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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BL] 경계에 서다
작가 : 퍼플캣
작품등록일 : 2018.11.1

친구와 연인 사이, 경계에 서 있었던 두 소년이 10년 후 다시 만났다.
우린 과연 우정일까? 사랑일까?

 
9. 우정의 경계
작성일 : 18-11-21 15:56     조회 : 266     추천 : 0     분량 : 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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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소재도 종류도 자유다.”

 

 풍경을 그리기 위해 학교 뒷동산으로 나온 미술부원들에게 미술부 교사가 말했다. 삼삼오오 모여 자리를 잡았고, 주현은 수영장이 보이는 쪽으로 가서 이젤을 펼쳤다.

 

 선준이 팔을 뻗어 물을 가를 때마다 수면 위로 하얀 물보라가 일었다. 멀리서도 선준임을 알 수 있는 주현이었다.

 

 “선배님. 뭐 그려요?”

 

 얼마나 지났을까 뒤에 다가온 후배의 목소리에 주현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옆방에 지내는 키가 작고 귀여운 2학년 하연이었다. 하연이 주현의 캔버스를 보았다. 주현의 캔버스는 연필 자국조차 없이 깨끗했다.

 

 “아... 오늘은 집중하기 어렵네.”

 

 그림을 그리지 못한 주현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날도 있죠. 저도 뭘 그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현의 말에 동의했다. 주현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연필을 잡았지만 시선은 자꾸 수영장을 향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미술부 교사의 말에 학생들이 자신들의 화구를 챙겼다. 아무것도 그리지 못해 텅 빈 캔버스를 보던 주현도 화구를 챙겨 산에서 내려갔다.

 

 “주현 선배. 이거 봐요.”

 

 주현이 미술실에 들어가자 먼저 도착한 하연이 쪼르륵 달려와 주현에게 봉투를 건넸다.

 

 “... 또야?”

 

 “네.”

 

 주현이 묻자 하연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고, 봉투를 건네받은 주현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보내는 사람을

 모르는 고백 편지가 벌써 수백 통이었다. 처음에는 주현을 향한 열렬한 감정을 고백하는 내용이었지만 근래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물질이 묻은 음담패설로 가득한 편지와 수영복 사진 등이 들어있었다.

 

 주현은 조용히 편지를 찢었고, 쓰레기통으로 가서 안으로 던졌다.

 

 “선생님한테 말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하연의 제안에 주현이 고개를 저었다. 주현은 괜한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런 편지를 받았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편지도 편지진 사진이...”

 

 “내가 수영부였던 애들을 만나볼게. 너무 걱정하지 마.”

 

 주현이 웃으며 하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고, 하연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선배. 바로 기숙사로 갈 거예요?”

 

 하연의 물음에 주현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들릴 곳이 있어.”

 

 “그래요? 그럼 이따 기숙사에서 봬요.”

 

 “응.”

 

 미술실 문 앞에서 하연과 헤어진 주현이 천천히 수영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현은 펜스 너머의 수영장을 바라보다가 몰래 안으로 들어갔다. 수영장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수영장을 찾았다.

 

 수영부원들이 연습을 마치고 모두 돌아간 아무도 없는 수영장. 소독약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그 냄새만 맡아도 마치 자신이 물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주현이었다. 아무런 생각하지 않고 물속에서 헤엄치고 싶었다.

 

 등의 흉터가 자기 탓이 아니라고 화를 내는 것처럼 쿡쿡 쑤셔왔다.

 

 ‘수영은 무슨...’

 

 주현이 체념한 표정으로 바람에 찰랑거리는 물의 표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불쑥 누군가의 얼굴이 앞으로 다가왔다.

 

 “앗...”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주현이 휘청하고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런. 주현아 미안. 그렇게 놀랄 줄 몰랐어.”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선준이었다. 주현이 고개를 들어 선준을 보았다. 선준은 점퍼를 걸쳤지만 수영복 차림이었다.

 

 “난 괜찮아.”

 

 주현이 황급히 일어나 엉덩이를 털고 몸을 돌렸다. 바닥에 닿은 엉덩이가 물에 젖어있었다.

 

 “주현아. 엉덩이 젖었어.”

 

 선준의 말에 주현이 얼굴을 붉히고 엉덩이를 가렸다.

 

 “주현아.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수영할래?”

 

 “응?”

 

 주현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선준을 보았다.

