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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스윙 - 그해 우리의 헛 방망이질
작가 : 톰과제리2
작품등록일 : 2018.11.19

1990년 서울의 산동네, 이화동을 배경으로 한 성장 소설.
화가인 엄마는 이혼 후 미국으로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이민을 갔고,
아빠는 새로 결혼한 여자와 강남 아파트에서 단란하게 살고 있다.
할머니의 미싱 일을 도우며 살던 단비가 아빠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된다.
그러나 위선적인 아빠와 새엄마에게 염증을 느끼고
학교에서 도둑 누명을 쓴 절친, 민희와 학교를 탈출하여
친엄마의 친척들이 살고 있는 여수로 떠난다.
그러나 마주하게 된 진실은 단비가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민희는 실제로 지갑을 훔쳤고 위선적이기만 한 아빠에게도 하나의 진실은 있었다....

 
9. 민희네 비디오
작성일 : 18-11-19 10:49     조회 : 308     추천 : 0     분량 : 5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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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민희네 비디오

 

  일 학년 늦가을, 그 해의 마지막 제사를 하루 앞 둔 날이었다.

  '때르르릉' 오전 내내 거실 전화가 울렸지만 윤숙과 단국이는 외출하고 아파트에 없었다. 집엔 전화가 두 대였다. 거실 전화는 번호를 바꾸지 않고 쭉 쓰고 있었고, 김 여사도 번호를 알고 있는 그 전화였다. 다른 한 대는 안방에 있었는데, 윤숙이 개인적으로 쓰는 전화로 전화번호를 자주 바꿨다. 그리고 변경된 전화번호는 가족 안에서 단국이와 동찬에게만 알려주고 단비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단국이 가방과 목걸이의 이름표에 바뀐 안방 전화번호가 씌어져 있었으나, 단비는 구지 그 전화번호를 알려하지 않았다.

  '때르르릉'. 단비 혼자 자기 방에서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그러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거실로 나온 단비는 계속 울리는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전화 울리는 소리가 끊어지자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보나마나 할머니, 김 여사의 전화였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단비는 그날 오후에 자신이 김 여사네 집에 간다는 사실도 말하고 시장에 들러 사갈 물건들에 대해 물어야 했다. 단비는 김 여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같이 사니까 좀 알 꺼 아니냐?"

  "그 전화 번호 한 달 전에 바꿨고 나는 모른다니까. 정 궁금하면 아빠 회사로 전화하든가."

  "에휴. 바쁜 사람한테 뭣헐라고."

 

  다른 때처럼 답답한 대화가 오갔다. 어쨌든 단비는 김 여사와 전화통화를 끝낸 다음 거실 전화기의 전기 코드를 뽑아 버렸다. 혹시라도 가방을 들고 거실을 나서서 엘리베이터까지 가는 사이 다시 전화가 울리면 전화를 부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단비는 버스를 타고 자신이 살던 옛 동네로 왔다. 김 여사가 사오라는 물건을 시장에서 사서 김 여사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시장 쪽에서 마을로 올라가는 길의 경사는 가팔랐다. 그 비탈진 길을 올라가다가 거리 모퉁이 건물에 들어온 새로운 가게를 발견했다. 예전에 그 자리엔 단추만 취급하는 가게가 있었다. 단추 가게를 밀언고 새로 들어 선 가게 업종은 '비디오'였다. 김 여사 방에는 동찬이 갖다 놓은 비디오 기기가 있었지만 단비는 비디오 테이프로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그 기기는 김 여사가 동찬이 나오는 뉴스 녹화 테이프를 돌려 보는데 만 쓰였었다. 그 비디오 가게의 출입문에는 '각종 월간지 있음'이라고 씌어진 종이도 붙어 있었다. '민희네 비디오', 단비는 그 가게 상호가 의미하는 바를 그 때까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단비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작은 가게 안은 삼면이 천장까지 영화 비디오가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카운터 옆엔 작은 테이블과 의자들도 있었다. 가게 카운터엔 주인이라기엔 너무 어려 보이는 여자가 잡지책을 들춰보고 있었다. 교목을 입지 않아서 좀 낯설게 보였지만 단비는 대번에 누구인지 알아봤다.

 

  "민희야!"

  "오단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주쳤지만 민희도 단비도 서로를 어색해 하지 않았다. 마치 학교에서 친하게 지낸 사이 같은 느낌이었다.

 

  "이 자리 옛날엔 단추 도매였었는데."

  "작년 겨울에 다른 동네에서 이사 왔어."

  "너도 이 동네에 사니?"

  "작년까지 살았었는데, 지금은 할머니만 살아. 할머니 집에 일이 있어 온 거야."

