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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스윙 - 그해 우리의 헛 방망이질
작가 : 톰과제리2
작품등록일 : 2018.11.19

1990년 서울의 산동네, 이화동을 배경으로 한 성장 소설.
화가인 엄마는 이혼 후 미국으로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이민을 갔고,
아빠는 새로 결혼한 여자와 강남 아파트에서 단란하게 살고 있다.
할머니의 미싱 일을 도우며 살던 단비가 아빠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된다.
그러나 위선적인 아빠와 새엄마에게 염증을 느끼고
학교에서 도둑 누명을 쓴 절친, 민희와 학교를 탈출하여
친엄마의 친척들이 살고 있는 여수로 떠난다.
그러나 마주하게 된 진실은 단비가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민희는 실제로 지갑을 훔쳤고 위선적이기만 한 아빠에게도 하나의 진실은 있었다....

 
15. 소방 호스를 타고 뛰쳐나온 펭귄
작성일 : 18-11-19 11:02     조회 : 276     추천 : 0     분량 : 10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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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소방 호스를 타고 뛰쳐나온 펭귄

 

  여름이 끝나고 평온한 이 학년 이 학기가 시작되었다. 단비는 여름 방학 때와 다름없이 공부든 만화든 흥미를 붙이지 못했다. 자신이 부유식물처럼 떠다니듯 학교를 다니는 것처럼 느꼈다. 단비의 눈에 민희도 마찬가지였다. 민희는 햄버거 가게 일은 누군가에 넘기고 등교를 했는데,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였고 물과 기름처럼 다른 사람들과 섞이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단비는 민희가 있고 특별활동이 있어서 학교에 다닐만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단비가 교무실 복도를 지나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알림판에 '동문회 장학생 모집' 공고가 붙어 있었는데, 자격 요건이 평균 칠십 점 이상이었고 담임의 추천을 받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순간 단비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빨리 돈을 모아 미국에 가고 싶다는 결심이 머리에 떠올랐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교무실에 들어가 보니 강기중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었다.

 

  "동문회 장학생 모집에 지원하려 왔는데요."

  "오단비 니가?"

  "칠 십 점 넘고 담임선생님한테서 추천 받으면 된다고 해서...."

  "얌마. 부끄러운 줄 알아."

  "네?"

  "니네 아버지가 좋은 회사에 근무하는데 염치없이 장학금 타먹겠다고 나서면 되겠어? 어려운 친구를 생각해야지."

  "그게...."

 

  단비는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창피한 나머지 얼굴이 벌개져서 교무실에서 단비는 가만히 있었으면 아무 일 없는 것을 공연히 나섰다가 경멸이라는 구정물을 뒤집어 쓴 꼴이었다. 담임, 강기중의 지적은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강기중의 말이 틀린 곳이 없어서 단비는 더욱 기분이 고약스럽기만 했다.

  단비는 교실로 돌아와서 자리에 앉았지만 한 번 뒤집어진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를 않았다. 장학금 좀 받아보겠다고 담임 찾아 간 것이 그렇게 면박을 받을 일인지 스스로에게 계속 묻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강기중이야말로 학생이 어리석은 말을 좀 했다고 가차 없이 파렴치한으로 몰아붙이는 매정한 사람일 뿐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강기중은 종례 시간에 짧은 연설까지 했는데 이것이 단비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 되었다.

 

  "장학금이라는 것은 성적이 아주 뛰어나거나 형편이 어렵다고 인정받을 때 받을 수 있는 거다. 받고 싶다고 아무 구실거리나 찾아 나서는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짓이다. 그러니까 나대지 말고 조용히 자기 할 일만 하면 된다. 쓸데없이 나서면 짓밟혀도 싼 것이다. "

 

  반 아이들은 옳은 말이긴 한데 강기중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 해서 멀뚱멀뚱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종례시간 내내 단비는 얼굴을 들지 못했다.

  강기중이 할 말을 끝내고 교실을 나갔다. 단비는 이 대수롭지 않은 일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억울한 심정을 이해받고 싶었지만, 이 일을 친구들에게 설명을 해서 이해시킬 자신이 없었다. 민희마저도 이해시킬 수 있을지 확신이 가질 않았다. 단비는 억울하지만 하소연 자체가 불가능하니 그냥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단비는 그 날 강기중에 대한 기괴한 인상을 오래 또렷이 기억할 것 만 같았다.

