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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외교관 박판서
작가 : So설이
작품등록일 : 2018.11.4

신탁에 선택 받아 파미에 대륙으러 건너간 날백수 휴학생!
집에 돌아갈 방법도 없고 신탁이 말하는대로 아르서스를 잡아줬다!
근데... 없어져야 할 게이트가 안 없어진다고?

마나가 흘러들어간 지구 사회는 난리나 났다!
어떻게든 해결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내가 드래곤까지 잡아다가 바쳐드렸으면 됐지.
이번에는 외교관까지 하라고?

 
루시웰 공작과 마법거울
작성일 : 18-11-11 14:43     조회 : 229     추천 : 0     분량 : 9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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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 날 해가 다 지고 밤이 되어서야 파미에 대륙으로 떠날 수 있었다. 명분상으로는 경찰청이 마법사건을 스스로 해결했다는 발표가 나야하므로 수사에 도움을 줄 마법사들이 건너오는 게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밤늦은 시간에 사람들의 시선이 적을 때 몰래 갔다 와야만 했다.

  이 와중에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기가 찼지만 이유가 어찌됐든 이해관계는 통한 셈이었다. 이쪽에서도 언론을 신경 쓰지 않고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으면 더 좋았다.

  파파라치가 붙을 것을 걱정해서 우리는 서울에 있는 게이트 보안본부로 갔다가 교대인원들과 같은 차를 타고 이동했다.

  게이트를 건너갈 때 주위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것은 처음이었다. 누가 건너오는지 알 수 없게 하기 위해 보안요원들도 전부 바깥쪽으로 나가 대기했다.

  오랜만에 게이트를 마주하자 내 가슴 속에서 원망과 파괴의 욕구가 무럭무럭 자라났다.

  “내가 너만 아니었어도…….”

  “뭘 혼자서 중얼거리나? 어서 건너가세.”

  우리는 게이트를 타고 건너갔다. 게이트를 통과할 때 몸을 덮치는 울렁거림과 어지러움은 이제 익스트림 스포츠처럼 즐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밤이긴 했지만 짧은 풀로 무성한 초원을 헤집고 불어오는 바람이 신선했다. 파미에 대륙에 떠 있는 두 개의 달은 운치가 있었고 현자의 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은 은은했다. 서울 어느 곳을 가도 느낄 수 없는 자연이 주는 여유였다.

  나는 신선한 공기를 몸에 구석구석 채워 넣는 기분으로 심호흡을 했다. 이카로스에서 쌓였던 피로가 한 번에 풀리는 것 같았다.

  균형이고 나발이고 그냥 여기에 남아있을걸. 왜 괜히 돌아가겠다고 폼 잡다가 이렇게 개고생을 하는지.

  나와 포르페가 밟고 있던 땅이 갑자기 펑 터지면서 푸른 불꽃이 하늘로 쏘아 올려졌다. 발치에는 마법진 모양의 검은 자국이 조금씩 타들어가고 있었다. 포르페가 지팡이로 마법진을 두 번 두드리며 말했다.

  “탐지 마법을 걸어두었군요. 현자들은 이미 우리가 온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갑시다.”

  우리는 당당하게 탑의 정문으로 들어갔다. 탑의 문지기는 갑작스러운 방문에 많이 놀란 눈치였다.

  탑의 정문을 열자 붉은 카펫이 끝없이 늘어진 복도가 드러났다. 쇠문이 마찰하는 소리가 복도 전체를 크게 울렸다. 복도 양쪽 벽에 걸린 신발들이 빛을 내며 내부를 환하게 밝혔다. 그건 어둠에 구애받지 않고 돌아다니는 요정들의 신발을 얻어온 것이었다.

  현자들 중 탐지 마법에 가장 능통한 비알레가 긴 복도를 걸어와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녀는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도 마법사의 로브를 입고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으며 놀랍도록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불평불만이 없고 사건사고가 터져도 늘 냉정함을 유지하는 할머니였다.

  “포르페 님, 그리고 제이든 님, 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카로스에서 보내신 서신은 잘 받았습니다.”

  “혹시 게이트를 넘어간 자가 있었나요?”

  내가 묻자 비알레가 고개를 저었다. 뒤집어 쓴 후드 모자 안에 그녀의 표정이 숨어 있었다.

  “없습니다. 탑의 외벽에서 게이트를 감시하는 인원, 탐지 마법, 한 시간에 한 번 게이트 주위를 순찰하는 인원들까지도 모두 문제가 없었습니다.”

  “일단은 알았네. 회당에 현자님들을 소집해주시게. 급하게 논의할 일이 있네.”