 

 “너 수영하고 싶잖아.”

 

 선준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선준인 어떻게 알았을까?’

 

 “마침 오늘은 내가 청소 당번이라서 아무도 없어.”

 

 ‘해도 될까?’

 

 망설이는 주현의 손에 온기가 느껴졌다. 선준의 커다란 손이 주현의 손을 꽉 잡고 탈의실 쪽으로 끌었다.

 

 “어서.”

 

 “...그래.”

 

 주현은 못 이기는 척 선준을 따라갔다.

 

 수영복을 입은 선준을 가까이서 보니 다부진 어깨와 발달한 등 근육이 더욱 생동감 있어 보였다.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것 같은 근육이 햇빛에 아름답게 빛났다.

 

 “수영복 어색하진 않아?”

 

 “어? 응. 괜찮아.”

 

 사고가 있고 나서 오랜만에 입어보는 수영복의 감촉이 묘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왕 하는 거 우리 시합할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푸는 주현을 보고 선준이 웃으며 도발해왔다.

 

 ‘내가 수영부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면 성적도 알고 있었을 텐데.’

 

 굳이 꺼낼 필요가 없었던 승부욕이 선준의 도발에 고개를 들었다.

 

 “나 1학년 대표였었는데.”

 

 “오~ 요주현. 수영 잘한다 이거지? 어디 실력 한 번 볼까?”

 

 레인 끝 시작 선에 선 선준이 수경을 쓰고 주현을 보며 웃었다.

 

 “그래.”

 

 주현은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익살스럽게 웃는 선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수경을 쓰고 선준의 옆 레인 시작 선에 섰다.

 

 “하나. 둘. 셋 하면 시작하는 거야.”

 

 “응.”

 

 “그럼 하나. 둘. 셋.”

 

 선준의 목소리에 풍덩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물방울이 사방을 흩어지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촤악촤악-. 물살을 가르자 물속의 소리와 물 밖의 소리가 섞였다. 물이 몸을 감싸는 느낌이 좋았다. 숨이 찼지만 그것도 희열로 다가왔다.

 

 “푸후...”

 

 “하아...”

 

 간발의 차로 선준이 먼저 보더를 찍었다. 주현은 자신이 졌지만 기분이 좋았다.

 

 “나 더욱 열심히 해야겠어. 너 진짜 잘하는구나. 연습도 안 하는데 이 정도라니.”

 

 수경을 벗고 얼굴을 쓸어내린 선준이 숨을 몰아쉬었다. 선준의 얼굴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선준이 넌 지금도 충분히 잘해. 정말 멋있어.”

 

 주현의 칭찬에 선준이 입술을 올려 웃으며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어 보였다.

 

 ‘다시 수영장에서 석양이지는 걸 보다니...’

 

 가슴이 뭉클해 눈시울이 붉히는 주현이었다.

 

 “주현아. 종종 같이 수영하자.”

 

 “응? 응.”

 

 주현은 선준의 말 한마디에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가 사르륵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선준아. 정말 고마워.”

 

 “고맙긴.”

 

 가까이 선 선준과 어깨가 닿았다. 닿은 부분이 뜨거웠다. 심장이 또 제멋대로 쿵쾅거렸다.

 

 “그만 갈까? 청소 도와줄게.”

 

 “응.”

 

 두근거림을 들킬 것 같은 주현이 먼저 물에서 위로 올라와 선준에게 말했다. 자꾸만 선준이 좋아지는 주현이었다. 이건 지운과 재찬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닿고 싶고, 만지고 싶고, 안고 싶었다.

 

 ‘하지만 선준의 마음도 나와 같을까?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주현은 문득 자신의 마음을 알았을 때 선준의 반응이 걱정되었다. 주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다. 더는 주변의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주현아. 너 괜찮아?”

 

 팍-. 주현이 자신의 안색을 살피려 가까이 다가온 선준의 가슴을 밀었다. 놀란 선준이 멍한 표정으로 주현을 바라보았다.

 

 “미안... 너무 가까워서 놀랐어.”

 

 “어? 그래... 미안.”

 

 선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사과했다.

 

 ‘사과해야 하는 건 난데...’

 

 오히려 선준의 사과하는 모습에 주현은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다.

 

 “청소 다 했는데 갈까?”

 

 “응? 응.”

 

 선준의 말에 주현이 대답하고 먼저 샤워실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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