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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벽장 속의 김우빈
작가 : 배꼼
작품등록일 : 2018.11.19

서울러가 되고 싶었던 비서울러 이현주!
드디어 꿈에 그리던 직장과 서울생활을 동시에 가지게 되었다.
보통 서울의 시세보다 엄청나게 싼 집을 얻은 현주는 그곳에서 서울드림을 키워나가고 있는데 그 집엔 현주만 아는 비밀이 있다!?

 
2. 다시 만나다
작성일 : 18-11-19 14:10     조회 : 187     추천 : 0     분량 : 15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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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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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락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힘으로 더 달렸다.

 

 이윽고, 코너에 닿아 그의 흔적을 찾았다.

 

 ‘아 어떡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길도 둘러봤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없었다.

 무작정 그가 향했던 길 쪽으로 걸어갔다.

 

 그냥 걸음, 그것보다는 조금 더 빠르게.

 경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보를 했다.

 

 괜히 맞은편도 한 번 보고 뒤도 한 번 돌아봐도 그는 없었다.

 

 ‘아 어딨는 거야 대체’

 

 저 말만 혼자서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속으로 계속 되뇌며 한참을 걸어간 것 같다.

 

 그래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그를 그냥 놓쳐 버리고 마는 건가...

 

 그렇게 한참 그 길을 헤매다 다시 도넛 가게로 돌아왔다.

 

 어느새 하늘을 밤을 알리는 색깔로 변해 있었고 난 사장에게 귀가 닳도록 혼이 났다.

 

 “도대체 일 하다 말고 어딜 싸돌아 다니고 오는 거야!?”

 

 대답할 말이 없었다.

 

 남자 찾으러 다녔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궁색한 이상한 거짓말로 변명을 늘어놓기도 그랬다.

 

 “어디 갔다 오는 거냐고.”

 

 내가 대답이 없자 사장이 한 번 더 물었다.

 

 가게 안의 모든 아르바이트생과 직원들이 나를 쳐다봤다.

 

 그 중엔 전 남자친구도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전 남자친구 앞에서 남자 때문에 나갔다고 할 순 없다.

 죄송한 일이긴 하니...

 일단 죄송하다고 해야지..

 

 “잘 하던 애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어휴...”

 

 사장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 한 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대답을 제대로 듣지 않고 물러났다.

 

 머리가 하얘져서 초점 없는 눈으로 어딘가를 계속 쳐다봤다.

 

 그리고 그런 나를 전 남자친구는 계속해서 응시하고 있었다.

 

 눈칫밥만 먹었던 오늘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날은 어느새 어둑해졌고 어서 집에 돌아가라는 듯

 밖에는 줄이어 퇴근하는 사람들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는지 아까 늦은 오후에 내가 행했던 경보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윽고, 다음 타임 아르바이트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아~! 오셨어요?”

 

 키가 작지만 입술이 도톰하고 볼터치를 한 듯 안 한 듯

 불그스름한 볼에 볼 살이 살짝 있는 귀염 상.

 

 남자들은 그녀에게 포켓몬 캐릭터인 꼬북이를 닮았다며 좋아했다.

 

 그녀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탈의실로 향했다.

 

 다른 가게들은 보통 앞치마랑 모자만 쓰면 되지만 대기업이라 그런지

 본사에서 셔츠, 앞치마, 모자까지 완벽하게 유니폼을 갖추길 원했다.

 

 탈의실 문을 잘 잠그고 갈아입지 않으면 누가 모르고 문을 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상하게도 그걸 좀 즐기는 듯 했다.

 

 항상 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아 모르고 문을 연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이 많다.

 

 다행히도 그 중 남자는 없었다.

 

 아, 어쩌면 내가 그냥 못 봤을 뿐이고 어떤 남자 아르바이트생들은 열었을 수도 있겠다.

 

 난 본 적이 없지만 다른 아르바이트생을 통해

 그녀의 몸매가 괜찮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 것 같다.

 

 도대체 남의 몸매가 어쩌고 저쩌고를 뒤에서 왜 이렇게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 인생에 신경 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나도 그녀의 몸매를 상상하며 궁금해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지 말자...’

 

 더 이상 상상하는 건 멈추기로 했다.

 

 그녀의 인생이 어떻든 나랑은 상관 없는 일이니 말이다.

 

 그녀가 탈의실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탈의실로 향하여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위에는 아빠 옷을 가지고 온 듯 내 몸에는 매우 큰 박시한 후드에 옆에

 흰색 세 줄이 박혀있는 검은색 레깅스를 입었다.

 

 옷에 신경 안 쓴 듯 스타일리시한 느낌의 옷이 좋았다.

 코트같은 것만 유행하는 게 아니라 츄리닝도 유행한다.

 

 지금 제일 대세인 브랜드의 후드와 레깅스를 입으면 그래도 어디서 꿀리진 않는다.

