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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King's Road
작가 : Xien
작품등록일 : 2018.11.2

왕도(王道)란 무엇인가? 왕이 될 자는 누가 선택하는 것이고 누가 그 길을 것는 것인가?

강대국 리엔왕국에서 소리없는 왕권 쟁탈전이 벌어진다.
과연 왕이 되는 자는 누구인가?

 
7화
작성일 : 18-11-14 21:48     조회 : 305     추천 : 0     분량 : 5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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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잠에 빠진 레널드는 누군가가 자신을 흔드는 느낌에 눈을 살며시 떴다. 밤에 빨갛게 타오르던 난롯불은 꺼져 벽난로 안에 까만 재만 남아있었다. 레널드가 다시 눈을 감으려고 하자 다시 누군가가 자신을 흔들었다.

 

  “레널드! 일어나라니까?”

 

  레널드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자 말끔한 세라의 얼굴이 보였다. 세라는 한껏 들뜬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야?”

 

  며칠간 제대로 잠을 못잔 레널드는 멍한 상태로 눈을 비볐다.

 

  “아침 먹으러 가야지. 벌써 해가 뜬지 오래됐어.”

 

  아침이란 말에 레널드는 잠이 깨는 것 같았다. 어제 맛본 음식의 맛을 떠올리니 저절로 입에 침이 고였다. 여관 직원이 가져다놓은 물에 간단히 세수를 한 레널드는 재촉하는 세라를 두고 벽난로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벽난로에 잔뜩 쌓여있는 재를 한 움큼 쥐어 머리에 문질렀다. 레널드의 이상한 행동에 세라는 당황했는지 얼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난 내 머리색이 싫어. 너무 튀어.”

 

  레널드가 다시 재를 한 움큼 쥐어 머리에 문질렀다.

 

  “네 머리색이 얼마나 예쁜데! 그러지마.”

 

  세라의 만류에도 레널드는 꿋꿋이 재를 머리카락에 고루고루 묻혔다. 레널드의 머리는 이제 우중중한 검회색을 띄었다. 레널드는 만족했는지 손을 대충 물에 씻고 방문을 열고 나갔다. 세라도 어이없어 하면서 레널드의 뒤를 따라갔다.

  나무 계단을 내려가니 주인장이 휘파람을 불며 홀을 청소하고 있었다.

 

  “아저씨. 좋은 아침이에요.”

 

  세라의 말에 주인장은 걸레를 한쪽 벽에 세워두고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침이라기엔 늦었지만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 식사는 잘 했나요? 깨끗한 접시를 봐선 저희 음식이 잘 맞는 듯 한데.”

 

  “너무 너무 너무 맛있었어요. 제 인생 최고의 음식이었어요.”

 

  세라의 극찬에 주인장은 기분 좋게 웃었다.

 

  “아가씨가 뭘 좀 아는군요? 이 아데르 시에서 주최하는 음식점 음식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곳이니 오죽 하겠어요? 저희 웨이드 여관 음식을 먹으려고 다른 나라에서까지 손님들이 온답니다. 먹고 싶은 걸 말하면 만들어 줄게요.”

 

  진실인지 의심스러운 주인장의 말을 들으며 세라와 레널드는 카운터와 가까운 나무 테이블에 앉았다.

 

  “체칠리아는?”

 

  “아까 뭐 사러 갈게 있다고 잠깐 나갔다 온다고 했어.”

 

  세라의 말을 들으며 레널드는 어제 먹었던 빵과 스프를 주문했다. 세라도 레널드와 같은 것을 주문했다. 레널드와 세라가 빵과 스프를 맛있게 먹고 있자 곧 문에 달린 종소리가 나며 체칠리아가 들어오더니 세라 옆에 앉았다. 체칠리아는 따뜻한 차를 주문했다.

 

  “어디 갔다 온 거야?”

 

  “잠깐 시장에 갔다 왔어.”

 

  그러면서 체칠리아는 주머니에서 작은 귀걸이 두 개를 꺼내 보여주었다. 작지만 반짝반짝한 것을 보니 꽤 고가인 것 같았다. 그 귀걸이는 왜 샀냐고 물어보는 세라와 레널드의 말에 체칠리아는 나중에 얘기해준다고 하고는 따뜻한 차를 마셨다. 식사를 다 마친 레널드와 세라는 체칠리아와 함께 방에 올라왔다. 체칠리아가 열어놓은 문을 다 닫았다. 레널드와 세라는 멀뚱히 침대에 걸터앉아 체칠리아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체칠리아는 주머니에서 아까 시장에서 샀다는 작은 귀걸이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 손을 포개어 올려놓았다. 체칠리아가 두 손을 귀걸이에 올려놓은 채로 눈을 감고 알 수 없는 복잡한 말을 중얼거리자 귀걸이에 희미한 빛이 감돌았다. 한동안 그 자세로 중얼거리던 체칠리아의 목소리가 멈추자 귀걸이에 감돌던 빛도 사라졌다. 체칠리아가 손을 치우자 아까 홀에서 봤던 귀걸이와 별 차이가 없었다. 체칠리아는 그 귀걸이를 레널드에게 내밀었다. 귀걸이를 멀뚱거리며 쳐다보는 레널드에게 체칠리아가 말했다.

