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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King's Road
작가 : Xien
작품등록일 : 2018.11.2

왕도(王道)란 무엇인가? 왕이 될 자는 누가 선택하는 것이고 누가 그 길을 것는 것인가?

강대국 리엔왕국에서 소리없는 왕권 쟁탈전이 벌어진다.
과연 왕이 되는 자는 누구인가?

 
5화
작성일 : 18-11-11 21:35     조회 : 290     추천 : 0     분량 : 5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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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칠리아가 레널드에게 자세한 설명 없이 숨어있으라는 말만 던진 채 빠른 걸음으로 골목 안으로 사라지자 레널드는 어제부터 줄곧 자신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듯한 그녀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주 자기만 잘났어….”

 

  레널드는 체칠리아에 대한 불만을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까 체칠리아와 함께 걸었던 대로변처럼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란히 3명 정도 걸을 수 있는 정도의 길 좌우로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거리에는 레널드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해도 이미 서쪽으로 저물어 거리에는 조금씩 어둠이 내려앉았고, 사위가 어두워질수록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레널드를 옥죄어 왔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는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렸고 바람에 삐걱거리는 문소리는 날카로운 신경을 더욱 곤두서게 했다. 레널드는 망토를 더욱 여미며 몸을 웅크렸다. 주변에 몸을 숨길만한 곳을 찾아보았으나 마땅한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심장이 두근거리며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쫓아오는 것 같은 느낌에 레널드는 초조함과 불안감에 휩싸였다. 한참을 거리에서 서성거리며 고민하던 레널드는 체칠리아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갔던 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골목은 전체적으로 음산한 느낌이었지만 지금 서있는 섬뜩한 거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인 레널드는 골목을 선택했다. 골목 안으로 몇 걸음 들어가자 레널드는 바로 이곳으로 발을 들인 것을 후회했다. 골목 안은 더욱 스산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그를 감시하는 것 같은 기분 나쁜 시선이 그의 주변에서 느껴져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자신이 없어진 레널드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려는 차에 누군가가 뒤에서 그의 머리를 강타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정신이 든 레널드는 자신이 차가운 돌바닥에 누워있는 것을 깨달았다. 몸을 일으키던 레널드는 머리 뒤쪽에서 오는 묵직한 통증에 저도 모르게 머리를 움켜쥐면서 신음소리를 냈다. 머리를 부여잡고 겨우 차가운 벽에 등을 대고 앉아서 눈을 살며시 떠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짙은 어둠에 쌓여있었다. 눈이 어둠에 적응이 되자 희미하게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레널드가 있는 곳은 돌로 만들어진 작은 방이었는데, 마치 감옥을 연상하게 하는 구조였다. 한쪽 벽면은 문 대신 쇠창살로 막혀 있었다. 고개를 돌려가며 주변을 바라보던 레널드의 시선이 구석에 닿았다. 한쪽 구석에 어떤 사람이 웅크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요동치며 두근거리는 소리가 귀에까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저기…요?”

 

  한참 만에 레널드가 용기 내어 작은 목소리로 구석에 웅크려있는 사람에게 향해 말을 걸었다. 혹시 대답이 돌아올까 숨을 죽인 레널드에겐 정막만이 돌아왔다. 자신처럼 정신을 잃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을 가득 메운 정적은 더욱 그를 두렵게 해 다시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저기…. 괜찮아요?”

 

  레널드의 가녀린 목소리가 차가운 벽에 부딪혀 사라질 때까지 그 사람은 미동조차 없었다. 레널드가 포기하고 차가운 벽에 다시 등을 대려고 할 때쯤 구석에 웅크린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안도감에 레널드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쉿. 조용히 해.”

 

  레널드가 다시 입을 열려고 했을 때 떨리는 여린 목소리가 구석에서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명령에 숨을 죽인 레널드는 곧 누군가가 이곳으로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멀리서 아득히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는 점점 커졌고, 한 명이 아닌지 떠드는 소리도 들려왔다. 레널드는 요동치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떨리는 손을 맞잡고 철창 너머를 응시했다. 곧 붉은 불빛이 시야에 들어왔고 이제는 그들이 이야기 하는 소리도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거짓말이면 네 그곳을 잘라버릴 줄 알아.”

 

  “가서 보라니까? 진짜 죽인다니까. 아마 3배? 아니 어쩌면 5배 이상은 받을 수도 있겠다니까?”

 

  앙칼진 여자의 말에 툴툴거리며 대답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횃불을 든 배가 불룩하게 나온 남자와 어깨와 가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자가 나타났다.

