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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King's Road
작가 : Xien
작품등록일 : 2018.11.2

왕도(王道)란 무엇인가? 왕이 될 자는 누가 선택하는 것이고 누가 그 길을 것는 것인가?

강대국 리엔왕국에서 소리없는 왕권 쟁탈전이 벌어진다.
과연 왕이 되는 자는 누구인가?

 
6화
작성일 : 18-11-12 21:28     조회 : 296     추천 : 0     분량 : 7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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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버러지 같은 것들아! 빨리 안 일어나?!”

 

  요란하게 철창이 잘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 잔뜩 쉰 노인의 목소리에 레널드는 어지러운 꿈속에서 깨어났다. 세라도 잠이 들었었는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이 년들이 아주 팔자가 늘어졌어! 고생을 덜 했다 이거지? 좀만 참아라, 이 년들아. 곧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게 될 테니.”

 

  온갖 욕설을 중얼거리며 거칠게 철창을 열은 노인이 레널드와 세라를 발로 차며 일어나라고 재촉했다. 노인은 세라와 레널드가 일어나자 그 둘의 손목을 밧줄로 묶고 어디론가 데려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팔려갈 거라는 생각에 레널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다급하게 노인에게 물었다.

 

  “저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레널드의 말에 노인은 걸음을 멈추더니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레널드에게 다가가 뺨을 때렸다.

 

  “말대꾸 하지 마!”

 

  입술이 터져 입가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노인은 다시 그들을 끌고 발걸음을 떼었다. 노인이 멈춘 곳은 나무로 된 문 앞이었다. 열쇠로 방문을 열고 레널드와 세라를 안으로 떠밀었다. 레널드와 세라가 방안으로 들어가자 노인은 문을 거칠게 닫으며 열쇠로 잠그고 가버렸다. 그곳은 전에 있었던 감옥 보다 컸고 천장 쪽에는 작은 창문도 달려있어 훨씬 밝았다. 밝다고는 하나 겨우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얼굴만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멀뚱멀뚱 서서 주위를 둘러보는 레널드의 팔을 세라가 잡아끌어 구석으로 갔다.

 

  “여기에 다른 애들도 있어.”

 

  작게 속삭이는 세라의 말에 레널드의 눈에 그제야 방 이곳저곳 구석에 쭈그려 있거나 누워있는 소녀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레널드는 그녀들이 세라의 나이또래쯤 되는 소녀라고 확신했다.

 

  “근데 왜 남자애들은 없는 거야?”

 

  “업소에는 남자들이 없잖아. 그리고…. 뭐, 가난한 남자애들은 투기장이나 군대에 팔려 가는게 보통이니까…. 근데 요새는 남자를 밝히는 남자들도 많아서 너처럼 예쁘장한 남자애들도 종종 이곳으로 와서 업소에 팔려간다고 하더라.”

 

  세라가 이런 지식을 어디서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자여서 풀려날 것이란 희망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왕궁에 드나드는 귀족 소녀들이 바느질이나 꽃꽂이를 배우며 가끔 도심으로 나들이를 가는 모습만 보고 여성들의 삶은 항상 여유롭고 아름답게만 보여 부러웠었는데 이곳에 있는 소녀들에게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몸을 팔라는 강요를 받는 현실은 너무도 가혹했다. 세라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속삭이던 중 갑자기 둔탁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거칠게 자물쇠를 여는 소리가 나고 문이 열렸다. 아까 세라와 레널드를 끌고 왔던 노인이었다.

 

  “베실라! 힌!”

 

  노인이 문 앞에 서서 이름을 호명하자 구석에 앉아있던 소녀 2명이 일어나 문가로 다가갔다. 노인은 그 소녀들을 데리고 문을 쾅 닫고 다시 자물쇠로 잠그고 가버렸다. 노인의 발자국 소리가 사라지자 방안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세라, 아까 그 여자애들은 어디로 가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아마 경매장에 나가는 것 아닐까?”

