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귀신을 부르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적막함이 마당에 가득 찼다. 김 회장이 말하던 큰 거실 두 개 정도 크기의 연못이, 저택 앞 화단 가운데 있었다.
“오늘은 저녁 내기에요!”
“그러지, 단판 승부다!”
김 회장 저택 안에서 운동복차림의 40대 여성이 배드민트 채를 들고나오고, 뒤따라 건장한 50대 사내가 따라 나왔다. 종운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집 주인 부부 같네....”
종운은 의심의 시선으로 두 사람을 주시했다. 두 사람은 활달한 표정으로 배드민트를 쳤다. 유달리 가까워 보이기는 하지만, 수십 년을 함께 지냈다는 김 회장의 말을 생각하면 가까운 것은 당연했다.
“어쩌지.... 들어 간다고 범인이라고 잡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김회장에게 선금 삼억을 받았다. 어떤 식으로든 범인을 잡아야 나머지 잔금도 받아 낼 수 있었다. 방법이 문제였다. 배트민트는 여성이 안정적으로 잘 쳤다. 여성의 승리로 끝났다. 두 사람이 저택에 들어가면서 마당에는 적막이 흘렀다.
“시체에서 나왔었지, 교도관의 부인이.... 죽은 자리에 가면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종운은 해가 기울어 어둑해진 잔디 깔린 마당과, 저택 앞 연못을 살폈다.
“저기 가면 나타날까..... 죽은 지 오래되어 안 나타날 수도 있는데....”
갑자기 막막했다. 돈 욕심에 섣부른 약속을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교도관은 많이 망설였었다. 종운은 일이 틀어지면 사라지면 그만이었지만, 교도관은 꼼짝없이 책임을 져야 했다. 그래서 교도관은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3억은 교도관이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잘할 수 있지요?”“못 믿으면 하지 마세요.”
종운은 어떻게 해야 귀신이 오는지는 몰랐지만, 불러올 자신은 있었다. 교도관의 부인이 어떻게 왔는지 몰랐지만, 왔다. 귀신이 온다는 것은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교도관도 종운이 죽었던 부인을 잠시 깨우는 것을 봤기 때문에 믿었다.
“일단 연못가에 가서 보자.....”
벽에 기대고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일어나 유리창에 기대고 연못을 보았다. 어둠 속에 저택에서 흘러나온 불빛에 연못의 형태가 보였다. 마음을 모아 호흡을 골랐다. 연못가에 나타나기를 염원하면서, 호흡을 길게 몰아쉬었다. 한 참을 그렇게 호흡을 골랐지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
“한전에서 나왔습니다.”
종운은 저택의 인터폰에 대고 한국전력에서 나왔다고 대답했다. 청계천에서 ‘한국전력’이라고 적힌 조끼를 구입하고, 연장을 샀다. 그리고 모텔 뒤로 붙어 있는 빌라 사이로 지나간 저택으로 들어가는 전기선을 끊었다. 빌라 옆으로 난 창문에 매달려 간신히 전기선을 끊고, 모텔에서 저택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저택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긴 호흡을 들이마셨다. 사직공원 안에는 밤을 밝히는 가로등만 보였다.
“들컥!”
종운은 당당하게 저택 마당에 들어서 사방을 한눈에 파악했다. 저택에서 흰머리가 조금 남아 주름진 이마가 넓은 관리인이 나왔다.
“전기가 갑자기 나갔어요, 방금 한전에 전화 했더니 알아본다고 하더니, 금방 왔네.....”
“마침 이동네 있었습니다, 왜 나갔는지 알아볼게요, 두꺼비집이 어디죠?”
저택의 오른쪽으로 전기가 들어왔고, 빌라 쪽 저택 뒤에 두꺼비집이 있었다. 관리인은 두꺼비집을 일러주고, 높은 곳에 오르기 쉽게 사다리를 놓았다. 종운은 사다리를 올라 멀쩡한 두꺼비 집을 들여다보면서, 이것저것 만졌다.
“휴즈가 멀쩡하네요, 집 내부에 문제가 있는 거 같은데....”