 

 집 앞에서 간단하게 술 한 잔 할 수 있는 정도의 옷차림(?) 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사복 차림을 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수고하세요~”

 

 모자를 푹 눌러쓰고 간단한 목례와 함께 인사를 한 뒤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얼굴을 보면 또 다른 상상을 할 것 같아 최대한 보지 않기 위해

 모자를 쓰고 있음에도 손으로 한 번 더 눈에 커튼을 치고 빠르게 빠져 나왔다.

 

 누군가는 오늘 사장에게 혼나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사장에게 혼난 건 아무렇지도 않다.

 단순히 저 여자의 얼굴을 보기 싫었을 뿐이다.

 

 아까 김우빈 같은 남자와 함께 있던 그 여자와 조금 닮은 느낌이 있어 그런가?

 

 그냥 오늘따라 저 여자도 미워 보인다.

 

 집에 가는 길이 아닌 아까 남자를 잃었던 길로 향했다.

 

 집까지 한참 돌아가도 상관없다.

 그 남자만 찾을 수 있다면...

 

 갑자기 맞은편에서 나타나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어.... 아까 입었던 코트...’

 

 생각만 하고 있던 그 남자가 지금 횡단보도 맞은편에 있는 것 같다.

 그 남자를 처음 봤을 때보다 심장이 더 두근거렸다.

 

 심장은 bpm최대치를 넘어가고 있었고 눈동자는 초점을 가지고 있지만

 심장의 떨림 때문에 그런지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곧이어 횡단보도의 색깔이 초록불로 바뀌었다.

 

 낮에 그를 찾을 때와 비슷한 속도로 횡단보도를 건너 그에게 점점 다가갔다.

 

 “저기요...”

 

 그가 뒤돌아 본다.

 그가 내 눈을 바라본다.

 “네...?”

 

 그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망할 놈의 코트는 왜 유행을 타서 이 남자도 입게 했는지...

 

 몸매는 정말 비슷한데 얼굴이 완전히 딴 사람이다.

 

 키만 큰 사람...

 

 죄송합니다를 유난히 많이 부른 날이다.

 

 아직 집에 도착도 하지 않았는데 당장이라도 눕고 싶었다.

 

 피곤했다.

 오늘은 정말 별의 별 것으로 칼로리를 많이 소모한 모양이다.

 

 얼른 집에 가서 밥이나 먹어야겠다.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향했다.

 마치 중요한 시험에 낙방이라도 한 마냥 한 표정과 걸음으로 어느새 집에 당도했다.

 

 ‘그를 다시는 볼 수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이 일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대로 누웠다.

 온몸에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현주야! 밥 먹어~!”

 “이현주!”

 “얘는 왜 이런 초저녁에 잠이 든 거야!”

 “야! 밥 먹고 자!”

 

 아침보다 더 힘든 기상시간이었다.

 

 굳이 밥을 먹고 자라는 엄마의 깨움에 부스스하게 그리고 아주 느리게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에는 “일어나라” 이 한마디만 하고 사라지던 엄마가 밥 먹으라고 할 때는

 어찌 그렇게 방까지 들어와 몸을 흔들며 열심히 깨우는지.

 엄마가 열심히 흔들어 준 몸을 이끌고 부엌으로 나갔다.

 

 한 상 가득 차려진 식탁.

 

 엄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우리 가족 모두는 엄마가 하는 요리를 아주 좋아한다.

 

 전~혀 인스턴트 방식은 찾아볼 수 없고 재료 고유의 맛을 살려 요리를 한다.

 밥 한 톨 한 톨부터 찌개가 먹기 전까지의 온도까지.

 

 어느 하나 신경 안 쓰는 게 없다.

 

 왜 집에서 주부를 하고 있는지가 더 의문스러울 정도로

 엄마의 밥을 아주 정성 가득하고 맛있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가 밥을 해놨을 때는 낮잠을 자던 뭘 하던

 무지막지하게 자는 사람을 깨운다.

 

 때를 맞춰놓은 음식을 그 시간에 먹지 않으면 맛이 변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전문가 중에서도 정말 탑이다.

 난 엄마가 개인적으로 한식 셰프가 되었으면 좋겠다.

 

 인생에 늦은 때는 없다.

 시작은 이미 반이자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환갑을 넘던 칠순을 넘던 그 때 시작해도 늦지 않다.

 

 여자는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사람이고 여자다.

 

 언젠간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아닌 인간 ‘유경숙’, 여자 ‘유경숙’, 셰프 ‘유경숙’이 되길 바란다.

 

 “엄마”

 “응? 왜? 별로야?”

 “아니 너무 맛있어서”

 “엄마 밥이 언제 맛없던 적 있었니? 밖에서 먹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지”

 “엄마는 요리하고 싶었던 적이 없어?”

 “오늘도 했잖아. 내일도 할 거고”

 “아니 집에서 하는 이런 거 말고 진짜 제대로 된 요리 말이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요리하고 싶었던 때를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단지 이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서 일까?

 

 일단 한 입 더 떠서 밥을 먹고 너비아니 한 입 그리고 시금치나물을 먹었다.

