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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박쥐
작가 : 사각
작품등록일 : 2018.10.23

"기왕 죽을거면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서."
"타 죽고싶어."

 
7화
작성일 : 18-11-07 20:45     조회 : 189     추천 : 0     분량 : 7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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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 이후 며칠이 지났다. 어림잡아 대략 일주일쯤 지났던 것 같다. 그와 나의 생활은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늘 대화가 있는 것은 아니어도 대화를 일부러 피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는 일은 없어졌다. 물론 내가 그동안 묻고 싶었던 것들은 여전히 묻지 못한 상태였다.

 

 

 

 

 사람 사는 집 같지 않던 집도 우리의 관계처럼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해서 내가 그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부탁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는 눈치가 빨라 내가 원하는 것들을 어렵지 않게 구해다 주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덜덜 떨며 벽난로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밖에서 장작을 구해와 불을 켜 주었고, 내가 찬물에 몸을 씻고 추워하니 뜨거운 물을 쓸 수 있게 해주었으며, 씻고 난 뒤 꽁꽁 얼어 메두사처럼 솟은 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창고에서 낡은 드라이기를 찾아주었다. made in 2001이라고 적힌 드라이기는 보기에도 너무 낡아서 터져버릴까 무서워 결국 쓰지 못했지만.

 

 

 

 

 그가 눈치가 빠른 이유는 그의 시선이 오로지 내게 향해 있기 때문이었다. 집에 있는 내내 제 곁에 붙어있게 했고, 나만 바라보았다. 내가 시선을 두는 곳에 그도 같이 시선을 두었고, 내가 잠시 인상이라도 찌푸리면 ‘왜?’나 ‘이거 아니야?’하고 물어왔다.

 

 

 

 

 어디서 구해오는지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는 내가 먹을 수 있을만한 재료들도 사왔다. 우리 동네에서는 너무도 귀했던 두부를 보았을 땐 너무 놀라 한참을 비닐봉지 안을 내려다보고 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나를 또 지켜보고 있던 그가 ‘이거 아니야?’하고 물어서 아니라고, 너무 좋아서 그랬다고 하니 그는 그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두부를 사다주었다. 내가 태어나서 두부를 지겹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먹을 것을 먹고, 몸도 따듯해지니 어쩐지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 날 이후 며칠간은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결결히 살이 찢어진 채 괴로워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힘들었지만, 이제 그런 날보다 그저 그가 나의 표정을 관찰하듯 나도 그의 표정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여유있는 날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의사가 말했듯 그는 정말로 이제까지 잠결에 움직이던 사람인 것처럼,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사람처럼 모든 행동이 명확해졌다.

 

 

 

 의사가 틈틈이 와 보모처럼 채워놓고 간 것으로 알고 있는 우유들도 더는 마시지 않았고, 몽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거나, 아기처럼 말을 하거나 하지 않았다.

 

 

 물론 ‘이거 아니야?’라고 물을 땐 조금 아이 같긴 했다.

 

 

 

 

 

 오늘 밤도 역시나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뿌옇게 김이 서린 거울을 힘주어 손으로 닦아냈다. 금세 다시 뿌옇게 김이 차는 거울을 몇 번이나 닦아내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말랐다. 요즘 다시 음식을 먹고 있긴 했지만, 분명 나는 이곳에 오기 전보다 아주 볼품없어졌다. 때끈한 뺨을 만지다 작은 숨을 내쉬고 샤워실 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 길게 뻗은 샤워실 조명을 등진 나의 그림자가 보였다.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쓰고 고개를 숙이니 샤워실 문 바로 옆에 등을 기대어 앉아있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주인을 기다린 애정을 갈구하는 강아지 같은 눈까진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는 강아지처럼 내가 샤워실처럼 시야에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면 늘 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우스운 것은 그런 그를 보면 나는 어쩐지 안심이 된다는 거였다. 기계식 안전장치 하나 없는 이 집에, 유일하지만 가장 뛰어난 살아있는 안전장치가 그가 아닐까.

 

 

 

 

 내가 샤워실 밖으로 한 발을 내딛자 그 또한 어기적어기적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게 말하면 그는 나의 열성팬이었고, 좀 나쁘게 말하면 스토커였다.

 

 

 

 처음엔 조금 놀랐지만 며칠이 지나지 이제 좀 익숙해져서 나는 놀라지 않고 어색한 표정으로 그를 지나쳐 거실 벽난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타닥, 타닥하고 잔잔하게 타오르는 벽난로 앞에서 머리를 말렸다. 바닥의 서늘한 기운에 어깨를 매만지니 어깨를 감싼 나의 손등 위로 기다렸다는 듯 담요가 걸쳐진다.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를 보곤 ‘고마워요.’하니 이젠 담요에 안으로 감춰진 나의 긴 머리까지 옷 밖으로 빼내어준다.