  그날 교실에서 혼자 늦게 빠져나가며 단비는 중얼거렸다.

 

  "이제 배철권이랑 있었던 일은 기억도 안 나네."

 

  강기중이 남긴 인상이 너무 강한 나머지 이제 배철권이 남긴 부끄러움의 기억은 아득한 옛일처럼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없는 것 같았다.

 

  고 이, 이 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고 삼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 진로에 대해서 생각 좀 하라는 선생님들의 잔소리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몇몇 아이들은 슬슬 압박을 느끼는지 동네 독서실을 다니기 시작한다고 했다.

  한편 중간고사 성적 발표가 있었는데 단비네 반이 이 학년 전체 반평균에서 일등을 했고 반장도 성적이 많이 올랐는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떡집 딸인 반장은 학급회의에서 백설기 떡을 해먹자는 제안을 했다. 쌀만 있으면 떡은 그냥 부모님이 해주시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찬성을 해서, 불우이웃 성금을 걷으면서 라면 한 봉지 이상의 쌀도 반장한테 같이 내기로 했다.

 

  그날은 가을 날씨치고는 후덥지근해서 늦여름과 같은 날이었다. 점심시간 후의 체육 시간이 끝나고 육 교시 국어 수업만 들으면 그날 학교 수업은 끝이었다. 이 틀 전부터 불우이웃 성금과 쌀을 걷었고 그 날이 마지막 날이었다. 체육시간이다 보니 교실은 비어 있었고, 칠판 구석엔 반장한테 돈과 쌀을 내라는 안내가 씌어져 있었다.

 

  그 날 운동장은 만원이었다. 운동장의 가운데는 일 학년 어떤 반이 체육 수업하느라 차지하고 있었다. 단비네 반 아이들은 운동장 구석에 있는 모래밭과 철봉 주위에서 매달리기나 달리기 같은 체력장 종목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른 아이들이 달리기를 할 때, 운동장 끝 그늘에 가을햇빛을 피해 앉아 땅따먹기를 하거나 삼삼오오 수다를 떨며 잠시 쉴 수 있었다. 그런데 반장이 철봉에서 매달리기 연습을 하고 내려오다가 발목이 삐끗하는 바람에 선생님에게 양호실에 간다 하고 일어섰다. 절룩이면서 걷는 것을 보니 큰 부상은 아닌 듯 보였다. 그리고 반장을 늘 따라다니는 하녀 같은 지애도 부축을 해야 한다면서 반장을 따라나섰다. 단비는 지애라는 애를 평소에 좋아하지 않았다.

 

  단비와 아이들은 다시 이 십분 정도 남은 수업시간에 조용히 수업에 임했다. 단비는 자신의 차례가 다가와서 단거리 달리기를 뛴 다음 철봉 옆 응달에 앉아서 쉬었다. 여전히 다른 애들은 자신의 차례가 오면 먼지를 폴폴 일으키며 뛰고 있었다. 단비는 운동장 가운데에서 소프트볼을 하는 일 학년 수업을 자신도 모르게 신기한 얼굴로 관람하게 되었다. 단비는 체육 시간에 소프트볼을 한 적이 없었다. 일학년 애들은 분명 열심히 연습을 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제대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어떤 체격 좋은 아이가 타석에 들어서서 초구를 노려 배트를 힘껏 휘둘렀다. 이전의 아이들과는 다른 수준으로 공이 뻗어 나갔다. 야구로 말하면 맞자마자 공은 외야를 날고 있었고 아마도 홈런 쯤 되었을 거 같았다.

  단비는 운동장 바닥에 앉아서 공이 날아가는 궤적이 그려지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단비가 바다를 생각한 것은 그때였다. 파란 하늘을 보면서 단비는 중학교 미술시간에 그렸던 바다를 생각했다. 단비는 바다에 가보고 싶어 졌다. 이제는 스스로 찾아갈 수 있을 거 같았다. 지난겨울 민희와 어느 카페에서 같이 바다를 가자고 약속한 것도 기억이 났다. 단비는 민희를 두리번거리고 찾았다. 그런데 민희는 달리기를 하는 아이들 속에서도, 그늘에서 떠들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수업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인원 점검을 할 때 반장을 비롯해서 몇 명의 아이들이 열외로 빠져 있었다. 체육 선생님은 미리 알고 있었는지 이상하게 별 말이 없었다. 체육시간이 끝날 무렵 운동장은 소란스러웠다. 운동장 한가운데서 소프트 시합을 하던 일 학년 애들이 운동장비가 들어 있는 궤짝을 체육관으로 옮기느라 무질서하게 움직였다. 별관에 음악실과 가사 실습이 있었던 애들이 운동장에 삼 분 정도 미리 쏟아져 나와서 떠들고 있었다. 단비도 얼떨결에 그런 소란 속에서 선생님의 '해산' 소리에 맞춰서 수돗가를 향해 갔다. 그런데 체육 시간이 끝나자 조금 전까지 안 보이던 민희가 어느새 아이들과 함께 수돗가에서 손을 씻고 있었다. 정신 없이 소란스럽고 이상한 오후였다.