 

  세라도 몹시 긴장을 했었는지 두 손으로 가슴을 문지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레널드는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조만간 자신의 차례가 올 거라는 불안감에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공포와 불안감속에서 몸을 떨며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 때는 방안에 세라와 레널드를 포함해 5명만 남았다. 이름이 호명되어 나갔던 소녀들이 결코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루나라는 이름의 소녀가 호명되어 방을 나가고 나서 한동안 노인이 찾아오지 않았다. 레널드가 서서히 잠에 빠져들려고 했을 때 드디어 그가 두려워했던 일이 일어났다.

 

  “레널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레널드는 벌떡 일어났다. 세라가 큰 눈망울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레널드가 바들바들 떨면서 문가로 다가가자 노인이 레널드를 홱 밀어 문 밖으로 나오게 하고는 거칠게 문을 걸어 잠그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노인이 도착한 곳은 어떤 문 앞이었는데 정중하게 노크를 하고 문을 열고 레널드를 데리고 들어갔다. 방 안엔 촛불이 여러 개 켜 있어 환했다. 순간적으로 밝은 빛에 레널드는 눈을 찡그렸다.

 

  “마법사님. 이 아이가 맞습니까?”

 

  걸걸한 목소리에 안 어울리게 아부를 떨 듯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남자의 음성 뒤에 들린 날카로운 목소리는 익숙한 것이었다.

 

  “맞아. 레널드 이리 와.”

 

  방 한 가운데 커다란 가죽 의자에 체칠리아가 거만하게 앉아 있었고 그 주위로 전에 감옥에 있을 때 레이디 앤과 함께 있었던 남자를 포함해 4명의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레널드는 멍한 표정으로 체칠리아에게 다가가 그녀 뒤에 섰다.

 

  “이제 마법사님의 일행도 찾았으니 저희가 출구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레이디 앤과 함께 있었던 남자가 몸을 굽신 거리며 말하자 체칠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칠리아가 막 걸음을 떼려고 할 때 레널드가 체칠리아의 망토를 잡아끌었다. 체칠리아가 얼굴을 구기며 뒤돌아보자 레널드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라도 데려가줘.”

 

  체칠리아는 골치가 아픈 듯 머리를 손으로 짚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가 마침 옆에서 시중들 여자애가 필요한데 말이야? 여기에 세라라는 애를 사지.”

 

  말과 함께 체칠리아는 품에서 금화 몇 닢을 꺼내 땅에 던졌다.

 

  “아, 예예.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폴! 당장 세라를 데려와!”

 

  남자의 말에 노인이 문을 열고 나가고 얼마 뒤 겁에 잔뜩 질린 세라를 데리고 들어왔다.

 

  “자, 인사드려라. 이제부터 네 주인님이시다!”

 

  세라는 가죽의자에 앉아있는 자기 나이 또래의 체칠리아와 그 뒤에 있는 레널드를 보고 눈이 커졌다.

 

  “안…안녕하세요. 세라라고 합니다.”

 

  세라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자 체칠리아가 곁에 오라고 손짓했다. 세라가 체칠리아 옆으로 다가가자 체칠리아는 왼손에 세라의 손을 잡고 오른손에 레널드의 손을 잡았다.

 

  “자, 그럼 용무를 마쳤으니 가보도록 하지. 아, 배웅은 필요 없어.”

 

  말을 마친 체칠리아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중얼거리니 그녀의 주변에서 빛이 일어 사방이 밝아졌다. 밝은 빛에 레널드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눈 떠도 돼.”

 

  체칠리아의 말에 레널드가 눈을 뜨니 어두컴컴한 길 위였다. 체칠리아 옆에 서있던 세라는 다리가 풀렸는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체칠리아.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빨리 여기를 빠져나가야해.”

