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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마법의 재등장은 우리들 덕분.
작가 : 아니펜
작품등록일 : 2018.11.12

소꿉친구였던 3명의 소년소녀가 의문의 석판과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신비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해요.

 
2. 석판을 가져다 준 도둑 -2-
작성일 : 18-11-16 00:11     조회 : 268     추천 : 0     분량 : 8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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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상이 아니... 었어?

 

  닭이 우는 화창한 아침.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구실을 들여다본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도둑으로 보이는 금발의 여인이 바닥에 침을 흘리며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당한 상황에 머리가 따라가지를 못해 멀뚱히 서 있었다. 그러다 이 사람이 도둑이라는 사실을 떠 올렸다. 허둥지둥 노끈을 찾았다. 팔다리를 포박하기 위해서 였다.

  쓰러져있는 도둑을 발로 툭툭 건드려 의식이 없음을 확인한 다음 팔과 다리를 묶었다.

 

  “...뭐가 이리 예뻐?”

 

  끈을 매듭지으며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금발의 웨이브 머리. 하얀 얼굴에 담긴 이목구비는 각자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면서도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몸매는 또 어떤가. 가감 없이 표현하자면... 선정적이다.

  이런 사람이 도둑질이라니. 어디 극단에라도 들어가 조금만 노력하면 주연 배우는 따 놓은 당상일 터인데.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본능은 자구 시선을 그렇고 그런 부위로 이끌었다. 나도 모르게 삼킨 침이 목을 넘어가는 소리가 ‘꿀떡.’ 하고 유독 크게 들렸다. 이래서 남자란 족속은.

  포박을 마치고 살금살금 거리를 벌렸다. 다행히도 깰 기미는 없다. 안도하기를 잠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똑똑.

 

  현관문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이런 시간에.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마당에 때마침 잘 됐다 싶어 빠르게 달려가 현관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손님은 아주 의외의 인물이었다. 뒤로 묶은 새빨간 머리카락. 차분한 분위기를 주는 처진 눈꼬리와 콧잔등이 옅게 박힌 주근깨가 인상적인 여인. 베니라는 이름의 이 여인은 베로아 마을의 자경단이 자랑하는 검사이자... 나의 친구이다. 일단은.

  엄청난 기세로 열린 문에 놀란 베니의 손목을 잡아 집으로 끓고 들어왔다. 베니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쪽으로 팔을 당겼다.

 

  “뭐, 뭐야.”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일단 와줘.”

 

  반쯤 끌어당기듯 하여 베니를 연구실로 데려갔다. 베니는 상황이 이해가 안 가 어리둥절해했지만 연구실에 펼쳐있는 광경을 보자마자 표정을 다잡았다. 그리고 칼을 빼 들어 예리하게 빛나는 칼끝을 겨눴다.

  내 목에.

  ...어?

 

  “잠, 잠깐! 뭔데!”

  “변태 자식..!”

 

  베니의 얼굴은 표정변화가 적은 그녀 답지 않게 잔뜩 흥분해 붉게 달아올랐다. 눈가엔 눈물까지 그렁그렁했다. 오해를 해도 단단히 했네 이거!

 

  “그런 거 아니야! 오해야 오해! 저 여자 도둑이야! 내가 피해자라고!”

  “...도둑?”

  “그래. 진정하고 일단 칼 내려. 제발.”

 

  베니는 미심적은 표정을 했지만 결국 칼을 거둬 칼집에 갈무리했다. 목덜미에 들이밀어졌던 목숨의 위협에서 벗어난 나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하아... 하아... 세상에 칼부터 들이미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럴만한 상황이였어.”

  “그러니까 아니라고. 어쨌든 저 여자 한 번 확인해봐. 요새 마을에 돈다는 연쇄절도범일수도 있잖아.”

 

  베니는 도둑에게 천천히 다가가 얼굴을 살피더니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도둑과 종이를 번갈아 보았다.

 

  “그 종이 뭐야?”

  “어제 완성된 연쇄절도범의 몽타주. 마을 무민 전부의 집에 방문해서 나눠주는 중인데... 어떻게 잡은 거야?”

  “그러니까...”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 설명이 끝나자 베니가 말했다.

 

  “이 사람 언제 깨?”