 

 “많지. 아주 많았지”

 

 ‘많았다고? 그런데 왜...’

 

 “그런데 왜 안 해?”

 

 그 이후로 또 몇 초간의 침묵이 흘렀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렇게 몇 초간의 침묵 뒤 엄마가 대답했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 그때는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결혼하는 추세였고 그렇게 결혼을 하니까 금방 네가 생기더라고. 그때는 몰랐지. 애 키우는 게 그렇게 힘든 줄은. 그냥 당연히 결혼을 하면 애를 낳아야 되는 게 순서인 줄 알았어.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어. 근데 너 낳고 너 키우고 네 아빠 내조하다 보니까 벌써 세월이 이렇게 됐네. 그래도 대학 졸업할 때는 꿈이 없었는데 결혼하고 나서부터 네 아빠 요리 해주면서 자연스럽게 관심 가지게 됐는데 내 음식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 행복한 표정이 너무 좋아서 혼자 연구하고 공부하다 보니까 이렇게 된 거야. 결국 이 요리도 내 꿈이 아닌 가정을 위해서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지.”

 

 평소 같으면 내가 물어보고도 중간에 말 끊고

 물어본 내가 바보다라며 밥이나 먹자고 했을 텐데...

 

 단 한 순간도 다른 생각 하지 않고 엄마의 말을 경청했다.

 

 “너 말대로 생각은 해볼게. 너 챙겨주지 않아도 될 때쯤.

 아카데미도 다녀보고 여러 가지 시도해볼게.”

 

 결혼생활 문제도 있었겠지만 지난 세월 동안 나 때문에 나 키우느라 고생한

 엄마가 언젠간 꿈을 이뤘으면 좋겠다.

 

 “유경숙 여사님.”

 “응?”

 “나 독립할까?”

 

 정말 홧김에 한 말이기도 했지만 이전부터 독립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SNS상에 떠돌아다니는 자취방 잘 꾸민 집들을 보며 나도 언젠간 이렇게 꾸며야지.

 

 그레이 톤에 이불은 핑크로 하고 TV는 작지만 빔프로젝트를 설치해

 혼술하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집.

 

 크진 않지만 작지도 않으며 되도록 신축이었으면 좋겠고 벌레는 절대 나오지 않으며

 냉장고에는 한 칸을 맥주로 쫙 채우고 간단한 냉동식품들을 놔두고

 언제든지 바로 요리도 할 수 있는...

 

 그런 집.

 

 “독립? 무슨 독립? 뭐 어떻게?”

 “서울에 가는 거지”

 “무슨 돈이 있다고?”

 “걱정 마 내가 알아서 싼 데로 알아볼게.”

 “학교는?”

 “이 학교 나와서 뭐 취업이나 잘 되겠어? 취직부터 알아보지 뭐. 괜히 여기에 돈 낭비하는 것 같아. 어차피 취업 때문에 다니는 학교잖아?”

 

 엄마는 그 말에는 동의하는 듯 했다.

 갈수록 올라가는 취업난에 그저 가라는 대로 가다가 그저 그런 지방에 있는 대학을 나오게 되면 결국 취업에 실패해 그나마 취업이 잘 되는 전문대로 재입학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다시 말해 대학 졸업장만 가지고 뭘 비빌 수 있는 시대가 아니란 말이다.

 

 각종 자격증부터 토익, 텝스, 학점 관리까지...

 

 정말 모든 걸 관리해야 그나마 좀 괜찮은 회사에 지원이나 할 수 있다.

 

 사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무언가 말 하는 것보다 참는 걸 많이 배우며 사는 것 같다.

 

 좋은 대학가면 좋은 남자 저절로 따라온다.

 그러니 노는 거 참고 공부해라.

 

 늦은 시간에 먹으면 살찐다.

 그러니 지금은 참아라.

 돈 차곡차곡 조금씩이라도 저금해라.

 

 그래야 나중에 집 사고 차 산다.

 그러니 지금 돈 쓰는 건 참아라.

 

 문득 예전에 잠깐 꿈꿨던 라디오작가가 생각났다.

 

 라디오를 들으며 오프닝을 필사 하고는 했었다.

 

 2년 전인가?

 이국주가 진행하는 SBS 파워FM 이국주의 영스트리트를 듣는 데 한참 빠진 적이 있었다.

 

 그때 썼던 라디오 오프닝 중에 이런 글이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건

 축복이지만,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수 있는 건

 용기이자 능력 아닐까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예외를 두고,

 

 최소한 남들이 나를 휘두르게 허락하진 맙시다.

 

 미운 사람은 만나지 말고,

 

 싫은 자리는 가지 말고,

 

 안 땡기는 일은 정중히 거절해도 괜찮습니다.

 

 신나는 일, 재미난 일만 하고 살기에도 바쁘거든요.‘

 

 무조건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수 있는 건 용기이자 능력이다.