 

  교실에 돌아온 아이들은 모두 옷을 갈아입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단비가 뭔가 진짜 이상한 기운을 느낀 것은 교실에 들어와 앉았을 때였다. 창밖으로 기역자로 꺽여진 건물 건너편 복도가 보였는데 지애와 반장 그리고 학생주임과 담임 그리고 사회 선생님이 이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굳은 얼굴에서 분명 그 날의 더운 날씨와는 반대로 차갑게 얼어붙은 기운이 느껴졌다. 단비는 인상이 찌푸려졌고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곧 학생주임 일행들이 반 뒷문에 도착했다. 학생 주임 옆으로는 지애가 음울한 얼굴로 단비네 반 뒤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단비는 왜 쟤가 학생주임 선생님 옆에 서있는지 의문스러웠고 못 마땅했다. 갑자기 학생 주임 선생님이 눈을 부릅뜨고 뒤쪽에서 소리를 질렀다.

 

  “당장 행동 그만! 전원, 교실에서 복도로 다 나간다. 소지품은 일체 자리에 둔다.”

 

  아이들은 모두 놀랐지만 하던 일을 멈추고 교실 밖 복도로 모였다.

  맨 손으로 복도에 나온 아이들은 모두 복도 끝에 서 있어야 했고, 아이들 앞에는 하얀 분필로 선을 그어 그 위로는 못 넘어 오도록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반장이 걷어 두었던 불우이웃성금 겸 학급비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귓속말로 전했다. 돈을 담아 주던 녹색 주머니가 감쪽같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학생주임이 지애한테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체육 수업을 하다가 양호실에 들른 반장은 교실에 두고 왔던 돈 생각이 났다고 했다.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어 지애에게 교실에서 돈이 담긴 주머니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지애가 반장의 부탁을 받고 교실로 왔을 때, 민희가 반장의 책상 쪽에 서 있다가 교실에서 나오는 것을 봤다고 했다. 그 순간은 그냥 보고 넘겼는데 뒤늦게 지애가 교실에 들어가 반장 책상을 뒤져보니 돈 주머니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반장과 함께 얼른 교무실에 가서 담임에게 말을 했다고 했다.

 

  교실에서는 네 명의 선생님이 동원되어 단비네 반 구석구석은 물론 옆 반 교실, 학생들의 소지품까지 뒤지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의 녹색 개구리 문양 주머니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최 민희 앞으로 나와!”

 

  학생주임 선생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일순간 곁눈질로 백 수십 개 쯤의 눈동자가 민희를 향해 쏠렸다. 민희는 그런 눈동자들 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얼굴로 하얀 분필선을 넘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나 민희의 그런 건방진 분위기는 학생주임 선생님이 다짜고짜 민희의 따귀를 때리면서 단번에 꺾이고 말았다.

 

  “너 체육 시간, 중간에 들어왔었지?

  “.....”

  “들어와서 뭐 했어?”

 

  단비 마음속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남 뒤따라 다니는 것이나 좋아하는 지애 같은 애의 말만 믿고 학생주임은 한 학생을 범인으로 몰고 있었다. 그 아이는 다름 아닌 민희였고, 단비는 그 순간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지갑 아직 안 나왔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몰아가는 건 순서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너 뭐야? 왜 남에 일에 참견이야?

  “저는.....”

 

  단비가 몇 마디 덧붙이려고 입술을 달싹이는데 앞줄에 있던 아이들 중 누군가가 '야, 나서지마'라고 속삭이며 단비의 팔뚝을 잡아끌었다. 단비가 아이들 틈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학생 주임은 ‘사건이 복잡하고 아직 할 일이 많아서 봐준다’라는 표정을 단비에게 지어 보이다가 다시 민희로 시선을 돌렸다.