  포르페가 지팡이를 두드리며 말하자 비알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현자들끼리는 서로의 결정을 존중해주고 한없이 믿는 공동체였으니까.

  “…….”

  왜 그런 양반들이 이카로스에 가겠다는 얘기만 나오면 서로 가겠다고 우기는 걸까?

  나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후 말했다.

  “포르페님, 혹시 수사팀 인원은 현자님들끼리 정해주시면 안 될까요? 포르페님이 같이 가주시는 걸로 해서, 한 사람 더 뽑아주십시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왜 그런 부탁을 하는 거지?”

  “잠시 가볼 데가 있습니다. 꼭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자네가 더 잘 알리라 믿네만, 우리는 해가 뜨기 전에 이카로스로 건너가야만 하네.”

  “압니다. 비알레님, 지금 현자의 탑에 있는 마법진으로 텔레포트가 가능한지요?”

  비알레는 또렷하고 명확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이든 님도 아시다시피 불완전한 마법입니다. 이카로스로 통하는 게이트가 열려 있는 것은 아직 설명할 수 있는 불가사의일 뿐입니다. 우리 현자들도 위급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 사용하지 않습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십시오.”

  “저도 알지만 한 번만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꼭 다음에 이카로스의 마법부에 말해서 진귀한 빵이나 과자들을 잔뜩 가져오겠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건……”

  “제발요. 네? 제발요.”

  나는 비알레의 손을 붙잡고 간곡히 청했다. 기름기가 빠지고 핏줄이 튀어나온 주름진 손이 내 손을 맞잡았다.

  “안 됩니다.”

  “…….”

  역시 현자들 중에서도 냉정한 현자다웠다. 대답이 너무 명쾌해서 오히려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나는 작전을 바꾸기로 하고 손을 놓았다.

  “이카로스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지금 당장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가 어렵지만 이는 파미에 또한 큰 혼란에 빠트릴 수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다시 한 번 파미에 대륙을 구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나는 비알레에게 허리를 바짝 숙여보았다. 그녀는 잠시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문지기도, 포르페도 같이 어색한 침묵을 견뎠다. 그렇게 몇 분이나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나는 비알레에게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고자 했다.

  내 허리가 찌릿찌릿할 때쯤에 비알레는 두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나 허리를 살짝 숙였다.

  “제이든 님은 또 성장하셨군요. 젊은이 패기에 이 늙은이 가슴이 뜁니다. 현자의 탑에서 마법을 배우던 애송이 때를 생각하면 아니되나 봅니다. 그땐 참 요만했는가 싶은데.”

  비알레는 손가락을 한 마디 정도 벌려 내 앞에 보여주었다.

  “…….”

  혹시 아빠한테 있을 때 보셨나?

  비알레는 웃음기가 사라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이든 님, 명심하십시오. 제이든 님은 현자의 돌에 담긴 지혜를 이어받은 대마법사이므로 허가해드리는 겁니다. 텔레포트로 인해 일어나는 부작용은 제이든 님이 감당하셔야 하고, 앞으로는 이런 편의를 봐드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십시오.”

  “하하, 대마법사는 아니지만. 아무튼 감사합니다.”

  “그럼 마법사들을 불러 텔레포트 마법을 준비하도록 시켜두지요. 혹시 어디로 가십니까?”

  나는 다시 한 번 시계를 확인하고 말했다.

  “루시웰 공작님의 우는 여인 절벽 성으로 보내주십시오.”

 

 

  *

 

 

  텔레포트 마법은 현자의 탑에서도 아직 미완성 단계에 있는 고급 마법이었다. 이동하는 곳의 좌표를 정확히 알고 보내주는 것도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자칫 잘못했다간 하늘 위로 이동할 수도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부작용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순간이동한 사람이 기억을 잃는다거나, 고양이가 됐다고 생각한다거나, 극심한 어지러움을 호소하다가 기절해버린다거나……. 며칠 있으면 차차 회복되는 증상들이기는 했는데 아직 사례가 없을 뿐, 충분히 더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텔레포트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몇 마을 건너뛰는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웬만하면 그냥 말을 타고 이동하는 게 나았다.

  나는 딱 한 번 텔레포트 마법을 이용해본 적이 있었다. 현자의 탑의 근처에 있는 마을에서 아르서스의 추종자들이 학살극을 벌이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현자들을 설득해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도 온전히 이동하지 못하고 부작용을 겪었는데 그게 참 어땠느냐 하면…….

  “……”

  정말 떠올리기도 싫었다.