 

 난 하고 싶은 일을 하러 가야겠다.

 

 “그래서 서울에서 뭐 할 건데?”

 “나.. 라디오작가 하고 싶어.”

 “그게 가서 한다 그러면 바로 되는 거야? 대학 졸업하고 가야할 거 아냐?”

 “대학도 대학인데 일단 방송국 근처에서 뭐라도 해보고 싶어.”

 “뭐 어떻게 할 건데?”

 갑자기 생각한 거라 뭐 어떻게 한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엄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계획 잘 짜와. 계획 잘 짜오면 다시 얘기 해보자. 돈 너무 많이 지원 못 해준다. 잘 생각해”

 

 그렇게 엄마와 나의 식사 자리는 끝났고 난 방에 들어가 서울 자취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자취방은 생각보다 비쌌다.

 

 방송국이 밀집한 상암동은 당연히 비쌌고 좀 더 가깝고 싼 곳으로 눈을 돌렸다.

 

 마포구 성산동, 은평구 수색동.

 

 하지만, 이곳들은 대부분 보증금이 낮으면 월세가 높고 보증금이 높으면 월세가 낮았다.

 

 서울에서 원룸 구할 수 있는 돈이면 이곳에서는 전세나 매매도 노릴 수 있는 정도였다.

 

 “아... 왜 이렇게 다 비싼거야..”

 

 집들이 다 너무 비쌌다.

 조금 더 먼 곳으로 보기 시작했다.

 

 서대문구 북가좌동, 근처에 6호선 증산역이 있고

 지하철로 DMC역까지 한 정거장만 가면 되는 곳.

 

 하지만, 그곳도 만만하지는 않았다.

 

 보증금 1000은 기본.

 엄마 아빠가 어디까지 지원해줄 지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벌어서 내야할 월세나 생활비까지 생각하면 정말 싼 데로 구해야 한다.

 

 “어...?”

 

 북가좌동에 보증금 500에 월세 20짜리가 있었다.

 지하철도 꽤 가까웠다.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다.

 보증금과 월세가 싸니 집이 금방 나갈 것 같아 밤인데도 불구하고 문자를 넣었다.

 

 ‘월세방 거래하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 연락이 오진 않겠지만 혹시라도 그 사이에 거래가 될까봐 일단 문자를 넣었다.

 

 그 사이, 아빠가 회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지

 밖에서 엄마와 아빠가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휴~ 술 냄새”

 “아이 우리 경숙아 사랑한다. 내가 너무 사랑해!”

 “나도 사랑해. 그러니 일단 씻어”

 “아이 배고파! 라면 끓여줘!”

 “안돼! 일단 씻어!”

 

 엄마는 라면 끓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릴 때 엄마가 외부에 나가 있으면 아빠와 둘이 남아 라면을 끓여먹곤 했다.

 아빠가 끓여주는 라면은 간단하면서도 굉장히 맛있었다.

 

 사실, 라면을 끓일 때 스프를 먼저 넣느냐 면을 먼저 넣느냐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오던 논제다.

 

 혹자는 스프를 먼저 넣으면 물의 끓는점이 올라가 더 맛있게 끓일 수 있다는 말도 하지만 반대로는 면을 먼저 넣으면 면에 있는 기름과 맛있는 성분들이 물에 나온다는 사람도 있다.

 

 다 필요 없다.

 

 우리 아빠는 물이 끓기까지의 시간도 기다리지 못 하고 면이랑 스프를 다 집어넣는다.

 

 그리고 나서 불을 켜놓고 그냥 TV를 보며 기다린다.

 

 시간도 재지 않고 그저 TV를 보다 물이 흘러넘치려고 하면

 그제야 가스레인지로 다가가 불을 끄고 계란과 파를 넣는다.

 

 이렇게 얼핏 보면 대충 만든 것 같은 라면은 정말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너무 맛있었다.

 

 평소에 엄마 때문에 라면을 잘 못 먹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아빠가 끓여준 라면 맛이 이때까지 먹은 라면 중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내 미래도 그냥 이렇게 대충 만드는 아빠의 라면처럼 하고 싶은 거

 짬뽕하면서 살다 보면 저렇게 최고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맛있는 라면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최고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먹고 살 수 있는.

 

 평범한 사람.

 아니, 평범함 보다 조금만 더 위?

 

 아빠는 엄마의 성화에 씻으러 간 듯 했다.

 

 엄마는 혼잣말을 하며 아빠가 벗은 옷가지들을 정리해 빨래 통에 넣는 듯 했다.

 

 거실로 나가봤다.

 

 거실에서는 TV소리가 들려오고 욕실에서는 아빠가 씻는 소리,

 베란다에서는 엄마가 빨래 통에 옷을 넣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엄마”

 “왜~ 계획 벌써 다 짰어?”

 “보증금 500만 빌려줄 수 있어...?”

 “500? 보증금이 그래? 그럼 월세가 비쌀 거 아냐.”

 “월세는 20만원..”