 

  “최 민희, 넌 교무실로 나랑 가고. 나머진 교실로 들어간다.”

 

  단비를 포함한 아이들은 우르르 교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고, 이십 분 남은 국어 수업은 하는 둥 마는 둥 끝났다. 강기중은 수업에 연 이어 종례를 했는데 웬일로 연설은 안 하고 전달사항만 지시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시계만 쳐다보고 있다가 담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덜커덩 의자소리를 냈다. 그렇게 그날 모든 일정은 끝이 났다.

 

  아이들이 떠난 교실에서 단비는 주인 없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민희의 가방 옆에 서 있었다. 십 분 쯤 그러고 있는데 교무실 쪽에서 오는 애가 전해주기를 민희가 교무실이 아니라 사 층 상담실로 가서 감금 된 채 반성문을 쓰고 있다고 했다.

  교무실 구석에 앉혀놓고 감시하면서 야단치면 편할 텐데 왜 그런 외딴 곳으로 민희를 데리고 갔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상담실은 학생들의 교실이 주로 있는 학생관 사층에 있었는데, 상담실이 있기에는 매우 생뚱맞은 자리였다. 교무실과 멀리 떨어진 자리였고 미술실 및 과학실험실 같은 특별실이 옆에 있어서 학생들이 잘 안 가는 으스스한 곳이었다. 또 건물이 기억자로 꺾어지며 남는 자투리 공간에 만들어진 방이라서 쪽방이라 해도 될 정도로 작은 공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기억나는 것은 그 방은 스카우트가 쓰던 방이었는데, 스카우트 선배들이 그 방에서 벽이 그을릴 정도의 불을 낸 적이 있어서 학교에서 압수한 후 '상담실'이라는 푯말을 달아놓은 공간이었다. 그런 방에 애를 둔 다음에 밖에서 잠갔다니 단비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단비는 민희의 가방을 챙겨서 사 층으로 올라가봤다. 아이들 말대로 상담실 문은 바깥쪽에서 열쇠로 잠겨 있었다. 단비가 노크를 해봤다.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때 다른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좀 더 세게 문을 두드리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아래층에 가서 미술실 반 아이가 있는지 찾아 봤는데 마침 있었다. 단비는 대충 둘러대고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그리고 다시 사 층으로 와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미술실의 문고리를 살짝 돌렸더니 문이 열렸다. 단비는 미술실 안에 들어가서 방끝에 있는 창문을 열었다. 구십도 각도 맞은편으로 상담실 창문이 보였다. 창문 안으로 언뜻 민희가 보이는 것 같았다. 단비는 미술실 구석에 있던 막대기를 들고 허공 건너의 상담실 창문을 톡톡 두들겼다. 곧바로 민희가 창문을 열고 반응을 보였다.

 

  “오단비!”

 

  단비를 보고 반가와 하는 민희를 향해 단비가 민희 가방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허공을 사이에 두고 단비가 말을 시작했다.

 

  “괜찮아?” “오줌마려. 바깥으로 문 담가 놓고 아무도 안 와.

  “누가 널 여기다 가둬 둔 거야? 학주야 담임이야?”

  “몰라. 정학 때리겠데.”

  “말도 안 돼."

  "정학 때리면 자퇴할 꺼라고 맞받아쳤어."

 

  민희는 여유 있어 보였다.

 

  "근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돼?”

  “몰라. 지들 마음이겠지.”

 

  민희가 운동장 쪽을 보다가 구석에서 마주 서서 이야기하는 손가락만한 학생주임과 강기중을 발견했다. 단비도 민희가 보는 쪽을 보았다. 운동장을 잠시 내려다 보던 민희의 얼굴엔 가소롭다는 미소가 번졌다가 사라졌다. 단비와 민희의 눈빛이 사층 건물 허공에서 부딪혔다.

  민희가 의자를 끌고 와서 딛고 일어선 다음 창문 밖, 허공으로 몸을 내밀었다. 민희는 허공을 건너서 강기중과 학생주임이 만들어 놓은 감금에서 빠져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단비는 그런 민희를 본 순간 너무 놀랐지만 이미 자신의 몸을 창 쪽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난간을 손으로 짚어 보면서 민희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민희가 창틀 난간을 잡고 한 발을 움직이고 다음에 팔을 미술실 창 쪽으로 움직였다.

