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어지러워···.”
연호의 손에 들린 라탄 바구니에는 다휘를 위한 간단한 음식이 들어 있었다.
연호는 생각 보다 술을 꽤 먹었지만 나름 버틸 만한지, 벽을 짚으며 다휘의 방을 향해 걷고 있었다.
생각보다 은호가 끈질겨서, 중간까지는 따라와서 어딜 가냐고 캐물었지만 민환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는 다휘의 방의 문을 살짝 두드렸다.
혹여 자신이 깨우지 않을까 노파심에 크게 두드리지는 못했다.
역시나 다휘의 응답은 없었고, 연호는 조심히 문을 열었다.
어두운 방 안은 열린 커튼의 창문 너머로 달빛이 은은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다휘는 푹신푹신한 이불 속에 고요히 잠들어있었다.
웅크리고 자고 있는 모습이 뭔가 안쓰러워서, 연호는 다휘의 탁자 위에 바구니를 두고 침대 가까이로 향했다.
“우웅···.”
다휘가 뒤척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악몽이라도 꾸는 걸까, 언뜻 괴로워 보이는 표정이 스쳤다.
연호는 그녀가 악몽을 꾸고 있어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탓은 전부 자기 자신에게 돌려야 했다.
“그래··. 그래야만 해···.”
연호는 술김에 그녀의 볼로 손을 뻗었다.
서늘한 온도지만 말랑한 촉감이 손에 들어왔다.
굉장히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손을 반복적으로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손 안에서 놀아나는 다휘의 볼살이 굉장히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다휘야···.” 그는 다른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카락이 많이 상해서 결이 좋지는 않았지만,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다.
연호는 사실 기뻤다.
다휘가 자신의 곁으로 돌아오게 되어서.
가까이서 다휘를 볼 수 있게 되어서··.
“이젠 내가·· 지켜줄게.” 그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만 다휘에게 다가선 자신의 입장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너에게 휘원이의 친구일까, 무서운 마피아의 보스일까, 아니면···.”
연호의 두 눈이 천천히 감겼다.
바닥에 앉아 침대에 상체를 기대고 있던 연호의 손에 힘이 빠지며, 매트리스에 툭 하고 떨어졌다.
‘못 다한·· 말은··· 꿈에서·· 할게···. 지금은··· 너무·· 졸려···.’
그는 이내 고른 숨을 내쉬었다.
다휘의 방 안에는 두 사람의 체취와 숨소리로 퍼져나갔다.
그녀의 손 주위로 떨어진 연호의 손.
다휘는 차가운 자신의 손 때문일까, 수면 중에도 본능적으로 주위의 온기를 찾아 나섰고 결국 두 사람의 손은 이어졌다.
.
.
활짝 열린 커튼의 창 너머로 해가 점점 떠오르고 있었다.
붉은 빛을 띤 태양은 점점 고도가 올라가면서 노랗게, 점점 밝아져갔다.
그리고 빛줄기는 다휘의 눈을 괴롭혔다.
그녀는 손을 꿈틀거렸다.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이었고, 자신의 손에 느껴지는 누군가의 따뜻한 온기의 손을 꼭 잡았다.
‘따뜻해··. 오빠···. 어··?’
다휘의 두 눈이 떠지며, 빛을 잃었던 눈동자가 점점 생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에는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든 연호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 어?!”
다휘는 화들짝 놀라며 그의 손을 놓고 급히 상체를 반쯤 일으켰다.
이내 연호에게서 굉장한 알코올 냄새를 느끼고,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코를 막았다.
“무슨, 무슨 술을 이렇게··· 아니, 여긴 왜··?”
그녀는 급히 주위를 둘러봤지만, 방 안에는 둘 밖에 없었다.
연호는 정장 자켓은 어디로 갔는지, 하얀 와이셔츠와 정장 조끼에 정갈한 검은 바지만 입고 있었다.
그마저도 셔츠가 흐트러져 있고 조끼의 단추가 모두 풀려있어서 누가 봐도 ‘나는 어제 과음했다.’로 보이게 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핸드폰을 찾아 6시인 것을 확인했다.
연호가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다휘는 그를 깨워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의 등을 흔들었다.
“연, 연호 오빠··.”
동시에 그의 이름을 조심스레 불렀지만, 연호는 미간만 찌푸리고 있을 뿐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빠·· 연호 오빠··!”
그러자 그녀는 좀 더 강하게 그의 팔뚝을 건드렸다.
술 냄새가 진동했지만, 이 사람을 깨워서 해장을 시키는 게 더 중요했다.
“우·· 으?”
그녀의 바람에 따라, 연호는 눈부신 햇살을 손으로 가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그의 시선에는 다휘가 한 눈에 들어왔다.
“술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속은 괜찮아요? 잠시 만요, 물 좀 드릴게요.”
다휘는 그가 일어난 것을 확인하자, 서둘러 방 안의 정수기로 향했다.
얇은 살구 색 슬립을 입은 다휘는 미니 주방의 찬장에서 유리잔을 꺼내 시원한 물을 받아냈다.
“어, 어··? 나 왜 여기·· 으, 속 쓰려!”
“그건 제가 할 말이죠. 왜 제 방에서 주무셨어요. 일단 물 좀 드세요.”
다휘는 연호의 손에 물을 쥐어주었다.
연호는 과한 알코올 덕에 말라버린 신체에 물을 벌컥거리며 들이켰다.
순식간에 한 잔을 비운 연호가 침대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아직 남은 술기운에 그는 조금 비틀거렸다.
그를 알아채고 그의 팔을 잡은 다휘가 그를 바라봤다.