 “그런 집이 서울에 있다고..?”

 엄마도 생각보다 싼 값에 당황한 듯했다.

 

 “어떻게 구했는데..?”

 

 핸드폰 앱을 열어 엄마에게 보여줬다.

 

 “이거 제대로 된 데야?”

 “요새 다 이걸로 방 구해. 연예인이 광고도 많이 하는 곳이고.”

 “이게 진짜라면 일단 내일 아침에 연락해봐.”

 “알겠어.”

 이미 해놨지만 구구절절 설명하기 귀찮아 알겠다고 했다.

 

 “일은 구했어..?”

 

 ‘일까지 구할 시간은 없었다.’

 

 “아직 정보가 너무 없어서 차차 구해보려고..”

 “여기 가보는 건 어때?”

 

 엄마의 앞치마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나왔다.

 

 잠시 뭔가를 뒤지던 엄마는 나에게 그녀의 핸드폰 화면을 보여줬다.

 

 ‘방송 아카데미..?’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지만 그것보다 그 짧은 시간에 엄마가

 이런 걸 어떻게 알아낸 건지 궁금했다.

 

 “이런 데 어떻게 알았어?”

 “진짜 유용한 정보는 아줌마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지. 네가 라디오작가 되고 싶다고 하길래 내가 좀 물어봤다. 내가 아빠 잘 설득 해 볼 테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라디오 작가되길~”

 

 정말 대단했다.

 

 역시 이게 대한민국 아줌마 클라스인 것인가...

 대학생인 나도 모르는 정보들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끝나지가 않았다.

 

 생활비를 벌어야 할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필요했다.

 라디오를 아직도 즐겨 듣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럴 때는 또 스마트폰을 적극 활용한다.

 

 아르바이트 관련된 앱을 깔았다.

 

 예전에 도넛 가게 아르바이트 구하기 전에 깔았다가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고는 바로 지웠었다.

 

 앱을 깔고도 촌구석이라 그런지 구하는 데 한참 걸린 반면

 서울에는 아르바이트 자리가 자취방 근처에서 길만 건너도 5개는 찾을 수 있었다.

 

 “역시 서울이야..”

 

 공부하면서 할 수 있는, 적정 시간대의 아르바이트가 필요했다.

 

 그러면서도 젊은 사람들이 많아 일을 하면서 동네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동네에서 혼자 살기란 쉽지 않다.

 

 물론, 아카데미에서 동기들을 만날 수 있지만 동네에 살지는 모른다.

 가끔 힘들 때 동네에서 맥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그런 친구도 만났으면 좋겠다.

 

 난 참 가진 것도 없으면서 바라는 게 많다.

 

 앱에는 이전에 올려놨었던 이력서가 그대로 있었다.

 

 이 이력서를 조금 고쳐놓고 (특히, 알바 경력 부분) 마음에 드는 일자리가 생긴다면 바로 지원할 수 있게 해놔야겠다.어떤 일들이 있나 보던 중 아빠가 씻고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욕실 앞으로 다가갔다.

 

 이윽고, 몸에 수분이 채 닦이지 않고 웃옷을 걸치지 않은 아빠가 나왔다.

 

 “어~딸! 언제 왔어?”

 “아빠 들어오기 한참 전부터 있었지. 아빠 옷 좀 입고 나오라니까!”

 “그래도 밑에는 입잖아 이제!”

 “그건 당연한 거고! 아빠가 자꾸 그러니까 현승이도 거기서 벗고 다닌다잖아!”

 

 이런 얘기를 하려고 온 게 아닌데 흐름이 이상하게 흘러가 버렸다.

 

 현승이는 내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다.

 

 내 동생이 왜 한 집에서 같이 안 사는지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현승이는 할머니와 함께 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다.

 지금 우리 집이 있는 곳은 시골이라 특수학교가 없기 때문이다.

 

 마침 할머니가 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특수학교가 있었다.

 

 내 동생에게는 발달장애가 있다.

 

 나름 바른 생활을 이어온 부모님이었는데 엄마가 현승이를 배고 나서 먹은 감기약이 문제였을까..?

 

 처음에는 우리 가족 아무도 몰랐다.

 

 동생이 생겨서 마냥 좋았던 나는 잘 때도 항상 같이 자고 내 몸도 하나 제대로 간수 못 하면서 현승이를 업고 다니려고 할 정도로 현승이를 많이 챙겼다고 한다.

 

 물론 내 기억엔 없다.

 엄마, 아빠로부터 구비전승된 말이다.

 

 현승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내 나이 13살이 얼마 남지 않아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시기였다.

 (동생과 나는 9살이나 차이난다)

 

 이제 슬슬 어느 정도 말로 의사가 표현이 되어야 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현승이는 전혀 말을 구사하지 못 했다.

 

 그 당시 엄마는 안 그래도 나와 비교했을 때 뒤집기나 걷는 게 한참 느리다고 생각은 했지만 나이가 너무 어리니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다고 한다.