  “사람마다 다르지만, 한동안은 안 깰 거야. 약효가 꽤 강해.”

  “그럼 감시하고 있어줘. 잠시 자경단에 다녀올게.”

  “단원들을 불러오려는 거야?”

 

  내 예상과 달리 베니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안 돌아가면 이상하게 생각하니까 얼굴만 비추고 다시 올게.”

  “뭔 소리야?”

 

  연쇄 절도범을 붙잡은 상황, 자경단원들을 불러와 빨리 연행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얼굴만 비추고 다시 오겠다니.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기다려. 금방 올 태니까.”

  “야! 잠...”

 

  베니는 잡을 새도 없이 집을 나갔다. 예전에도 그렇고 쟨 왜 맨날 도망가는 것만 빠른 거야...

  베니 나름대로의 판단 하에서 나온 행동이겠지만, 난 독심술사가 아니라 그녀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별수 없이 베니가 올 때 까지 도둑을 감시하기로 했다.

  몽둥이 하나를 들고 연구실 의자에 앉아 도둑을 지켜보던 중,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생각해보니 잠에서 깬 이후로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 배고픈데.”

 

  어차피 검은 포자 버섯의 수면효과 사라지기엔 이른 시간이다. 포박도 단단히 해놨고 굳이 감시하고 있을 필요는 없으리라, 라고 자신에게 변명하며 슬금슬금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먹을 게 뭐 있나 떠올리다 먹다 남은 호밀빵을 종이에 싸 찬장에 넣어둔 것이 떠올랐다. 상하지 않았을까 싶어 꺼내보니 다행히 눅눅해졌을 뿐 먹을 수 있는 상태였다.

  목소리는 갑자기 들려왔다.

 

  “으악. 그 빵 딱딱해서 맛없을 것 같아.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소름 끼치게 놀라 몸을 돌렸다. 방금 전까지 누워있었던 도둑이 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손에 쥔 몽둥이를 휘두를 수도 없었다. 내 얼굴을 향해 뻗어있는 그녀의 오른손엔 잘 벼려져 반짝이는 단검이 들려있었고, 그 검 끝은 내 미간에서 딱 쌀 한 톨만큼 떨어져있었다. 위험을 감지한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도둑이 말했다.

 

  “나는 너를 해하거나 물건을 훔칠 생각이 전혀 없어. 이 칼은 네가 다짜고짜 소리를 친다거나 달려드는 걸 막기 위한 거야. 명석한 학자님이니까 이해했지? 이해했다면 몽둥이 내리고 눈을 두 번 깜박여.”

 

  몽둥이를 땅에 떨구고 눈을 두 번 깜박이자 도둑이 말을 이었다.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으니 나를 침입자가 아닌 손님으로 대해 줄 수 있지? 그렇다면 눈을 두 번 깜박여.”

 

  손님이라니 당치도 않을 소릴. 하지만 별수 없이 눈을 두 번 깜박였다. 도둑은 씨익 웃으며 칼을 거뒀다. 그녀는 칼을 손안에서 휙휙 돌리며 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싱글벙글한 표정지으며 맞은 편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나는 두려움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쓰며 의자에 앉았다. 도둑이 말했다.

 

  “그만 노려봐. 몸에 구멍 뚫리겠다. 표정도 좀 풀고.”

  “댁 같으면 그게 가능하겠어?”

  “당연히 가능하지 나 같으면 고급 차와 다과까지 가져와 환영했을 거야.”

  “헛소리.”

  “역시 그런가?”

 

  도둑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집안에 울렸다. 이 사람은 아까부터 뭐가 그리 재밌기에 이리도 경박하게 웃어댈까.

 

  “포박은 어떻게 풀었지?”

  “그거 포박이라고 한 거야? 미안하지만 나 같은 전문가에겐 안 통해.”

  “언제부터 깼지? 아직 깰 시간이 아니야.”

  “말했잖아. 난 이런 쪽의 전문가라니까? 다 내성이 있어. 그리고 깬 시점은... 네가 음흉한 시선을 보내며 내 몸을 묶을 때? 안 깬 척하려고 하는 데 흘끔거리는 게 너무 귀여워서 웃음 참느라 혼났어.”

