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일반/역사
스윙 - 그해 우리의 헛 방망이질
작가 : 톰과제리2
작품등록일 : 2018.11.19

1990년 서울의 산동네, 이화동을 배경으로 한 성장 소설.
화가인 엄마는 이혼 후 미국으로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이민을 갔고,
아빠는 새로 결혼한 여자와 강남 아파트에서 단란하게 살고 있다.
할머니의 미싱 일을 도우며 살던 단비가 아빠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된다.
그러나 위선적인 아빠와 새엄마에게 염증을 느끼고
학교에서 도둑 누명을 쓴 절친, 민희와 학교를 탈출하여
친엄마의 친척들이 살고 있는 여수로 떠난다.
그러나 마주하게 된 진실은 단비가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민희는 실제로 지갑을 훔쳤고 위선적이기만 한 아빠에게도 하나의 진실은 있었다....

 
17. 보는 이 없이 능소화는 지고
작성일 : 18-11-19 11:04     조회 : 288     추천 : 0     분량 : 4065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17. 보는 이 없이 능소화는 지고

 

  다음날, 단비네 반 민희의 자리는 하루 종일 비어있었다. 단비는 오전 수업만 받고 오후에 부터는 사층 상담실 책상에 앉아서 반성문을 썼다. 그 다음날은 수업은 듣고 방과후 두 시간 동안 반성문을 썼다. 그렇게 일주일 간 '근신'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민희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 사이에서 이런 저런 말들이 떠돌았지만 단비는 아이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여수에서 돌아온 다음 날부터 방과후에 귀가하는 길에 단비는 일부러 민희네 가게 쪽으로 둘러서 가보았는데 가게 문이 닫혀 있었다. 단비는 당황스러웠지만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단비의 근신 처분이 끝나갈 무렵, 단비가 방과 후에 민희네 가게 앞을 지나 걸어가고 있었다. 가게를 보니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간판을 뜯는 것이 보였다. 단비의 마음 한 켠이 '쿵' 내려 앉았다.

  그 때 기다렸다는 듯이 가게 근처에 있던 민희가 불쑥 단비 앞에 나타났다.

 

  "민희야! 어떻게 지냈어?"

  “나 전학 가.”

  “..... 그럼 그 사람은?”

  “번거롭잖아.”

  “니가 왜 가야 하는데? 왜 어른들의 일은 다 이렇게 거꾸로냐고?”

 

  단비는 눈물을 참으려 하니 목이 메어왔고 가슴이 답답했다. 민희는 그런 단비를 아무렇지 않다는 듯 싱긋 웃으며 보고 있었다.

 

  “엄마가 나중에 알게 돼서... 엄마가 결정한 거야. 다 끝났어."

  "어디로 가는데?"

  "경기도."

  "그렇게 멀리? 가게만 가는 거야, 집도 가는 거야?"

  "당장 가게만 옮기는데 한 달 후엔 집도 옮길 수 있을 거야."

  "...."

  "버스 타면 한 시간도 안 걸린데. 이사하면 전화 걸게.."

 

  그렇게 길바닥에서 단비는 민희와 내일 만날 사람처럼 헤어졌다. 그리고 한 동안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얼마 후, 날씨가 좋은 가을 날이었다. 단비는 민희가 전학을 간 이후에도 아빠의 집에서 돌아가지 않고 김 여사의 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단비는 방과 후에 귀가하느라 김 여사 집 앞 응달진 골목층계를 올라갔다. 골목은 여느 때처럼 고양이 발자국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했다. 김 여사 집 앞에 도착하자 공기 중에 감도는 꽃향기를 맡을 수가 있었다. 살짝 눈을 감으니 매혹적인 향기는 더욱 짙어져서 비단결같이 부드럽고 포근한 이불 위를 뒹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억 속에 능소화 향기가 저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단비는 능소화 향기라고 생각했다. 여름 꽃이라 서늘하면 곧장 꽃이 진다고 김 여사가 말하곤 했었는데, 왜 지금 능소화 향기가 단비의 코를 간질이는 지 알 수 없었다. 눈을 뜨고 다시 보니 지붕엔 억세게 자란 넝쿨만이 무성했고 때가 때인지라 꽃이 보이질 않았다.