 

 뒤집기를 하든 걸어가든 혹은 말을 하든 어차피 챙겨줘야 하는 나이였으니까.

 

 슬슬 불안감이 엄습해오자 엄마와 아빠는 소아과를 찾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발달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때부터 엄마 아빠는 계속해서 다투기 시작했고 이혼 위기까지 갔으나

 보다 못한 할머니가 중재하며 그렇게 특수학교에 보내게 됐다.

 

 그때 우리 집안은 정말 풍비박산이었다.

 하루걸러 하루 다투는 엄마 아빠는 서로 네 탓이니 어쩌니 하며 싸워댔는데

 솔직히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는 부부의 사랑으로 낳는 자식인데

 어떻게 한 사람을 잘못만 있을 수 있겠는가.

 

 둘은 지금도 매일 같이 그때의 서로를 반성하고 있다.

 

 “아이 현승이는 그래도 돼~”

 “아빠!”

 

 장애인 아들을 둔 아빠로서 적절하지 못한 언어를 선택한 것 같다.

 

 장애인이라서 용서가 된다는 말은 결국 현승이를 장애인으로만 대하겠다는 것 아닌가?

 

 엄연히 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갈 수 있는 한 인격체라고 생각한다.

 

 “당신, 말조심해”

 

 엄마가 아빠에게 웃옷을 주며 말했다.

 

 두 여자의 카리스마에 눌린 아빠는 웃옷을 입고 침실로 들어가

 누운 지 1초도 안 되어 잠이 들었다.

 

 술에 취해서 잠시 실수했다고 생각해야 했지만

 술에 취한다고 해서 실수가 용서가 되지는 않는다.

 

 “너도 이제 그만하고 얼른 들어가서 자”

 

 살짝 피곤함이 들어있는 엄마의 말투에 알겠다는 제스처를 취한 뒤 바로 방으로 들어왔다.

 그 말투에 들어있는 피곤함은 필시 귀부터 시작된 피곤함일 거라는 생각에 귀를 쓰지 않도록 나도 모르게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 했던 것 같다.

 

 방으로 들어가 알람을 맞추고 잠에 들었다.

 

 여러모로 나에게도 피곤한 하루다.

 

 이상형을 만난 날.

 

 꿈을 꾸게 된 날.

 서울로 향하는 계획을 세운 날...

 

 다음 날 생각보다는 아주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학교로 향했다.

 

 사실 컨디션 좋아본 적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는 건 왜 이렇게 힘들까..?’

 

 아침에 일어나는 건 항상 힘들다.

 

 가끔 왜 인간은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을 잔다고 만들어 놨을까? 이렇게 힘든데.

 누가 잘 못 만든 건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해 본적 있다.

 

 그냥 힘들어서 잠깐 했던 미친 생각이지만

 아직도 꼭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밤에 일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전날 너무 힘들게 일해서 오후까지 잘 수도 있는 건데 엄마 아빠는 항상 아침에 일어나는 인간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강의실로 들어오자 여기저기서 머리도 채 말리지 않고 나온 많은 여학생들이 화장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남자도 몇 없는 이 사회복지학과 강의실에서 뭘 저렇게 치장을 하는지 모르겠다.

 

 치장하는 여학생들을 바라보며 뒷자리 구석에 자리했다.

 

 대학에 입학 신청을 하며 사회복지학을 전공으로 생각했을 때는

 현승이 때문인 게 가장 컸다.

 어떤 직업과 전망이 있는지도 모르고 들어왔지만

 막연하게 현승이한테 도움이 되는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 국문학이나 문예창작 혹은 신문방송학을 택했으면 어땠을까?

 

 그때 빠르게 선택했다면 조금 더 빨리 라디오작가의 길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교수님이 들어왔다.

 “자자 예쁜 학생들~ 그만 치장하고 이제 공부 좀 하자.

 남자친구 만나기 전에나 화장 열심히 하고.”

 

 치장하던 학생들 중 절반은 교수님이 들어오자 화장품을 내려놨지만

 (그마저도 내리는 척이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아랑곳하지 않고 화장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 학생들은 이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대학에서 굳이 더 있기 싫은 이유다.

 

 도무지 통제가 되지 않는 녀석들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대학교 친구들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1학년 시절 MT 때, 우리는 가평에 있는 한 펜션으로 다 함께 놀러갔다.

 

 사회복지학과는 대부분 여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학과라 그런지

 술이나 음식 등의 무거운 짐들은 10명도 되지 않는 남학생들이 모두 들었다.

 

 예전에 이런 얘길 들은 적이 있다.

 

 남자들 사이에 있는 여자는 공주.

 여자들 사이에 있는 남자는 머슴.

 

 그때 남자들이 딱 그런 꼴이었다.

 

 그냥 보기에도 남자들 보다 더 힘이 세 보이는 여학생들이 보였지만

 그녀들은 마치 원래 이건 남자들이 태어날 때부터 해야 하는 일이라는 냥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남자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여자들도 존재했다.

