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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바림: 다시 마주한 그 순간
작가 : 총수
작품등록일 : 2018.10.24

천상천하 유아독존! 싸가지 끝판'왕' 이산.
300년의 시간을 거슬러온 그가 처음 눈을 뜬곳은 다름아닌 첫사랑 나비의 자취방?!

서울 카페에서 혼자 자취를하던 만년 사진작가 지망생 '한나비'. 어느 날 주말을 맞이해 늦잠을 자고 일어난 그녀의 이불속에는 앞 선을 곱게 풀어헤친 조선의 왕 '이산'이 잠들어 있었다. 눈을 떠보니 현세로 넘어와 버린 이산이었지만, 그는 당황하기는커녕 평생을 그리워했던 과거 잃어버린 첫사랑의 모습과 똑닮은 나비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면서 둘의 웃프기만한(?) 아찔한 동거생활이 시작된다.

 
5. 속상해!
작성일 : 18-11-19 23:59     조회 : 264     추천 : 0     분량 : 6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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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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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제 집인냥 카페 문을 박차고 들어온 남자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어렴풋이 술 냄새도 풍겨왔다.

 

 반쯤 감긴 눈을 비벼가며 남자는 잠이 덜 깼는지 잠긴 목소리로 카운터에 있는 태준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후, 태준아 미안하다. 형이 이번에는 안 늦으려고 했는데 그 우리 집 앞 사거리 알지? 차 끌고 나오는데 딱 거기서 또 사고가 난거야, 글쎄.”

 

 “점장님….”

 

 “아아, 걱정하지 마 많이 다치지는 않았어. 아무튼 이게 100프로 그놈 과실이거든, 근데 그 새끼가 갑자기 내려가지고 쌍욕을 하는데….”

 

 점장이라는 남자가 쉴 새 없이 떠들어댔지만 태준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만 가로저었다.

 

 너무 진지한 얼굴로….

 

 뭐지, 이렇게 까지 걱정해주니까 괜히 미안해지네.

 

 전혀 예상치 못한, 태준의 터무니없이 심각한 반응에 점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눈가를 구기며 눈치를 살폈다.

 

 후우-.

 

 그러고는 이내 깊게 심호흡을 한 점장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거짓말 쳐서 미안하다. 티 많이 났냐? 하하핫! 그러니까 인상 좀 풀어 인마.”

 

 사과를 했음에도 반응이 미적지근하자 점장는 앞서 말한 것이 모두 다 거짓말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여전히 화가 난건지 무표정한 태준의 반응에 점장은 웃음기를 지우고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태준아, 형이 이번에는 진짜 빨리 나오려고 했는데….”

 

 “점장님, 그게 아니라….”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변명만 하는 점장의 답답한 모습에 태준이 손가락으로 문 쪽 아래를 가리켰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온 정성을 다해.

 

 “하아, 태준아. 그래도 형이 가게 점장이고 그런데 손가락질 하고 그러지는 말자. 지각한 게 잘못이기는 한데 조금 섭섭….”

 

 태준이 말 도 없이 손가락질만 하자 점장은 잔뜩 주눅이 들었는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끝까지 눈치 채지 못하는 답답한 점장의 모습에 태준은 손가락을 거두고는 소리쳤다.

 

 “그게 아니라 형, 아니 점장님! 아래를 보라구요, 아래를!”

 

 “갑자기 아래를 왜…?”

 

 참다못한 태준이 답답한 듯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점장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나비야?”

 

 그제야 문 앞에서 벌게진 얼굴로 인상을 구긴 채 정좌를 틀고 앉아있는 나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나비, 너 거기서 뭐하고 있어. 몇 시인데 아직도 퇴근도 안하고 있냐. 얼굴은 또 왜 그래, 평소보다 더 못생겨졌네? 얼굴도 심하게 빨갛고. 야, 너 또 한잔했니?”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한 점장은 혀를 끌끌 차며 약을 바짝 올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인내심의 한계에 다달은 나비가 한 대 칠 듯 무섭게 쏘아보자 간담이 서늘해진 점장은 금세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요?”

 

 “…아니에요. 아무것도.”

 

 독이 바짝 오른 낯선 나비의 모습에 점장은 고개를 돌려 슬며시 태준 쪽을 바라봤다.

 

 “태준아, 얘 또 왜 이렇게 화가 났냐?”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 입모양으로 조심스레 물었지만 태준도 점장을 따라 입모양으로만 말하는 탓에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왜 또 저놈은 사람 불안하게 대놓고 말을 안 해줘.

 

 잠깐만.

 

 그러고 보니까 아까 문 열고 들어올 때 분명 퍽하고 뭔가 육중한 거랑 부딪쳤던 거 같은데.