  “자, 요청하신대로 루시웰 공작님의 성으로 보내드릴 겁니다. 길을 잃지 않으리라는 마음으로 정신을 집중하십시오.”

  마법진을 둘러싼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는 혹시나 정신을 잃을까 싶어 눈을 힘주어 뜨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우다가 모두 팔을 위로 번쩍 들어 올렸는데 그 다음 순간에는 이미 어둠 속이었다.

  나는 뒤늦게나마 내 몸이 공중에 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방이 온통 어두워서 어디가 하늘이고 땅인지 제대로 구분이 가지 않았다.

  어쨌든 떨어지고 있는 쪽이 땅이렷다!

  바닥에 가까워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대로 추락한다면 최소 골절이었다.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나는 손에 마나를 모아 바닥을 향해 작은 폭풍을 일으켰다. 힘과 방향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 굉음과 함께 흙과 잔디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내 몸은 위로 붕 뜨는가 싶더니 몇 미터는 뒤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힌 다음 몇 바퀴나 굴렀다. 극심한 어지럼증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구토를 했다.

  “우웨에엑!”

  나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문 안에서 옅은 불빛이 새어나오는 성이 보였다. 사고 없이 정확한 장소로 도착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웬 놈이냐!”

  성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이 몰려왔다. 순식간에 여섯 개의 창끝이 사방에서 나를 겨눴다. 나는 아직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침착하게 두 손을 들었다. 그 중에 한 놈이 칼을 뽑아 내 목에 검날을 댔다. 툭하면 목을 찔릴 상황이었다.

  “공작님에게 알려라. 습격이다.”

  한 기사가 말하자 뒤에 있던 경비병이 헐레벌떡 뛰어갔다. 기사의 목소리는 내가 아는 사람의 것이었다. 루시웰 공작의 호위기사 단장을 맡고 있는 아르민 피처였다.

  “아르민! 나야! 어서 루시웰 공작님을 불러주게!”

  “공작님의 이름을 함부로 담지 말아라! 내 이름은 어떻게 알지?”

  경비병들의 창에서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들은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는 괴생명체 때문에 극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나는 이번엔 자리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이상하게 입고 있는 옷이 거치적거렸다.

  “놀라게 한 건 미안해. 난 마법사 제이든 일란이다. 어서 횃불을 가져와서 내 얼굴을 확인해라.”

  “제이든 님이라고?”

  아르민은 반신반의하다가 옆에 있는 경비병에게 턱짓을 했다. 곧 경비병이 성벽에 걸린 횃불들 중 하나를 뽑아 들고 왔다. 그들은 내게 횃불을 들이밀며 내 모습을 천천히 살폈다. 나도 그제야 그들의 모습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르민은 키가 좀 자랐나? 왜 이렇게 커 보여? 내가 무릎을 꿇고 있어서 그런가. 어라, 다른 분들도 다 그러네?”

  “단장님, 그냥 어린애인데요.”

  “어린애라고?”

  나는 손을 바라보았다. 주먹을 쥐었다 펴자 말랑말랑하고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이 느껴졌다. 경비병들이 커진 게 아니라 내가 작아진 거잖아!

  “난 제이든 일란이다! 공작님을 불러줘라! 공작님과 얘기해보겠다!”

  구토를 한 직후라서 목이 상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목소리까지 완전 애처럼 변해 있었다. 내가 너무 당황할 지경이라서 말이 꼬였다.

  “단장님, 어쩔까요?”

  횃불을 가져온 경비병이 묻자 아르민은 내게 보인 적이 없는 싸늘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어린애라도 성을 무단 침입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지하에 있는 감옥에 가둬놓고 얼어 죽지 않게 마구간의 짚을 가져가 덮어주어라. 공작님께는 날이 밝고 기침하시면 보고하도록 한다.”

  거대한 경비병 한 명이 나를 붙잡고 안아들었다. 힘으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어린애가 된 나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마법을 써보려고도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몸에 힘만 빠져나갔다. 나를 안은 경비병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꼬마야, 제발 가만히 있어라. 네가 어떻게 날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넌 지금 범죄자 신분이니까 감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어. 내일 아침엔 꺼내줄 수 있을 거다. 말 잘 들으면 주방에서 꼬불쳐 놓은 우유랑 빵을 좀 갖다 주마.”

  나는 무기력하게 끌려가며 악에 받혀 소리 질렀다.

  “야, 아르민! 내가 이렇게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너 아직도 엉덩이에 몽고반점 남아 있잖아!”