 

 그녀들 중 몇 명은 짐을 들고 있는 남자들에게 다가가

 

 “힘들지? 미안해 괜히 우리 때문에...”

 

 이렇게 끼 한 번 부려주면

 

 “아니야~ 괜찮아 으허허 이런 건 남자가 해야지! 허허”

 

 정말 바보들의 대화 같았다.

 

 다가간 여자들이 착한 척 하는지도 모르고 말 걸어준다고 좋다고 또 그 앞에서

 “으헤헤 으헤헤” 거리는 거 보고

 이번 기회에 그들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 알려주기로 다짐했다.

 

 저녁 시간이 지나고 술을 먹는 와중에 그나마 좀 친한 남자애를 따로 불렀다.

 한 번에 모두에게 말하기는 부담스러웠다.

 

 그나마 조금 친했으니까 이 놈이라도 당하지 않게 해줘야지..

 

 이 친구에게 이곳 여자들이 남자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낱낱이 알려줬다.

 

 그 친구는 적잖이 충격인 듯했다.

 본인은 이용당하는 일명 ‘호구’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 친구만은 또 당하지 않길 바라며..

 

 그 친구를 먼저 방으로 보내고 조금 있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같이 들어가면 괜한 의심만 살 뿐이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방에 들어가자 방이 뭔가 갑자기 숙연해지고

 여자들이 숙덕숙덕 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귀로는 알 수 없는 그런 무언의 감각이 내가 그 친구에게 말한 사실이

 여자들에게도 퍼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때의 난 어쩔 줄 몰라 하며 방을 빠져 나왔다.

 

 배신감이 치밀어 올랐다.

 

 순전히 그들을 위해 해준 말이었는데 나의 성의를 이렇게 무시하다니...

 

 그 이후로 친한 남자애와의 오해는 풀었다.

 

 친구에게 조심하라고 말 했는데 술에 취해 좋아하던 여자애에게 말 한 게

 화근이 되었다고..

 

 그 이후로 남자애 몇 명 이랑만 다녔다.

 

 그래서 대학시절에 올라와서는 여자 친구가 별로 없다.

 

 아니, 고등학교 때도 사실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줄곧 그 망할 첫사랑이랑만 다녔으니.

 

 아무렴 상관없다.

 

 여자들이랑 많이 친해지면 피곤하다.

 

 남자애들 몇 명 이랑만 다니는 순간부터

 나에 대한 근거 없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남자를 후리고 다닌다느니

 남자에게 잘 보이려고 기를 쓰고 있다든지

 내가 남자애 몇 명이랑 잤다니 뭐라니

 정말 진실이 1도 담기지 않은 거짓 소문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내가 장담하건데 이 친구들이랑은 정말 진심 레알 트루 친구다.

 

 진짜 뽀뽀하는 거 상상도 하기 싫다.

 

 이건 진짜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비율의 여자들이 이런 방법으로 친구와 남사친을 구분한다.

 

 아, 여기서 말하는 친구란 진짜 이성의 감정이 1도 없는,

 생물학적으로 성별만 남자인 친구를 뜻하며

 남사친이란 조금이나마 가능성이 있는, 뽀뽀를 할 수 있는 남자 사람 친구를 뜻한다.

 

 쉽게 말하면 친구는 그냥 친구이고 남사친은 어장을 뜻한다.

 조금이라도 발전 가능성이 있는..

 

 애초에 어장 따위에 관심도 없는 나는 그들을 추호도 남사친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진짜 친구다.

 

 그런데 내가 생물학적으로 성별만 남자인 그들과 친하다고 해서

 이상한 소문에 왜 시달려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자를 남자로만 생각해야 하나?

 그들도 남자이기 전에 같은 학교 다니는 동문이고 그 이전엔 인간이다.

 

 처음엔 그런 소문 때문에 아는 사람들 말곤

 주변에서 쉽게 다가오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았다.

 

 워낙 활발하고 사람 좋아하고 술 자리 좋아하는 나인지라 짜증이 나고 이상한 소문 낸 사람들을 잡아 면담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수십, 수백 번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소문은 그냥 소문으로 받아들이기로 자연스럽게 마음이 굳혔다.

 

 소문이 어쨌든 간에 나는 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변하지 않는다.

 

 소문을 믿고 날 멀리한다면 어쩌면 처음부터 친구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피곤한 인간관계에 휘말리기 싫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그나마 있던 친구 몇 명도 사라진 건

 그들이 군대라는 곳으로 한 번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선녀가 선녀 옷을 입고 하늘로 날아 가 듯 친구 아니랄까봐

 동반입대 신청을 해서 한 번에 왕창 날아가 버렸다.

 

 그 덕분에 그나마 있던 친구들마저 사라져 버리고 학교에 오면 혼자 모든 걸 다 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렇게 불편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편했다.

 

 지금 당장 이 장소에 친구가 없다고 해서 쓸데없는 감정소비를 하며

 온갖 거짓부렁으로 가득 찬 여자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혼자가 훨씬 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지금 학교에 친구가 없다.

