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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위험한 투자가
작가 : 새라새
작품등록일 : 2018.11.7

기적의 투자가라고 불리운 여자의 모든 것을 건 사랑의 한판승!

알코올 중독자로 생을 마감한 루비가 신의 손을 가진 투자가로 돌아왔다.
12년 전으로 회귀한 루비는 증시의 폭락과 화려한 부활을 꿰뚫고 있다.
그녀는 금융가에서 '미래를 아는 소녀'라 불리며 베일에 싸인 어둠의 여왕이 되었다.
어느덧 사랑하는 K와 재회한 루비.
그를 낭떠러지로 떠밀었던 비참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5화. 투자자 아카데미(2)
작성일 : 18-11-09 15:26     조회 : 269     추천 : 0     분량 : 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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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평소처럼 조간신문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는 것 외에 한 가지 더 할 일이 추가되었다.

 

 나는 침실을 말끔히 정리한 후 뜨거운 커피를 만들어 책상으로 가져왔다.

 구형 노트북을 켜고 증권사 홈페이지에 접속한 다음 HTS(홈트레이딩 시스템) 프로그램을 내려 받았다.

 스마트폰 앱으로 금융거래를 하는 것이 익숙해진 나에게 구닥다리 PC용 증권거래전용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공인인증서를 까는 과정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번거로웠다.

 나는 인내심을 갖고 프로그램 설치를 하나씩 진행했다.

 

 아서가 빌려준 책을 훑어보며 프로그램 설치를 마쳤다.

 예전의 나는 불안한 상황을 못 견뎌했는데 지금의 나는 그때와 사뭇 달랐다.

 모든 것은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다.

 현재는 언제나 모호하고 불안정하지만 지나고 나면 정확히 노력한 만큼의 의미를 갖는다.

 

 기본 수준의 주식투자방법 책을 읽고 주가변동 챠트와 거래량을 해석하는 방법을 이해한 후에 첫 번째 모의주식투자를 시작했다.

 투자금의 10%정도로 시작했더니 금세 돈을 벌었다.

 금액을 두 배로 늘려보았다.

 주가가 아래로 쭉 빠지기 시작했다. 다시 추가매수 주문을 냈다.

 물량은 세 배로 늘었지만 평가액은 큰 차이가 없었다.

 손실이 계속 커질 뿐이었다.

 나는 그날의 하한가에 투자금을 풀 배팅한 후 컴퓨터를 꺼버렸다.

 

 책상에 앉아 전설적인 투자가들의 스타일과 실적을 분석한 두 번째 책을 끝까지 읽고 나자 정오경이었다.

 

 샌드위치를 만들어 간단한 점심을 먹은 후 찬물로 설거지를 했다.

 창문을 모두 활짝 연 후 청소를 했다. 파란 하늘과 커튼을 날리는 부드러운 바람이 기분 좋았다. K는 깔끔한 것을 좋아했다.

 물건이 쌓이는 것을 질색해서 자투리 시간이라도 나면 주변 정리부터 했다. 책상이든 옷장이든 딱 부러지게 효율적으로 정돈되어 있었다.

 잡동사니들은 바로 쓰레기통 행이었다.

 그는 추억은 마음에만 간직하는 것일 뿐, 어질러진 방에서는 마음이 흐린 거울 같아져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관심이 떠난 물건은 그에게서 바로 버림받았다.

 

 나는 바닥을 모두 청소한 후에 거울과 싱크대와 욕실의 수도꼭지를 닦았다.

 이전에는 이런 식으로 직접 청소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스테인레스 수도꼭지가 은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보자 답답하던 마음이 차츰 가벼워졌다.

 

 K가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듯 나를 치우려던 것이 아니라 먼지 낀 내 마음을 닦아주려던 것뿐이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렇게까지 그를 괴롭게 만들었던 것만이 후회스러울 뿐이었다.

 

 옷장 문을 열고 얌전해 보이는 지방시풍의 연갈색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나는 신분증과 자동차 키를 챙긴 후 인터넷으로 가까운 증권사 지점의 위치를 확인했다.

 

 12.

 사십분 후 나는 증권사 지점에서 계좌계설을 마쳤다.

 옆 건물에 있는 은행 지점으로 가서 증권계좌로 내 은행잔고의 절반을 입금했다.

