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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스윙 - 그해 우리의 헛 방망이질
작가 : 톰과제리2
작품등록일 : 2018.11.19

1990년 서울의 산동네, 이화동을 배경으로 한 성장 소설.
화가인 엄마는 이혼 후 미국으로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이민을 갔고,
아빠는 새로 결혼한 여자와 강남 아파트에서 단란하게 살고 있다.
할머니의 미싱 일을 도우며 살던 단비가 아빠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된다.
그러나 위선적인 아빠와 새엄마에게 염증을 느끼고
학교에서 도둑 누명을 쓴 절친, 민희와 학교를 탈출하여
친엄마의 친척들이 살고 있는 여수로 떠난다.
그러나 마주하게 된 진실은 단비가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민희는 실제로 지갑을 훔쳤고 위선적이기만 한 아빠에게도 하나의 진실은 있었다....

 
10. 추위를 싫어한 펭귄
작성일 : 18-11-19 10:54     조회 : 266     추천 : 0     분량 : 5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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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추위를 싫어한 펭귄

 

  B여고의 가을, 이 학기는 학생들이 모두 참가하는 합창제와 특별활동반에 따로 가입한 애들 위주로 하는 축제가 있었고, 이 두 행사가 끝나고 기말고사만 치르면 겨울 방학이었다. 합창제는 봄에 있는 체육대회에 비하면 그렇게 열성적으로 준비하는 대회는 아니었고, 특별활동반에 가입 안 한 학생들은 대개 조용히 이 학기를 보냈다. 단비는 가을 방송제 때에는 무대 배경을 꾸미는 일을 하느라 바쁘게 한 달을 지냈고 방송제가 끝난 다음에는 정식 방송반원이 되었다.

  비디오 가게에서 만난 이후 단비와 민희는 학교에서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쉬는 시간 같은 때에 교실에서 민희와 단비가 같이 말을 하고 노는 일은 많지 않았다. 방과 후에 텅빈 교실이나 운동장 구석에서 두 사람은 같이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그렇게 만날 때면 뭔가 일상을 벗어난 특별한 만남인 거 같아서 각별한 기분이 들었다. 단비에게 민희란 이름은 온통 처음 해보는 것들과 연관되어 있었다. 커피, 영화, 잡지, 가수 콘서트....

  기말고사가 끝나고 살짝 진눈깨비가 날리는 토요일이었다. 단비와 민희는 사복차림으로 학교에서 걸어서 삼 십분 정도 거리에 있는 극장을 찾아 갔다. 민희가 기말 고사 전에 영화잡지에서 오려서 라디오 방송국에 보낸 '들국화 오프닝 무대 초대 응모권'이 당첨되었다. '응모권'을 붙인 관제엽서 한 귀퉁이에 단비가 눈에 잘 띄도록 만화까지 그려주었으니 단비도 한 몫 한 셈이었다. 단비는 '들국화' 노래를 몰라서 테이프를 사서 방송실에서 혼자 들어보기까지 했다.

  그날 무대는 정식 콘서트가 아니라 영화사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앞서 열리는 오프닝 무대였다. 단비와 민희는 극성스럽게 사람들을 밀치고 들어가서 무대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지만, 공연은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 반이나 늦게 시작하는 바람에 거의 두 시간을 서서 사람들과 몸싸움을 하면서 기다려야 했다.

  결국 가수들이 무대에 올랐을 때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고, 거기다가 스피커 바로 옆에 있느라 고막이 찢어질듯 울리는 소리 때문에 귀를 막고 음악을 들어야만 했었다. 또 눈앞엔 장마철에 진흙 산길을 몇 킬로 행군을 하고 온 것 같은 락커의 워커만 보였지만 무대를 향해 밀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꼼짝 달싹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다섯 곡의 노래가 끝나고 극장에서 로비로 나왔을 때, 단비와 민희는 도적 떼가 지나간 마을의 백성 몰골로 극장 로비에 주저앉아 머리와 신발 끈을 고쳐 묶고 있었다. 단비는 손목 근육에 무리가 간 거 같았고 민희는 허리가 쑤신다고 했다. 그래도 단비와 민희는 마냥 재미있어서 쉴 새 없이 낄낄거렸다.

 

  민희와 단비는 극장을 나와서 근처 종로 거리를 다녔다. 민희와 단비는 '선물의 가게'에서 인형과 볼펜을 샀고, 두 사람은 계속 종로의 부산스러움을 벗어나기 위해 남산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특별히 목적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자동차와 사람들이 몰려다니지 않은 방향으로 간 것뿐이었다. 볼만한 건물이 있을 것 같은 길을 좇아 갔다.