 

  도둑은 또 깔깔대며 웃었다. 이렇게 온몸에서 ‘나 미친 사람이에요.’ 기운을 뿜어내는 사람은 다양한 유형의 사람을 만났다 자부하는 내 인생에 서도 처음이다.

 

  “나를 해할 생각도 없고 물건을 훔칠 생각도 없고 그렇다면 이 집에 숨어든 목적이 뭔데?”

  “그거야... ‘촉망받는 젊은 학자분의 연구실은 대체 뭐가 있을까?’ 라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랄까?”

  “...당신 왕궁 사람이야?”

  “눈치도 빠르셔라.”

 

  내가 왕립학회 소속의 학자인 걸 아는 사람은 가족과 수도에서 알고 지낸 몇몇 친분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왕궁과 관련된 인물들뿐이다. 앞에 두 개의 경우일 리는 없으니 나를 일방적으로 아는 왕궁소속의 사람일 확률이 높다.

 

  “소속이 어디...”

  “아, 잠깐 기다려.”

 

  도둑이 단도를 바로잡아 내게 겨누며 말했다.

 

  “너만 질문하는 건 반칙이지. 내 질문도 대답해 줘. 부탁해?”

 

  ‘칼날을 코앞에서 휘적이며 하는 부탁은 부탁이 아니라 협박이다. 이 미친년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뭔데.”

 

  도둑은 단도를 다시 상 위에 내려놓고 말했다.

 

  “아까부터 생각한 건데. 너 깡 무지 좋다. 사실 이런 상황이면 벌벌 기어야 하는 거 아니야? 믿는 구석이 있나? 싸움을 엄청 잘 한다든가?”

  “할 줄 아는 싸움질이 교양으로 배운 활질이 전부야. 날 해할 생각이 없다며? 싸워 이길 능력은 없으니 그 말을 믿는 수밖에 없잖아.”

  “그럼 벌벌 기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줄까?”

  “아니~. 그럼 재미없잖아.”

 

  만약 정말 죽일 생각이었다면 내가 빵에 정신 팔렸을 때 단도로 등을 찔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니 나를 해할 생각이 없다는 것 진담일 것이다. ...라는 내 가설이 정답이길 속으로 간절하게 빌었다.

  도둑은 나를 빤히 보더니 이내 입 꼬리를 씨익 올리며 웃었다.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 같았다.

 

  “너 재밌다. 마음에 들어.”

 

  도둑이 단도를 자신의 허리춤의 칼집에 도로 넣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럼 다시 내 차례지?”

  “그렇게 되는 건가? 하지만 아쉽게도 여기까지.”

 

  도둑이 일어났다.

 

  “곧 아까 그 붉은 머리 여자애가 올 시간이잖아? 성가셔지기 전에 난 사라질게. 그리고 내 이름은 마리야. 다음에 또 놀러 올게!”

 

  도둑은 쏜살같이 달려 마당으로 나갔다. 서둘러 뒤따라 갔지만 이미 뒷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여자들은 왜 다 도망을 잘 치는거야?

  직후, 마치 시간을 맞추기라도 마냥 현관 쪽에서 베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일 없지?”

  “...별일 있었는데.”

 

  마리가 사라진 연구실을 본 베니는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그런 상태였던 사람이 도망을 쳐?”

  “자기는 전문가라 일반인의 수단은 소용없다더라.”

  “...하아.”

  “그런데. 도대체 왜 혼자 온 거야? 사람들을 불러오는 게 정상 아니야?”

 

  베니는 곤란한 표정으로 뜸을 들이다 결국 입을 열었다.

 

  “최근 고아원에 익명의 기부품이 전달되고 있어. 한밤중에 고아원 뒷마당에 놓고 간다는 기묘한 방식으로. 시기는 연쇄 절도가 시작된 때와 일치해. 그리고 ...알리고 있지는 않지만 수사과정에서 조사한 바로는 절도 피해자들, 하나같이 뒤가 구려. 비자금, 공금횡령, 고용인 학대 등등.”

  “도둑의 목표는 전부 나쁜 놈들이고 훔친 돈은 고아원에 준다는 소리야?”

  “나 혼자의 추측일 뿐 확증은 없어. 하지만... 아마도 확실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확인하기 위해 깨어나면 물어보려고 한 건데...”

