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싸움의 상대
“다시 안 볼 사람처럼 이러면 곤란합니다, 잠깐만 얘기해요.”
약사는 조수석 문을 닫고 운전석에 탔다. 숨어 보는 종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승용차에 시동이 걸리고, 전조등이 켜졌다. 승용차가 주차장을 나가느라 도로 경계석을 넘었다.
“스톱, 서!”
종운이 주차장을 나온 승용차 앞을 두 팔을 벌리고 막았다. 승용차가 급하게 멈추었다. 운전석 창문이 내리고 약사가 고개를 내밀었다.
“뭐요?”“내려서 얘기합시다, 내 차 박은 거 같은데.....”
종운은 순발력을 발휘했다. 조수석의 민지가 종운과 눈과 마주치자 깜짝 놀랐다.
“어느 찬데요?”
다행히 주차장 안에는 약사의 검정 승용차 섰던 자리 옆에 하얀 승용차가 있었다. 종운은 턱을 내밀어 하얀 승용차를 가리켰다.
“저어~기, 턱 소리가 나던데.”
종운은 조수석 옆으로 서면서, 차 안의 민지와 눈을 마주했다. 약사는 종운을 따라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종운은 하얀 승용차 옆을 살피면서 검정 승용차를 보았다. 민지가 차에서 내려 큰 길 쪽으로 갔다.
“어디를 박았다는 거요?”
하얀 승용차는 멀쩡했다. 주차장은 별로 어둡지 않았지만, 종운은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자세히 살폈다. 약사는 종운이 하는 걸 지켜보았다.
“미안하네.... 분명 소리를 들었는데.... 괜찮네요, 미안합니다.”
“참, 갑니다!”
약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종운을 보다가 돌아섰다. 하얀 승용차에 전조등이 깜박이며, 리모컨을 든 정장 차림의 40대 여성이 약사를 지나쳤다. 약사는 ‘뭐지?‘ 하는 눈으로 여성을 따라갔다. 여성은 종운 옆에 서 있는 하얀 승용차로 갔다.
“오래 기다렸는데, 별 일 없어요.”
“예?”
아는 척하는 종운에게, 여성은 뭐냐는 표정으로 물었다.
“차를 박았는지 불러서 조사했는데, 아무 일도 아니었어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요.”
여성은 종운이 나쁜 의도가 아닌 줄은 알겠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
“저 차가 주차장 나갈 때 소리가 난 것 같아서 불렀거든요, 이 차랑 박은 줄 알고요...”
종운은 최소한의 목소리 톤으로 여성만 들을 수 있게 말하면서, 웃는 표정을 지었다.
여성은 종운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약사를 쳐다보았다. 약사는 못 들은 척 운전석에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여성은 종운의 눈을 따라 승용차 옆면을 살폈다.
“제가 자세히 봤는데 아무 일도 없어요, 잘못 들었나 봐요.”
“고맙습니다, 여기 근무하세요?”
여성은 건물 관리인이냐고 물었다.
“아, 약국 근무하는 친구 만나러 왔다가, 우연히 듣고 확인했어요.”
“그랬구나, 일하는 아저씨가 아닌데 누군가 했어요. 고마워요.”고맙긴요, 가보겠습니다. 조심 운전하세요.“
“예, 저는 3층에서 통증클리닉 운영하고 있어요. 혹시 아프시면 들르세요.”
종운은 여성이 의사라고 밝히자, 매력적으로 보였다. 종운은 최대한 환하게 웃었다.
“아픈 일 생기면 와야지, 먼저 갈게요.”
“예.”
여성도 종운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종운은 바쁜 사람처럼 큰 길 쪽으로 걸어 나갔다.
셔터가 내려가 캄캄한 약국을 보고, 2차선 도로를 지나는 차가 없자, 뛰어서 건넜다. 민지가 사는 아파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조그만 사거리를 돌아섰더니, 민지가 앞에서 걸어 가고있었다. 종운이 민지를 발견하고 빠르게 걷다, 천천히 걷다를 하면서 숨을 골랐다.
“좋냐, 딴 놈 만나고 돌아다니니까 좋냐고?”
종운이 민지 옆에 서면서 따졌다. 민지가 걸음을 멈추고 옆으로 섰다.
“뭐? 이혼 한지가 언젠데, 참견 말고 나타나지 마, 꺼져!”
“꺼지라고, 내가 불이냐, 니 남편이야, 이혼은 할 수 없어서 한 거지, 진짜 했냐?”“흥, 가짜 이혼이 어딨어? 우리 아빠한테 진 빚은 어쩌고? 다신 나타나지 마, 피곤하니까.”