 

 그럼, 설마….

 

 생각을 정리한 점장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비야, 혹시 지금 그렇게 된 게 나 때문이니?”

 

 나비가 간결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점장은 굵은 침을 삼켰다.

 

 이미 새빨갛게 달아오른 코와 마빡을 보아하니 여기서 괜히 쓸데없이 변명을 늘어놓으면 화만 더 돋울 것이 확실했다.

 좋아, 그렇다면.

 

 “사과하면 받아줄 꺼지?”

 

 “…점장님같으면 받아주겠어요?”

 

 이번에는 점장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힘차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한번 화가 나면 멈추지 않고 폭풍 잔소리를 해대는 나비의 성깔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점장은 군말 없이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지각도 하지 않고 건방지게 카페 문을 박차고 들어오지도 않겠습니다.”

 

 “…흥!”

 

 *

 

 마음이 풀린 나비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점장의 팔을 툭툭 치며 그를 다독였다.

 

 뒤늦게 나비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자, 기분이 좋아진 점장은 한쪽 팔을 그녀의 어깨에 걸치고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 나비야. 뭐 사람이 한두 번 실수할 수 있는 거 아니겠니. 쿨하게 잊자. 알겠지? 하하!”

 

 “에이, 벌써 잊었어요. 하하핫!”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눈치 없이 웃는 점장을 따라 나비도 소리 내서 크게 웃었다.

 

 하지만 나비는 이내 웃음을 거두고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넘기며 점장을 노려봤다.

 

 “사람이 그럴 수 있죠. 근데, 제가 분명 교대시간은 지각하지 말라고 했죠?”

 

 “했지…요.”

 

 점장의 대답과 동시에 나비는 이를 꽉 깨물고는 걸쳐진 점장의 팔을 있는 힘껏 꼬집었다.

 

 “아아아! 야!”

 

 “진짜 정신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제가 몇 번을 말했어요. 약속이란 게 원래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건데….”

 

 아파서 그런 건지 아니면 혼나는 게 서러워 그런지, 점장은 불혹의 나이도 잊은 채 울먹거리며 부어오른 자신의 팔을 촐싹 맞게 쓰다듬었다.

 

 “나비야, 진짜 늦으려 했던 게 아니라.”

 

 “시끄러워요! 어차피 새벽까지 술 마시다가 인제 일어난 거면서 변명하지 마세요.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해요. 술을 마시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하지만, 이번 기회에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기로 마음먹은 나비는 점장의 말을 끊고는 잔소리를 이어갔다.

 

 그래, 항상 그냥 넘어가니까 만만하게 보고 맨날 늦는 거야.

 

 이번기회에 확실히 해둬야지.

 

 그렇게 몰아치는 잔소리 속에 얌전히 나비의 눈치를 살피던 점장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그러고는 다급하게 태준을 향해 얼른 오라고 손짓했다.

 

 “야! 태준아! 빨리 와봐! 일하는 척 그만 하고.”

 

 “바빠요.”

 

 “야, 야! 장난 아냐! 빨리 오래두.”

 

 하지만, 태준이 양치기 소년보다 믿음이 없는 점장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그간 점장에게 분노가 쌓인 것만은 비단 나비뿐만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태준은 점장의 다급한 외침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저 묵묵히 찻잔을 정리했다.

 

 “태준아!! 형 지금 진하다. 우리 나비 코, 코….”

 

 이미 아무도 듣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점장은 애타게 태준을 불렀다.

 

 답답함에 결국 점장이 발을 떼려하자 나비가 코웃음을 치며 점장의 귀를 잡아 당겼다.

 

 “안 속아요, 그러니까 괜한 발연기하면서 도망칠 생각 말아요. 한태준 너도 괜히 도와주지 마. 나 지금 진짜 빡쳤으니까.”

 

 대뜸 나비가 째려보자 태준이 관심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여튼, 이 인간은 아직도 철이 안 들었다니까.

 

 뚝, 뚝, 뚝.

 

 한창 열을 내고 있을 무렵 갑자기 나비의 코에서 검붉은 액체가 그녀의 인중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인중을 타고 흐르는 낯선 느낌에 나비는 자신의 입술 주위를 더듬었다.

 

 잠깐, 이게 뭐야.

 

 응? 네가 왜 여기서 나와….

 

 “태준아! 우리나비 쌍코피 나니까 그만 까불고 냅킨이나 들고 당장 튀어와.”

 

 점장의 샤우팅에 그제야 태준이 부리나케 뛰어와 쌍코피를 흘리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 냅킨을 들이대며 코피를 닦았다.

 

 거침없이 흐르는 코피를 따라 태준의 눈빛도 점점 심각해 졌다.

