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선(善)의 혁명
작가 : 리츠릿
작품등록일 : 2018.11.2

사라져버린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
모든 것을 앗아가버린 저주받은 능력을 극복하기 위해서.
같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각자의 목적, 각자의 길, 흩어졌다 만나는 인연 속에서 드러나는 진실과 그 진실을 가리고 있던 거짓들.
운명처럼 다가오는 사건들 속에서, 그들은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격일 연재입니다.)

 
붉은 절벽의 도시
작성일 : 18-11-10 14:00     조회 : 233     추천 : 0     분량 : 5321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어서오십시오. 마티우스 리트빈 캐럴 영주님을 모시고 있는 행정집사 알베른입니다. 영주님의 의뢰를 보고 오셨습니까?”

 “네, 의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응접실로 모시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집사는 정중한 말투였지만 자세는 시종일관 고개조차 숙이는 일 없이 꼿꼿했다. 몸을 돌려 앞장서는 집사를 따라 성 안으로 들어간 승호는 또 한 번 놀랐다. 온갖 보석과 미술품, 샹들리에 등으로 장식된 내부는 말 그대로 상상속의 성 그 자체였다. 저 중에 몇 개만 갖다 팔아도 호메트 몇 개 값은 금방 나올 텐데. 그런 물건들이 손에 잡힐 듯 지천에 깔려있는 걸 보니 저도 모르게 침이 꿀떡 넘어갔다.

 “얼마 전까지는 지금보다 훨씬 화려했습니다. 많은 보물들이 현재 진행 중인 공사를 위해 투자되었지요.”

 성 내부를 바쁘게 훑는 승호의 시선을 눈치 챘는지 집사가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승호는 왠지 집사가 포석을 까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의뢰 계약은 이미 시작 되었는지도 모른다.

 집사를 따라 응접실에 들어간 승호는 안내에 따라 푹신한 소파에 앉았다. 검과 석궁은 자리 옆에 기대어 두었다. 소파 안에 뭘 넣었는지 한국에서 쓰던 소파보다도 더 푹신푹신한 것 같았다. 집사가 맞은 편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자 기다렸다는 듯 홍차와 다과가 나왔다. 다과는 간단한 비스킷이었지만 홍차만큼은 그 향이 대단했다. 홍차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단순한 자유민에 대한 대접치고는 꽤 사치스러운 편이었다.

 “의뢰 내용에 대해서는 들으셨습니까?”

 승호가 차를 한 모금 마시자 집사가 입을 열었다.

 “아, 아. 대충은 들었습니다.”

 홍차의 향에 표정이 풀어졌던 승호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표정을 다시 가다듬었다. 어찌되었든 계약의 자리다. 귀족과의 계약인 만큼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릴 필요가 있었다. 사내, 그러니까, 다우크라고 했던가. 그의 충고도 있었고.

 “의뢰 조건은 총 여섯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영주님의 노예들과 같이 일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모든 일을 그들과 함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용에 따라 바로 옆에서 일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평민들끼리의 그룹을 형성하려 했지만 예상 이상으로 지원자가 없어서요.”

 “네, 괜찮습니다.”

 “다행입니다. 두 번째는 한 번 의뢰를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둘 수 없습니다. 갑자기 몸을 숨긴다거나, 도저히 못 하겠다고 나오셔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음, 일단 알겠습니다.”

 알베른은 그 이후로도 몇 가지 조건들을 더 나열했다. 그 가운데에는 의뢰를 수행하는 동안 지시하는 일에 대해 발설하지 말 것이라는 조건 또한 분명히 들어있었다. 왜 발설을 금지시킬까. 지시하는 일 중에는 어쩌면 정치적으로, 혹은 인간적으로 알려서는 안 될 일이 섞여있을 수 있겠구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승호는 선뜻 의뢰를 맡겠다는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머리를 굴렸다. 다우크의 말대로 어딘가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토착민들을 만날 기회와 의뢰의 수상함, 있을지 없을지 모를 아버지에 대한 실마리와 위험성을 가진 조건들이 저울 위에 올라 수 없이 기울었다. 그 저울질 끝에 승호는 결국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집사의 눈을 마주보았다.

 “아무래도 저 혼자 수행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의뢰인 것 같습니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가 있다면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귀한 차는 감사히 잘 마셨습니다.”

 “…그렇습니까. 아쉽게 됐습니다.”

