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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마초를 삼킨 페미니스트
작가 : 훈장
작품등록일 : 2018.11.8
마초를 삼킨 페미니스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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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라는 동물에게 아픈 상처를 받은 김태현. 여자라는 동물에게 아픈 상처를 받은 서영희. 그런 두 사람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증오하는 대상이 있다는 점. 성별에 맞지 않는 이름을 사용한다는 점. 그런 두 사람은 같은 건물에서 각각 남자와 여자를 대상으로 하는 복수 대행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몰랐던 두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그 사실을 알게 되는데.......

 
02 - 영화 아저씨 명대사.
작성일 : 18-11-09 11:23     조회 : 303     추천 : 0     분량 : 4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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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을 팔려고 제가 먼저 접근했는데,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예비 유치원 교사였어요.”

  한스럽게 마침표를 찍은 남자는 연거푸 담배 연기를 토해냈다. 군말 없이 재떨이를 내주는 영희였다.

  “보통 대학생은 자기 건사하기도 벅차서 보험을 잘 안 들어요. 그래서 차선책으로 연락처만 교환하고 취업 후를 노렸는데 그 과정에서 누구랄 거 없이 급속도로 서로에게 빠져 버렸어요.”

  더 적극적인 쪽은 여자였다.

  오빠 뭐해요? 주말에 시간 있어요?

  두 사람이 나눈 SNS 메시지는 남자 휴대폰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먼저 꼬리를 친 쪽은 누가 봐도 여자였다.

  “그런데 저에게는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어요.”

  “걸림돌이요?”

  “사실은 제가…… 유부남입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만난 첫사랑과 일찍 결혼해서 슬하에 두 딸이 있어요.”

  영희는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제아무리 여자를 증오한다지만 외도한 남자를 두둔할 순 없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남자의 아내였다.

  “여자분도 그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물음표를 던지자,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였다.

  “제가 가정이 있다는 건 그 여자도 알고 있습니다.”

  영희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얼추 내막이 그려진다.

  “그 사실을 알고 만났는데도 이상한 여자들이 나타나서 선생님을 괴롭힌다고요?”

  지그시 눈을 감은 남자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망연자실한 낯빛을 펼쳤다.

  “정말 미치겠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여기까지 찾아왔겠습니다.”

  불륜 사실이 아내에게 알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 회사에서 문책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주변 사람들의 신임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망연자실한 남자에게선 그런 감정들이 느껴졌다.

  “그 여자들이 찾아온 게 정확히 언제부터입니까?”

  “낙태를 종용한 직후였으니까, 한 달 정도 됐을 거예요.”

  “낙태요?”

  남자는 무겁게 한숨을 놓았다.

  “그 여자가 임신해서 제가 낙태를 종용했어요. 한 번 실수로 가정을 깰 순 없잖아요.”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문제는 수습 과정이었다.

  “정신적 피해보상을 운운하며 그쪽에서 요구한 합의금은요?”

  “요구한 합의금은 아직 없었어요.”

  양 눈썹을 푹 주저앉힌 영희는 속으로 크게 당황했다. 보통은 우르르 몰려온 첫날에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게 다반사였다.

  합의금을 요구하지 않을 거면, 집요하게 남자를 쫓아다니면서 괴롭힐 이유가 없지 않은가.

  좀 독특한 케이스이었다.

  “걸려도 아주 더럽게 걸린 것 같습니다.”

  “아주 더럽게요?”

  “아마 곧 그쪽에서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해올 겁니다.……”

  조심스럽게 5천만 원을 예상한 영희.

  깜짝 놀란 남자는 입이 떡 벌어졌다.

  “5천만 원이요!”

  “그 정도는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선생님 가정은 고사하고 탄탄한 직장을 빌미 삼아서라도 그 정도는 요구해올 겁니다.”

  남자는 나라 잃은 표정을 지었다.

  뭘 그리 개탄하느냐는 듯, 가볍게 웃어넘긴 영희는 느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걱정하지 마세요. 합의금보다 싼값에 그 여자들을 처리해드리겠습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정신이 썩어빠진 김치녀를 참교육하는 건 우리나라 1등입니다. 국정원과 특전사도 그것만큼은 절 못 따라옵니다.”

  의뢰인은 기다란 한숨을 늘어뜨렸다.