 

 “괜찮아요? 코피가 멈추지를 않는데요….”

 

 “하나도 안 괜찮아.”

 

 그렇게 쌍코피를 흘리는 나비 앞에 눈치 빠른 점장은 어느새 고개를 숙인 채 정갈하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괜찮지 않다는 나비의 말에 태준은 호들갑을 떨며 냅킨을 덕 가져와 그녀의 얼굴을 세수 시키듯 거칠게 문질렀다.

 

 “아니, 무슨 만화도 아니고 쌍코피가 이렇게 나요. 많이 아파요?”

 

 태준이 웃음을 꾹 참으려 고개를 돌린 채 묻자 나비는 멍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는 이내 눈을 지그시 감고 오늘 하루를 되돌아봤다.

 

 버스도 놓치고 손님한테 까이고 퇴근 하는 길에 점장님한테 맞아서 쌍코피 흘리고 있는 꼴이라니.

 

 자신이 생각해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렇게 재수가 없을 수가 있다니.

 

 진짜 실화냐?

 

 그래, 불행 뒤에 행운이 찾아오는 법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내일 얼마나 큰 행운이 찾아오려고 이렇게 오늘 하루에만 몇 개의 사고가 날 덮쳤겠니.

 

 한나비! 그래, 집에 가서 쉬면 좀 나아질 거야.

 

 “점장님, 저 그만 가볼게요.”

 

 “나비야, 아니 나비님. 좀 더 쉬었다 가시는 게 났지 않을까요?”

 

 흥!

 

 나비는 대답 대신 흥! 하는 소리와 함께 크게 코를 풀고는 모두의 걱정을 뒤로한 채 당찬 걸음걸이로 가게를 빠져 나갔다.

 

 하아-.

 

 아무리 그래도 오늘 하루는 진짜 최악이야….

 

 *

 

 손톱달 떠오른 새벽 집무실.

 

 그 안을 밝히고 있는 호롱불은 밤이슬 깊게 드리우는 것도 잊었는지 꺼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렇게 낮처럼 밝은 집무실을 가득 메운 수십 명의 관리들은 퇴근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왕이 내준 업무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단, 두 명만 빼고.

 

 톡, 톡, 톡.

 

 “아니, 좌의정 대감 코에서 떨어지는 그 진홍빛깔은 코오오피 아닙니까?”

 

 “…거 코피라니 난데없이 그게 무슨?”

 

 우의정에 호들갑에 좌의정이 흠칫 놀라 얼굴을 더듬거리자 손에 검붉은 피가 묻어나왔다.

 

 이 영롱한 붉은 빛깔은 의심할 여지없이 코피였다.

 

 예상치 못한 유혈사태에 정신이 멍해진 좌의정은 손이 덜덜 떨려오고 숨이 가빠왔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고 배웠거늘 설마 이런 불효를 저지르다니….

 

 좌의정은 순간 울컥하는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그간의 서운함을 터뜨렸다.

 

 “코피라니, 코피라니!”

 

 “어허, 좌의정 아주 그냥 홍수가 나셨구만 그래. 쯧쯧.”

 

 우의정이 옆에서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차며 동정하자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의정 어른. 제가 이 나이 엄꼬 이리 피까지 콸콸 쏟아가며 나라에 몸 바쳐 일하는 것을 전하께오서는 어찌 몰라주시고 허구한날….”

 

 좌의정은 코피 두 방울에 마치 각혈이라도 한 것처럼 설움을 담아 열변을 토해냈다.

 

 갑작스레 집무실안이 소란스러워지자 옆방에서 집무를 보고 있던 영의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야밤에 무슨 소란들인가?”

 

 사뭇 진지하다 못해 화가난건지 어두운 낯빛을 한 영의정의 모습에 다들 선뜻 답하지 못했다.

 

 그때, 밤새 시종을 들고 있던 하급관리가 눈치를 보며 답했다.

 

 “예, 좌의정께오서 업무 중에 코피가 나서 잠시 소란이….”

 

 “피가 나면 닦으면 그만인 것을 뭐 이리 호들갑을 떠는 것인가. 그것도 신성한 집무실에서.”

 

 벌레 보듯 노려보는 영의정의 눈빛과 거친 호통소리에 좌의정의 코에서 흐르던 피가 순간 거짓말처럼 멈췄다.

 

 갑자기 코피가 멎자 코를 훌쩍이던 좌의정은 옆에 있던 우의정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우의정, 괜히 더 버티고 서있다가는 동정은커녕 괜히 미운털만 박힐게 불 보듯 뻔하니 어서 자리로 돌아갑시다.”

 

 “…우의정?”

 

 평소와 달리 곧장 익살스런 우의정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좌의정은 불안한 마음에 급히 주위를 살폈다.