 

  레널드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한 체칠리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멀지 않은 곳에서 무엇인가 폭발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세라도 정신이 들었는지 벌떡 일어났다.

 

  “끝없는 어둠이여, 이들을 잠시 그대의 품에 숨겨주소서.”

 

  체칠리아가 중얼거리며 레널드와 세라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았다.

 

  “자, 이제 너희는 30분 동안 안보일거야. 그러니 입 다물고 조용히 날 따라와.”

 

  체칠리아의 말에 레널드는 세라가 서 있던 곳을 보았지만 세라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세라도 레널드 쪽을 바라보았는지 작게 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레널드와 세라는 체칠리아를 놓치지 않게 걸음을 빠르게 놀리며 체칠리아를 쫓아갔다. 점차 주변에서 감돌던 스산한 느낌은 없어지고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이 느껴졌다. 늦은 밤이라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었지만 간혹 밤 순찰을 도는 경비병들의 모습이 보였다. 체칠리아는 큰 광장 옆에 있는 한 여관에 들어갔다. 여관 문이 열리자 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이리 늦게 다니면 위험합니다. 아가씨.”

 

  텅 빈 홀 난롯불 앞에 앉아 있던 주인장처럼 보이는 뚱뚱한 중년의 남성이 체칠리아가 들어오자 쾌활한 목소리로 말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찌하다보니 늦었네요. 아저씨 나 지금 무척 배고프니 지금 준비할 수 있는 만큼 음식을 해서 방으로 좀 올려주겠어요? 한 3명 정도가 먹을 수 있는 양으로요.”

 

  “뭐…. 준비는 해드릴 수 있지만….”

 

  체칠리아의 말에 남자는 말을 흐리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막 잠이 든 주방직원들을 깨우기가 곤란한 모양이었다.

 

  “돈이라면 후하게 주죠. 내가 비싼 술도 계산 할 테니 이따가 직원들하고 마셔요.”

 

  체칠리아가 금화 한 닢을 꺼내 남자의 손에 쥐어주니 주인장의 표정은 금세 밝아졌다.

 

  “아이고, 정말 마음씨 착한 아가씨네요! 복 받으실 거예요~ 아가씨.”

 

  주인장의 말을 뒤로 한 채 체칠리아는 홀을 지나 나무로 된 계단을 올라가 구석에 위치한 방으로 들어갔다. 체칠리아가 방문을 닫고 얼마 안 되어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노크소리가 나고 문이 열렸다.

 

  “식사가 준비될 동안 더운물 좀 준비해드릴게요.”

 

  앞치마를 두른 젊은 여자가 양손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이 담긴 나무통을 가지고 방 한쪽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마 그곳에 욕조가 있는 모양이었다. 여직원이 더운물을 준비해두고 방을 나가자 체칠리아가 가죽가방에서 단출한 원피스를 꺼냈다.

 

  “세라라고 했나? 네가 먼저 들어가서 씻고 옷은 이걸로 갈아입어.”

 

  벌써 30분이 지났는지 어느새 세라와 레널드는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와 있었다. 세라는 체칠리아에게 옷을 받아들고 꾸벅 인사를 하고는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세라가 욕실로 사라지고 나서 둘만 남은 체칠리아와 레널드 사이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어머니를 죽인 원수이자 그의 목숨을 2번이나 살려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동시에 원망의 마음이 크게 일어 혼란스러웠다. 지금도 그를 구해준 그녀에게 고마움의 말을 해야 말까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고민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 이번 일의 원인은 체칠리아에게 있었다고 생각하기에 레널드는 고마움의 마음보단 오히려 그녀에 대한 원망이 더 커지고 있었다. 레널드가 고민에 빠진 사이 체칠리아는 방 한쪽에 위치한 벽난로에 장작을 몇 개 더 넣으며 부지깽이로 장작불을 뒤적였다.

 

  “아가씨, 들어갑니다.”