 

  “네 입에서 나온 소리 중 반 이상은 개소리였잖아. 애새끼가 얼마나 예쁘길래 나는 쨉도 안된다고 해?”

 

  여자의 신경질 적인 말에 횃불을 든 남자는 걸걸한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큭. 그 말 때문에 이렇게 앙칼졌던 거였어? 물론 나한텐 자기가 최고지. 어젯밤에도 아주 죽여줬다고. 빨리 얼굴이나 보고 가서 뜨겁게 안아 줄 테니까 앙탈 좀 그만 부리라고.”

 

  남자가 횃불을 벽에 꽂고 여자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엉덩이를 만지자 여자는 인상을 구기며 욕지거리를 했다. 레널드는 눈을 감고 빨리 이들이 가기를 속으로 되뇌었다.

 

  “어이!”

 

  남자의 걸걸한 목소리는 누군가를 부른 것 같았으나 레널드는 눈을 지긋이 감고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떨리는 몸을 꽉 부여잡았다.

 

  “어이! 이게 사람이 부르는데도 무시해?”

 

  곧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녹슨 철창이 삐걱거리며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레널드는 더욱 눈을 꼭 감으며 속으로 제발 이 상황이 꿈이기를 빌었다. 하지만 거친 손이 레널드의 머리채를 잡는 것으로 레널드의 바램은 산산조각이 났다.

 

  “귀는 장식이냐? 사람이 불렀으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냐!”

 

  “어머, 얘구나? 깜깜해서 얼굴이 잘 안보이네? 횃불 좀 가져와봐.”

 

  여자의 말에 남자는 레널드의 머리채를 팽개치고 횃불을 가져와 비추었다. 레널드의 백금발이 불빛에 비쳐 황금색으로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이 년 머리색 진짜 탐난다. 잘라서 가발 만들어서 내가 가질까? 호호호.”

 

  레널드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여자가 경박스럽게 웃자 남자가 바닥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이건 진짜 물건이라고. 부르는 게 값 일거야. 근데 그걸 네년 전리품하려고 자르면 되겠어?”

 

  그들의 대화로 봐서 그들은 레널드를 어딘가에 팔아버릴 셈인 것 같았다. 궁에서 수업을 받을 때 선생님에게 인신매매 시장이 암암리에 성행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레널드는 이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얘야~ 떨지 말고 눈 좀 떠보렴?”

 

  여자의 간드러지는 말에 레널드는 실눈을 떠 여자를 바라보았다. 언뜻 봐도 진한 화장에 빨간 입술을 한 여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레널드가 다시 눈을 감으려 했을 때였다.

 

  ‘찰싹!’

 

  순간 볼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통증에 레널드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 년이 말귀를 못 알아 처먹네.”

 

  “야! 야. 살살 좀 해라. 얼굴에 상처 나면 안 된다고!”

 

  남자의 말에도 여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손으로 레널드의 턱을 잡고 반대쪽 뺨을 때렸다.

 

  “말 안 듣는 아이는 맞아야지~ 안 그러니?”

 

  레널드가 겁에 질린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자 그녀는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눈깔 색깔 좀 봐. 꼭 보석 같네. 난 이래서 예쁜 년들이 싫어. 얼굴만 믿고 뻣뻣하게 목 세우고 다닌단 말이야?”

 

  여자의 말에 남자는 피식 웃었다.

 

  “하여간 그 성깔하고는…. 어때? 물건 죽이지?”

 

  여자는 잡았던 레널드의 턱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이번엔 한 건 했네? 내가 후하게 쳐줄 테니까 경매에는 내보내지마. 아마 얘 따먹으려고 남자들이 줄을 설걸?”

 

  남자는 다시 철창을 자물쇠로 잠그며 투덜거렸다.

 

  “귀족 놈들한테 어마어마하게 팔 수 있는데 그걸 왜 널 주냐? 아주 오냐오냐 하니까 날 호구로 알아.”

 

  “호호호. 내가 섭섭하지 않게 보너스도 줄게~”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여자가 남자의 귓가에 속삭이며 허벅지를 쓰다듬자 남자는 헤실거리며 여자의 허리를 안고 사라졌다. 다시 칠흑 같은 어둠과 숨 막히는 정적이 찾아왔다. 그제야 레널드의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차라리 산사태가 났을 때 어머니와 함께 죽는 것이 나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에게 뺨을 맞은 볼을 두 손으로 감싸고 훌쩍거리는 레널드에게 구석에 내내 웅크리고 있던 사람이 천천히 다가왔다.