 그런 후 다시 증권사 지점으로 가서 모의투자하던 종목의 매수를 요청했다.

 

 모니터를 보던 증권사 직원이 곤란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결심한 듯이 입을 열었다.

 

 “지금 주문하신 회사의 오너가 위독하다는 소문이 돌아요. 이렇게 많은 주문을 내시려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도 부족할 텐데요.”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는 재차 주문을 내 줄 것을 요구했다.

 직원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작게 한숨을 쉬더니 눈을 질끈 감고 키보드를 꾹 눌렀다.

 나는 걱정 말라는 미소를 지어보이고 하한가로 주식이 매수된 전표를 받아들고 증권사를 나왔다.

 

 첨단 스마트폰을 개발 중인 회사의 오너가 불치병에 걸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불굴의 의지로 곧 자리를 털고 일어설 것이다.

 그의 죽음은 아직 몇 년 더 남았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의 회사는 건재할 것이다.

 설사 그가 위독하다고 할지라도 그런 헐값에 주식을 내던지는 것은 바보짓이었다.

 

 나는 한참동안 혼자서 거리를 걸었다.

 오가는 사람들은 활기찼고 그들의 표정은 해맑았다.

 하늘은 맑았다. 흰 구름이 근심 없이 드문드문 떠 있었다.

 

 길가의 서점에 들어가서 경제 분야 서가를 죽 둘러보고, 새로 나온 신간들과 아서에게 빌렸던 책들을 구입했다.

 그에게 빌린 책들은 돌려주기 위해 자동차 트렁크에 넣어두고 왔다.

 계산을 마치고 새 책이 가득 든 묵직한 쇼핑백을 들고 나오려니 어깨가 무거워졌다.

 눈에 띄는 카페의 문을 열고,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오후 내내 조용한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귀퉁이를 접어놓은 후 페이지를 넘겼다.

 읽어야 할 분량이 많았지만 목차를 훑어본 후 실제로 투자를 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내용을 따라갔더니 어렵지 않게 내용을 숙지할 수 있었다.

 머릿속이 상쾌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를 별장에 하루 종일 혼자 있게 하고도 자기 일에 열중하던 K를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뜨거운 카푸치노의 진한 풍미를 음미하면서 나는 또 K를 생각했다.

 그는 마음껏 일하고 난 후 결과물을 받아들고 나서 즐기는 여유가 좋다고 했었다.

 그 순간에는 시간이 농밀해지고 자아가 투명해진다면서. 감정이 순수하게 빛날 때도 그럴 때라고 했다.

 외로움에 지쳐있던 나에게 그의 말은 일에 미친 워커홀릭의 궤변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나는 가시 돋친 말을 내뱉으며 그를 원망하고, 때로는 저주하고, 어김없이 후회하기를 거듭했다···

 

 갑자기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나는 당황함을 누르려고 애쓰면서 냅킨으로 책장에 떨어진 눈물을 닦아냈다.

 묵직한 크림색 도자기로 만든 카푸치노 잔을 들어 바닥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한 모금의 커피를 마셨다.

 햇빛이 한낮의 날카로움을 누그러뜨리고 약간 침침해지면서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여섯시였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되돌릴 기회를 준 운명에 나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앞으로 나는 K의 그림자가 되어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기 위해 살 것이다.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을 멀리서 엿보는 것이 내가 원하는 전부였다.

 그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사는 것도 상관없었다.

 무언가를 요구할 자격이 애초부터 나에게는 없었다.

 

 웨이트리스를 불러 간단한 식사를 주문했다.

 인상 좋은 웨이트리스는 곧 사기 접시에 크림치즈와 꿀빛 무화과잼을 듬뿍 곁들인 갓 구운 베이글을 가져다 주었다.

 

 13.

 투자자 아카데미의 두 번째 수업이 시작되었다.

 다들 모의 파생상품 투자 결과를 출력해 왔다.

 나는 한 종목에 매수 주문을 냈을 뿐 파생상품 투자는 시작하지 않았다고 멋쩍게 말했다.

 켈리 부인은 초보자에게 파생상품은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며 동정어린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서는 나에게 무슨 종목을 매수했는지 물었다.

 

 회사 이름을 대자 모두들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아는 증권사 직원이 그 회사 오너가 위독하다는 얘기를 해주었어요.”