  일순간 세상이 정지된 것처럼 모두가 동작을 멈췄다. 아르민이 오르골 위에 장식처럼 몸을 아주 천천히 뒤로 돌렸다. 그의 광대가 미세하게 움찔거리고 있었다.

  “뭐, 뭐라고?”

  “그것 때문에 남들이랑 목욕도 안 한다면서? 지 혼자 술에 취하고 들떠갖고 아주 다 떠벌리더만!”

  “저게 어린애라고 봐줬더니 나를 모함하는구나!”

  아르민이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나를 안고 있던 경비병이 팔을 슬쩍 뒤로 빼며 말했다.

  “에이, 단장님. 왜 어린애 장난에 흥분하십니까.”

  경비병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

  “설마 진짜이십니까?”

  “아니다! 지금 나를 의심하는 것인가!”

  “아니, 그게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 흥분하십니까……? 의심가게.”

  경비병이 말끝을 흐리며 눈을 피했다.

  “지금 뭐라고 했는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튼 이 애는 입을 함부로 놀린 죄가 있으니 제가 볼기짝 몇 대 때리고 감옥에 넣어두겠습니다.”

  경비병은 나를 다시 성 안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나는 경비병이 힘을 푼 틈을 타서 팔을 빠져나갔다. 바닥에 착지해서 달리려고 했지만 후줄근한 바지에 걸려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정말 애가 된 건지 서러워서 눈물이 차오르려고 했다.

  젠장, 이게 무슨 꼴이냐.

  “내가 공작님을 뵙겠다. 다른 건 안 바랄 테니 그것만 도와다오. 해명할 수 있다.”

  경비병이 내게 다가와 쭈그려 앉으며 말했다.

  “우리는 공작님의 호위기사야. 공작님의 명을 받들고 지키기 위해 검을 들기 때문에 어린애한테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넌 엄연히 공작의 성으로 들어온 침입자야. 만약에 공작님에게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면 말로만 타이르지 않을 거다. 지하에서 하룻밤만 자면 공작님을 그리로 모셔드리겠다. 딱 하룻밤만 자면 되잖아. 불도 켜줄 거고 경비병도 따로 붙여줄 테니 무섭지는 않을 거다.”

  “꼭 오늘밤에 만나야 해! 나는 해가 뜨기 전에 이카로스로 건너가야 한단 말이야!”

  “게 무슨 소란이냐!”

  묵직한 호통이 밤하늘을 찢었다. 공작이 직접 성문을 열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늙었지만 풍채가 좋아서 그 걸음걸이가 젊은 기사 못지않게 위협적이었다.

  내게 저 갈색 콧수염이 멋있어 보이는 날이 올 줄이야!

  공작은 아직 잠에 들지 않았었는지 복장도 평상복이었다. 공작에게 습격 보고를 하러 갔던 경비병은 뒤에서 상황파악을 못하는 표정이었다.

  아르민이 공작에게 빠르게 다가가 밝은 곳에서 얼굴을 보여주고 고개를 숙였다.

  “루시웰 님, 아르민입니다. 어린 남자아이가 성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내일 아침에 보고드릴 예정이었지만 신분을 파악하기 전에 보고 인원을 보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린아이가 성에 숨어들기 전까지 경비병들은 무얼 하고 있었는가.”

  “저 아이가 어떤 술수를 부린 건지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졌다?”

  누가 들으면 코웃음을 칠 얘기였지만 공작은 그러지 않았다. 아르민은 그만큼 루시웰에게 신임을 받는 호위기사 단장이었다.

  공작은 경비병에게 횃불을 받아들고 내게 다가와 불을 비췄다. 그리고 횃불을 이리저리 흔들며 내 처참한 몰골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이 아이가 뭐라 하드냐?”

  “본인을 제이든 일란 님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일란? 네가 일란이라는 말이냐?”

  공작은 근엄한 표정을 풀고 어느 새 뭔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마법사 제이든 일란이라는 말이냐? 그럼 내가 너에게 묻겠다. 내가 왜 공작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느냐?”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흙투성이에 거추장스러운 옷매무새를 대충 정리하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공작님이 오늘 공작이라는 것, 그리고 내일도 공작일 거라는 것. 그게 다 외교이기 때문이지요.”

  루시웰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마법이란 언제 봐도 신기하구나! 경비병들은 이 아이를 성 안으로 들이라. 그리고 누군가 응접실에 마실 것과 먹을거리를 준비해두라고 하게.”

  공작이 한참을 웃어대자 경비병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퍼져나갔다.

  “저 어린아이가 제이든 님이라고? 그럼 몽고반점 얘기가 진짜란 말이야?”