“아버님한테 진 빚 갚으면? 갚으면 이혼 무효냐?”
종운은 당연히 갚는다는 식으로 받았다. 민지는 종운의 반응을 구체화하고 싶었다.
“갚는다고? 갚고 나서 말해!”
“딴소리 할까 봐 그러지, 갚으면 합칠 거냐고?”
“누가 합친데, 갚고 나서 생각해본다 했지, 갚지도 못할 거면서 큰 소리는.....”
“약속해, 내가 아버님한테 빚 갚으면 같이 산다고, 우리 아들 장래를 위해서 그런 거지 당 신 좋아서 그런 건 아니니까 착각하지 말고, 그리고 딴 놈 만나지 말고, 약국 때려 치우고 집에서 살림이나 해.”
“흥, 요구사항도 많네, 빚 갚고 말해, 그때까진 나타나지 마!”
“알았어, 당장 갚을 거니까 합치자!”
종운은 큰소리쳤다. 민지는 돈을 받아 내고 싶었다. 민지와 종운이 언쟁을 벌리면서 아파트에 들어갔다. 민지네 아파트 현관에서 나 돌이 나왔다. 민지와 종운이 언쟁을 멈추고 나 돌에게 아는 척을 하려는데, 뒤에서 위층 사는 서수복이 나왔다. 두 사람은 아파트를 돌아서 뒷마당으로 갔다.
“먼저 들어가, 둘이 뭐하나 갔다 갈게.”
종운이 두 사람이 간 곳을 향했다. 민지는 잠시 머뭇하다, 종운을 따라갔다.
아파트 뒷마당은 제법 넓었다. 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하게 주차되었다. 나 돌이 주차장을 지나, 제법 넓은 공터에 섰다. 뒤에 따라오던 서수복도 섰다.
“여기가 좋겠네, 갚아 주려는데.”“뭘?”
나 돌이 자신감을 보이려고 고개를 옆으로 갸웃하고, 수복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동안 맞은 거 갚으려고 훈련 많이 했거든, 덤벼!”
나 돌은 손바닥을 펴서 어깨 높이로 올리고, 상체를 은근하게 움직이며 수복을 살폈다. 수복은 무관심한 표정으로 나 돌이 하는 걸 보기만 했다. 나 돌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서 있는 수복에게 도발하느라 주먹을 얼굴을 향해 뻗었다. 수복은 가볍게 주먹을 몸을 움직이며 피했다. 나 돌은 느긋한 수복의 반응에 더 적극적으로 덤볐다.
"파 샷!”
어설프지만 개구리 권법을 요코의 도움으로 보름 동안 익혔다. 학교 강당과 운동장 귀퉁이에서 요코와 함께 개구리 권법을 배웠고, 실전에서 시전 했다. 학교 격투기 도장에서 대표선수와 정식으로 붙어서 개구리 권법으로 한방에 보냈다. 물론, 상대가 나 돌을 우습게보고 덤벙거리다 정통으로 맞아서 싱겁게 끝나기는 했다.
“뭐해, 까불지만 말고 덤벼!”
수복은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는 나 돌을 부추겼다. 학교 격투기 선수와 수복은 체급이 달랐다. 격투기 선수는 나 돌과 비슷한 체급이었다. 수복은 완전한 헤비급이었다. 그런데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움직임이 빨랐다. 종운과 민지가 두 사람 옆에 섰다. 민지가 말리려는 걸 종운이 나서지 말라고 손을 잡았다.
“간다!”
나 돌은 주먹과 발길질을 느긋하게 피하는 수복에게서 두려움을 느꼈다. 학교 선수와 비교 될 정도가 아니었다. 개구리 권법으로 승부를 걸었다. 무릎 높이로 올라 두 손을 옆에서 안으로 모으며 발을 앞으로 뻗치고, 날았다.
“뭐하냐?”
수복이 나 돌의 발을 옆으로 툭, 쳤다. 나돌이 바닥에 쓰러졌다, 잽싸게 일어섰다. 나 돌은 당황스러웠다. 수복이 전처럼 때리려고 마음먹었으면, 꼼짝 못하고 맞는 일만 남았다. 수복은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그리고 슬쩍 움직였는데, 발이 나 돌의 눈앞에 있었다.
“넌 죽었어, 까불기는.”
수복이 발바닥을 좌우로 움직여, 나 돌의 뺨을 때렸다. 나 돌이 뒤로 물러나면, 발이 따라와서 뺨을 때렸다. 나 돌이 뺨을 때리는 발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손을 발로 찼다. 발이 나 돌의 옆구리에 박혔다. 나 돌이 바닥에 쓰러져 굴렀다. 종운이 앞으로 나섰다.