“전기가 나간 건 처음인데.... 집에 들어와서 찾아보세요.”
“예,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들어가세요.”
관리인이 안으로 들어가면 마음이 편할 거 같았다. 관리인은 잘 부탁한다면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종운은 연못 옆에 서서 호흡을 길게 들이마시면서, 정신을 모았다.
“단군이시여.... 도와 주세요.....”
궁지에 몰리거나, 좋은 일이 생기면 단군을 찾았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었다. 종운의 아버지도 그랬고, 엄마도 그랬다. 집 안에 일이 생기면 의례히 단군을 모셨다. 가슴에 손을 모으고 연못을 향해 정신을 모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띵똥, 띵똥,”
인터폰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빌라 쪽에 세워 둔 사다리가 머리를 스쳤다.
“한전에서 왔습니다!”
현관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쫌 전에 왔는데, 또 왔어요?”“왔어요, 누가요?”
인터폰을 주고받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빠르게 저택 뒤로 돌아 사다리 있는 곳으로 갔다. 사다리를 빌라 쪽 벽에 걸치고 올라갔다. 담 위에서 망설임 없이 뛰어 내렸다. 쿵, 어둠 속으로 숨기 위해 빠르게 뛰었다.
*..*
“할 수 없지요....”
교도관은 오랫동안 턱을 괴고 고민하다가 결정했다. 종운이 맥도 못쓰고 도망쳐 오고 난 후에 두 사람은 돈을 돌려주고 포기 하느냐, 김 회장을 데리고 현장에 가느냐를 고민했었다.
김 회장은 수감 중이라, 교도소를 나오려면 법원의 결정이 있어야 가능했다.
“꼭 된다는 보장 못해요....”
종운은 김 회장을 현장에 데리고 간다고 귀신이 올지는 알 수 없다는 말을 여러 번 했었다. 김 회장의 부인은 죽은 후에 화장을 했고, 어딘가에 뿌렸다. 부인과 가장 강하게 연결된 사람은 김 회장 뿐이었다. 교도관과 벌리려는 일은 범법이었다. 쉽게 생각하고 벌린 일이 커졌다. 김 회장에게 현장에 갈 수 있느냐 물었고, 좋다고 했다.
“수진아, 수진아, 나왔다! 너에 원혼 달래주려고 내가 왔다!”
김 회장은 큰 소리로 죽은 부인을 불렀다. 시간은 부인이 죽었을 시간이라고 여겨지는 새벽 1시였다. 관리인과 가정부 둘이 연못 옆에 서서 김 회장이 하는 걸 지켜보았다. 교도관은 김 회장 뒤에서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종운이 앞으로 나섰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종운에게로 쏠렸다.
“단군이시여...하늘을 열어 잠깐 왔다 가라 해주세요.....”
종운은 연못 옆에 서서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호흡을 골랐다. 정신이 맑아지며, 몸이
가벼워 날아갈 것 같았다. 두 팔을 들어 벌리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대길상밀고 위장관료아 날매료자아 마데지불애, 파내유검 배달구모 아즉가시니
하둔항라도 부조실 주기심하쇼, 불전이 각 학급이 오라~”
종운의 증조할아버지 나철이 만든 ‘밀고’라는 경이었다. 주변에 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성스러운 기운을 불러오는 경이었다. 집안에서 의식을 치룰 때마다 ‘밀고’를 했었다.
종운이 눈을 크게 뜨고 김 회장을 바라보았다. 김 회장 뒤로 하얀 자켓에 검정 브라우스를 받쳐 입고, 회색 스커트를 입은 여성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여성은 김 회장의 부인이었다.
“오셨네요, 누가 부인을 살해 했나요?”
사람들은 종운의 말을 듣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교도관은 김 회장의 뒤를 보면서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 회장은 종운의 시선을 따라 뒤를 둘러보았다. 부인은 김 회장이 둘러보자, 눈을 마주했다. 김 회장의 눈에는 부인이 보이지 않았다.
“왔다고, 뭘 입고 있는가?”
“흰 자켓에 회색치마를 입었는데요?”