 

  “안 받고 뭐해?”

 

  레널드는 영문을 모른 채 귀걸이를 받아들었다. 여자들이나 하는 귀걸이를 왜 자신에게 주었는지 이해가가지 않는 레널드가 다시 체칠리아를 바라보았다.

 

  “껴봐.”

 

  “이거 여자들이나 하는 거잖아? 그리고 난 귀도 안 뚫었어.”

 

  레널드의 말에 체칠리아는 가죽가방에서 작은 바늘을 하나 꺼내더니 난롯불에 살짝 넣었다 뺐다. 아무래도 바늘을 소독하는 것 같았다. 바늘을 바라보던 세라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체칠리아. 나한테 맡겨.”

 

  바늘을 받아든 세라가 레널드에게 다가가자 레널드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체칠리아가 붙잡는 바람에 꼼짝없이 붙잡혔다. 살을 뚫는 섬뜩한 느낌에 레널드는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걱정했던 것 보다 빨리 끝났다. 세라가 곧 레널드의 귀에 귀걸이를 채워주자 세라의 놀란 비명소리가 들렸다.

 

  “왜 그래?”

 

  “네 머리색이 갈색으로 바뀌었어!”

 

  세라의 말에 레널드는 얼른 머리카락을 잡아 눈앞에 대니 정말 진갈색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우와!”

 

  “눈동자 색도! 검은색으로 바뀌었어!”

 

  또다시 터진 세라의 감탄의 비명에 레널드는 얼른 물 컵에 담긴 물을 들여다보았다. 세라의 말 대로였다. 세라의 존경하는 눈빛을 느낀 체칠리아가 헛기침을 하며 무심하게 말했다.

 

  “귀걸이에 변화마법을 살짝 걸었어. 네 튀는 외모 때문에 어제 내가 고생했으니 그런 일 없게 하려는 것 뿐이야. 그 귀걸이를 빼면 다시 원래 색으로 돌아와. 하지만 충고하는데 안 빼는게 나을 거야.”

 

  레널드는 믿기지 않는 듯 자신의 머리카락을 연신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체칠리아는 바로 수도 에스트렐라(estrella)로 출발하려고 했으나 세라와 레널드의 반대에 부딪혀 필요한 물품을 시장에서 산 뒤,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떠나기로 결정되었다. 시장을 들리자는 의견은 레널드가 내었고, 점심을 먹고 가자는 의견은 세라가 내었다.

 

  “난 더 이상 그 맛없는 크래커 못 먹겠어.”

 

  레널드가 얼굴을 구기며 몸을 부르르 떨자 세라가 까르르 웃었다.

 

  “나도 찬성이야.”

 

  세라까지 그렇게 나오니 체칠리아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니들 맘대로 해라.”

 

  체칠리아의 말에 세라와 레널드는 환호성을 지르며 기분이 한 껏 상한 얼굴의 체칠리아를 억지로 끌고 여관을 나섰다. 세라는 아데르시의 구조를 잘 아는 듯 레널드의 손을 잡고 연신 폴짝 거리며 거리를 뛰어다녔다. 처음엔 한껏 얼굴을 구긴 체칠리아도 세라의 모습에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세라는 원래 밝고 명랑한 성격이었는지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도 싹싹하게 가격 흥정을 하기도 했다. 레널드는 활기차고 복잡한 시장풍경에 완전히 넋이 나갔다. 시장에는 왕궁에서 봤던 것보다도 훨씬 많은 물건들이 오갔고, 다양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조리가 되지 않은 식재료들도 볼 일이 없었기에 레널드의 눈에 시장은 별천지였다. 세라의 주도로 에스트렐라로 가는 도중에 먹을 베이컨, 빵, 밀가루, 달걀 등 식재료를 샀고 그것들을 넣을 배낭도 2개나 샀다. 레널드는 체칠리아에게 당나귀를 한 마리 사자고 했으나 체칠리아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괜히 사람들 눈에 띌 필요 없어. 우린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길로 은밀하게 움직일 거야.”