 

  도적이 아니라 의적이었던 건가. 미녀 의적이라니. 소설에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존재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아까 보았던 나사 하나 빠진 미치광이 같은 태도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사악한 미친년이 아니라 착한 미친년이었군.

 

  “이제 수사는 어떻게 되는 거야?”

  “한동안은 계속 되다가 계속 안 잡히거나 더는 피해자가 없으면 미제로 종결 되겠지. ...그럼 갈게.”

 

  베니가 도망치듯 현관으로 향했다. 일이 끝났으니 더 이상 있지 않겠다는 건가.

 

  “...잠깐!”

 

  내가 부름에 멈춘 베니는 고개만 돌려 내 쪽을 봤다. 표정은 어딘가 불편한 듯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왜?”

  “...어, 음. 밥 먹고 갈래?”

  “...됐어.”

 

  베니는 다시 발걸음을 옮겨 집을 나섰다. 난 그녀를 잡을 수 없었다. 역시 아직 화난 건가.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답답한 마음에 한숨이 나왔다.

  고민해봤자 답 안 나오는 문제는 잠시 제쳐놓고 못한 아침 식사나 마저 하기로 했다. 부엌으로 돌아가 땅에 떨어진 호밀빵을 뜯어 먹었다. 질김의 영역에 들어선 눅눅한 빵을 물과 함께 목 아래로 넘겼다. ...맛 없어.

 

  마리와 다시 만난 건 3일 뒤였다. 노을이 지는 초저녁, 떨어진 녹차를 더 우리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에 들어서자 식탁에 앉아 있는 마리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안녕.”

 

  잠시 벙쪄 있던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한숨이 나왔다.

 

  “...왜 그렇게 자연스럽게 있는 건데. 놀라지도 못했네.”

  “또 놀러 온다고 했잖아. 너도 허락했고.”

  “허락한 적 없는데?”

  “아무 말 안 하는 건 긍정이지.”

  “넌 강간범이냐?”

  “그럼 오지 마?”

  “내가 오지 마라면 안 올 거야? 아니 애초에 지금은 또 어디로 들어온 건데?”

  “도둑에게 문 따기 기술은 기본소양 아니겠어?”

  “...와도 괜찮으니까 제발 정문으로 당당하게 들어와.”

  “아니아니, 그건 도둑으로서 미학이 없지.”

 

  끝이 날 기미가 전혀 없는 말장난에 체력을 쓰기 싫었던 나는 체념했다.

 

  “당신 맘대로 해. 하아...”

 

  내 한숨에 도둑은 유쾌하게 대답했다.

 

  “내 이름은 마리야. 잘 부탁해!”

 

  이 이후로 마리는 가끔 내 집을 방문했다. 하는 일은 주로 서재의 책을 읽거나, 밥을 얻어먹거나, 나와 체스를 겨루거나, 나에게 본인의 절도담(談)을 늘어놓는 등의 시답잖은 것들뿐이었다.

  도대체 왜 내 집이 오는 것일까? 궁금했던 나는 마리에게 직접 물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응?”

  “여기 왜 오는 거야? 딱히 재밌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너 있잖아.”

  “진지한 이유 말이야.”

  “...진지하게라.”

 

  마리가 가슴 앞에 팔짱을 끼고 고민하다 말했다.

 

  “고단한 여행의 쉼터 같은 느낌으로 쓰고 있어. 과자 주고 차주고 말상대 해주고 게다가 공짜! 안 올 이유가 없잖아.”

  “그래? 그럼 앞으로 올 때마다 돈 내.”

  “엑. 쪼잔해.”

 

  장난으로 한 소리였다. 손님에게 다과 좀 내주는 것쯤이야 평소에도 자주 하는 일이다. 거기다 마리가 해주는 절도담은 꽤 재밌고, 체스 실력도 상당해서 좋은 맞수가 된다. 값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마리도 진지하게 돈을 낼 생각은 없겠지.

  하지만 이 도둑은 언제나 한결같이 내 예상을 깨버린다.

  여느 날과 같이 집에 놀러온 마리가 보자기에 싸인 무언가 가져왔다. 식탁위에 내려놓자 ‘딱.’ 하는 단단한 소리가 났다.

 

  “이거 뭐야?”