  "영화 볼라고?"

  "....응."

  "이 쪽이 최신작이야."

 

  단비가 제목을 훑어보기 시작했는데 벽엔 너무 많은 테이프들이 꽂혀 있어서 선뜻 고를 수가 없었다. '쿼바디스'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E.T' 같은 누구나 아는 영화 제목들도 있었고, 티브이 시리즈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스의 자연 다큐멘터리도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까미유'라는 제목이 눈에 띄자, 단비는 그 비디오 테이프를 빼들었다. 재작년 즈음에 '까미유'라는 영화 비디오가 동찬의 아파트 거실에서 굴러다니고 있던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단비는 동찬에게 '아빠가 빌려다 놓은 테이프야'라고 물었으나 모른다는 대답을 들었었다.

 

  "그 영화 보려고?"

 

  민희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도 얼굴로는 '이해 안됨'이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단비는 교실에서 볼 수 없었던 민희의 다양한 표정을 보는 것 같아서 재미있었다.

 

  ".... 안 돼?"

  "안 될 거야 없지만.... 영화 많이 보니?"

  "아니. 텔레비전에서 하는 거 말고 본 적 거의 없어. 비디오도 처음이야."

 

  민희가 단비를 과감히 무시해 줘도 된다는 듯 시원스럽게 말을 했다.

 

  "그러면 프랑스 영화는 피해야지."

 

  민희가 자신의 뒤쪽 칸에서 꺼내 준 영화는 '영웅본색'이었다. 단비도 라디오에서 주제 음악과 스토리를 여러 차례 들어 본 영화였다. 그러나 영화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이것도 나온지 벌써 몇 년이 지났네. 그래도 이게 낫지 않겠냐?"

  "총 쏘고 피 튀기고, 우울할 거 같아."

  "얘가 뭘 모르네."

 

  민희는 잡지에서 직접 커터 칼로 오려낸 장국영 사진을 단비를 향해 흔들어 보이면서 말을 했다. 민희가 보고 있던 잡지는 영화 월간지였다.

 

  "장국영이 죽여주거든."

 

  단비는 카운터 옆 책장에 꽂혀 있는 잡지들에 눈이 갔다. 패션과 영화 쪽 월간지들이었다.

 

  "빌려 주는 물건인데 그렇게 사진 오리고 그러면 안 되지 않냐?"

  "다른 손님이 그랬다고 하면 되. 그 맛에 주인집 딸 하는 거지."

  "흠."

  "잡지, 보고 싶은 거 있니?"

  "아니."

  "이건 내가 가게 볼 때 심심해서 사놓고 빌려 주는 거야. 그리고 잡지 대여가 은근히 짭짤한 게 잡지 부록이 다 내 거가 되거든."

 

  민희는 미소를 지으면서 잡지 부록으로 받은 소지품 주머니도 흔들어 보였다. 불과 몇 분 사이에 단비는 민희와 부쩍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래도 단비는 민희가 교실에서 곁에 누구를 두지 않는 바람에 다가가지 못했던 시간들이 생각났다.

 

  "최민희, 너 나 교실에서 무시하던 거 기억 나냐?"

  "언제?"

  "내 연습장 만화 볼 사람 없냐고 내가 니 앞에 가서 그랬는데, 너 잠자는 척 하고 그랬잖아. 맞지?"

  "니가 나대니까 그렇지."

 

  까칠한 민희의 대답에 단비가 금방 의기소침해 졌다. 방금 전까지의 분위기와는 달리 잠시 어색한 기운이 흘렀다. 그러다가 민희가 먼저 말을 했다.

 

  "니 연습장, 애들이 보는 거 봤었어. 그림이 만화랑 정말 똑같더라. 근데 우리 집이 비디오 가게 하기 전에 만화방을 해서 웬만한 만화 다 봤어. '미스터 블루' 도 전 권 다 완주해서 볼 필요가 없었고."

  "진짜?"

  "지금도 집에 가면 처분 못 하고 떠안은 만화책들이 꽤 있어.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봐."

  "나중에 생각나서 학교에서 말해도 돼?"

  "응"

  "근데 어떤 애가 니가 학교 끝나면 업소에서 노래 부르는 일을 하러 다닌다고 하더라."

  "누가 그런 헛소리를? 아냐. 나 맨날 학교 끝나면 여기로 와. 일요일도 가게는 주로 내가 보는데."

  "그래.... 나도 그럴 거라 생각했어."

  "너 커피 마실래?"

