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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위험한 투자가
작가 : 새라새
작품등록일 : 2018.11.7

기적의 투자가라고 불리운 여자의 모든 것을 건 사랑의 한판승!

알코올 중독자로 생을 마감한 루비가 신의 손을 가진 투자가로 돌아왔다.
12년 전으로 회귀한 루비는 증시의 폭락과 화려한 부활을 꿰뚫고 있다.
그녀는 금융가에서 '미래를 아는 소녀'라 불리며 베일에 싸인 어둠의 여왕이 되었다.
어느덧 사랑하는 K와 재회한 루비.
그를 낭떠러지로 떠밀었던 비참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18화. JP광고그룹의 뮤즈(3)
작성일 : 18-11-09 15:56     조회 : 264     추천 : 0     분량 : 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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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을 열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동안 그의 핸드폰을 손에 꽉 쥐고 있었다.

 

 대문을 열려던 나는 잠시 멈춰 서서, 마지막으로 그의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살며시 유리 액정을 뺨에 대어보았다.

 매끄러운 핸드폰의 표면에는 내 손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내 머리카락에도 그의 핸드폰의 화면을 문지른 후, 백 커버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아마도 그는··· 영영 모르리라.

 

 대문을 열자, 차에서 내린 K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정말 조용한 동네네요.”

 

 “외국인에게 임대하는 타운하우스에요.”

 

 차가운 내 말투에는 거리를 두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한국인이신 줄 알았는데요.”

 

 “저는 EU 영주권자예요. 한국에 있었던 건 기억도 안 나는 아주 어린 시절 뿐이죠.”

 

 뒤바뀐 핸드폰을 받느라 그와 손이 스쳤다.

 그에 응답하듯 내 손이 파드득 떨었다.

 희고 긴 손가락이 아름다운 K의 손.

 길쭉한 뼈의 느낌, 단단한 뼈마디의 관절을 만졌던 감촉까지 생생히 기억나는, 내가 한 때 사무치게 사랑하고 또 사랑했던 그의 손.

 

 “회의실에서 우연히 바뀐 것 같습니다.”

 

 그의 눈이 어둠 속에서 반짝거렸다.

 핸드폰을 잃어버려 멀리까지 일부러 찾으러온 사람답지 않게 그는 유쾌해 보였다.

 혹시라도 그가 고의로 뒤바꾼 것은 아닐까, 한줄기 의심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되도록 쌀쌀맞게 들리도록 말했다.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쉬시는데 제가 오히려 실례했습니다.”

 

 예의바르게 대답하는 그에게 깎듯이 목례를 건넸다.

 나는 뒤돌아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내내 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다.

 

 거실의 커튼 뒤에 숨죽인 채 한참 후 그의 차가 떠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대로 소파에 시체처럼, 무너지듯이 엎어져 버렸다.

 

 41.

 K가 출근할 날짜가 확정되었다.

 나는 매일 달력을 보며 초조하게 그가 출근할 날을 기다렸다.

 공식적으로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그와 얼굴을 마주쳐야 했다.

 회사의 전략방향과 진행상황을 논의하기 위한 임원 회의였다.

 JP사는 창업 초기이고 영업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6개월간은 회사가 자리 잡기 위해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나는 이 기간 동안 전력을 다하여 K가 회사를 장악하고 광고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도록 밀어 줄 생각이었다.

 내가 가진 광고업계의 트렌드에 대한 지식, 그리고 롱아일랜드 캐피털을 등에 업은 자금력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K가 출근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내 예측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42.

 “당분간 우리 회사가 주력할 방향은 작은 시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신뢰를 쌓는 광고주 층을 두텁게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합니다."

 

 첫 임원회의에서 K는 좌중을 둘러보며 운을 뗐다.

 그리고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해외 네트워크의 이점을 내세워서 볼륨만 키우는 것에 대해 저는 반대합니다.”