 

  “…괜찮아?”

 

  레널드는 울음을 참느라 꺽꺽대며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은 레널드 옆에 가만히 앉아서 어깨를 토닥여줬다. 한참이 지나 레널드의 울음이 진정되었다.

 

  “난 세라라고 해.”

 

  자신을 세라라고 소개한 목소리는 생각보단 앳된 소녀의 것이었다.

 

  “난 레널드….”

 

  어둠속에서 어렴풋이 보인 세라의 몸은 많이 말라있었다. 목소리로 보아 아마 18살 정도 되었을 것이라 레널드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름이 남자애 같네?”

 

  “나 남자야.”

 

  레널드의 말에 세라는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세라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더욱 목소리를 낮추었다.

 

  “난 네가 여기 올 때 여자애일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아까 레이디 앤의 얘기도 그렇고….”

 

  “레이디 앤이 날 잡아온 사람이야?”

 

  짙은 화장에 붉은 입술을 하고 야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떠올리며 레널드는 몸서리를 쳤다.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니 짙은 화장품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아니, 레이디 앤 옆에 있던 남자일 거야. 그 남자가 날 여기로 데려왔거든. 물론 난 납치된 게 아니지만….”

 

  뒷말을 흐리는 세라의 목소리엔 씁쓸함이 묻어있었다. 아마 그녀도 레널드만큼의 복잡한 속사정이 있는 듯 했으나 섣불리 물어볼 수 없었다.

 

  “레이디 앤과 그 남자는 나를 팔아넘길 거라고 했어. 경매 얘기도 하는 것 같은데,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초조하게 묻는 레널드의 물음에 세라는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세라는 어린 레널드에게 지독하고도 잔인한 현실을 이야기하려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겨우 세라가 마른 입술을 적시며 입을 열었다.

 

  “여긴 인신매매업소야. 쉽게 말하자면 사람을 돈을 주고 파는 곳이지. 주로 힘없고 가난한 여자애들을 납치하거나 돈을 주고 부모에게 사와서 매음굴이나 귀족에게 팔아. 우리도 그렇게 어느 업소나 누군가에게 팔려갈 거야.”

 

  세라의 말을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직접 그 사실을 귀로 들으니 레널드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순간 레널드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체칠리아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어느 누구도 쉽게 건들지 못하는 마법사라는 힘을 가졌다. 그녀의 보호아래에 있어 현실이 얼마나 가혹한지 몰랐던 레널드는 체칠리아를 원망하는 마음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조금 더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면 이렇게 납치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축 처진 채 아무 말 없이 무릎에 머리를 묻고 있는 레널드가 안쓰러웠는지 세라가 최대한 밝은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래도… 넌 그나마 운이 좋은 거야. 대부분은 업소에 팔려 가는데 넌 특이한 외모 때문에 귀족에게 팔려 갈 수도 있다고 했잖아. 귀족한테 가서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을 거야.”

 

  세라가 위로로 던진 말은 레널드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너는 어디로 갈지 정해졌어?”

 

  레널드의 말에 세라의 목소리는 다시 축 쳐졌다.

 

  “난… 아마도 업소로 가겠지….”

 

  세라의 말에 레널드는 침묵을 유지했다. 세라도 더 이상 레널드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는 잊으려고 애썼던 현실이 점점 다가온다는 생각에 말을 잃은 것 같았다. 레널드도 다시 무릎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고 어머니와 그리운 왕궁을 떠올렸다. 왕궁을 떠나온 게 4달도 채 되지 않는데 마치 10년 전의 일처럼 가물가물했다. 푹신한 새털로 만든 베개와 오리털로 짠 이불의 감촉도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매일 어머니와 함께 오찬 후에 거닐던 장미정원을 가득 메운 장미향도 떠오르지 않았다.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어머니의 머리칼과 고운 얼굴 대신 축축한 빗속에 죽어있는 창백한 어머니의 얼굴만이 반복해서 떠올랐다. 누워있는 어머니의 몸 밑으로 새빨간 피가 스멀스멀 빗물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핏물은 곧 체칠리아의 매정한 붉은 눈으로 바뀌었다. 체칠리아가 우울한 음성으로 나직하게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그녀의 몸 주변에서 불꽃이 일었다. 그리고 그 불꽃은 곧 레널드의 어머니를 삼켜버렸다. 절규하는 레널드의 외침을 무시한 채 체칠리아도 역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레널드는 홀로 어둠속에 웅크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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