  단비는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곧 잊어버렸다 그리고, 웬 일인지 살짝 열려 있는 대문을 밀어 열고 마당으로 들어갔다. 이 때 쯤이면 김 여사는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마루에 나와 정물처럼 앉아서 수돗가의 화분 위의 담장을 면벽 수도하는 사람처럼 들여다보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마루에는 아무도 없었고 댓돌엔 김 여사의 신발이 있었다. 집은 어두웠고 고요했다. 단비는 김 여사를 불러 보았다.

 

  “할머니! 할머니!”

 

  안방에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단비가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낮잠을 잘 때처럼 평상복에 얇은 이불만 덮은 채 옆으로 누워 있는 김 여사가 눈에 띄었다. 단비는 안도의 한 숨이 나왔다. 김 여사는 그런 식으로 가끔 낮잠을 자곤 했었다. 그래서 안방에서 나와 자신의 방 쪽으로 가려는데 거실 구석에 놓여 있는 과일이 보였다. 과일은 먹기 좋게 이미 깎여진 상태로 놓여 있었다. 단비는 배가 고파서 일단 가방을 마루 구석에 던져 놓고 과일을 베어 먹기 시작했다. 그해 늦여름이 덥고 가물어서 그런지 과일은 유난히 맛이 좋았다.

  그런데 단비는 먹는데 열중한 나머지 아무 생각이 없다가 문득 자신이 과일을 씹어 먹는 소리가 끔찍해서 놀랐다. 마루는 고요한 나머지 과일을 으적으적 씹어 먹는 소리조차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 든 단비는 얼른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김 여사는 조금도 바뀌지 않은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너무나 그대로여서 순간 단비는 소름이 돋았다. 단비가 다가가서 할머니의 어깨를 살며시 흔들어 깨울 때, 어깨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바짝 마른 땔감처럼 굳은 상체 전체가 뻣뻣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단비는 김 여사의 일그러진 채 굳어진 얼굴을 보고 말았다. 김 여사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표정이었다. 단비는 놀랐지만 비명이 새어나오지는 않았다. 조용히 이불을 끌어당겨 덮을 뿐이었다. 김 점순 여사다운 작별이었다.

  동네에 곧 김 여사 소식이 퍼졌다. 골목 아래 구멍가게 앞에 모여 있던 나이든 이들이 한마디씩 했다.

 

  "나도 그 할머니처럼 가야 할텐에. 무슨 공덕을 쌓았길래 자다가 그렇게 갔나..."

  "누가 아니래요. 호상이야."

 

  그러나 십 년이 넘도록 김 여사가 부탁한 물건들을 갖다주던 구멍가게 여자는 망연한 자실한 얼굴을 한 채 아무 소리를 못했다. 그러다가 나이든 이들이 흩어지자 혼잣말을 했다.

 

  "호상이긴 하쥬. 그런데 그 양반 불쌍했시유."

 

  혼자 남은 단비는 장례식이 끝난 후에, 동찬의 집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거실 벽에 걸린 가족사진 속의 자신의 모습은 어색하다고 생각했고, 새엄마, 윤숙과의 사이도 변한 것은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그곳 말고는 갈 데가 없었기 때문에 동찬의 아파트는 온전히 단비의 집이 되었다.

 

  삼학년 이학기가 끝나갈 즈음이었다. 단비는 운동장에서 영경이와 우연히 마주쳤고, 영경이한테서 말로만 떠돌던 재개발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산 전체를 짓누르던 시영아파트는 물론 김 여사 집이 있던 골목에 살던 사람들도 모두 이사 나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영경이네 집 옆길은 끈으로 아예 출입을 막아두고 있다고도 했다.

  단비는 영경이에게 동네 소식을 물었다.

 

  "후즐근한 집들 밀어버리고 뭐가 들어선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엔 너무 가파른데 빌라촌이려나...."

  "땡! 아무 것도 안 들어선데."