 

  민희는 카운터 구석에 있는 커피포트로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단비가 단 맛을 안 좋아하는 편이라고 말을 하자, 민희는 단비의 커피에 설탕을 두 숟갈을 넣었고, 자신의 커피에는 네 숟갈의 설탕을 넣었다. 단비는 민희가 건네 준 커피 잔을 받아 들고 한 모금 마셔봤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쓴 커피의 맛이 혀를 자극했다. 처음 커피를 마셔봤지만 이상하지 않고 좋았다. 오해는 금새 풀렸다. 민희가 이렇게 다정하게 대해 주리라고 상상 못했던 단비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 때, 가게 문이 열리고 민희 네 엄마가 손에 짐을 여러 개 들고 가게에 들어섰다. 시장에 다녀온 듯 했다. 그 전까지 단비에게 쏠려있던 민희의 관심이 엄마에게로 단 번에 옮겨 갔다.

 

  "엄마, 내 친구야. 우리 반이고 이 동네에 할머니가 산데."

  "오단비라고 합니다."

  "그래. 떡볶이 좋아하니? 너무 양이 많다 했는데. 잘됐다. 먹고 가라."

 

  민희 엄마가 테이블 위에 떡볶이와 순대가 담긴 비닐봉지를 펼쳐 놓았다.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앉아 먹기 시작했다.

 

  "그 '사랑의 메신저' 빌려간 손님 말이야. 내가 전화로 독촉하니까 아까 반납하러 왔어. 근데 마그네틱 선이 좀 상했더라고. 그 손님은 다시는 빌려 주지마. 특히 최신작은. 내가 그 사람 이름에 빨간 동그라미 쳐놨거든. 그리고...."

 

  민희는 엄마와 살갑게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좀처럼 남에게 곁은 내주지 않은 민희가 학교 밖에서는 이렇게 다정다감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반면 단비는 집에 있을 때는 언제나 자신의 방에 엎드려 만화 베끼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런 자신의 모습이 엄마가 없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친한 민희의 모습은 단비에게 묘한 상실감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민희네 모녀를 보다가, 단비는 문득 민희 네가 아빠 없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희도 단비 자신처럼 외롭게 살아왔을 것 같았다.

  단비는 민희 어머니한테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단비는 언덕길을 오르고 골목 층계를 거쳐서 김 여사 집을 향해 갔다. 단비가 김 여사의 집 문턱을 넘었을 때, 김 여사는 마루에 앉아 있다가 조용한 미소로 단비를 맞아 주었다. 단비가 마당을 둘러보니 신기할 정도로 작년에 보았던 마당과 똑같은 것 같았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집 안 역시 이전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고 정갈했다. 김 여사가 여전히 세속의 어떤 종교인 못지않은 수행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증명이었다. 하지만 받지도 않은 전화를 십 년 째 하는 김 여사의 모습은 여전히 욕망과 한의 올가미에 갖혀 있는 모습이었다. 김 여사는 단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루에 앉아 서쪽 하늘의 주홍빛 노을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날 밤, 단비는 마당 구석에 있는 자신의 방에 누웠다. 그 방은 연탄을 안 때는 계절엔 바닥으로부터 습기가 올라와 축축했고 특유의 창고 냄새가 났다. 난방을 하는 추운 겨울날에 방바닥에 서있으면 발바닥은 뜨거워 서있을 수가 없는데, 웃풍 때문에 코가 어는 추위에 몸서리를 처야 했다. 그래도 단비는 모처럼 옛날에 자신이 쓰던 방에 누워 있으니 마음만은 편했다.

  단비는 '엄마의 이모'로부터 온 편지와 엄마의 전시회 팜플렛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아파트 방의 책상 서랍 속에 넣어 두어서 당장 볼 수 없었다. 단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방을 둘러보았다. 한동안 비워둔 방은 철 지난 유원지의 민박집처럼 쓸쓸한 기운마저 감돌고 있었다. 단비는 이제 이 방에 며칠만 묵어가는 손님일 뿐이었다. 그래도 당장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단비는 메모에 가까운 짧은 편지 내용을 거의 똑같이 기억할 수가 있었다.

 

  ‘주미는 잘 있습니다. 얼마 전엔 옛날에 그 집 광에 두고 온 그림을 다시 찾고 싶다고 했습니다. 혹시 아직 남아 있다면 이 곳 여수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그림은 단비 것이지만 보관이 힘들 것 같습니다....'

 

  아빠는 회사에서 김 여사 모르게 엄마의 친척과 연락을 하고 있었다.

  단비의 머릿속엔 에메랄드 빛 바다와 넘실대던 파도가 해안선에 밀려오던 그 바다가 있던 그림이 어둠 속에서 떠올랐다. 단비는 민희네 비디오 방에서 나온 이후 줄곧 마음 한편에 엄마를 찾아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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