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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영혼치기
작가 : 골드보이
작품등록일 : 2018.11.4

부딪히면 몸이 바뀌는 세상. 남의 몸을 욕망하는 사람들. 그리고 영혼치기.

 
10. 익호
작성일 : 18-11-15 22:45     조회 : 284     추천 : 1     분량 : 2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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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트러진 모습으로 소파 위에 누워있는 은영의 가슴이 위아래로 빠르게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그녀가 보여준 반응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과연, 새로운 몸은 익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꿈틀거리던 욕망을 충족시킨 익호는 다시 싸늘한 머리를 되찾았다. 아직 처리해야할 귀찮은 일이 남아있었다.

 

 “어떻게, 서진우씨는 잘 계시나?”

 

 서진우, 라는 말에 은영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리고는 상체를 일으켜 소파에 앉았다. 탐스러운 가슴은 그대로 드러낸 채였다.

 

 “네, 비산병원 VIP실에 입원해 있습니다.”

 “그런 걸 사흘이나 살려 둬야 한다니 맘에 안 들어.”

 “걱정하지 마십시오. 윤 실장이 잘 지키고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해 아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도 맘에 안 들고.”

 

 영혼치기 중개인이라는 여자, 몸을 배달해준 영혼치기 녀석, 자신의 몸에 들어간 서진우에게 사망선고를 내릴 심 박사, 윤실장과 그의 부하. 그리고 한은영까지. 이 비밀스런 일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여섯 명이나 된다니.

 

 때가 되면 모두 사라져야 할 인간들이었다. 그 때가 오면 모든 일은 익호 혼자 완벽하게 처리할 것이다. 첫 번째 처리대상은 가장 손쉬운 은영으로 생각하고 있다. 토사구팽, 익호의 충실한 개인 은영은 주인을 위해 기꺼이 삶아져야만 한다.

 

 “샤워하고 나올 테니 병원에 가보자고.”

 

 익호는 욕실로 성큼 걸어갔다. 뒤를 돌아보니 은영이 바닥에 떨어진 블라우스를 주워 입고 있었다. 평소에는 별로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차분한 아이였는데, 오늘따라 어딘지 모르게 들뜬 사람처럼 허둥대는 분위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욕실에 들어선 익호는 찬물로 땀만 대충 닦아냈다. 그리고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새얼굴을 보며 말했다.

 

 “넌 이제 내 아들이다. 김세준.”

 

 익호는 앞으로 김세준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것이다. 새로 작성한 유언장에는 김세준이 자신의 친자 - 30년 전 스위스에서 알게 된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 이며 전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김세준, 익호는 다시 새 이름을 되뇌며 욕실에서 나와 드레스 룸으로 들어갔다. 드레스 룸에는 은영이 사온 양복과 와이셔츠가 반듯하게 걸려있었다. 역시 은영은 쓸모 있는 개였다. 머지않아 없애버려야 한다니 아깝긴 하지만.

 

 옷걸이에 걸린 와이셔츠를 내리는데 지진이 난 것처럼 몸이 울렁, 흔들렸다. 가벼운 현기증이었다. 익호의 영혼과 새로운 몸이 완전히 합쳐지려면 사흘이 걸린다던 영혼치기의 말을 떠올렸다.

 

 우우, 익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와이셔츠를 입었다. 와이셔츠의 마지막 단추를 채웠을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에너지가 넘쳤다.

 

 “한 비서, 어서 출발하지.”

 

 익호가 드레스 룸에서 양복을 입고 나오며 말했다. 손에는 페라리 열쇠고리가 달린 차키를 지ㅜ고 있었다.

 

 “네, 회장님.”

 “어허, 회장님이라 부르면 안 되지.”

 “아, 네. 전무님.”

 “정신 차리라고.”

 

 익호는 은영의 뒷목을 꼬집듯이 쥐었다 놓았다. 그리고는 은영이 사온 페라가모 로퍼를 신었다. 로퍼는 맞춘 것처럼 발에 딱 맞았다. 어느 틈에 새 몸의 발 치수까지 확인한 걸까?

 

 지하로 내려가 차키를 누르자, 주차장에 늘어서 있던 고급차들 중 새빨간 페라리의 눈이 음산하게 빛났다.

 

 “회장님,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은영이 재빨리 운전석으로 향했다. 익호는 은영의 팔목을 잡았다.

 

 “내가 직접 하겠네.”

 

 그가 운전석에 앉았다. 오랜만에 신나게 도로를 달리고 싶어 일부러 페라리를 골랐는데, 은영에게 운전대를 맡길 수는 없었다. 단순히 핸들을 잡는 행위만으로도 몸속에 끓고 있는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익호는 엑셀을 힘껏 밟았다.

 

 출근 시간이 지난 평일 오전의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110, 120, 140, 160... 계기판의 숫자가 올라갔고, 페라리가 낮게 포효하며 질주했다. 스피커에서는 고막을 긁는 듯한 메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운전하는 중만 아니라면 헤드뱅잉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속도를 줄이고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만남의 광장으로 들어가는데 초여름 햇살이 차창에 내리쬐었다. 순간, 시야가 하얘졌다. 익호는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며 갓길 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안전벨트를 매고 있던 은영의 상체가 앞으로 숙여졌다.

 

 “회장님, 아니 전무님, 괜찮으세요?”

 

 은영이 그를 보며 다급하게 물었다.

 

 “뭘, 호들갑 떨 필요 없어.”

 “아직 무리하시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72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아무래도...”

 

 쯧, 익호가 혀를 차며 벨트를 풀었다. 은영이 얼른 일어나 운전석으로 오는 동안 익호는 조수석으로 몸을 옮겼다. 젠장, 익호는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창 너머 풍경을 내다봤다.

 

 사흘만 참자, 그러면 이 몸은 완전히 내 것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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