 

  운동장에 있던 학생주임과 강기중은 이상한 기분이 들어 건물 쪽을 보다가 두 눈을 의심하게 되는 광경을 보고 말았다. 자신들이 가둬두었던 오민희가 위험천만하게 창문 난간에 기대어 미술실로 건너가고 있는 것이었다. 학생주임과 강기중은 혹시나 소리를 내거나 움직이면 벽을 건너는 아이에게 영향을 줄까봐 ‘야’소리 한 번 못 지르고 숨죽이며 그 광경을 보았다.

 

  단비는 민희의 팔이 미술실 쪽으로 오자 얼른 잡았다. 그렇게 단비가 민희를 도와 민희는 미술실로 건너왔다. 미술실 창에서 미술실 바닥으로 쾅 뛰어 내리자 순간 단비와 민희의 입에서 안도의 탄성이 새어 나왔다. 민희 뒤쪽으로는 이제 다시 건널 수 없는 허공이 떠있었다. 그 순간 단비에게도 미술실과 상담실 사이의 허공은 다시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버렸다. 이제부터는 떠내려가는 강물에 몸을 맡기듯이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다고 단비는 생각했다.

  단비와 민희는 가방을 들고 삼 층까지 우당탕 뛰어 내려갔다.

 

  "오민희! 너 거기 안 서!"

 

  그런데 건물 일층에서부터 학생 주임의 숨이 넘어갈 듯한 호통이 들렸다. 두 남자의 발자국 소리도 들리는 것만 같았다. 단비와 민희는 층계 아래를 내려다 볼 수가 없을 만큼 겁에 질려 있었다.

  민희가 할 수 없이 북쪽 창문으로 다가 갔다. 창문 옆 벽에는 소화전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쪽으로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단비도 민희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챘다. 단비와 민희는 한 쪽 끝은 벽에 연결되어 있는 소화전의 호스 더미를 빼들고 북쪽 복도 창문 밖으로 던졌다. 북쪽 창문 아래는 학교 건물 뒤쪽이라서 담장과 건물 사이는 응달진 길이었다. 특히 이 미터 쯤 되는 높은 학교 담장엔 유리병을 깨서 시멘트로 발라 놓아서 위협적으로 보이는 곳이기도 했다. 교사들한테 쫓기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지 삼 층이라는 높이가 그렇게 높다는 느낌은 주지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지만 민희가 먼저 호스를 타고 내려갔다. 그 다음 단비도 호스를 타고 내려갔다. 단비와 민희가 땅에 완전히 내려왔을 때, 학생주임과 강기중이 삼층까지 도달한 것이 보였다. 학생주임과 강기중은 호스를 타고 내려오지는 못하고 창가에서 손가락질하는 것이 보였다.

 

  단비와 민희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건물을 돌아 뛰기 시작했다. 운동장 담장을 따라서 교문을 향해 온힘을 다해 뛰었다. 교문 가까이에 갔을 때 소리가 들려 단비가 뒤를 돌아보니 학생 주임이 학생관 건물에서 뒤늦게 뛰어 나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전방엔 무슨 상황인지 몰라 수위실 창밖을 보면서 두리번거리는 수위 아저씨가 있었다. 단비와 민희는 그런 수위 아저씨를 가볍게 무시하고 순식간에 교문을 통과해 나왔다.

 

  교문을 빠져 나오는 순간의 통쾌한 일탈감이란 허공을 잠시 나는 기분이었다. 단비는 십 미터 뜸 되는 장대높이뛰기를 성공한 느낌이 들었다. 학교 밖으로 나온 단비와 민희의 얼굴 표정은 한껏 들떠 있었다.

 

  “기분 어때?”

  “최고!”

 

  단비와 민희는 뛰면서 소리쳤다. 두 사람은 길 건너 일본식 집들과 한옥, 술집들이 섞여 있는 골목 쪽으로 뛰었다. 골목의 미로 속으로 충분히 들어왔다고 느껴질 때쯤 단비와 민희는 거의 탈진한 상태가 되어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교복은 구겨져 있었고 얼굴과 손은 먼지와 땀에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선생들을 따돌리고 왔다는 쾌감이 온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불과 삼 십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숨을 돌리고 나자 단비와 민희는 큰 거리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비와 민희는 땀이 식기가 무섭게 방금 전과는 다른 망막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나야 원래 망친 몸이고. 나 따라 온 거 후회 안 해?"