  두 사람은 어느덧 인사동과 관공서 건물들이 있는 거리를 지나 나비 날개 짓 소리도 들릴 것 같은 북촌 골목을 헤매고 있었다. 당시 그 동네는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거리였고 구멍가게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가끔 고만고만한 한옥들이 모여 있는 골목 어귀에는 '개발 제한 철폐'라고 대충 갈겨 쓴 포스터가 보일 뿐이었다. 조금 큰 길에 나와야 한옥이 아닌 이 삼 층 정도 되는 현대식 건물도 눈에 띄고 사람 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비와 만희는 특별히 이야기를 하지 않고 다시 골목 쪽을 향해 걷기 시작할 때였다.

  젊은 두 남자가 불쑥 전봇대 뒤에서 튀어나와 단비와 민희의 길을 가로막고 말을 했다.

 

  "무슨 일로 오셨죠?"

 

  단비와 민희는 갑작스런 상황에 딱히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난처하기만 했다. 민희가 우물쭈물 대답을 했다.

 

  "학생인데 근처 학교에 다니고...."

 

  두 남자가 서롤 눈빛을 교환하며 민희와 단비 앞으로 더 다가서고 있었다. 단비의 눈에 한 남자의 손에 쥔 무전기가 보였다. 단비는 무서워 민희에게 소리를 쳤다.

 

  "뛰자!"

 

  그리고 민희와 단비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뛰고 또 뛰었다. 남자들이 민희와 단비를 쫓아오지도 않았음에도 단비와 민희는 뭐가 그렇게 두려웠는지 한참을 뛰어서 북촌 마을을 빠져나왔다. 단비와 민희는 버스가 다니는 길에 다다랐을 때에 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뒤따라 뛰어 오던 민희의 목 멘 소리가 단비를 세웠다.

 

  "야, 왤케 뛰는 거야?"

  "헉헉. 잡아 갈 꺼 같으니까...."

  "누가 보면 죄 진 줄 알겠다. 우리 죄 없어."

  "근데 그 남자들 뭐야?"

  "사복 경찰인가 전경인가 잖아....."

 

  단비가 조금 전에 본 남자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 남자들 말고도 골목 어귀에 서성이던 수상한 남자들이 더 있었던 것 같았다. 검은 양복을 입고 썬그라스를 쓴 사람은 뒤에 조용히 있었고, 단비와 민희에게 다가왔던 남자들은 짧은 머리에 캐주얼 옷차림이었지만 꼭 남에 옷을 빌려다 입은 것 같았다.

 

  "그런 사람들이 왜 거기에 있는 거야?"

  "청와대가 근처에 있잖아."

 

  단비는 뉴스에서 '청와대'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있었지만 그 정도로 가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 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어딘가 더 먼 곳에 있어야만 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어쨌거나 청와대가 그 주위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나니 뭔가 감이 잡히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그 동네엔 행인들이 없었던 거구나."

  "그래서 개발 제한 구역인거야. 딴 동네는 옛날 집들 다 부스고 신식 건물 짓고 그러는데, 거기 사는 사람들 진짜 속 터질 거야."

 

  민희가 어른처럼 말을 했다. 그 이상한 동네에 대한 이야기는 거기서 멈췄다. 단비와 민희는 걷다 보니 어느새 인사동 거리까지 나와 있었다. 짓눈깨비는 이미 두 세 시간 전에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회색빛이어서 낮도 밤도 아닌 오후였다. 사방은 혼탁한 연기 속에 있는 것 같았고 단비와 민희는 그 연기 속을 헤매고 다니고 있었다. 이상한 하루였다.

  민희가 단비를 이끌고 골목에 있는 어느 카페에 들어갔다. 추워서 어딘가 들어갈 데를 찾기는 했지만 카페에 들어갈 줄 몰랐던 단비는 당황했으나 민희가 이끄는 데로 가고 있었다.

 

  단비와 민희가 카페 안에 들어서자, 카페의 여주인은 두 사람, 그 중에서도 민희를 아래 위로 훑어보았다. 민희는 그런 시선을 무시한 채 '커피 두 잔을 주문하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에 카페 주인이 단비와 민희 쪽으로 다가와서 소형 뚝배기처럼 생긴 투박한 사기그릇을 탁자 위에 놓아 주었다. 단비는 그 그릇이 뭔지 몰라 신기한 듯 보다가 물 대접인가 싶어서 물병을 찾았다. 그날 선물의 가게에서 산 물건들을 뜯어 확인하던 민희가 단비가 하는 양을 보고 말을 했다.

 

  "재떨이잖아.”

  "아...."

 

  뜻밖에 단어를 들으니 단비는 무안했다.

 

  "여기 사장님 너무 하시네. 우리가 대학생들처럼 보이나?"

  "딴 고등 애들이 많이 피고 나갔다는 소리겠지."

  "아...."

  "담배는 안 펴 봤니?"

  "안 펴 봤어. 넌?"

  "중학교 때 입담배 좀 빨다가 집어 치웠어. 담배 아깝잖아."