 

 K는 그가 가진 전략방향에 대한 청사진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의 주장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비명을 삼켜야 했다.

 글로벌 브랜드를 내세워 광고주를 쉽게 확보하고 실적 볼륨부터 키우자는 것은 나와 지부장이 유일하게 의기투합하는 지점이었다.

 그리고 제작담당 부사장 킨케이드가 못마땅해 하던 부분이기도 했다.

 

 K는 나의 계획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나왔다.

 원칙적으로 보자면 K의 주장은 틀린 데가 없었다.

 신생 광고회사가 크리에이티브를 전면에 내세워 광고주를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식으로 공든 탑을 쌓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시간과 노력이 많이 걸린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것도 무지하니 많은 노력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뚱한 표정의 지부장과 반대로, 제작 담당 부사장 킨케이드의 얼굴에는 만면에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우리가 정말 적임자를 찾은 거 같은데, 안 그런가요? 한두 해 사업하다 접을 것도 아니고, 광고인이라면 당연히 크리에이티브로 승부해야지, 해외 네트워크로 광고주를 붙잡는 건 참 구차하지 않습니까.”

 

 “그랬다가 단기에 성과를 못 내면 올해 실적보고를 본사에 어떻게 하란 말이오.”

 

 지부장의 볼멘소리를 내가 거들고 나섰다.

 

 “전쟁에서는 일단 손에 있는 무기부터 휘둘러야죠. 크리에이티브로 승부하는 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거예요.”

 

 K가 지그시 나를 쳐다보았다.

 

 “부사장님은 재정 및 투자 담당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의 대담한 발언은 나는 물론 지부장까지도 긴장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쪽으로 전략이 세워진다면 그런 일을 사전에 방지하는 건 당연히 제 영역이에요.”

 

 “그러니 제작 쪽까지 관여하는 일도 당연하겠군요? 예를 들면 에그몽 캐릭터를 전사적으로 통용시켜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빠르게 만들어서 투자금 회수 시기를 앞당긴다거나?”

 

 나는 K를 노려보았다.

 

 “제가 지나치게 설쳐댄다고 말씀하시고 싶은 건가요?”

 

 그는 빙그레 웃으며 대꾸했다.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뒤이어 펼친 K의 영업계획을 본 나는 또 한 번 신음을 삼켜야 했다.

 K가 잡아놓은 일정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대체 어떻게 저 일정을 소화하려고 한단 말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여유만만한 K의 설명을 듣던 지부장과 킨케이드 부사장이 동시에 박수를 보냈다.

 

 “브라보! 정말 멋진 친구로구만.”

 

 “처음 이미지가 중요합니다. 주력은 어디까지나 크리에이티브가 되어야 합니다. 글로벌 네트워크 장악력은 그 다음에 내세울 히든카드입니다.”

 

 죽도록 뼈빠지게 일할 예정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그의 전략방향 일정표를 보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대체 어떻게 저 일정을 다 소화하시려고 하는 거예요?”

 

 “저는 역할분담과 스케쥴 편성에 능숙한 직원을 데리고 왔습니다. 실제로 해보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매력적인 미소를 짓는 K의 잘생긴 얼굴을 멍하니 보며 나는 그가 데려온 화사한 여직원, 채리나을 떠올렸다.

 나는 그녀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잘.

 

 그녀는 한때 K와 내연관계에 있다는 소문까지 났을 정도로 그의 밑에서 줄창 붙어서 일하던 여직원이었다.

 임원급으로 스카웃된 K는 자신과 함께 일할 직원을 여러 명 데려올 것을 요구했다.

 나는 그가 제시한 명단에 채리나가 있는 것을 보았지만 애써 외면했었다.

 나는 그의 아내도, 애인도, 하다못해 여자 친구도 될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앞으로 그가 채리나와 함께 일하겠다는 것은 말릴 근거가 없었다.