  "그럼 왜 동네는 부스는 건데?"

  "복원을 한데. 산꼭대기에 성곽만 있던 옛날처럼."

  "뭔 소리지?"

  "나도 모르겠어."

 

  단비와 영경이는 '복원'이라는 말을 듣고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주위에 그런 선례가 없다 보니, 집들을 모두 없애 버리고 그 땅을 다시 집이 없던 시절로 되돌리는 일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단비는 영경이의 말을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릴 뿐이었다.

  그래도 골목과 집들이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김 여사 집을 휘감고 하늘을 향해 뻗어 있던 능소화 넝쿨이었다. 그 능소화 넝쿨을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니 섭섭했다. 그런데 이제는 능소화도 그 조용한 골목도, 모두 과거로 사라질 뿐이었다. 그렇게 김 여사와 관계된 모든 것들이 사라져갔다. 단비가 그 동네에 갈 일은 없었다.

 

  그 즈음이었. 단비는 동찬과 단 둘이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을 일이 있었다. 그 날 말없이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동찬이 단비에게 물어왔다.

 

  "할머니, 마지막 순간을 보았니?"

 

  동찬은 자신의 어머니, 김 여사가 죽은 날, 하필 일본에 출장을 가있어서 집안 어른들과 의사가 김 여사를 간단하게 수습한 다음 밤늦게 도착을 했었다. 또 장례 기간 내내 정신없이 일 처리를 하느라 정작 단비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마지막을 봤다고는 말 할 수 없..... 이미..... 하지만 할머니 낮잠 홑이불은 덮은 채 이렆게 모로 누워 계셨었어요. 딱 평소 모습이고, 이불이 하나도 구겨지지 않았었어요. 주무시다가 숨을 거두신거에요. 더 이상 편하게 가실 수 없었을 거에요."

 

  단비의 말을 듣고 있던 동찬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아빠, 능소화 기억 나세요? 할머니 집, 지붕까지 자라서 꽃이 폈었잖아요."

  "응."

  "그 꽃이 한꺼번에 막 필 때 보면 우습지만 꼭 부적 같았어요. 우리 집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말라고 할머니가 붙여 놓은 것만 갔았다고요."

  "어린 애가 별스런 소리를 하는구나."

 

  동찬은 그 능소화는 단비의 엄마, 황주미가 집에서 나오기 전에 심은 것이라는 말은 단비에게 끝내 하지 못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8 18. 에필로그 - 완결 2018 / 11 / 19 268 0 2995   
17 17. 보는 이 없이 능소화는 지고 2018 / 11 / 19 289 0 4065   
16 16. 남쪽 나라에서의 반전 2018 / 11 / 19 289 0 17375   
15 15. 소방 호스를 타고 뛰쳐나온 펭귄 2018 / 11 / 19 278 0 10794   
14 14. 안개 속에서. 2018 / 11 / 19 257 0 2285   
13 13. 의문의 교사 2018 / 11 / 19 274 0 1259   
12 12. 새로운 사건의 발단 2018 / 11 / 19 276 0 8205   
11 11. 상식의 이면 2018 / 11 / 19 271 0 9340   
10 10. 추위를 싫어한 펭귄 2018 / 11 / 19 268 0 5485   
9 9. 민희네 비디오 2018 / 11 / 19 310 0 5507   
8 8. 지덕쳇! 괴상한 학교 2018 / 11 / 19 291 0 14838   
7 7. 강남 아파트 2018 / 11 / 19 269 0 5352   
6 6. 떠난 다는 것은.... 2018 / 11 / 19 259 0 2291   
5 5. 이런 것도 형벌일까 2018 / 11 / 19 297 0 9491   
4 4. 천생연분 – 찌질남과 악녀 2018 / 11 / 19 269 0 15980   
3 3. '미술'이라는 금기어 2018 / 11 / 19 254 0 12912   
2 2. 능소화 넝쿨에 휘감긴 집 2018 / 11 / 19 278 0 6381   
1 1. 미싱 소리가 들리던 동네 2018 / 11 / 19 429 0 674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대포여신 서현금
톰과제리2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