  "잎담배?"

  "이파리가 아니라 입. 연기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만 머금었다가 뱉어 내는 거 있어. 졸라 무식하네."

  "히히."

 

  두 사람은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바깥을 보면서 한동안 커피만 마셨다. 그러다가 민희가 대뜸 입을 열었다.

 

  "방학 때 뭐 할 거니?

  "글쎄."

  "난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할 거야. 우리 가게에 손님으로 오는 삼학년 언니가 소개 시켜 주기로 했어."

 

  자신은 방송반을 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아는 선배 하나 없는데, 학교에서 맨 날 엎드려 있는 민희에게 아는 선배가 있다는 것이 단비는 신기했다.

 

  "니네 가게도 봐야 하지 않아?"

  "집 가게는 봐봤자 엄마가 돈을 안 주잖아."

  "방학 때만 일할 수 있어?"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아."

  "돈 벌면 뭐 할 건데?"

  "마이마이 살 거야. 옷도 좀 사고."

  "나도 같이 해도 될까?"

  "넌 아빠한테 잘 말하면 되지 않니?"

  "아빠가 안 주는 돈이 있어. 표값."

 

  단비는 민희가 무슨 표 값이 필요한지 물어봐주길 바랬으나 민희는 별 다른 말이 없어 단비가 설명을 했다.

 

  "여수행 기차표랑 미국행 비행기 표값."

  "아서라. 내가 괜한 이야기해서 애 버려놨네."

  "왜?"

  "미국 비행기 값이 얼마 하는지는 몰라도, 그 정도 벌려면 졸업하고 제대로 돈을 버는 게 더 빠를 거야."

 

  다시 두 사람은 따듯한 커피를 마시면서 창밖을 보고 앉아 있었다. 차가웠던 몸이 따듯해지자 나른해지고 있었다. 단비는 문득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가 떠올랐다.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삽화들만 생각하면 지금도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오르는 그림책이었다.

 

  "어렸을 때 봤던 동화책이 있어. 좀 이상한 펭귄이 주인공이었는데...."

  "어떻게 이상한데?"

  "남극이 자기 집인데 얼음과 추운 날씨가 너무 싫었던 거야. 그 펭귄은 늘 혼자 였어. 그러다가 북쪽에서 날아온 새들한테 북쪽엔 따듯한 열대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 거야."

  "열대로 가서 살기로 했구나!"

  "응. 마침 작은 빙산이 육지에서 쪼개져 나가는 것을 봤어. 펭귄은 기회는 이 때다 하고 빙산에 올라타고, 빙산을 배로 삼아 바다를 떠내려갔어. 그러다가 적도의 어느 섬에 도달한 거야. 그리고 거기서 그 펭귄은 혼자서 즐겁게 살았다는 이야기야."

  "그게 끝이니?"

  "응. 난 그 책의 삽화를 너무 좋아했어. 썬그라스를 낀 펭귄이 야자수에 걸린 해먹에 누워서 코코넛 주스를 먹고 있는 그림이야. 따듯하고 유쾌하잖아."

 

  단비는 이룰 수없는 꿈을 고백하는 사람처럼 열망이 가득 담긴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민희는 테이블 위에 커피잔에 시선을 두면서 툭 던지듯 말을 시작했다.

 

  "근데 그 이야기는 거기가 끝이 아니야. 내가 이어 나가볼까?"

  "어떻게?"

  "자연 다큐에서 봤는데, 진짜로 적도에 사는 펭귄 종이 있다는 거야. 아마 그 추위를 싫어하는 펭귄은 열대의 섬에서 혼자 살아야 하는 줄 알고 열대에 왔을 거야. 그리고는 혼자 바닷가를 산책했겠지. 그런데 열대 섬에서 살고 있던 또 다른 펭귄과 우연히 만나는 거야."

  "그래서?"

  "같이 친구가 되서 즐겁게 지냈겠지. 아마도."

  "반전도 있고, 재미있네."

 

  단비는 아주 잠깐 햇빛이 쏟아지는 남쪽의 바닷가, 야자수 그늘에 매달린 해먹에 민희와 나란히 앉아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를 보는 환상 속에 있었다.

  단비가 눈을 감았다 뜨니 자신와 민희는 카페의 탁자에 마주 앉아 있어고, 창밖은 어두웠다.

 

  "민희야, 너 바닷가에 가 본 적 있니?"

  "없어."

  "나도. 우리 언제 바닷가에 가지 않을래? 먼 바다."

  "니가 원한다면."

 

  단비와 민희는 카페에서 나와 헤어져서 집으로 갔다.

  단비가 버스에서 내려 집을 향해 걸어 갈 때 눈이 오기 시작했다. 무한한 어둠 속 어딘가에서 작고 하얀 눈송이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단비는 그 거짓말같은 눈송이들을 바라보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며칠 후엔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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