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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바림: 다시 마주한 그 순간
작가 : 총수
작품등록일 : 2018.10.24

천상천하 유아독존! 싸가지 끝판'왕' 이산.
300년의 시간을 거슬러온 그가 처음 눈을 뜬곳은 다름아닌 첫사랑 나비의 자취방?!

서울 카페에서 혼자 자취를하던 만년 사진작가 지망생 '한나비'. 어느 날 주말을 맞이해 늦잠을 자고 일어난 그녀의 이불속에는 앞 선을 곱게 풀어헤친 조선의 왕 '이산'이 잠들어 있었다. 눈을 떠보니 현세로 넘어와 버린 이산이었지만, 그는 당황하기는커녕 평생을 그리워했던 과거 잃어버린 첫사랑의 모습과 똑닮은 나비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면서 둘의 웃프기만한(?) 아찔한 동거생활이 시작된다.

 
4. 말해! 뭐해?
작성일 : 18-11-16 12:46     조회 : 254     추천 : 0     분량 : 6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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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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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안.

 

 의자에 기대앉은 나비와 태준은 반 건조 오징어마냥 축 늘어져 있었다.

 

 점심시간만 되면 물밀 듯이 밀려오는 손님들에 치여 밥 먹을 새도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나면 항상 이렇게 푹 퍼질 수밖에 없었다.

 

 “태준아, 밥은 어떻게 할까?”

 

 나비가 묻자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던 태준이 곧장 몸을 바로 새웠다.

 

 “배고프세요? 먹고 싶은 거 말씀하시면 제가 사올게요.”

 

 “아냐, 난 됐어. 영 입맛이 없어서. 너라도 먹으라고.”

 

 “아뇨, 그럼 저도….”

 

 태준이 괜찮다고 하자 나비는 멋쩍게 미소 짓더니 다시 카운터에 엎어졌다.

 

 그렇게 식사도 거른 채 엎드려 있는 그녀의 가녀린 뒷모습에 태준이 얼굴을 구겼다.

 

 어째선지 오늘따라 피곤해 보이는 그녀의 상태가 내심 신경 쓰였다.

 

 “…누나.”

 

 “응?”

 

 “힘드셔도 조금만 참으세요. 제가 점장님한테 다시 한 번 잘 말해볼게요.”

 

 응? 갑자기 웬 점장님?

 

 더없이 진지한 태준의 모습에 놀란 나비가 벌떡 고개를 들었다.

 

 “점장님한테 뭐를 말해?”

 

 “저번에도 한 번 점심시간 너무 바쁘다고,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와달라고 부탁드렸었어요.”

 

 “그래? 그래서 그 양반이 뭐라디?”

 

 “알겠다고 하셨어요. 오늘 안 나오신 거 보니까 아마 또 까먹으신 거 같은데 제가 오늘 다시 말씀드려볼게요.”

 

 푸훕.

 

 얘기를 듣던 중 나비가 갑작스레 웃음을 터트리자 당황한 태준이 말을 멈췄다.

 

 찔러도 피 안 방울 안 나올 거 같은 얼굴로 이렇게 순진한 말을 하다니.

 

 덩치에 맞지 않는 순진무구한 태준이 나비는 그저 귀여웠다.

 

 “누나?”

 

 미안한 마음에 금세 웃음을 멈췄지만 태준의 낙담한 얼굴을 보자 나비는 또 웃음이 새어나왔다.

 

 태준아, 네가 아직 어리긴 어리구나.

 

 그렇게 당해놓고 아직까지도 우리 점장님을 모르겠니.

 

 이미 카페에서 베테랑이 된 나비는 점장의 도움 따위 진작에 포기한지 오래였다.

 

 그도 그렇듯 교대시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양반한테 그런 것을 바란다는 거부터가 사치였다.

 

 더구나 혼자 일하는 주말이면 귀찮다고 가게 문도 제대로 열지 않는 게 바로 점장이었다.

 

 그런 게으름뱅이 점장이 우리를 위해 교대 시간 전에 나와 준다니, 상상 속에서조차 머리에 그려지지 않았다.

 

 “웃어서 미안해 태준아. 근데 넌 아직도 점장님을 믿니?”

 

 “…솔직히 가게문을 닫으면 닫지 절대 일찍 오실 분은 아니죠.”

 

 태준이 이해한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 그럼, 점심시간에만 이라도 한 명 더 뽑아달라고 말해볼까요?”

 

 “난 너랑 손발이 맞아서 둘이 하는 게 제일 편한데, 넌 별로야?”

 

 “아뇨. 저도 좋아요.”

 

 “그래, 우리 둘이 케미가 좋잖아! 파이팅하자. 점장님한테는 시급이라도 올려달라고 누나가 말해볼게.”

