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교수 요코
“주먹? 느려터져 가지고 주먹질은, 너나 먹어라!”
여성은 나 돌의 팔목에 힘을 가했다. 나 돌은 고통을 참느라고 인상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학생들은 원으로 둘러싸고 나 돌의 비참한 몰골을 감상하고 있었다.
“아샤!”
경쾌한 여성의 기합소리와 함께 퍽! 여성의 주먹이 나 돌의 면상에 박혔다. 주먹을 휘두르는 여성의 몸짓은 탱고를 추듯 경쾌하고 우아했다. 원을 만들고 보던 남학생들 탄성을 질렀다. 여성에게 한 대 맞아도 영광스럽겠다는 생각도 잠시였다. 한 대 맞은 나 돌은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더니, 맥없이 뒤로 두어 걸음 휘청거리다, 주저앉았다.
“나 요코다, 나한테 맞은 걸 영광으로 알아라!”
“너.....”
나 돌은 외치고 싶었지만, 눈이 감겼다. 학생들이 쓰러진 나 돌의 두 팔과 다리를 흔들었다. 엉덩이가 유별 큰 남학생이 등을 내밀어 나 돌을 엎었다. 나 돌의 벌어진 입에서는 침이 흘렀다. 눈은 흰자위만 보였다. 남학생 어깨 위로 걸친 두 팔은 축 늘어졌다. 남학생은 나 돌을 엎고 건물을 향하는데, 요코가 불렀다.
“이리 와봐!”
남학생은 앞으로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요코가 앞으로 왔다. 남학생은 요코를 마주하기가 눈이 부신 듯, 얼굴을 아래로 향했다. 요코가 나 돌의 손목을 잡고 엄지손가락에 힘을 가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요코는 영화 포스터 같았다. 남학생들은 요코를 보면서 침을 ‘꼴깍!’ 삼켰다. 나 돌이 늘어졌던 팔을 오므리며, 눈을 떴다.
“내려놔!”
남학생은 요코의 말에 망설임 없이 나 돌을 내려놓았다. 나 돌은 두발로 섰다. 그리고 눈을 떴다. 원으로 둘러싼 학생들을 둘러 보다, 요코와 눈이 마주치자, 두 주먹을 가슴 높이로 올리고, 발을 어깨 넓이로 벌렸다.
“덤벼!”
다시는 질 수 없다는 의지를 담아 외쳤다. 요코가 입을 벌리고 웃었다.
“덤벼? 아직도 사태 파악이 안 되니? 널 살려 낸 사람은 나야, 몰라?”
나 돌은 요코의 말에 정신을 차리려고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흔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거렸지만, 요코의 주먹을 맞은 것은 희미하게 떠올랐다.
“덤벼, 아까는 흥분해서 그런 거고, 정식으로 하면 이긴다!”
나 돌은 학생들 앞에서 창피 당하느니, 더 맞기로 작정했다. 한 대라도 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자라고 우습게 알고 덤벼서 실수했다고 여겼다. 요코는 웃으며 주먹을 내밀었다. 정확하게 나 돌의 코앞에 주먹이 멈추었다. 나 돌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주먹이 펴지더니 손바닥이 보였다.
“그만해, 나름 귀엽네, 저녁은 내가 살 거니까 비싼 걸로 먹어.”
요코의 음성은 담담하고 절제가 배어 있었다. 나 돌은 눈을 껌벅이며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정하지 못했다. 요코가 손으로 어깨를 툭 치고는 앞서갔다. 요코가 차 밑에 끼어 있는 축구공을 꺼내려고 땅 바닥에 엎드렸다. 나 돌은 재빠르게 차 밑으로 기어가 발로 축구공을 찼다. 축구공이 요코를 향해 굴렀다. 요코가 일어나며 축구공을 발로 잡고 웃었다.
“아까 꺼내 주지, 이름 뭐니?”
“나 돌이다, 자꾸 말까지 마라, 성질나게.....”
나 돌이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면서 경고를 날렸다. 옆에 있던 남학생이 거들었다.
“돌이야, 새로 오신 생명공학 전임교수님이야, 인사드려!”
“복학 한지 꽤 지났는데, 아직도 분위기 파악을 못하네....”
학생들 나 돌에게 요코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요코는 배시시 웃었다. 요코 뒤에서 붉은 노을이 환한 빛으로 쏟아져 눈이 부셨다. 나 돌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난감했다.
“너 돌 아니고, 나 돌? 이름 재밌다! 한국말은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게 다마내기(양파) 같아, 나 요코라고 해, 말까서 미안한데 학생들에게는 말 놓고 지내니까 이해해라!”
“에....예....”
나 돌은 손을 머리로 가져가 긁적이며, 무안을 감추려고 했다.