 

 

 이것 또한 내가 내내 겉옷이나 담요를 입은 뒤 하는 행동을 주의 깊게 보던 그의 학습에서 나온 행동이다.

 

 

 

 

 "하…"

 

 

 

 헛웃음이 나왔다. 그 의사, 랴오위의 말대로 나는 그에게 있어 한낱 먹이일 뿐인데 난 지금 마치 공주같은 대접을 받고 있었다.

 

 

 

 "왜?"

 

 

 

 

 그의 물음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수그리고 그가 나를 더 보지 못하도록 수건으로 푹 눌러쓰고 머리를 마구 비벼 말렸다. 여유가 생기며 일부러 의식 저편으로 미뤄두었던 나의 상황들이 다시 밀물처럼 밀려오기 시작한다.

 

 

 

 

 이게 맞는 상황일 리 없다. 호랑이가 아무리 토끼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해도 배가 고파진 호랑이 앞에선 토끼는 그저 한 끼 식사일 뿐이니까.

 

 

 

 내가 이곳을 벗어나지 않았던 것은, 강도 아닌 바다가 펼쳐져 있는 이곳은 집과 아주 멀다는 직감, 그가 없이 나는 이곳에서 안전하게 집에 못 간다는 생각, 나를 공주처럼 대해주는 그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그런 그가 너무나도 사람 같은 외모를 가지고, 사람처럼 말을 해서였다. 사실 아주 어리석인 생각이다.

 

 

 

 호랑이가 토끼의 탈을 쓴다 해서 토끼가 되는 것도 아닌데. 그는 어쩔 수 없는 박쥐인데.

 

 

 

 

 ‘가지고 싶었어.’

 ‘그뿐이야.’

 

 

 

 

 

 

 왜, 나를. 먹지도 않을 거라면서 왜 나를 데려왔나. 왜 나를 먹지 않나. 왜 배려하는 것처럼 행동하나, 왜 내 눈치를 보나, 왜…

 

 

 

 

 

 “그때… 거긴 왜 있었어요?”

 

 

 

 

 

 지난날을 떠올리다 생각을 오래 할 틈도 없이 질문이 입 밖으로 먼저 튀어나왔다.

 

 

 

 

 “………”

 

 “다 부서진 다리 밑에.”

 

 “………”

 

 “마을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은 어찌 됐죠. 왜 나를 계속 지켜봤어요?

 

 나를 안 먹을 거라면서 왜 나를 겁주고… 왜 지금은 또 위해주고…

 

 왜 나를 가지고 싶다고… 무슨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처럼… 내가 진짜 어느 장단에…”

 

 

 

 

 

 

 물꼬가 트인 질문은 계속해서 쏟아지다 결국 넋두리로 이어졌다. 떨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려고 노력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에게 물으면서 그가 잔인하게 혁이 아저씨와 영미씨를 해하는 모습들이 상상됐다. 그 상상 속에서 혁이 아저씨, 영미씨, 준환이 뒤에는 당연히 나였다.

 

 

 

 잊고 있던 나의 위치는 사실 닭장 속인데.

 

 

 

 

 내 말이 끝났음에도 한참동안 그가 반응이 없어서 머리를 산발을 한 채 그를 뒤돌아 보았다

 

 

  내 등 뒤의 쇼파에 앉아있던 그가 내 시선에도 마치 내 목소리를 듣지도 내 시선을 느끼지도 못한 사람처럼 표정의 변화 없이 가만히 벽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까지와 달리 어쩐지 나를 보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서, 나를 무시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나는 다시 시선을 돌리고 젖은 수건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의 물기를 꾹꾹 눌러 짜며 말했다.

 

 

 

 

 “내가 주제도 모르고 이런 질문 하는 게 뻔뻔한가요.”

 

 

 

 

 말이 둥글게 나올 리 없었다.

 

 

 

 

 “………”

 

 “뭐라고…! 뭐라고 대답 좀 해요.”

 

 

 

 

 

 결국 이 적막을 견디지 못한 내가 다시 뒤돌아 그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그제야 그의 시선이 천천히 내게로 돌아섰다. 텅 빈 것처럼 보이는 눈에 담긴 것은 화가 난 나와 내 등 뒤의 벽난로 속 불길 뿐이었다.

 

 

 

 

 

 “그때의 기억은 잘 없어.”

 

 “…웃겨.”

 

 

 

 

 여느 범죄자가 그런 것처럼 이 일을 그 핑계로 회피하려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 비아냥에도 그의 표정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하지만 감정은 남아있다.”

 

 

 

 

 이어 뱉어낸 딱딱한 말투엔 분노가 서려있다. 그 분노가 가리키는 곳이 어쩐지 나는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네가 살던 마을의 부서진 다리는 기억이 나. 아주 어두웠던 것도. 근데 너를 본 기억은 없어.”