  "아까는 어쩔 수가 없었잖아."

  "이제 어떻게 하지? 다시 학교에 가면 선생들이 벼르고 있을 텐데. 단비, 넌 지금이라도 학교에 돌아가서 선생님들한테 비는 게 낫지 않겠냐?"

  "...."

 

  단비는 길거리 가게 유리창에 비친 민희와 자신의 모습을 흘끗 보았다. 지쳐 보이고 꾀죄죄한 꼴의 여학생 두 명이 걸어가고 있었다.

 

  "아까 체육 시간부터 한 생각이 있는데...."

  "뭐?"

  "바다 보러 가고 싶었어. 여수 바다."

  "그건..... 거긴 왜?”

  "가보고 싶었어. 찾아 보고 싶은 집이 있었거든."

  "서울역에 가면 밤새 가는 기차가 있을 거야."

  "진짜?"

 

  심야로 갔다 올 생각을 못했던 단비의 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가자.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단비는 민희의 손목을 잡아끌고 근처 은행을 향해 갔다.

  단비는 오랫동안 이런 도망을 준비해온 사람처럼 가방에서 통장과 도장을 꺼내들었다. 김 여사를 대신해 동찬이 보낸 돈을 뽑아 쓸 때 쓰는 통장이었다. 단비는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 김 여사를 대신하여 은행 거래를 해왔었다. 마감시간에 임박에 가까스로 은행에 들어간 단비는 통장에 남아 있던 십 만원에 가까운 돈을 찾았다. 단비는 은행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가면서 민희에게 엄마, 황주미 이야기를 했다. 민희도 단비가 새 엄마랑 같이 살고 있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집안 분위기같은 자세한 것은 알지 못했었다. 민희는 단비가 하는 말을 조용히 들어주었다.

 

  단비와 민희는 서울역으로 가서 성인표로 여수행 야간열차 표를 끊었다. 열한 시 오십 분에 서울역을 떠나 다음날 새벽 여섯시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열차였다. 단비와 민희는 표를 끊고 나서, 다시 차를 타고 민희가 여름 방학 동안 일했던 햄버거 가게를 찾아갔다. 민희가 아는 언니가 그 가게에서 여전히 일하고 있었다. 단비랑 민희는 저녁으로 햄버거를 먹었고, 다 먹은 다음 민희는 언니에게 뭔가를 부탁했다. 그 언니는 가게 창고에서 다른 아르바이트 애들이 놓고 갔다는 티셔츠와 잠바를 갖고 나와 단비와 민희에게 주었다. 입던 옷이라 좀 찝찝했지만 가릴 처지가 아니라서 단비와 민희는 교복 상의를 벗고 셔츠와 잠바를 입었다. 그렇게 남의 옷을 입으니 단비나 민희나 행색이 껄렁하고 모자란 애들처럼 보였다.

 

  저녁도 먹었고 옷도 사복을 입고 나니 좀 전까지는 없었던 여유와 호기가 생기는 것 같았다. 단비는 이제 기차 시간까지 놀기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민희가 가게 카운터로 가서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전화 왔다구? 학주? 내가 나중에 말할게. 나는 괜찮아.... 하루만.... 걱정 하지말고.”

 

  학교에서 민희네 가게에 전화를 한 것 같았다. 단비는 그렇다면 동찬의 아파트로도 전화가 갔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단비는 윤숙이 전화에 대고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민희가 통화하면서 집에 못 들어간다고 이야기 하자 민희 어머니가 뭐라 소리 지르는 소리가 단비에게까지 들려왔다. 그러나 민희는 당황하지 않고 엄마를 구슬렸고, 민희네 엄마는 민희의 일방적 통보를 들어주다가 전화를 끊었다.

 

  "너도 해야 하지 않아?"

  "조금 있다가 공중전화에서 할게."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야 윤숙이 집에서 받았겠지만, 지금 쯤 동찬이 학교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고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민희네 집에도 연락이 될 것이었고, 그렇게 된다면 단비와 민희가 같이 있고 내일 들어갈 것이라고 민희가 민희네 엄마에게 한 말이 동찬에게도 전해질 것이었다. 단비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이 집에 전화를 걸지 않는 것에 대한 마음의 짐을 덜었다.

  단비와 민희는 햄버거 가게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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