“복학생이니? 어려 보인다.... 신입생인 줄 알았는데 잘못 봤구나, 식사 어떠니?”
“예....에....”
나 돌은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머리만 긁적였다. 남학생들 좋겠다고 부러워서 한마디씩 거들었다.
“영광입니다, 어디가 좋을까요, 라고 해야지!”
“매너 똥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격해야하는 거 아냐?”
“교수님은 강의 하는 게 아니라, 멜로 영화를 보여 준다고, 돌아, 영광이라 해라!”
요코는 어깨 높이로 손을 흔들어 남학생들의 입을 막았다.
“옷 갈아입고 올게, 여기서 십 오분 뒤에 만나자.”
“예.... 그러세요....”
나 돌은 뭐에 홀린 기분이 들었다. 요코를 보고 있는데, 현실 같지 않았다. 지난밤에는 서수복이라는 덩치에게 상대도 안 되게 맞았는데, 지금은 요코라는 천사 같은 미인에게 맞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다녀오세요!”
나 돌은 뒤돌아가는 요코에게 인사를 던졌다. 요코는 긴 머리가 좌우로 흔들리게 걷다가, 멈추어 어깨 위로 손을 올리고 흔들었다. 동글고 긴 다리는 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나 돌은 눈을 얼른 돌렸다.
“교수라고..... 헛, 교수님이라고.....”
교수를 대하는 존경심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요코와 눈을 마주하면 가슴에서 뜨거운 게 올라 왔다. 스물 갓 넘어 보이는 얼굴에, 몸매는 저절로 안아 주고 싶게 만드는 끌림을 내포하고 있었다. ‘동글다’라고 해야 맞는 다리의 선은 신의 선물이었다.
“어쩌지.... 이러면 안 되는데.....”
요코가 들어 간 건물은 삭막했다. 분명 요코가 앞에 섰을 때는 건물에서 노을의 반사 빛이 쏟아졌었는데, 요코가 들어 간 건물은 어둡고 칙칙했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
종운은 증권조작 협의로 징역 3년을 살았다. 종운은 어차피 보낼 3년을 알차게 보낼 방법을 모색하다, 어렸을 때 몇 번이고 시도하다 못한 단전호흡을 몸에 익히기로 작정하였다. 배꼽 밑 단전으로 호흡하기는 증조할아버지인 나철 때부터 내려오던 호흡이었다. 종운은 현실에 적응력이 높았다. 호흡을 몸에 익혀 나가리라 작심하고, 실천했다.
교도소 직원과 일부러 싸워 독방에서 지냈다. 혼자 지내면서 하루 종일 호흡을 몸에 익히기를 연습했다. 처음에는 긴 호흡을 하느라고 숨을 참고 있노라면, 머리가 노래지면서 쓰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반복을 되풀이하면서 단전을 어느 정도 조절하게 되었다.
“천천히, 천천히.....”
밥 먹고 하는 일이 숨쉬기인지라, 금방 집중해서 숨을 고르는 법을 익혔다. 3년을 꼬박 단전호흡을 익혔다. 아랫배에 힘이 생겼다. 마음이 상쾌하고, 몸이 가벼워 날아갈 것 같았다. 호흡이 완벽하면 몸이 허공에 떠오르게 할 수 있다는 말을 아버지에게 들었었다. 그 정도 경지에 도달하고 싶었다.
“욕심을 버리자, 마음을 비우자.....”
매일 반복해서 호흡을 고르면서, 마음을 비운다고 다짐을 했다. 3년을 꼬박 채웠다. 교도소 안에서 독방에서 지내느라, 교도소 안에서 만난 사람이 몇 안 되었다.
“출감!”
교도관은 귀 밑에 길게 늘어진 구렛나루와 입 위로 깊게 패인 팔자 주름이 어울렸다. 교도관보다는 교수가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교도소를 나가는 날이라는 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설사 안다고 해도 올 사람이 누군지 긴가 민가 했다. 교도관은 종운이 들어 올 때 입고 온 옷 보따리를 주었다. 사무실 한켠에 있는 가림 막 뒤에서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고생 많았습니다, 가족이 오시나요?”
“고생은요,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원채 점잖은 분이니 다시는 오지마세요, 인삽니다!”
교도관은 발로 종운의 엉덩이를 세게 찼다. 종운은 엉덩이가 얼,얼, 했지만, 기분 좋았다. 교도관은 진심으로 출감을 축하해주었다. 그런데, 교도관 머리 뒤로 체크무늬 투피스를 입은 여성이 흐릿하게 보였다.
“어, 뭐지....”