 

  방안의 숨 막히는 정적을 깨는 주인장의 쾌활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나무로 된 방문이 천천히 열리고 쟁반 가득 음식을 준비해온 주인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식탁에 차려온 음식을 놓으며 주인장은 연신 쾌활한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저희 집 음식이 맛있기로 소문이 났는데, 지금은 깜깜한 밤중이라 제대로 맛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이 아쉽군요. 내일 저녁에 최고의 고기 요리를 준비해드리죠. 아마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감동의 눈물이 날겁니다. 하하하.”

 

  호들갑떠는 모습에 긴장되어 뻣뻣하게 굳었던 레널드의 얼굴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주인장이 엄살을 떨면서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왕궁에서 자란 레널드가 보기에도 썩 괜찮은 상차림이었다. 담백하게 구워낸 빵 두 덩어리와 그에 곁들일 버터부터 따뜻한 스프, 소금에 절인 소고기와 절인 오이, 사과 파이와 고소하게 구운 계란 프라이까지 푸짐했다. 산사태를 만난 날부터 제대로 된 식사를 한 적이 없는 레널드는 상에 차려진 음식과 그 냄새에 저도 모르게 멍하니 입을 벌리고 음식을 바라보았다.

 

  “제가 보기엔 정말 훌륭한데요?”

 

  침을 삼키며 레널드가 말하자 주인장은 레널드를 보며 많이 먹고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는 말을 남긴 뒤 방을 나갔다. 목욕을 마쳤는지 젖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얼굴이 벌개진 세라가 목욕탕에서 나왔다. 체칠리아의 원피스를 입은 세라의 몸은 안쓰러울 정도로 말라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다시 생기가 돌며 분위기가 사뭇 달라보였다. 레널드까지 씻고 셋은 식탁에 둘러앉았다. 세라는 자신 앞에 펼쳐진 진수성찬에 꿈이라도 꾸는 듯 연신 눈을 깜빡거리는 것을 반복했다. 체칠리아가 빵을 잘라 세라와 레널드에게 나누어주고 스프에 빵을 적셔 입에 집어넣자 눈치를 보던 세라도 조심스럽게 숟가락으로 스프를 떠서 먹었다. 세라의 눈이 곧 동그래지며 정신없이 스프를 떠먹기 시작했다. 레널드도 빵에 버터를 바르고 한입 베어 물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음식이 맛있다는 주인장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벌써 스프를 한 접시 다 먹어치운 세라가 사과파이를 집어 들었다.

 

  “아가씨. 정말 정말 맛있어요. 제가 먹어본 음식 중에 제일 맛있는 것 같아요.”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에 체칠리아는 희미하게 웃었다.

 

  “나랑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말 편하게 해도 돼.”

 

  체칠리아의 말에 세라는 고개를 여러 번 저었다.

 

  “아뇨! 어떻게 주인님한테 말을 편하게 해요. 저는 이게 편해요.”

 

  “난 네 주인이 아니야. 이 골치 아픈 꼬맹이 때문에 주인 행세를 하면서 널 샀을 뿐이야. 네 주인은 너지, 그 누구를 주인으로 섬기며 살 필요는 없어.”

 

  체칠리아의 말에 세라는 다시 한 번 눈이 커지며 체칠리아와 레널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커다란 세라의 눈망울이 촉촉해졌다.

 

  “고마워요. 아가씨. 고마워, 레널드.”

 

  “내 이름은 체칠리아야. 앞으로 체칠리아라고 불러.”

 

  체칠리아의 말에 세라는 고개를 숙여 작게 끄덕이고 소매로 눈을 슬쩍 닦았다. 그 모습에 레널드도 코끝이 시큰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입에 음식을 가득 넣고 우물거리며 세라를 바라보면서 울먹대는 레널드를 바라본 세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뒤에도 한참동안 레널드와 세라는 전투적으로 음식을 해치웠다. 그 많던 음식이 접시에서 모두 사라지자 그제야 레널드와 세라는 만족한 표정으로 배를 두드리며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주인장이 음식과 함께 마련해준 차를 홀짝홀짝 마시며 세라가 입을 열었다.