 

  체칠리아의 말은 곧 걸어간다는 말이었기에 레널드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직 그전의 상처가 다 낫지도 않았는데 다시 장거리를 걸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장을 다본 셋은 웨이드 연관으로 돌아와 점심식사를 했다. 세라가 용감하게 고기요리를 주문했고, 체칠리아의 따가운 눈총을 받긴 했지만 세라는 꿋꿋이 주문을 취소하지 않았다. 세라가 주문한 고기요리가 나오자 그 향과 모습에 압도된 레널드는 애처롭게 체칠리아를 바라보았고 결국 체칠리아는 고기요리 2인분을 더 시키는 것으로 손을 들었다. 주인장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정중하게 고기요리를 대령했고, 모두 그 모습에 한바탕 웃고 나서야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고기의 부드러운 육질과 고소한 육즙에 레널드는 거의 숨도 안 쉬고 음식을 허겁지겁 먹었다.

  식사가 마무리 되고 떠날 준비를 위해 방으로 올라온 셋은 각자 짐을 꾸렸다. 사실 레널드와 세라는 짐이 없으니 체칠리아 혼자만 짐을 꾸렸다.

 

  “세라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

 

  묵직한 가방을 메며 체칠리아가 말하자 세라의 얼굴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다시 인신매매 업소에서의 세라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저기…. 체칠리아. 나도 수도로 데려가 주면 안 될까?”

 

  사실 세라가 레널드와 체칠리아와 함께 갈 이유는 없었다. 레널드가 추측하기로는 세라는 아마도 아데르 시의 시민일 것이고 집도 이곳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아마도 찢어지는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협박에 못 이겨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업소에 팔아넘겼을 거라는 것이 레널드의 추측이었으나 세라의 반응으로 보았을 땐 아마도 그가 모르는 사연이 더 있는 듯 했다.

 

  “나는 단순한 여행을 하는게 아니야. 네가 같이 가면 위험해 질 수 있어. 집에 돌아가 가족들과 사는게 좋을 거야.”

 

  체칠리아가 점잖게 말했지만 그녀의 말은 세라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었다. 세라도 바보가 아닌 이상 체칠리아의 말을 이해했을 것이나 세라는 물러나지 않았다.

 

  “체칠리아! 제발…. 날 데려가줘. 수도에 가서는 너희들의 발목을 잡지 않을게. 난…. 난….”

 

  울먹거리며 체칠리아의 팔을 붙잡고 애걸복걸하는 세라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 레널드는 그런 세라의 모습에 다시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체칠리아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차가운 체칠리아의 모습에 레널드는 다시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치미는 것이 느껴졌다. 저 공허하면서도 차가운 붉은 눈을 참을 수가 없었다.

 

  “넌 정말 너무해! 세라 한 사람 데려가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잖아! 세라의 부탁을 들어주면 안 돼? 이렇게 책임지지 않을 거면 왜 대체 세라를 데리고 나온건데?”

 

  도전적인 어투의 레널드의 목소리에 체칠리아의 눈에 처음으로 불꽃이 튀겼다.

 

  “말은 똑바로 해. 세라는 네 부탁으로 데려 온 거야.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나에게 책임전가하지? 사실상 무책임한 건 너 아닌가? 레널드? 세라 한 명 데려가는 건 나에게 식은 죽 먹기라고? 그래, 너에겐 그렇게 보였어? 정말 내가 아무런 대가 없이 이 힘을 얻었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니 네 눈에 비친 나는 냉혈한에 분에 넘치는 힘을 받은 거만한 여자로 보였겠지. 남의 사정도 모른 채 자신만이 정의롭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착각에 빠져 흥분에 도취되어 아무 말이나 내뱉는 인간들을 난 제일 증오해. 그게 바로 너야.”

 

  예상하지 못한 체칠리아의 말과 태도에 레널드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리고 자신 때문에 두 사람이 싸우자 세라도 놀랐는지 큼직한 눈망울이 촉촉해진 채 얼어있었다. 순식간에 얼어붙은 분위기에 체칠리아도 평정을 되찾았는지 머리를 헤집으며 한숨을 쉬었다.

 

  “세라. 난 네게 강요할 이유가 없어.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난 단순히 너의 안위가 걱정되어 조언을 한 거고. 물론 저 꼬맹이는 그게 매우 마음에 안 들었나 보지만. 네가 위험을 감수하고 우리를 따라온다면 막지 않을 거야. 그건 너의 선택이니까.”

 

  체칠리아의 의외의 말에 무안해진 것은 레널드였다. 레널드는 당연히 체칠리아가 세라를 거부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그런 건 미리 얘기해주면 됐잖아.”

 

  무안함에 떨리는 레널드의 목소리에 체칠리아는 실소를 했다.

 

  “그전에 네가 먼저 선입견과 편견을 버려. 자,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으니 출발하지.”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유유하게 방을 나서는 체칠리아의 뒷모습을 보며 레널드는 얼굴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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