 

 그녀가 눈웃음을 지으며 자연스레 어깨를 두드리자 태준은 괜히 부끄러워 얼른 눈을 돌렸다.

 

 *

 

 둘이라서 좋다는 말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다니.

 

 분명 별 뜻 없이 무심코 던진 말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놈의 입꼬리는 왜 자꾸 올라가는지.

 

 그녀의 저 태연한 눈망울 앞에서는 항상 이 모양 이 꼴이었다.

 

 어차피 ‘아는 동생’ 그 이상의 마음이 없다는 걸 스스로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데.

 

 같이 시간을 보낼 때마다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그녀 때문에 언젠간 한번쯤은 돌아봐 줄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을 도저히 놓을 수가 없다.

 

 “근데, 태준아 너 아까 무슨 말 하려고 했어?”

 

 “….”

 

 “야! 한태준! 누나 말 듣고 있어?”

 

 생각에 잠긴 태준이 대답을 하지 않자 나비가 불쑥 다가와 귀에 대고 소리쳤다.

 

 “아아, 부르셨어요?”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어느새 성큼 다가온 나비 때문에 태준은 행여 심장소리가 새어나갈까 조마조마해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워진 그녀의 얼굴을 자신의 곰발바닥만한 손으로 살며시 밀어냈다.

 

 하지만 나비는 꿋꿋이 서서 태준을 올려다봤다.

 

 “괜찮아, 고민 있으면 말해봐. 돈 빌려달라는 거 빼고는 다 들어줄게. 이 누나가 그래도 고민 같은 건 잘 들어주잖니.”

 

 나비가 호언장담하자 태준은 무릎을 굽혀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렇게 눈높이가 같아지자 나비는 누나로서의 위엄을 과시하듯 자연스레 자신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

 

 “들어준다고 할 때 빨리 말해봐.”

 

 “그럼, 누나 한 3000만원만 땡겨 주실래요?”

 “….”

 

 잠시 머뭇거리던 나비는 이내 일렁이는 눈동자로 말을 이었다.

 

 “음, 원래 그 나이 때는 고민 한두 개 정도 안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렇죠?”

 

 그녀는 민망한지 얼굴을 붉히며 소리 내서 어색하게 웃었다.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태준은 나비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뒤돌아섰다.

 

 “누나, 저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말을 끝마친 태준이 도망치듯 카페 밖을 벗어나려 하자 나비가 도끼눈을 뜬 채 노려봤다.

 

 “한태준, 너 또 화장실 가는 척 하면서 담배 피우러 가는 거지?”

 

 “아니에요, 그런 거….”

 

 어떻게 알았지?

 

 눈치 빠른 나비가 불러 세우자 태준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말끝을 흐렸다.

 

 재빨리 머리를 굴려봤지만 이미 화가 단단히 난 그녀의 눈을 보니 마땅한 변명거리가 떠오르지도 않았다.

 

 “일하는 동안만이라도 좀 참아. 어차피 조금 있으면 점장님도 오잖아.”

 

 “그 거짓말쟁이 아저씨 얼굴 이제 기억도 잘 안 나는데, 어떻게 그때까지 기다려요.”

 

 “거봐, 역시 담배 피러 가는 거 맞네. 한태준, 거짓말하고 담배 피려는 너나 점장님이나 똑같아.”

 

 짤랑.

 

 태준은 앞치마에서 열쇠를 꺼내 나비의 눈앞에 보란 듯이 흔들어 보였다.

 

 “그럼 창고 금방 갔다 올게요. 아까 보니까 모카 다 떨어졌더라고요.”

 

 “…이번만 속아준다. 그래도 좀 끊어! 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생기고도 여친 하나 없는 거야.”

 

 “예예, 알겠어요.”

 

 딸-랑.

 

 카페 문 밖을 나선 태준의 표정은 나비의 앞에서와는 180도 달라졌다.

 

 평소 쓰지 않던 얼굴근육을 쓰려니 영 익숙지가 않았다.

 

 태준은 앞치마를 뒤적거리며 꼬깃꼬깃 숨겨놓았던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후우.

 

 깊게 들이마신 연기를 내뿜으며 태준은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누나동생 사이라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더 그녀 곁에 남고 싶다고….

 

 바보 같지만.

 

 *

 

 궁궐 후원에 자리 잡은 정자.

 

 그 위에서는 왕을 비롯한 문무백관들이 소란스럽게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후원에는 봄을 수놓은 꽃들이 만개했지만 대낮부터 열린 연회 탓에 꽃내음보다는 진한 술 냄새와 함께 자욱한 남령초 연기로 가득했다.