 알베른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리가 파했음을 느낀 승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몸을 일으키는데, 알베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런데 이제는 한 명이라도 일손이 더 필요해서요.”

 알베른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해 다시 되물으려던 승호는 순간 무엇인가가 뒷목을 강하게 내려치는 것을 느끼며 소파에 다시 주저앉았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직감하며 승호는 어두워지는 시야를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 * *

 “포를린 아가씨, 점심 식사 시간입니다.”

 문 밖에서 들려오는 단아한 목소리에 포를린은 바쁘게 움직이던 뜨개바늘을 멈추었다. 일반 뜨개도구보다 얇은 뜨개바늘과 뜨개실은 포를린의 손끝에서 촘촘히 짜여 아주 작은 코트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들어와.”

 실이 바늘에서 빠지지 않도록 잘 정돈해서 상자에 담은 포를린은 사뿐사뿐한 몸짓으로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창백해 보일 정도로 뽀얀 피부를 가진 소녀가 포를린을 마주보았다. 포를린은 가녀린 손가락을 들어 볼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어쩜, 아가씨는 갈수록 예뻐지시는 것 같아요. 예쁜 눈에, 눈 같은 피부에, 눈이 부실만큼 선명한 금발도 그렇고요. 정말 부러워요.”

 수디아가 재빨리 포를린 곁으로 다가갔다. 포를린이 거울을 본다는 것은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다만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만은 아니었다. 포를린은 정말 예쁘다는 말을 듣기에 부족하지 않은 외모였다. 그러나 포를린은 오늘따라 그런 칭찬이 유난히 기쁘지 않았다. 불쑥 퉁명스러운 대답이 튀어나갔다.

 “그럼 뭐해.”

 수디아는 곧바로 입술을 꼭 다물었다. 아무래도 또 말을 잘못 고른 모양이었다. 포를린은 짧게 다듬은 손톱 끝으로 매끄러운 볼을 꾹 찔렀다. 찹쌀떡 같은 볼이 손가락 힘에 눌려 들어갔다가 손가락을 떼자 다시 본래대로 돌아왔다. 다만 손톱으로 눌렀던 부분에만큼은 손톱자국이 남아 이내 발갛게 물들었다. 이 피 속에 그 저주받은 능력이 담겨 있다. 숨어들 듯 손톱자국이 자취를 감추는 것을 지켜보는 포를린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가씨, 준비한 식사가 식겠어요. 기운이 없을 땐 맛있는 걸 먹어야죠. 특별히 아가씨가 좋아하시는 베리 케이크도 준비했는걸요.”

 포를린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 사실 매 식사마다 포를린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준비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려 노력하는 수디아가 고마웠다. 고작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도 그녀는 마치 유모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포를린을 세심하게 챙겨주었다. 다른 사람이라고는 찾아오지 않는 이 적막한 공간에서 그녀는 포를린에게 있어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래. 내가 여기에 갇혀 지내는 게 어디 네 잘못이겠니.”

 “갇혀 지내다니요. 그런 말씀 마세요. 어디까지나 리트빈 자작님과 자작부인이 아가씨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보호하려고 하신 거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알긴 하지만.”

 벌써 그런 말로 버텨온 게 십 이년이었다. 다섯 살 생일 때 불현 듯 피워낸 청록색 불꽃. 포를린의 부모는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가, 이내 사색이 되었다가, 애써 웃음을 지으며 서둘러 준비 중이던 생일파티를 무산시켰다. 기쁨과 축하로 가득했어야 할 생일파티는 리트빈 부부의 은밀한 대책 회의로 대체되었고, 방 안에 홀로 남겨진 포를린은 영문도 모른 채 침대에 멀뚱멀뚱 앉아 있어야 했다.

 식탁에는 고산 멧돼지 바비큐며 산양 젖으로 만든 치즈, 56년 산 포도주 등 값비싸고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그러나 포를린은 빵 몇 조각을 뜯어 먹고 수프 몇 숟갈을 뜨고는 식기를 내려놓았다. 평소 같았으면 수디아에게 같이 먹자고 옆자리를 권했을 포를린이 제대로 음식을 먹지도 않고 식사를 끝내자 수디아는 더욱 걱정이 몰려들었다. 멍하니 식탁을 응시하는 눈빛이 어딘가 위태로워 보여 오히려 더 활기찬 목소리로 수디아가 말했다.

