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첫 술과 장어구이
“회장님, 저는 경찰에 증거물로 주려고 했는데 장 집사가 말렸어요..... 회장님이 아시면 쫒겨 난다고 제발 신고하지 말라고 해서..... 장 집사에게 돈 빌린 것도 있고, 불법 영업 신고한다고 협박해서..... 죽을 죄를 졌습니다, 회장님!”
김 회장은 종운에게 서랍을 열라고 했다. 서랍을 열자 잡다한 사무용품과 열쇠 꾸러미가 널려있었다. 귀신이 사각형 유 에스 비(이동용 저장 장치)를 가리켰다. 종운이 컴퓨터를 켰다.
“틀어!”
김 회장이 벽에 달린 씨씨티브이 모니터를 보면서 컴퓨터를 틀라고 했다. 모니터에 작년 사고 나던 날짜가 뜨면서, 동영상이 돌아갔다.
장 집사가 머무는 조그만 건물에서 나온 사내가 조심스럽게 걸어서 저택으로 들어갔다. 저택에서 부인이 나왔다. 부인은 흰 자켓에 회색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사내는 부인의 자켓을 잡아당겨, 벽에 붙이고 벗기려고 했다. 부인이 옆으로 몸을 돌리자, 따귀를 때렸다. 부인이 사내의 가운데를 무릎으로 차고 저택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사내가 부인을 쓰러트렸다. 그리고 목을 졸랐다. 두 다리를 버둥거리며 몸부림치던 부인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김 회장은 모니터를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회장님 잘못했습니다, 용서 하세요!”
모텔 주인은 김 회장에게 빌었다. 모텔 주인은 모텔 불법 행위를 고발한다고 협박하던 관리인을 꼼짝 못하게 하려고 유 에스 비에 동영상을 담아 보관하고 있었다. 관리인은 김 회장의 징역형이 확정되고 난 후, 모텔 주인에게 고맙다고 돈을 주었다.
“고맙네.....”
김 회장은 잔금을 입금하고 고마워했다. 관리인과 아들은 구속되고, 김회장은 석방 되었다. 교도관은 내부적으로 징계를 먹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잘했습니다, 선생님!”
“운이 좋았지요....”
찝찝하다는 종운의 말에 교도관이 잘 한 거라고 위로를 했다. 관리인은 12년 전 부인과 이혼하고 김 회장네 집에 집사로 들어왔다. 얼마 뒤에 교통사고로 거동이 불편한 아들을 휠체어에 태워 데리고 왔다. 김 회장은 아들이 관리인의 숙소에서 같이 지내도록 허락했다.
“벌침을 맞고 나았어요.”
한쪽 다리를 수술하고 걷지를 못하던 사내가, 벌침을 맞고 다리가 멀쩡하게 되었다. 사내는 휠체어를 타야 김 회장네 집에 머물 수 있었다. 부인과 가정부가 여자기 때문에 젊은 사내를 김 회장의 집에 머물게 하긴 힘들었다. 김 회장 모르게 머물던 사내는 새로 온 부인을 숨어 보면서 욕망이 생겼다. 사내는 어렵게 부인에게 고백했다.
“제가 잘 해 드릴게요....”
“꼬라지를 모르는 것도 병이야, 병도 큰 병이지....”
부인은 주제를 모른다고, 매몰차게 거절했다. 사랑은 사내를 미치게 만들었다. 혼자 열병을 앓던 사내는, 부인이 술 취해 우는 소리에 이성을 잃었다. 종운은 사내의 사연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네....”
종운은 갑자기 민지에게 잘하지 못한 죄스러움이 복받쳤다. 민지의 친구를 통해 나 돌이 제대하고, 민지가 이사했다는 말을 들었다. 아파트에 민지를 찾아 갖다, 윗집 사는 괴물 같은 서수복이라는 놈에게 망신만 당하고 쫓겨났다.
*..*
대 저택이었다.
북악 스카이웨이를 끼고 도는 귀퉁이에 있는, 성북동 부자촌이었다.
마을버스에서 내린 나 돌은, 요코가 일러준 주소를 핸드폰으로 찾았다.
“와, 성벽이네....”
거인이 높다락 성을 쌓고 세상과 단절하고 살다가, 우연히 찾아 온 아이들과 어울리며 마음을 고쳐먹고 벽을 허물었더니, 마당에 온통 꽃이 만발했다는 동화가 생각나게 만드는 성벽으로 이루어진 동네였다.
자연석으로 쌓아 올린 벽은 돌멩이 하나, 하나가 사연이 있어 보였다. 집은 보이지 않고 벽만 보이는 부자촌에서 밑을 내려 보았다.
“세상 참 넓다, 그런데 나 돌은 두들겨 맞기만 하는구나....”