 

  “저…. 체칠리아. 너는 마법사인거지?”

 

  체칠리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세라는 레널드를 바라보았다.

 

  “그럼, 레널드. 너는 체칠리아의 제자인거야?”

 

  그 말도 안 되는 말에 레널드는 손짓을 해가며 부정했다.

 

  “아니! 절대 아니야! 그냥…. 어쩌다 같이 다니게 됐어.”

 

  “그래? 마법사의 제자였으면 더 근사했을 것 같은데…. 난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런 마법 같은 일들이 일어날 줄은 몰랐어. 방금 전까진 내 인생은 시궁창이었는데 지금 이렇게 좋은 친구들하고 같이 맛있는 음식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니까 꿈만 같아.”

 

  세라의 말에 레널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근데 체칠리아. 어떻게 날 찾은 거야?”

 

  지금껏 계속 궁금해왔던 것을 레널드는 조심스럽게 꺼냈다. 레널드의 말에 차를 한 모금 마신 체칠리아가 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곳은 수도와 가까이 있는 도시인만큼 안전하고 화려하지만 그만큼 더러운 뒷골목도 많이 발전한 곳이거든. 도둑, 사기꾼, 암살자, 도박꾼, 창녀들이 우글거리는 곳이지. 근데 내가 너를 두고 간곳은 그 뒷골목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야. 보통내기들이 아니고서는 주택가에서 납치를 감행할 녀석들은 몇 없거든. 그리고 내가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감시의 눈길이 계속 따라왔어. 아마도 나를 감시했던 녀석들이 너를 납치해간 것이었겠지. 내가 의뢰금을 받으러 간 그놈들과 인신매매 업소 놈들이 분명 일을 함께 꾸민 것일 거라고 생각했어. 아니 확신을 했지. 그런 놈들이니까. 내가 의뢰소에 다시 갔을 땐 발뺌을 하더군. 자기네는 그런 더러운 놈들하고 일을 같이 안한다는 거야. 참 웃기지? 자기들도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고 별 더러운 짓을 다하는데 말이야. 마법으로 좀 겁을 주고 협박을 했더니 그제야 털어놓더군. 너를 잡아간 곳을 알려줄 테니 자기네들은 이번 일에서 빼달라는 거야. 발을 빼겠단 말이지. 그래서 나는 널 잡아간 사람 앞에 걸린 의뢰를 받고 다음날 그곳으로 간 거지.”

 

  “네가 받은 의뢰라는 건 뭐였는데?”

 

  레널드가 의심의 눈초리로 체칠리아를 바라보며 묻자 체칠리아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자가 다른 사람에게 빌리고 떼먹은 돈을 받아달라는 의뢰였어.”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세라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그럼, 아까 우리가 그곳을 빠져나왔을 때 들린 엄청난 소리는 뭐였어?”

 

  세라의 말에 체칠리아의 얼굴엔 차가운 미소가 어렸다.

 

  “아, 그거? 내 작품이지. 아마 그 건물이 송두리째 날라 갔을걸?”

 

  레널드는 이야기를 하는 체칠리아의 얼굴이 묘하게 기뻐 보인다고 생각했다.

 

  “체칠리아는 정말 대단한 마법사구나.”

 

  세라가 말하며 나른한 눈으로 하품을 길게 하자 체칠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칠리아와 세라가 침대에서 자기로 하고 레널드는 난롯불 앞에 모포를 깔고 누웠다. 모포를 둘둘 말고 누워 빨갛게 타오르는 난롯불을 바라보며 레널드는 체칠리아에 대해 생각했다. 이제는 그녀가 나쁜 사람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머리를 굴리며 고민을 하던 레널드는 결국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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