 

 이 노인네가 귀가 먹었나?

 

 하지만 좌의정의 걱정과는 달리 이미 자리로 돌아온 우의정은 업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색하게 눈이 마주치자 그는 멈칫하며 괜한 헛기침을 내뱉었다.

 

 “크흠, 좌의정 거 나랏일 하다 피 좀 볼 수도 있지. 뭘 그리 성을 내십니까! 전하를 위해 하는 일인데 겨우 그 정도로 엄살을 떨어서야 되겠습니까.”

 

 간사한 인간, 옆에서 부추길 때는 언제고….

 

 내가 우의정 아니, 너 이 개아들 놈을 다시 믿으면 성을 갈 것이야, 성을!

 

 그렇게 홀로 남겨진 좌의정이 쭈뼛거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있자 영의정이 그를 향해 손짓했다.

 

 “좌의정, 잠시 바람이나 쐬게 밖으로 나오시게.”

 

 동굴같이 깊이 울려 퍼지는 영의정의 목소리.

 

 간담이 서늘해진 좌의정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를 따라 집무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영의정 어른. 사실은 그것이, 그것이 아니오라.”

 

 “아까 얼핏 들으니 전하에 관해 말하던 거 같은데, 그것은 또 무슨 말인가?”

 

 날카로운 질문에 좌의정은 목구멍으로 굵은 침을 꿀꺽 소리 내어 삼켰다.

 

 머리를 굴려라, 좌의정아. 넌 할 수 있다.

 

 빨리 변명거리를 짜내거라.

 

 어서!

 

 “왜 말을 하지 못하는가?”

 

 “아, 예. 아랫것들이게 업무를 보다가 피를 흘린 것을 말하지 말라고 일렀나이다.”

 

 “그러한 연유는?”

 

 영의정이 의외라는 듯 수염을 어루만지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예, 혹여나 제가 피를 흘렸다는 것을 전하께서 아시는 날이면 미천한 저희들을 걱정하시여 또 혼자 이 밀린 국정 일을 도맡아 하실 것이 걱정되어 그랬나이다.”

 

 “흐음….”

 

 “의도치 않게 소란을 피워 송구하옵니다. 영의정 어른.”

 

 좌의정은 바닥에 코가 닿을 정도로 깊게 고개를 숙이고는 실눈을 뜬 채 숨을 죽였다.

 

 그 모습을 차분히 지켜보던 영의정은 가까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내 그대를 지나날 동안 잘못알고 있었구만.”

 

 “예, 예에?”

 

 갑작스런 칭찬에 머리를 조아리던 좌의정은 급히 고개를 들어 영의정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 비친 영의정의 얼굴은 미세하게나마 입 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그의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이 통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제야 좌의정은 긴장을 풀고 영의정을 따라 웃었다.

 

 그래, 곧 죽으란 법은 없지.

 

 “어렸을 때부터 뺀질거리기만 해서 걱정이 태산이었거늘. 늦게나마 전하의 깊은 뜻을 깨닫고 나라를 위해 피를 흘리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다니, 드디어 철이 드셨구만 그래. 내 이일은 기억해 놓을 것이니 앞으로도 이렇게만 하시게.”

 

 “물론입죠. 백골이 진토 된다한들 전하를 향한 충성심은 불변 할 것입니다요.”

 

 위기가 곧 기회라고 하더니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좌의정은 의도치 않게 일이 좋게 해결되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영의정 어른. 소생은 아직 할 일이 많아 이만 물러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시게나.”

 

 영의정이 고개를 끄덕이자 좌의정은 고개를 숙이고는 집무실로 뒤돌아섰다.

 

 그리고 그 순간.

 

 “전하를 너무 미워하지 마시게나, 그날의 아픔을 아직까지 잊지 못하신 게야.”

 

 들릴 듯 말 듯 낮게 울려 퍼진 영의정의 목소리에 그가 걸음을 멈춘 채 뒤를 돌아봤다.

 

 “영의정 어른 방금 뭐라 하셨는지?”

 

 *

 

 그날의 아픔.

 

 과거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떠올릴법한 말을 꺼내자 좌의정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재차 되물었다.

 

 “저어, 좌의정 어른….”

 

 “아무것도 아닐세, 바람이 차니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게나.”

 

 “예, 그럼.”

 

 영의정이 노골적으로 대답을 피하자, 좌의정은 애써 모른 척 집무실로 돌아갔다.

 

 드르륵-.

 

 그렇게 좌의정이 들어간 것을 확인한 영의정은 뒷짐을 진채 왕의 침전을 아련하게 바라보며 구슬픈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제는 놓아줄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어린 왕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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