기지개를 켜면서 눈에 눈물이 고이도록 하품을 크게 하면서, 야~ 고함을 질렀다.
며칠 전 요코에게 두들겨 맞던 날 장어구이 집에 갔었다.
“한국 음식은 매력적이야, 덕분에 장어구이를 먹네....”
요코는 젓가락질도 능숙하게 했다. 요코는 정성스럽게 장어를 먹었다. 길게 썬 대파와 성냥개비 마냥 길게 썬 생강을 양념과 함께, 노릿하게 구워낸 장어를 절인 깻잎에 싸서 입을 크게 벌리고 먹었다.
“키 작다는 말 듣기 싫으면, 많이 먹어!”
“예,에....”
요코는 나 돌을 약 올리려고 작은 키라는 말로 도발해 왔다. 나 돌은 키 작다는 말에는 자동 반사였다. 입에 넣었던 장어를 빠르게 씹었다. 요코는 나 돌의 반응을 즐기며 웃었다.
“사실이지만 기분은 안 좋지?”
“약 올리세요? 거기보다 커요.”
나 돌은 내키지 않았지만, 학교에서의 서열 중 가장 높은 교수님이라는 호칭으로 요코를 불렀었다. 아름다운 요코님이라고 속으로 부르는 것은 나 돌 마음이었다. 하지만, 작은 키로 도발하면 못 참는 것은 본능이었다.
“거기? 여기 아니고, 거기? 저기는 어때?”
요코의 한국어 솜씨는 탁월했다. 한국어 구사 능력이 나 돌 보다 좋았다.
“저기는 물건이나 방향을 제시 할 때 쓰는 말이고, 거기가 물건은 아니잖아요.”
장어가 타면서 고소한 냄새를 뿜어냈다. 하얀 연기가 주름진 알루미늄 굴뚝으로 들어갔다. 요코가 입은 짙은 회색 블라우스를, 처음처럼이라 적힌 앞치마가 가렸다. 블라우스 앞 단추가 풀어져서 목에 걸린 목걸이가 눈에 띄었다. 목걸이에 매달린 장식은 새끼손가락 굵기의 일본도였다.
“장어 맛 좋다, 넌 반항하는 게 매력적이야, 나 보다 크니까 작은 건 아니구나?”
“반항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알려 드렸어요. 기분 나빠도 저보다 거기가 작아요.”
요코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장어의 고소함이 속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요코의 키는 160센티미터 정도였다. 어깨를 덮고 등을 흘러내린 긴 생머리는 새카맣게 반짝였다.
“눈 작고, 코는 오뚝하고, 입술도 얄샥하니, 조상이 일본인 아니었을까? 오사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몰골이거든....”
“몰골은 꼴 보기 싫다는 뜻이에요, 오사카에는 꼴 보기 싫은 놈들만 살아요?”
나 돌은 다부지게 따졌다. 어이없게 두들겨 맞은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또 싸우자고 하기에는 명분도 없었고, 이긴다는 자신은 더욱 없었다.
“몰골이 그런 뜻이야? 몰랐네.... 난 좋은 뜻으로 한 말인데, 미안! 한 잔 마실래?”
“술 마셔 본 적 없어요, 우리 조상은 고려시대 때부터 족보가 있고....”
“여기요, 소주 하나요, 장어에는 소주가 딱이야!”
요코는 술을 시키고, 장어 쌈을 싸면서 웃었다. 나 돌은 요코에게 말을 끊긴 게 기분 상해 멈추었다. 침을 삼키면서 진지하게 벽을 보다, 시선을 돌려 마주 앉은 요코와 눈이 마주쳤다. 가슴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면서, 눈을 내렸다.
“삐졌구나, 약 올리려고 그런 건 아니고, 미안, 미안, 일본인이 조상은 아니고까지 했는데, 더 해라 궁금하다, 돌이야~”
“관심도 없으면서, 술 안 마셔요.”
“술 말고 소주는 마실 거지?”
요코가 젓가락으로 노릇한 장어에 마늘을 집어서, 나 돌의 얼굴 앞에 내밀었다. 먹으라고 젓가락을 살짝 올리며 웃었다. 요코와 눈을 마주하면 속에서 뜨거운 게 올라오면서 울렁거렸다. 나 돌은 덥석 젓가락을 물었다. 젓가락까지 물어서 이빨이 아팠지만, 참고 음식을 씹었다. 앞니에서 전달되는 통증에 턱이 얼얼하였다.
“이름이 왜 돌이야? 보석이나 진주나 또 뭐가 있을까? 아무튼 돌은 쉬워 보이잖아?”
“몰라요, 젓가락 물어서 이빨 아파요.....”
“아파? 젓가락을 무는 거 같더라, 어쩌니..... 호~해줄까?”“제가 쉬워 보이세요?”