 “아가씨, 오랜만에 옥상에서 차라도 드시겠어요? 오늘 새로 들어온 찻잎이 있는데, 향이 아주 좋아요. 분명 베리 케이크랑도 잘 어울릴 거예요.”

 수디아의 권유에 포를린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햇빛. 그래, 햇볕을 좀 쬐고 나면 기분이 나아질지도 모른다. 최근에 너무 오래 성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포를린은 주체할 수 없는 기분이 조금이라도 얌전해지길 기도하며 복도를 걸었다. 복도를 걷는 동안 포를린도, 수디아도 한마디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포를린은 휘몰아치는 감정의 파도를 견디느라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고, 수디아는 그런 포를린의 마음을 혹시나 잘못 건드릴까 싶은 마음에 선뜻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복도가 유달리 길게만 느껴졌다.

 복도 양 옆으로는 중간 중간마다 문이 있었다. 각 방은 포를린이 성 안에서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여러 가지 것들이 채워져 있었다. 대형 욕실은 물론, 서고, 음악실, 화방, 드레스 룸, 기도실, 식물을 키우는 온실, 다도실과 응접실, 조각실까지. 그 중에 응접실은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고, 온실도 최근에는 관심이 시들해져 수디아가 관리만 하는 정도였다.

 문 앞을 지날 때마다 방의 용도를 떠올리던 포를린은 문득 모든 게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그녀를 위한 것이라며 부모님이 채워 넣어 준 것들이 사실은 자신을 붙잡아두는 족쇄가 아니었을까. 떼쓰는 꼬마를 달래기 위해 쥐어주는 초콜릿처럼, 자신을 잠시간 달래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니었을까. 이 모든 게 사실은 자신을 가둬두기 위해 벌인 연극이거나, 사실 알고보니 자신은 리트빈 가문의 친자식이 아니었다거나.

 부정적으로 흐르기 시작한 생각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확장되어 포를린의 감정을 뒤흔들었다. 왜 나는 이런 곳에 갇힌 채 옥상 위로 쏟아지는 햇빛에 위안을 얻으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억울함. 하필이면 청록색으로 불꽃을 피워내는 이 저주받을 초능력에 대한 분노. 세간의 시선이 두려워서 자신을 성 꼭대기에 꽁꽁 숨기기 바쁜 부모님에 대한 원망.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하자 포를린의 주변에 푸른 불꽃이 허공에 피어올랐다. 불꽃은 하나, 둘 수를 늘려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열 개 남짓의 불덩이가 포를린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아가씨! 아가씨 진정하세요!”

 깜짝 놀란 수디아가 애타는 목소리로 포를린을 말렸다. 망상의 폭풍에 휘말려있던 포를린이 문득 정신을 차렸다. 청록색 불덩어리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벽에 살짝 남은 그을음만이 불꽃이 허상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겨우 망상 속에서 빠져 나온 포를린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수디아가 서둘러 포를린을 품에 안았다. 포를린은 수디아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가슴께가 조금씩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수디아도 콧잔등이 시큰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애써 견뎌내며 포를린의 가녀린 등을 쓸어내렸다.

 감정을 추스르고 일어선 포를린은 한결 홀가분해진 표정이었다. 옥상으로 나가는 문을 열자 한낮의 쨍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왔다. 포를린은 옥상 가운데에 있는 나무의자에 앉아 내리쬐는 햇살을 즐겼다. 그 사이 테이블에 홍차와 베리 케이크를 올린 수디아가 포를린의 옆에 조용히 자리했다. 수디아는 옥상 테두리에 높이 세워진 벽이 유난히 원망스러웠다. 저 벽만 없으면, 아니, 낮기라도 했으면 아가씨께서 바깥 구경이라도 하며 마음을 달래셨을 텐데. 가만히 눈을 감고 햇살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해야하는 포를린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새 홍차의 그윽한 향이 주변으로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따뜻한 햇볕 때문인지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때문인지 졸음이 조금씩 몰려왔다.

 “수디아, 바깥 얘기 좀 해줘.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5 붉은 절벽의 도시 2018 / 11 / 10 234 0 5321   
4 붉은 절벽의 도시 2018 / 11 / 8 249 0 4724   
3 붉은 절벽의 도시 2018 / 11 / 6 240 0 5299   
2 붉은 절벽의 도시 2018 / 11 / 4 232 0 4271   
1 붉은 절벽의 도시 2018 / 11 / 2 379 0 5665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