 

 그나마 인사 나눴던 여자 사람 친구 몇 명도 이상하게 날 피하는 건지 보이지 않았다.

 

 아무렴 어때?

 혼자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수업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오전11시가 됐다는 진동 알람이 핸드폰에 울렸다.

 

 진동을 느끼고 핸드폰으로 라디오를 틀었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박명수의 라디오쇼가 시작된다.

 박명수의 라디오쇼는 감성적인 것 보다는 개그맨이 본업인 박명수답게

 말하는 것마다 웃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보통 내가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들은 달밤에 젖은 감성을 느끼고 싶어 듣지만

 라디오쇼는 우연히 수업 시간이 지루해 한 귀로 들을 게 없나 찾던 도중 듣게 되었다.

 

 한 번에 쭉 그리고 시 읽듯이 읽어 내려가는 오프닝이 아니라 더듬더듬 거리며

 ‘이 사람이 대본 외운 것 맞나?’할 정도로 여기저기로 분산되는 집중력은

 박명수가 왜 라디오 dj가 되었는지 의문을 갖게 하지만

 반대로 그 때문에 너무 라디오 같지만 않은 매력과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며

 얼굴이 매우 알려진 인물이다 보니 그 사람의 말만 들어도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

 

 신기하다.

 

 매주 화요일마다 ‘직업의 섬세한 세계’코너를 하는데

 지금 듣기에 딱 좋은 주제라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학교를 뛰쳐나가 방송국에 취직하고 싶어 하는 나에게

 딱 맞는 주제가 마침 펼쳐졌다.

 

 게스트는 공부의 신 ‘강성태’가 나왔다.

 

 한 20분 동안 들었나?

 

 너무 오랫동안 강성태의 학창시절과 공부에 대한 얘기만 한 나머지 그만 졸고 말았다.

 

 공부는 해도 졸리지만 공부에 대한 얘기만 들어도 졸린 건가 보다.

 

 한 줄기의 침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수업이 끝났다는 것을 알려줬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왔다.

 

 아무리 혼자 다닌다고 하지만 SNS에서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화장실에서 밥 먹지 않는다.

 

 죄진 것도 아닌데 왜 똥 싸는 곳에서 밥을...

 

 난 당당하게 학식을 먹으러 갔다.

 

 오늘 학식으로는 라면을 먹기로 했다.

 

 요새 학교 아르바이트 집 이 순서가 반복되면서 라면을 먹을 시간이 부족했다.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야근에 주말근무도 불사했고 아빠와 내가 단 둘이 있는 시간은

 고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사라진 것 같다.

 물론, 그때 내가 남자친구가 있어서 너무 밖으로 돌아다닌 내 책임도 있지만..

 

 학식으로 나오는 라면에 김밥 한 줄만 딱 사서 먹으면 수라상 안 부럽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혼자서 그 어디도 쳐다보지 않고 오직 음식만 바라보며 점심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밥 먹을 때는 밥에 집중하라고 했던 엄마의 가르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이럴 때면 라면 속에 뭐가 들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유심히 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너구리를 제일 좋아하지만 학식에 나오면 라면은 항상 신라면을 쓴다.

 

 신라면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맛있는 라면이라고 생각한다.

 학식 먹을 때 너무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음식만 쳐다봐서 그런지

 맛보지 않아도 어떤 라면인지 알 수 있다.

 

 특히, 면을 보면 알 수 있다.

 

 너무 얇지 않고 한국 라면치고는 살짝 두꺼운 쪽에 속하며

 건더기 스프에 조그만 버섯과 너무 작지 않은 파가 있다.

 

 신라면 같은 경우는 젓가락에 면을 가득 담아

 입 안이 꽉 차게 넣었다가 조금 면발을 흡입한 뒤 잘라 먹는 게 가장 맛있다.

 

 풍성한 면이 입 안 가득 담길 때면 배는 부르지 않아도 입이 배부르다고 말 하는 것 같다.

 

 김밥을 먹을 땐 김밥 조각 하나를 입 안에 넣은 뒤 3번 정도 씹고 라면 국물을 들이키면 목이 메지 않고 국물이 밥알에 스며들어 좀 더 부드럽고 김밥 맛뿐 아니라 라면의 양념이 더해져 좀 더 맛있는 김밥을 즐길 수 있다.

 

 그걸 계속 반복하자 라면 용기의 바닥이 보이기 시작하며 식사의 끝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 잘 먹었다.”

 

 이렇게 소리 내서 혼잣말해도 구석에 앉아서 아무런 눈치도 보이지 않는다.

 

 가끔 날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지지만

 그건 순간적일 뿐 그들은 곧 다시 자기들끼리 얘기한다.

 

 그렇게 혼잣말을 끝내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런데..!

 

 문 쪽에 익숙한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김우빈. 나의 이상형 김우빈.

 
작가의 말
 

 이번에는 제발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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