종운은 교도관 뒤로 희미했다, 선명해지는 여성을 가늠하느라 시선을 모았다. 교도관은 종운의 시선을 따라 뒤로 돌아보고, 종운을 보았다.
여성은 두 손을 축 늘어트리고, 허공에 떠서 교도관 뒤에 떠 있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의 얼굴은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선이 고왔다. 종운은 호흡을 길게 들이마셨다.
“누구세요? 누군데 따라 다녀요?”
“뭐요? 난 할 일을 하는 건데요?”
교도관은 당황해서 종운을 보며 받았다. 종운은 교도관의 머리 위에 머물고 있는 여성과 대화를 할 수 없는 것을 알았다. 보이기는 하지만, 대화는 불가능했다.
“혹시, 아는 분 중에 체크무늬 투피스에 날씬하고 단발머리의 여성이 있으세요?”
“예, 뭐라고 하는 건지..... 뭐라고요?”
종운은 여성의 차림새를 다시 일러 주었다. 허공에 떠 있는 여성은 종운의 말을 알아듣기는 하는 것 같았다. 종운과 시선을 마주 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아세요?”
교도관은 대답을 회피하려다, 궁금증을 실어 물었다. 종운은 교도관의 뒤를 향해 물었다.
“지금 허공에 떠 있는데요,,, 누군데요?”“얼마 전에 집나간 아내가 입고 있는 옷차림과 같아요, 선생님!”
“집을 나가요? 언제요?”
“한 일주일 전에 나가고 난 뒤로 연락이 끊겼어요, 뭐라고 해요? 뭐라고 하나요?”
교도관은 종운의 손을 잡고 보챘다. 여성은 앞장서 사무실 문을 나갔다. 따라 오라고 고개를 돌려서, 손을 흔들었다. 종운은 침을 삼키며 교도관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따라갔다. 교도관은 종운을 따라 사무실을 나섰다. 교도관은 동료에게 퇴근한다고 말하고, 종운을 따라 갔다. 종운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으려고, 시선을 모았다.
“우리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는데요, 차는 어디 있어요?”
교도소를 나온 종운이, 따라오는 교도관에게 물었다. 교도소 한 쪽 옆에 주차장이 있는 걸 보고 차를 타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도관은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왔다.
“차를 타면 따라 타는지 봅시다!”
종운이 조수석에 타려다가, 조수석 뒷문을 열고 탔다. 차 옆에 허공에 떠있던 여성이 차 문을 개의치 않고, 안으로 들어와 조수석에 앉았다.
“출발 합시다, 어디로 가는지 알려 줄 거요.”
조수석에 앉은 여성은 손을 들어 오른쪽을 향했다. 종운은 안심이 되었다. 여성이 손으로 향하는 곳을 교도관에게 알려 주었다. 차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종운은 의왕시에 있는 서울 구치소에 있었다. 용인을 향해 달리던 차가, 기흥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국도를 달렸다.
“우리 집 가는 길인데요..... 오 킬로만 더 가면 저희 집입니다.....”
사거리 신호에 빨간 신호등이 들어왔다. 조수석에 있던 여성이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길가 아파트화단으로 들어갔다. 종운과 교도관은 여성이 간 아파트 화단을 따라 갔다. 여성은 두 사람이 따라오도록 천천히 아파트 뒤로 갔다. 아파트 뒤는 산을 깎아 절벽이었다. 조심스럽게 산길을 따라갔다. 절벽과 아파트 사이에는 추락 사고를 막기 위한 네모난 철망이 설치돼있었다. 여성은 인위적으로 만든 나무 계단을 몇 칸 오르다, 오른쪽 옆으로 갔다.
“조심 하세요!”
종운이 어두운 길을 앞서가면서, 뒤에 일렀다. 교도관이 핸드폰에서 손전등을 켰다. 교도관의 얼굴에는 긴장이 잔뜩 배어 있었다. 큰 소나무 밑에서 여성이 멈추었다.
“여기 와 본 적 있어요?”
“처음인데요, 왜요?”“그분이 여기 섰는데요.....”
허공에 떠있는 여성이 아래쪽을 보고 있었다. 종운은 여성이 보는 곳을 따라 보았다. 얼마 전에 흙을 뒤집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종운은 옆에 있던 키 작은 소나무 가지를 꺾어 땅을 팠다. 교도관은 종운을 따라 손으로 흙을 팠다. 교도관의 손길이 빨랐다. 종운의 얼굴에도 긴장이 가득 찼다. 어두운 산에서 땅을 판다는 것은, 긴장을 불렀다. 허공에 떠 있던 여성이 교도관이 파놓은 땅속으로 사라졌다.
“아, 사라졌어요!”
종운이 놀라서 외쳤다. 교도관은 확신에 차 손놀림이 빨라졌다.
5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