  “밀린 쉼터 이용 삯. 돈 내라며? 돈보다 더 좋아할 걸 가져왔지.”

 

  어쩐지 수상했지만 일단 마리의 말을 따라 보자기를 풀었다.

  안에는 이상한 문자가 새겨진 손바닥만 한 석판이 들어있었다.

 

 

  * * *

 

 

  그래스트형은 흥미롭다는 표정 지었다.

 

  “기묘한 인연이로고.”

  “누가 아니래요. 출신도 불명, 언제나 휙 나타나 휙 하고 사라지고. 하나 알려준 건 저보다 연상이라는 것뿐이고. 거기다 최근 1개월 동안은 나타나지도 않았어요. 또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예쁘냐?”

  “...솔직히 엄청.”

  “크흐~. 나도 꼭 좀 보고 싶은걸.”

 

  그래스트형이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우락부락한 덩치의 남자가 저런 표정을 지으니 엄청 위험해 보인다. 무서워.

 

  “그럼 이야기도 다 들었고 슬슬 갈까.”

 

  그래스트형이 남은 녹차를 한 번에 마시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를 배웅하기 위해 나도 일어났다.

 

  “잘 먹었다. 그리고 그 석판의 언어. 나도 한 번 조사해볼게. 솔직히 소득은 없을 것 같지만 말이야.”

  “감사해요. 만약 잘 되면 성과금 좀 때줄게요.”

  “말만 들어도 기분 좋네.”

 

  그래스트형은 호탕하게 웃으며 현관을 나섰다.

  부엌으로 돌아가 냄비와 그릇들을 정리했다. 그래스트형과의 수다를 때문일까? 홀로 사는 집 특유의 정적이 새삼스러웠다. 뒷정리를 마치니 하늘의 노을빛이 점점 사라져 완벽히 어두워지기 직전이었다. 침실로 가 랜턴걸이에 걸려있는 랜턴을 빼 들고 안에 있는 초에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환한 주황 불빛이 어두운 집안을 밝혔다.

  졸릴 때 까지 읽을 책을 고르기 위해 서재로 향했다. 방의 한 면을 빼곡히 채운 책장을 랜턴으로 비추며 흩어봤다. 고민을 거듭하다 정한 책은 소설이었다. 상업도시 히렌에 있는 중고책방에서 사온 추리소설이다. 표지가 마음에 들어 샀는데 내용은 과연 어떨지?

  침실로 돌아가 랜턴걸이에 랜턴을 걸고 침대에 편한 자세로 앉아 책을 펼쳤다. 촛불 빛에 의지해 문장을 읽어 내렸다.

  이야기의 주요 골자는 먹고 살기 위해 도둑질을 하지만 선한 심성덕분에 갑부들의 집만 털고, 그마저도 최소한으로 필요한 돈을 제외하고는 전부 기부하는 도둑이 암암리에 활동하는 악의 집단과 연루되며 벌어지는 암투였다. 문체가 속도감 있고 주인공의 성격이 시원스러워서 술술 읽혔다. 도둑이 악의 집단의 수장과 접촉하는 장면을 끝으로 제1장이 끝났다. 확실히 재밌네 이거.

  재밌는 건 아껴보는 성격이기도 하고 슬슬 눈꺼풀도 무거워져서 책을 덮고 촛불을 껐다. 침대에 몸을 눕히자 노곤함이 급하게 밀려왔다.

  눈을 감자 문득, 머리속에 그려진 소설 주인공의 모습에 마리가 겹쳐보였다.

  요 한 달간 마리가 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소설의 주인공처럼 악한 집단에게 도망 다니느라 이 마을에 오지 못하는 건가?

 

  ‘소설을 너무 재밌게 봤나?’

 

  스스로 생각하고도 우스운 공상에 피식 웃음이 났다.

  내일은 아침 일찍 마을 공용 마구간에서 말을 빌려 히렌에 갈 예정이다. 말을 타고 1시간을 넘게 달려야 하니 체력적으로 엄청 고단할 것이다. 빨리 잠들어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

  히렌이 자랑하는 천칭도서관. 그곳에 거금을 갖다 바치며 신청한 고대 언어 관련 서적에 석판의 비밀에 대한 단서가 있기를 빌며 잠에 들었다. 아니, 진짜 제발 좀 있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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