김회장은 종운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관리인과 가정부도 놀라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부인은 관리인 앞에 서서 손을 흔들어, 종운을 불렀다. 종운이 관리인 앞에 섰다.
“이 사람이 부인을 죽였습니까?”
“뭔 말이야, 난 안 죽였어, 안 죽였다고, 그러지 마, 내가 안 죽였어!”
관리인은 얼굴이 창백해서, 말을 더듬으며 뒤로 물러났다. 부인은 관리인을 따라갔다. 관리인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나다,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실을 말하시지요, 부인이 앞에 서서 내려 보고 있습니다, 왜 죽였지요?”
“안 죽였다고, 죽이지 않았다니까..... 내가 죽인 게 아니라.... 회장님.....”
관리인은 눈을 어디다 둘지 몰라서 고개를 흔들면서, 회장을 불렀다. 저택 옆 관리인이 머무는 건물 문이 열리면서, 배트민트 치던 사내가 뛰어 나왔다. 한 손에는 야구 방망이를 들었다.
“내가 죽였다, 술만 먹으면 날 찾아와 괴롭혀서 죽였다. 반신불수라고 놀리면서 내 몸을
주무르면서 희롱했다. 죽일 년을 죽였다!”
“넌, 장집사 아들 아니냐? 멀쩡하게 걸어 다니네...... 야구 방망이 치워라!”
김 회장이 사내에게 외쳤다. 사내는 관리인의 아들이었다. 관리인은 김 회장이 징역 15년을 살게 되자, 부동산을 처분했다. 김 회장은 전국에 부동산이 있었다. 세금을 피하려고 관리인과 경호원 이름으로 등기된 부동산도 꽤 많았다. 경호원은 김 회장이 징역을 살게 되자, 부동산을 처분해서 미국으로 갔다. 김 회장은 관리인의 아들 이름도 몰랐다.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되어 휠체어를 탄다는 말은 들었지만, 거의 보지 못했다.
“부인이 아니라고 합니다, 거짓말이라고 하는데, 거짓말하지 말아요!”
부인이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것을 보면서, 사내를 추궁했다. 사내는 야구 방망이를 세워 들고 종운에게 왔다.
“너부터 입 다물어야겠다, 죽어!”
사내가 종운을 향해 야구 방망이를 흔들었다. 옆에 있던 교도관이 사내의 머리에 테이저건(전기총)을 쏘았다.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던 사내는 그 자리에서 꼬꾸라졌다. 교도관은 혹시 모른다며 전기총을(테이저 건) 가지고 왔었다. 교도관은 테이프로 사내의 팔목을 뒤로해서 묶고, 발목도 묶어서 나무에 매달았다. 사내는 고개를 옆으로 늘어트리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부인이 따라 오라는데요.....”
종운은 부인을 따라가며 김 회장에게 일렀다. 부인은 저택을 나와 모텔로 갔다. 김회장과 종운이 모텔에 들어서자, 주인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부인이 주인 옆에 있는 씨씨티브이 밑에 책상을 가리켰다. 종운이 책상 서랍을 보면서 김 회장에게 열어 보자고 했다.
“저 책상 서랍 안에 뭐가 있나 봐요.”
“서랍 좀 열어 보게!”
김 회장이 서랍을 열자고 하자, 모텔 주인은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회장님, 저는 경찰에 증거물로 주려고 했는데 장집사가 말렸어요..... 회장님이 아시면 쫓겨 난다고 제발 신고하지 말라고 해서..... 장집사에게 돈 빌린 것도 있고, 우리 불법 영업 신고 한다고 협박해서..... 죽을 죄를 졌습니다, 회장님!”
“뭐가 있길래....”
김 회장은 종운에게 서랍을 열라고 했다. 서랍을 열자 잡다한 사무용품과 열쇠 꾸러미가 있었다. 귀신이 사각형 유 에스 비(이동용 저장 장치)를 가리켰다. 종운이 컴퓨터를 켰다.
“틀어!”
김 회장이 벽에 달린 씨씨티브이 모니터를 보면서 컴퓨터를 틀라고 했다. 모니터에 작년 사고 나던 날짜가 뜨면서, 동영상이 돌아갔다.
7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