 

 연회의 흥을 돋우기 위해 궁중악사들의 가락에 맞춰 수십 명의 무희들이 왕의 앞에 다가가 매혹적인 춤사위를 선보였다.

 

 하지만 왕의 이목을 끌기에는 부족했는지, 그는 아무런 말없이 그저 장죽만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기만을 반복했다.

 

 후우.

 

 지겹구나.

 

 “하나 더 내오거라,”

 

 마지막 연기를 들이마신 왕이 옆을 지키고 있던 내관에게 장죽을 건넸다.

 

 “송구하오나, 지금 태우신 게 마지막이옵니다. 전하….”

 

 마지막이라는 말을 남기고는 움직이지 않는 내관의 모습에 왕은 살기 가득한 눈을 부라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기분이 언짢을 때마다 나오는 왕의 버릇이었다.

 

 “그럼 별궁으로 건너가 더 가져오면 되지 않느냐. 오랜만에 열린 연회에 어찌 남령초가 빠질 수 있겠느냐?”

 

 “전하, 거듭 말씀드려 송구하오나 약조하신 바에 따르면 이미 오늘 피우실 양을 전부 다….”

 

 “하하핫!”

 

 탁!

 

 변명을 하는 내관의 모습에 광기 어린 웃음을 짓던 왕은 순식간에 표정을 지웠다.

 

 그러고는 이내 앞에 놓인 상을 내리치며 일어섰다.

 

 그 소리에 놀라 겁을 잔뜩 집어먹은 악사들이 하나둘씩 악기를 내려놓자 시끌벅적 하던 연회가 한순간에 조용해지자 주위 대신들도 왕의 눈치를 살피며 수군거렸다.

 

 “전하께서 또 병이 도지셨구만 그래.”

 

 “저러시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살고 싶으면 아무 말 말고 조용히 술이나 자시게.”

 

 그 소리를 들은 왕이 이내 자신의 험담을 한 신하들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이내 장내에는 시간이 멈춘 듯 정적만이 흘렀다.

 

 왕은 자신의 이런 행동을 보고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기 바쁜 대신들의 한심한 모습에 씁쓸한 웃음을 삼키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긴 한숨을 내뱉은 왕은 쳐다보기도 싫은지 고개를 돌린 채 내관에게 어서가라고 손짓했다.

 

 “그런 걸 약조한 기억은 없으니 그리 멍청히 서서 헛소리 할 시간 있으면 어서 별궁으로 가 남은 남령초나 가져 오거라.”

 

 “바, 바로 대령하겠나이다. 전하.”

 

 왕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용안을 쳐다도 보지 못하던 내관은 급히 고개를 조아리고는 부리나케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갔으나, 채 몇 걸음 떼지 못하고 멈춰 서야만 했다.

 

 계단 아래에 칼을 꽉 쥔 채 겨우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운검 ‘염’이 앞을 가로막았기에.

 

 앞에는 날이 선 운검, 뒤에는 심기가 불편한 임금까지.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는 내관 따윈 안중에도 없는지 염은 말없이 그를 밀치고는 계단을 올랐다.

 

 *

 

 염은 끓어오르는 화를 가라앉히려 해봤지만 직접 두 눈으로 정자 위의 펼쳐진 광경을 보니 마음먹은 것처럼 쉽지 않았다.

 

 하아.

 

 경연을 하고 있어야할 이 시간에 악사에 무희까지 불러 연회를 연 것으로도 모자라 술과 남령초에 취해 건들거리고 있는 꼴이라니.

 

 겨우 잠깐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이런 사달이 나다니.

 

 이미 술에 취해 건들거리기 시작하는 왕의 모습에 염은 일단 자책 하는 것은 뒤로 미루고 그를 진정시키려, 옆으로 다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전하….”

 

 예상치 못한 염의 등장에 기분이 좋아진 왕은 그에게 술잔을 기울이며 능청을 떨었다.

 

 “오, 운검 자네 왔는가. 바쁘지 않다면 내 침실로 건너가 남령초 좀 가져와주게. 다른 놈들은 내 믿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하등 쓸모없는 것들….”

 

 “전하, 오늘 피우실 몫은 이미 전부 피우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왕은 한쪽 눈썹을 들썩이며 노골적으로 서운함을 드러내봤지만 올곧은 염에게는 어림조차 없었다.

 

 되려 염이 염상을 찌푸리며 눈치를 주자 왕은 어색한 헛기침과 함께 살며시 눈을 피했다.

 

 자신이 괜한 고집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왕은 이내 고개를 홱 돌리고는 소리 낮춰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즐거운 날이니만큼 한 대만 더 태우고 싶구나.”