  안도의 한숨이 분명했다.

  “비용은 얼마나 들어요?”

  “비용은 예상 합의금의 5분의 1만 받겠습니다. 선금이 아닌 성공보수로요.”

  흥신소는 착수비 명목으로 비용의 절반을 선금으로 받는 게 관례였다. 반면 영희는 오직 성공 보수로만 비용을 받고 있었다.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 여자들을 처리하지 못하면 비용을 안 받겠다는 말씀이세요?”

  “물론이죠. 그뿐만이 아니라 단 1원이라도 합의금을 지출하셔도 비용은 안 받겠습니다. 어떻게? 계약을 진행하시겠습니까?”

  남자는 반신반의하는 눈빛으로 영희를 쳐다보았다. 거짓은 단 1도 없었다.

  “전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모쪼록 그 여자들이 다시는 절 찾아오지 못하게 해주세요.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고객센터 직원도 보험을 파는 걸까?

  표적은 별의별 모임을 다 쫓아다니며 활발한 사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번 결전 장소는 논현역 2번 출구 근처의 한 감자탕 가게였다.

  “야 이 새끼야! 내 동생은 물도 제대로 못 마시는데 넌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

  여럿이 밥을 먹던 표적을 급습했다. 대학교 동창 모임이었다. 표적의 은사인 대학교수도 한 명 끼어있었다.

  “도대체 왜 이러세요?”

  “왜 이러기는! 네가 주는 대로 받는 거지!”

  버럭, 언성을 높인 태현은 주먹과 발을 총동원해 사정없이 표적을 때렸다. 한발 늦게 달려든 유선과 아름은 표적의 팔과 다리를 한쪽씩 잡더니 한번 물며 절대 놓지 않는 핏볼처럼 무자비하게 표적을 깨물었다.

  “아악---------”

  감자탕 가게에 울려 퍼진 표적의 비명.

  그의 동창들은 세 여자를 떼어내려고 필사적으로 힘을 모았지만, 고객센터에서 한번 쓴맛을 본 세 여자는 표적에 철썩 들러붙어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단연 압권은 표적에게 헤드록을 건 태현이었다.

  왜 그런 느낌 있잖아.

  남자 목에 헤드록을 걸고 주먹이 아픈지도 모르고 사정없이 머리를 때리는 느낌.

  태현은 그런 느낌으로 표적의 머리를 쉼 없이 쥐어박았다. 주먹에 모터가 달린 듯했다.

  “경찰 좀 불러주세요.”

  표적의 동창 중 한 명이 크게 112를 외쳤다. 내심 바라던 바였다.

  “불러! 당장 경찰 불러!”

  “안 돼! 경찰 부르면 절대로 안 돼!”

  경찰을 부르라고 당당히 소리치는 태현.

  반면 표적은 거세게 112 신고를 반대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꼴이었다.

  “도대체 왜 이러세요!”

  여자가 낫겠다고 판단하였는지, 합심하여 세 여자를 뜯어말리던 남자들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고, 태현과 엇비슷한 나이대의 여자들이 자초지종을 따져 물었다. 대답하는 순간에도 절대 헤드록을 풀지 않는 태현이었다.

  “유부남인 이 새끼가 제 동생을 유혹해서 임신까지 시켰어요.”

  “임신이요?”

  “백만 원만 툭 던져주고 애를 지우라고 했어요. 선생님 같으면 화가 안 나시겠어요!”

  숨을 크게 머금은 여자는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이내 그녀의 시선은 표적을 향하였다.

  “이분 말씀이 사실이야?”

  내막을 접수한 여자는 바닥에 엎어져 있던 표적에게 해명할 기회를 주었다. 그는 여전히 태현에게 헤드록이 걸려 있었고 유선과 아름에게 팔과 다리를 한쪽씩 깨물리고 있었다. 진짜 핏볼보다 집요하고 무서운 인간 핏볼들이었다.

  “잠시 한눈을 판 건 맞는데, 그 여자도 내가 유부남인 것을 알고 있었어.”

  태현은 불현듯, 영화 아저씨의 명대사가 생각났다. 원빈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했던 대사가.

  ‘틀렸어. 넌 지금 우리 의뢰인에게 사과를 해야 했어.’

  태현은 참을 수 없었다, 지금이야말로 복수의 절정을 선보일 찰나였다.