“그만, 그만하세요!”
“아들 교육 잘 시켜...”
수복이 민지와 종운이 앞으로 나서자, 타이르는 투로 던졌다. 민지가 나 돌을 일으켰다.
“돌이야, 괜찮아?”
“응, 비켜 봐, 실수였어.”
나 돌은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전에 비겁하게 행동하지 않아서 봐 준 거다. 상대를 가려가면서 덤벼라.”
“애를 잡아요? 싸움질도 덩치가 비슷한 사람하고 해야지, 사과하세요!”
민지가 수복에게 따졌다. 나 돌이 민지를 밀치고 앞으로 나섰다.
“한 번 더 간다!”
나 돌이 다시 허공에 떠올랐지만, 수복은 가볍게 움직였고, 나 돌은 바닥에 뒹굴었다.
“우리 아들 잡네, 당신 깡패야? 뭐야?”
민지가 수복의 가슴을 밀치려고 손을 내밀며 덤볐다. 민지의 손이 수복의 가슴에 닿기 전에 수복의 몸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아들이 덤빈 거요.”
“맞아, 돌이가 덤볐잖아, 그만해라 돌이야.”
종운은 수복이 나 돌을 살살 다루어 준 것이 고마웠다. 나 돌이 일어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졌다, 다음에 또 하자.”
나 돌이 누그러진 목소리로 패배를 인정했다.
“반말은 죽음이다, 엄마 믿고 까불지 말고 가라.”
“그래, 나이 많아 보이는데 그러지마.....”
종운이 수복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나이는 무슨, 오늘은 내가졌지만, 다음에 보자!”
나 돌은 수복이 성질나라고 더 노골적으로 반말을 던졌다. 실력이 모자라 맞기는 했지만, 수복의 자존심을 건들고 싶었다. 수복이 봐 주는 척 행동하는 게 비위가 상했다. 수복이 손을 뻗어 나 돌의 목을 잡고 눌렀다.
“꼬마, 까불면 죽는다 했지?”
“으, 케켁!”
목을 졸린 나 돌이 신음을 토했다. 민지가 수복의 팔을 어깨로 밀면서, 수복의 가슴을 손으로 밀었다. 수복이 나 돌을 놓아 주고 뒤로 물러났다.
“그만해요, 돌이야 너도 그만해! 덩치 값 하세요, 어린애한테 힘자랑 말고.”
“하나만 묻자, 내가 그렇게 공격할 걸 알고 있었나?”
나 돌은 순식간에 개구리권법을 시전하면, 대체로 먹힐 거라는 요코의 말이 통하지 않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수복이 미리 알고 있어서 피했는지 궁금했다.
“있었나? 말 놓지 말라 했지? 싸움의 상대는 가려라.”
수복이 한 발 앞으로 나서자, 종운이 앞으로 와 가로막았다. 수복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종운과 나 돌을 번갈아 보았다.
“미안해요, 얘가 물불을 몰라서 그럽니다. 돌이야, 제발 그만해라, 제발!”
“비켜!”
수복이 종운의 몸을 옆으로 밀쳤다. 종운이 휘청하며 옆으로 쓰러질 듯 밀려났다. 민지가 나 돌의 앞을 가리고 섰다.
“하지 마세요, 그만하라고요.”
수복은 민지가 앞을 막자, 멈추고 나 돌을 보았다.
“개구리 권법을 알았냐고?”
나 돌이 수복에게 물었다.
“개구리?”
수복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 돌을 보다가, 큰 소리로 웃었다.
“개구리 권법이라고?”
수복이 나 돌에게 다시 물었다. 나 돌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복이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주변에 서 있는 나무를 둘러보았다. 하늘을 향해 쭉 뻗은 플라타나스가 울창했다. 굵은 나무는 어린애 허리둘레였다.
“꼬마야, 봐라!”
수복이 제일 굵은 플라타나스를 응시하고 난 후, 고개를 돌려 나 돌을 보고 난 후, 뛰어올랐다. 나 돌이 시전 한 개구리 권법으로 플라타나스를 가격했다. 어른 허리 높이로 뛰어서 플라타나스 옆을 가격하고 내려왔다 다시 옆으로 뛰어올라 플라타나스를 가격했다.
수복의 두발이 가격한 자리가 움푹 파였다. 수복이 두 손으로 가격한 자리에도 파였다.
“와, 쓰러지겠다!”
종운이 수복의 가격을 받은 플라타나스가 우직! 소리를 내는 걸 듣고 외쳤다.
14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