 

 “규율과 법도를 이끌어 나가야하는 전하께오서 신하들과의 사소한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고 번복하신다면 만백성이 어찌 전하를 믿고 따를 수 있겠습니까?”

 

 자존심을 굽히고 간청을 해봤지만 단호한 염의 태도는 결단코 변함이 없었다.

 

 설령 목에 칼을 겨눈다 한들 꺾이지 않을 남자란 것을 세자 때부터 알고 있었건만, 이정도로 융통성이 없을 줄이야.

 그러고 보니 세자 시절에 처음 마주했을 때 고지식한 염의 모습에 혜령이 답답하다며 화를 내기도 했었지.

 

 “세자라….”

 

 중얼거리던 왕은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에 조용히 술잔을 집어 들었다.

 

 “그래, 그럼 과인은 남령초 대신 술이나 마셔야겠구나.”

 

 “이미 많이 취하셨습니다. 전하, 지나친 것은 부족 하니만 못한 법입니다.”

 

 “흥, 술은 따로 약조한 것이 없지 않느냐?”

 

 왕은 세 살배기 어린애 같은 유치한 논리를 들먹이며 되레 언성을 높였다.

 

 염이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하자 왕은 능글맞게 웃으며 술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렇게 연거푸 멈추지 않고 술을 마시던 왕은 측은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염과 눈이 마주치자 또 다른 잔 하나를 들이밀었다.

 

 “어떠냐! 운검 그대도 한잔 하겠느냐?”

 

 “송구하오나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아 마음만 받겠습니다.”

 

 염은 화가 난 것인지 아니면 포기한 것인지 고개를 숙여 거절의 뜻을 내비치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래, 맘대로 하거라….”

 

 공허한 표정으로 왕은 염이 받지 않는 잔을 대신 들이켰다.

 

 눈앞에서 염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왕은 입가의 미소를 거두고는 싸늘하게 굳어버린 얼굴로 소리쳤다.

 

 “다들 즐거운 연회인데 즐기지들 않고 뭣들 하고 있느냐!”

 

 “예, 전하.”

 

 왕의 호통소리에 숨죽여 지켜보던 내관들이 서둘러 달려와 다시금 연회의 시작을 알렸다.

 

 흥겨운 풍악소리와 함께 무희들이 뒤늦게 춤을 추며 여흥이 비로소 무르익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가락 속에서도 그의 빛바랜 눈에 비치는 것은 단 하나였다.

 

 혜령.

 

 *

 

 톡, 톡, 톡.

 

 카운터 뒤쪽에 자리 잡은 조그만 시계의 초침이 정확하게 여섯시를 가리켰다.

 

 낡은 괘종시계는 삐그덕 움직이며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비의 퇴근시간을 알렸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주말 잘 보내 태준아.”

 

 나비의 콧노래에 태준이 뒤에 걸린 시계를 흘겨봤다.

 

 여섯시가 되었건만, 역시나 점장은 오지 않았다.

 

 “저 버리고 가시면 카페 문 닫고 따라 갈 거예요. 농담 아니에요.”

 

 나비는 상관없다는 듯 쿨하게 입고 있던 앞치마를 벗어서 태준의 품에 맡겼다.

 

 “맘대로 해. 내 손해니? 점장님 손해지. 그럼, 다음 주에 보자. 누나 간다.”

 

 곱게 묶어 올린 머리를 풀어헤친 나비는 천천히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태준은 그녀를 갑자기 불러 세웠다.

 

 “누나!”

 

 “왜?”

 

 태준도 급한 마음에 일단 나비를 불러 세웠지만 막상 그녀의 얼굴을 보자 부끄러움에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일 있어? 너 오늘 따라 뭔가 좀 이상하다.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나비의 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약해진 태준은 결국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조심히 가시라고요.”

 

 “싱겁기는, 알았어. 그럼 다음에 봐.”

 

 잠시 뜸을 들이던 태준이 수줍게 손을 흔들자 나비도 흐뭇하게 손을 흔들던 그때.

 

 퍽!

 

 갑자기 열린 문이 나비의 얼굴에 부딪히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렇게 문에 그대로 얼굴을 들이박은 나비는 뒤로 고꾸라졌다.

 

 “하아암~.”

 

 카페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들어선 남자는 그런 나비의 모습은 눈치 채지 못했는지 크게 하품을 하며 걸어 들어왔다.

 

 남자의 인상은 술집을 헷갈려서 들어온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만큼 누추했다.

 

 상투를 틀어 올린 긴 머리, 아무렇게나 기른 수염과 함께 광대까지 내려온 짙은 다크서클 까지.

 

 그리고 그 모습을 바닥에 엎드린 채 무심히 바라보던 나비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진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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