  “네가 유부남인 것을 알았다고! 네가 입도 뻥긋 안 했는데 그걸 민선이가 어떻게 알아! 이 나쁜 새끼야!”

  크게 소리친 태현은 표적 머리에 날카롭게 세운 이빨을 날렸다. 그리고 대나무를 씹어 먹는 판다처럼 표적의 두피를 와작와작 씹어 먹었다.

  입안에선 오묘한 정수리 냄새와 텁텁한 담배 냄새가 불쾌하게 감돌았지만 의뢰인이 받은 상처와 고통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안 되었다.

  이딴 불쾌함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아악----------”

 

 

 *

 

 

  상황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의뢰인이 의문의 여자들에게 창피를 당하는 모습은 이런저런 제목으로 동영상 사이트에 공유되고 있었다.

  [총각 행세한 유부남의 최후.]

  [임신한 여자를 버리면 안 되는 이유.]

  영상 속 내용은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확신한 방법을 담고 있었다.

  조강지처가 우르르 친정 식구들을 몰고 가서 상간녀의 옷을 벗기고 무자비한 폭행을 가하는 중국 출처의 영상과 똑 닮아 있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프로 중에서도 최상위 프로였다.

  장소도 각양각색이었다. 최초로 방문한 근무지, 밥을 먹으러 간 식당, 차가 고장 나서 오랜만에 탄 지하철, 취미 삼아 즐기는 스크린 골프장까지.

  그녀들의 괴롭힘은 때와 장소를 가라지 않았다. 이거야말로 찰거머리였다. 재수 없게 똥 밟은 수준이 아니었다.

  “오민선 씨에게 언니가 세 명이나 있어요?”

  “아니요. 형제는 오빠 한 명뿐이에요.”

  영희는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이름 오민선. 나이 23세. 거주지는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XXX 번지 2층.

  의뢰인이 알고 있던 오민선의 휴대폰 번호를 토대로 신원을 조회한 결과, 그녀의 가족관계는 의뢰인이 말한 대로 부모님 두 분과 오빠 한 명뿐이었다.

  출생의 비밀이라도 있는 걸까?

  꼼꼼한 영희는 오민선의 가족 관계 증명서까지 확인해보았다.

  언니로 기록된 여자는 호적에 올라있지 않았다. 호적상으로는 언니가 없다는 의미였다.

  “이번에는 또 뭐야?”

  수광은 막 나온 먹태 한 조각에 마요네즈를 듬뿍 찍었다.

  이름 백수광. 나이 서른.

  현직 경찰인 그는 영희의 고추 친구이자 국정원 부럽지 않은 정보통이었다. 신원 조회만큼은 현직 경찰을 따라올 자가 없었다.

  “꽃뱀이 찐을 붙었어.”

  “꽃뱀이 찐을?”

  “유부남인 것을 알고 만나다가 임신해서 낙태까지 했는데 기걸 빌미로 단단히 한몫 챙기려는 것 같아.”

  수광은 의자를 당겨 앉으며 영희와 거리를 좁혔다.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청자의 낯빛이었다.

  “유부남인 것을 알고 만난 건 확실해?”

  “의뢰인 말로는 틀림없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인 수광은 소주 한 잔을 쭉 들이켰다. 영희는 언제나처럼 술 대신 물을 마셨다.

  “임신은?”

  “테스트기를 세 번이나 했는데, 세 번 다 선명한 두 줄이 나왔대. 하지만 내 생각에는 임신 자체가 거짓말 같아.”

  영희는 확신했다. 오민선의 임신과 낙태는 한몫 단단히 챙기려는 거짓부렁이었다.

  “그쪽 요구는?”

  “요구는 아직 없어.”

  “요구가 아직 없다고?”

  “나도 그게 의문이야……”

  영상 속 여자들은 프로 중에서도 최상위 프로들이었다. 반면 의뢰인에게는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

  “여자 쪽 아는 사람들이야?”

  “그건 아닌 것 같아. 오민선이 고용한 사람들인 것은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금전적인 요구가 없어.”

  “그 여자들 신원 파악은?”

  “이제 슬슬 해야지.” “어떻게?”

  “그거야 식은 죽 먹기지……”

  영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여자들이 프로라면, 영희는 세계 톱클래스급 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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