  화제 같지도 않은 화젯거리로 경비병들이 수군대자 아르민이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제이든 님! 그럼 진작 말씀하시지 그랬습니까!”

  “…….”

  저게 지금 양심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인가?

  “분명히 비밀이라고 말했는데 그걸 공공연하게 떠드시면 어떡합니까! 전 그 날 제이든 님이 열 살 때 바지에 똥을 지리셨다는 비밀을 아직까지 혼자 간직하고 있었는데!”

  아르민을 향했던 모두의 시선이 이번엔 내게 쏟아졌다. 그때 마당에서 들리는 소란에 놀란 듯 하녀장과 함께 뛰쳐나온 엘리와 내 눈이 마주쳤다. 엘리는 놀라움과 당황이 섞인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내 언젠간 루시웰 공작의 환심을 사서 저 기사단장을 해임시키리라.

  나는 걷다가 기다란 바지에 발이 걸려 다시 넘어지고 말았다.

  “저, 공작님. 이런 부탁까지 드리기에는 좀 죄송하지만 애들이 입을 만한 옷이 있을까요?”

  공작은 나를 내려다보며 껄껄 웃어댔다.

  “하녀장이 나와 있는가? 이 아이가 말하는 대로 해주시게.”

  공작이 나와서 직접 지시하자 상황정리가 빠르게 이루어졌다. 기사들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서 경비병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나와 엘리, 공작은 응접실로 들어갔다. 곧 하녀장이 들어와 짧은 회색 튜닉과 반바지를 주고 물러났다. 내가 서재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갔을 땐 이미 마실 것과 간식이 테이블에 올라가 있었다.

  엘리는 내 옆에 앉아 볼을 계속 꼬집거나 주물러댔다. 신기해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엘리, 그만해. 애들 살은 연해서 조금만 문질러도 아프단 말이야.”

  “어머, 미안해. 근데 란, 나 정말 신기한 거 있지? 진짜 어린애가 됐잖아? 이카로스에 가면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거야?”

  엘리는 내 뺨을 거덜 낼 작정이었는지 꼼지락거리는 손을 쉬지 않았다. 만약 공작이 앞에 있지 않았다면 무릎 위에라도 앉힐 기세였다. 공작이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대화를 막았다.

  “잡담은 그만하도록 하지. 말해보게, 일란. 이 밤중에 이곳으로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가? 이 꼴은 또 무엇이고?”

  “전 방금까지 이카로스에 있다가 넘어왔습니다. 현자의 탑에서 텔레포트 마법을 써서 성으로 건너왔습니다. 어린애로 변한 것은 텔레포트가 아직 불안정한 마법이라 부작용이 있는데 아마 그것 때문일 겁니다.”

  공작의 눈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럼 계속 어린아이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아닙니다. 일전에도 텔레포트 마법을 썼다가 이렇게 된 적이 있습니다. 사흘 정도 있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고통이 좀 끔찍하기는 했지만.”

  “허어, 다시 돌아간단 말인가.”

  공작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탄식했다. 그의 얼굴에 일순간 실망감이 스쳐지나갔다.

  “…….”

  이 부녀가 쌍으로 나를 장난감 취급하는군.

  엘리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단 말야? 근데 왜 말 안 해줬어?”

  “별로 좋게 말해줄 얘기가 아니었어. 좀 안 좋은 사고가 얽혀 있는 일이었으니까.”

  “좋다. 그럼 왜 그렇게 급히 나를 찾아왔는가?”

  공작이 물었다. 엘리는 내 볼을 주무르던 손을 멈추고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았다. 나는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대답했다.

  “공작님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이카로스에서 두 건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누군가 사람들이 사는 주거지에 불을 지른 방화사건이었고, 하나는 한 사람을 질식사 시킨 살인 사건이었습니다. 사실 이카로스에서는 그 자체로 특이한 사건이랄 것이 없는데, 저는 이 두 사건이 마법사의 소행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내 얘기를 듣던 공작이 다시 물었다.

  “근데 왜 나를 찾아온 것인가?”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건의 진상을 포르페 님과 함께 파헤쳐봤습니다. 근데 포르페 님도 마법으로 저지를 수 있을 만한 일이지만 어떻게 했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자네와 현자님도 이해할 수 없는 마법이라. 그래. 자네가 찾아온 이유를 알겠군.”

  나는 씩 웃음을 지었다.

  “역시 공작님이십니다. 성에 있는 마법거울에 아르서스가 제대로 봉인되어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작가의 말
 

 작품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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