 

 진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증시엔 떨어지는 칼날을 잡지 말라는 격언이 있죠.”

 

 건축가 모건 씨가 아는 체하며 나섰다.

 

 매컬로우 교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그의 눈이 잠깐 빛났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서는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고 나서 수업을 시작했다.

 

 80분 동안의 이론 수업을 마치고 아서가 10분간 휴식을 알렸다.

 하품을 참고 있던 제이슨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서 몸을 쭉 뻗으며 기지개를 폈다.

 진은 숄더백에서 파우치를 꺼내들고 화장실로 갔다.

 맥컬로우 교수는 조각처럼 미동 없이 앉아 있었다.

 모건과 켈리 부부는 너무 늦게까지 수업을 받아야 해서 피곤하다느니 배가 고프다느니 불평을 해댔다.

 빔 프로젝터와의 연결을 끊고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던 아서가 놀란 얼굴을 했다.

 

 “며칠째 하한가를 기록 중이던 A사 주식이 시간외 거래 상한가네요. 음··· 어떻게 된 일일까.”

 

 맥컬로우 교수가 흥미롭다는 듯 나를 보았다. 표정은 변화가 없고 눈만 빛났다.

 

 “증권가 소식통은··· 오너가 암에 걸린 건 사실이지만 초기단계라서 간단한 수술로 완치 가능하다나 봐요.

 이걸 어쩐다, 우리 회사도 엄청난 공매도를 해댔는데.

 앞으로 손해가 막심하겠네.”

 

 건축가 모건은 입에 머금은 커피를 뿜을 뻔 했다.

 그의 부인인 켈리가 재채기를 했다.

 

 “진짜로 샀더라면 좋았을 뻔했네요.”

 

 “하긴, 모의투자니까 겁도 없이 사들였겠지.”

 

 모건 씨가 말을 자르고 나섰다.

 

 매컬로우 교수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실제로 사들인 것 같은데, 아닌가?”

 

 나는 망설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그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와우!”

 

 아서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순수하게 놀란 것 같았다.

 

 “매컬로우 교수님은 독심술이 있으신 것 같아요.”

 

 “그보다는 이 예쁜 아가씨처럼 예지력이 있었으면 좋겠네.”

 

 교수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하긴 그런 게 있으면 이렇게 골치 아픈 건 안 배워도 대박이겠네요.”

 

 제이슨이 부럽다는 듯 말했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겠어요?

 요행히 한번 맞은 거지, 그런 예감 믿었다가 투자했다가 깡통찬 사람이 어디 한둘이에요?”

 

 모건 씨가 말하자 그의 부인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서는 눈을 연신 껌벅거렸고 옅은 미소를 머금은 맥컬로우 교수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화장실에 다녀온 진에게 제이슨이 신나게 귓속말을 해댔다.

 진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녀의 푸른 눈이 누군가를 생각나게 했다.

 

 어디서 봤더라?

 

 나는 기억 속을 부지런히 더듬었다.

 그녀의 이름이 기억 속에 있는 이름과 딱 들어맞았다.

 진은 바로 앤디 레이놀즈의 딸이었다.

 

 5년 후 내가 처음 앤디를 만났을 때 그는 외동딸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있었다.

 패션 회사를 물려받기를 거부하고 실패한 투자만 일삼다가 그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딸은 멕시코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나는 진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아버지와 거의 닮지 않은 그녀는 확실히 패션 디자이너보다는 증권 브로커나 애널리스트 쪽이 더 어울려 보였다.

 혹시 디자이너 앤디 레이놀즈의 딸이냐고 묻자 그녀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포기했다는 듯 덧붙였다.

 

 “제이미가 영화배우 지안 리의 아들인 것도 이미 알죠?”

 

 “당신 부모님도 우리가 아는 분인가요? 아니면 중국의 부호?”

 

 제이슨이 돌려 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물었다.

 

 “아니오, 전 한국계예요. 부모님은 오래전에 이혼하셨고 알려진 분도 아니에요.”

 

 부모의 유명세에 지쳐 보이는 그들에게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질문에는 악의가 담겨있지 않았고 나도 숨길 것이 없었다.

 

 나중에 어머니의 집안이 한국에서 꽤 유명한 것은 알게 되었지만 나는 그 집안에서 거의 잊혀진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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