“괘, 괜찮아요? 저 오빠 방을 모르는데·· 알려주세요. 데려다 드릴게요. 다른 분들께 제가 말씀 드릴 테니까 오늘 하루는 쉬시는 게-”
“-아니·· 괜찮아···. 미안하지만 방 까지만 데려다 줄래? 바로 위층이야··. 하아.”
연호는 그렇게 쓰리는 속을 부여잡고 꿋꿋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다휘는 연호의 부축이 조금 무겁긴 했지만, 그의 걱정이 좀 더 커서 방에 돌아오고 나서야 힘이 부친 것을 느꼈다.
연호를 데려다주고 온 다휘의 눈에는 테이블 위의 바구니가 들어왔다.
“어··?”
그녀는 라탄 바구니의 위를 가리고 있는 손수건을 들어냈고, 그 안에는 유리로 만들어진 통 안에 죽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연호가 남긴 쪽지가 있었다.
“내일부터는 식당에서 보자···? 풉, 뭐야. 자기는 못 나올 것 같은데?”
그녀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며, 죽을 꺼내들었다.
“아니·· 나한테도 술 냄새 나는 것 같아. 일단 씻고 오자···.”
다휘는 밥을 간단히 먹으려다가는 이내 욕실로 향했다.
그녀는 연호가 술에 취해있었어도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추측이 들자, 왠지 부끄러워졌다.
* * *
「은호 : 알았어! 식당으로 와.」
다휘는 은호에게 아침 식사에 가겠다고 얘기하고서, 숙소를 나섰다.
이곳에 돌아와 지낸 지난 며칠 간 그녀는 이곳의 생활에 적응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 결과로 간부가 아닌 사람들의 인사를 받아주는 일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다휘 님. 안녕하세요.”
그녀는 마침 지나가며 인사하는 남자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지금 보스의 손님으로 있기 때문에 조직의 일원들에게도 간부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게다가 조직의 내부 지리도 거의 다 외우게 되었다.
조금 헤매기도 했지만 어쨌든 알고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두었다.
그녀는 2층의 간부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식당의 안에는 은호와 도담만이 있었다.
“어서와! 오랜만에 보네! 다휘 아침은 전에 먹던 대로 간단하게 시리얼이랑 샐러드, 샌드위치로 준비해달라고 했어!”
“아, 응··. 은호야. 좋은 아침. 도담·· 씨도 안녕하세요.”
“··· 그래.”
다휘는 자신의 자리로 찾아들었다. 은호의 맞은편이라 반가운 얼굴과 마주할 수 있었다.
“어제 우목 님이랑은 잘 지냈다며? 다행이다. 오늘 차례는 보스인데···. 보스가 사실 어제 술을 좀 많이 드셨거든··. 이따가 점심 지나서 집무실로 가면 될 거야.”
다휘는 은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호가 자신의 방에서 잤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건가?
하지만 그녀는 굳이 말 해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저녁에 다 같이 술 마신거야?”
그녀는 앞에 놓인 따뜻한 스프를 한 숟갈 떠먹으며 은호에게 물었다.
은호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나랑 도담 님, 우목 님, 민환 오빠랑 보스. 이렇게 먹었지. 보스가 술이 좀 약한 편이긴 해? 아! 그러고 보니 도담 님은 해산하고 나서도 술 드셨다면서요?”
은호가 도담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아침인데도 여전한 중절모에 넥타이까지 완벽하게 맨 도담은 은호를 살짝 보며 계란 프라이를 나이프로 썰어 입에 넣었다.
“그래. 조금 마셨지. 너는 또 기억이 안 나나?” 그가 말했다.
그러자 은호는 조금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웃음으로 무마했다.
“아하하·· 저도 어제 조금 과음 했잖아요? 잠깐 필름이 끊겼죠··? 헤헤.” 은호가 대답했다.
그들의 대화의 다휘는 조금 다른 세계에 있는 듯했다.
은호는 머릿속의 퍼즐을 맞추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자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제가 어제 보스를 붙잡고 늘어졌던 것 같은데. 뭐지? 보스가 다휘를 그렇게 생각 안 한다는 건 알았는데.”
“어, 어? 나?”
갑자기 들린 자신의 이름에 다휘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자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제 보스가 너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내가 보스한테 너를-”
“-조용히 해. 식사 시간에 시끄럽다.”
그리고 은호의 말은 도담의 훼방을 받았다.
그의 방해에 은호는 그를 확 노려봤다.
“어머, 아침에 아무리 시끄러워도 간섭도 안 하시는 분이?”
“지금은 사람이 없으니까.”
“아뇨·· 도담 님은 이런 거 신경 안 쓰시잖아요?”
“시끄러워. 입마개 씌워버린다.”
“왜 이러실까요? 수상한데요?”
“몰라, 그런 거. 어쨌든 조용히 해.”
결국 도담이 승리했다.
은호는 쳇, 하고 고개를 돌리고선 궁시렁거렸다.
‘뭐야. 최대 피해자는 나잖아! 뭔데, 나 궁금한 건 못 참는데··?!’
다휘는 주방장이 카트에 내온 샐러드와 시리얼, 샌드위치를 보다가는 도담과 은호를 번갈아 쳐다봤다.
특히 은호를 볼 때 눈에 힘을 줬지만, 은호는 다휘 보단 아침 식사에 더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하아아···.”
다휘는 아주 길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결국 포크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를 주시하던 도담의 속은 말 그대로 뒤집어질 것 같았다.
너무나도 자신 같지 않은 발언들이었다.
업무 한정으로 눈치 백단인 은호여서 다행이지, 다른 놈들이 있었다면 무조건 의심을 받았을 언행이었다.
그는 자신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에 의문을 가지고 나이프로 열심히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