

 
작가의 말
 

 봐주신 모두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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