 

 채리나가 일을 썩 잘 한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멀티플레이어인데다가 일을 처리하는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문제는 그녀가 상당한 미인인데다가 K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나는 채리나와 회사에서 철야를 하고 함께 사우나까지 갔다 온 K와 대판 싸운 적도 있었다.

 뜻밖의 사고로 급하게 대폭 수정해야 할 사안이 생겨서 철야를 해야 했고, 다음날 오전에 클라이언트를 만나야 했기 때문에 사무실 바로 옆 사우나에 들렀다는 말은 순전히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결혼기간 동안 K는 나와 함께 지내는 시간보다 채리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을 지경이었다.

 그 여우같은 여자가 K를 보던 눈빛을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밋밋한 패션모델 형 몸매인 나와 달리, 채리나는 그야말로 들어갈 데 들어가고 나올 데 나온 육감적인 스타일이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혹할 만한 애교 있는 눈매와 도톰한 입술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지금 K는, 내 앞에서 다시금 그녀와 밤낮으로 함께 일하겠노라 선언하는 것이었다.

 

 “잘 알겠어요."

 

 나는 딱딱한 어조로 패배를 시인했다.

 

 "다만, 우리 회사는 한국식의 무지막지한 야근은 지양하는 문화를 만들었으면 해요. 경력 직원들을 영입할 때 우리가 분명히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부분이기도 해요.”

 

 나는 꼬리를 말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K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제가 지부장님과 루비 부사장님께 특별히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점잖은 어조로 운을 뗀 K는 글로벌 네트워크가 필요한 영업의 일부를 지부장에게 교묘하게 떠넘겼다.

 

 "지부장님이 직접 나서 주신다면, 글로벌 광고를 계획중인 한국의 오너들에게 크게 신뢰감을 줄 수 있을 겁니다. JP광고그룹을 대표하여 오신 게 아닙니까. 국내 대행사들이 추종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여러 나라에 인맥이 있는 자신의 강점을 내세워 충분히 해낼만한 일을 맡게 된 지부장은 흡족한 표정이었다.

 K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루비 부사장님은 브랜드 전략 쪽을 계속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브랜드 전략 팀과 상의해본 결과, 부사장님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나는 당황했다.

 

 “우리의 생각이 광고주보다 더 앞서 있어야 광고주를 설득할 수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도 중요하지만 브랜드 전략의 중요성을 새삼 제가 말씀드릴 필요는 없을 겁니다."

 

 “저는 투자자이지 광고인이 아니에요.”

 

 우는 소리를 했지만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루비 부사장님의 감각은 제가 아는 스타 광고인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EU와 미국에서 자란 루비 부사장님이 글로벌 하이엔드 (High-end)브랜드에 정통한 것 자체가 마케팅 전략 자산입니다.”

 

 그동안 내가 이미 회사의 브랜드 마케팅 전략 업무에 깊숙이 관여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K가 향후 일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구축해놓으려는 의도였지, 앞으로 그와 함께 일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일을 하다 보니 진영 씨를 비롯한 애널리스트들과 손발이 잘 맞기는 했었다.

 내 능력이 탁월하다기보다, 나에게는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었고, 계획한 것을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전략 업무에 개입한 이후로, 일의 진행속도가 빨라진 것은 사실이었다.

 나와 함께 일하다보니 번거로운 상부 보고를 거칠 필요가 없어졌다면서 전략부서에서는 나의 개입을 환영했다. 그러다보니 나를 찾는 일도 잦아졌던 것이다.

 

 일을 피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갖은 변명거리를 찾아보려던 나의 노력은 결론을 짓듯 말한 K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롱아일랜드 캐피털에도 빠른 시일 내에 배당을 드려야 하니, 초반에 잠시만 활약해달라는 부탁입니다.”

 

 그가 부탁한 역할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타당한 이유 없이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의 맑은 눈이 내 속을 환히 꿰뚫어보는 것처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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