나 돌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요코의 밝고 아름다움은 좋았지만, 가볍게 취급받고 있다는 느낌이 싫었다.
“돌이 어렵니? 나~무라고 하지, 어때 나무가 철학적이고 해학적이지?”
“거기는 말 돌리기 선수에요, 대화가 이어지지가 않잖아요.... 쉬워 보이냐고요?”
나 돌은 정색을 하고 따졌다. 요코는 웃음을 멈추고, 물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아니, 어려워 보여, 난 일본인이야, 외국인이라고.... 기분 나쁘게 하려는 건 아니고
사이좋게 지내려고 그런 건데, 기분이 안 좋구나?”
“아니요.....”
요코가 진지하게 설명하자, 나 돌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요코의 말이 맞았다. 자격지심에 속 좁게 굴고 있었다. 나 돌은 입을 다물었다. 종업원이 소주와 조그만 잔 두개를 식탁에 놓았다. 요코가 소주를 들어 뚜껑을 따고, 소주잔에 따르려고 했다. 나 돌은 얼결에 손을 내밀어 소주병을 받았다. 그리고 일어나 정성스럽게 소주를 따랐다.
“첫잔은 같이 마시자!”
요코의 웃음기 섞인 뽀얀 얼굴에서는 거역하기 힘든,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나 돌은 소주잔을 두 손으로 들었다. 요코는 두 손으로 정성스럽게 소주를 따랐다.
“만남을 위해!”
요코가 소주잔을 부딪치며 외쳤다. 나 돌도 따라했다.
“미 투!”
소주잔을 부딪치며 소주가 잔 밖으로 흘렀다. 나 돌은 요코 앞에서 술을 못 마신다거나, 마시기 싫다고 할 수 없어서, 자연스럽게 마셨다. 캬! 목을 타고 쓴 소주가 들어왔다. 쓴 소주는 비명에 가까운 캬!를 불렀다. 요코는 그런 나 돌을 재미있어하며 또 따랐다. 나 돌은 거절하기 보다는, 마실 수 있다는 의연함을 보여 주려고, 단숨에 마셨다. 크! 참으려고 했는데, 크!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나도!”
요코가 소주잔을 얼굴 앞에서 흔들었다. 나 돌은 잽싸게 장어를 집어 먹고, 두 손으로 소주를 따랐다. 소주 한 병이 금방 비워졌다.
“잘 마시네, 첫 술을 마신 상대는 잊지 못한다는 일본 속담이 있어, 한국은 그런 말 없어?”
“처음 듣는데요, 자주 마시세요?”
쓴 술을 왜 마시는지 모르지만, 요코와 소주는 잘 어울렸다. 맑은 소주와 아름다운 요코의 황홀함이 겹치면서, 술 때문에 속이 뜨거워졌다.
“아니, 처음이야.... 나 돌하고는 처음이라고, 안 잊을게!”
“에, 예.....”
요코의 잊지 않겠다는 말이 가슴에 박혔다. 시간이 달콤하게 흘렀다.
“궁금한 게 많은데, 누가 나 돌이라고 이름을 지었어?”
“아버지가요, 우리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홍암 나 철이에요, 모르지요?”
요코는 소주를 입으로 가져가려다 멈추었다. 진지하게 물었다.
“나 철? 단군교를 만든 나철?”
“예! 아세요?”
“나 철이라고? 나 철이라고..... 거짓말, 나철아들은 1942년 임오교변 때 둘 다 죽었어,
이름이 뭐였더라....”
요코는 나 돌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나 돌은 요코가 할아버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반가웠다.
“나 정자 문자를 쓰시는 분이 우리 할아버지에요, 나 정자 련자를 쓰시는 분은 큰 할아 버지고요, 할아버지를 아는 사람은 처음 봐요.”
“아, 맞다 나정련과 나정문이었지, 아버지를 따라하다 죽었다는 말에 가슴이 아파서 기억해,
그런데 자식이 있었는지는 몰랐어..... 나 철이라고.....”
요코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나 돌을 바라보았다. 나 돌도 요코의 시선을 마주 했다. 가슴에서 울렁이는 것들이 요동쳤다.
“독립 운동의 정신적 토대는 단군이었어요,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 싸운 독립군 의 품에는 단군의 영정이 있었어요. 우리 할아버지는 단군의 기상을 세우기 위해 구월산 삼성사에서 승천하셨고요, 홍암 나 철은 대한민국의 간디에요.”
“일본이 망해야 조선이 산다? 진짜 그렇게 믿어?”“예, 당연하죠!”
나 돌은 당연 한 걸 왜 묻냐는 표정으로 요코를 보았다. 요코는 손에 들었던 소주를 마시고, 일어났다. 나 돌은 얼결에 따라 일어났다.
“저기, 가시게요?”
8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