 

 

 

 

 그는 말하면서 기억을 더듬어 가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마치 전부터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사람처럼, 마치 언젠가 내가 묻지 않아도 내게 말해주려고 했던 사람처럼.

 

 

 내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달이 떴을 때 사람들 틈에서 호위를 받으며 서있던 네가 내 기억엔 처음이었어.”

 

 

 

 

 

 사라진 마을 사람들을 찾으러 밤까지 아버지의 군인들과 수색을 했을 때겠지. 내가 그를 본 것처럼, 역시 그도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내가 널 데려온 날.’ 그의 말에 다시 그를 올려다보았다.

 

 

 

 

 

 “예뻤어. 그날의 너는.”

 

 

 

 

 

 

 

 

 

 

 

 The Bat

 

 

 

 

 

 

 

 

 

 

 내 대답에 그녀의 얼굴빛이 시시각각 바뀌었다. 의아해하다 당황했으며 곧 화가 난 것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언젠가 그녀가 물어올 것이라 예상했다.

 

 

 

 

 나는 그녀에게 설명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그녀는 예상보다 더 대담해서 나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가끔 날 의지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물론 그건 나 좋은 데로 생각한 것이겠지. 그녀에게 결국 난 납치범이자, 살인자이자, 짐승일테니.

 

 

 

 

 그날을 떠올렸다. 떠올린다 했지만 조각 조각나버린 기억은 나에게조차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었다. 그래도 그 날 이전의 기억들보다 훨씬 선명했다.

 

 

 

 수십 발의 총성에 정신이라도 들었던건지, 너를 제대로 보았기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광장에서 그녀와 그 주변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박쥐의 인기척과 무기를 든 군인들을 느꼈을 땐 무슨 상황인 지 이해가 되질 않아 멀리 그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배가 고파 정신이 나간 박쥐 한 마리가 그들 앞에 나타났을 땐, 저 박쥐 새끼가 배가 고파 미쳤구나. 싶었다. 죽여 달라고 용을 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녀는 박쥐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았다. 무기를 든 군인들이 바짝 긴장을 해 내뿜는 매캐한 땀 냄새가 역겹게 코를 파고드는 순간이었다.

 

 

 

 

 인간들이 드디어 도덕성을 상실하고 저 어린 여자를 미끼로 박쥐 사냥이라도 나서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의아했다. 며칠 전 그녀를 보았을 땐 군인들에게 과한 호위를 받으며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렇게 미끼가 되었다니.

 

 

 

 

 군인들은 사냥을 나서는 용사치고 너무 병신들처럼 숨어있었다. 우리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하듯이. 온 몸에 우스꽝스럽게 검댕칠을 해놓고 인간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겁을 잔뜩 집어먹고 눈알을 굴리는 꼴이 아주 웃겼다.

 

 

 

 오히려 아무 무기 없이 서 있던 그녀가 가장 강해보였다. 그 전날 마주쳤을 땐 무장한 군인들 틈에 섞여 누구보다 연약한 사람처럼 보였는데, 낚시바늘에 끼인 지렁이 주제에 물고기를 잡아먹을 기세였다.

 

 

 그녀는 그 작은 무기 하나도 없이 다 썩어 보기 흉한 박쥐를 앞에 두고 그렇게 소리쳤다. 목소리는 떨렸다. 하지만 기세는 당당했다.

 

 

 

 

 

 

 ‘너 누구야!’

 

 

 

 

 누구보다 약하지만 누구보다 강한 존재. 나는 그렇게 느꼈다.

 

 

 

 

 

 “네가 무서워하는 게 그 위까지 느껴졌어. 그런데 넌 도망가지 않았지.”

 

 

 

 

 

 군인들이 동시에 총을 쏘아 올렸을 때, 내 발 밑에 누군가 총을 쐈다.

 

 

 

 실수로든 아니든 그 총알에 내가 뒤로 물러섰는데, 그렇게 총을 많이 쐈는데도 놈들이 그 놈 하나 제대로 죽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실력을 보고 놈들이 발견하지 못한 다른 박쥐 놈들 까지 모두 다 그녀에게 달려들려고 했고, 나는 그걸 지켜볼 수 없었다. 그 이후 기억은 없다. 감정만이 남아있다.

 

 

 

 

 "그런 너가 가지고 싶었다."

 

 

 

 

 울지 않는 네가, 누구보다 약한데 강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하는 듯 보인 네가, 너무도 가지고 싶다는 감정을 기억한다.

 

 

 

 

 

 

 

 

 The Bat

 

 

 

 

 

 

 

 

 

 이상했다. 꼭 인간 남자에게 고백이라도 받은 것 같았다.

 

 

 그가 가지고 싶었다는 게, 내가 예뻤다는 게, 내가 감자를 보면서 예쁘다 하고 먹고 싶다 하는 것과 똑같은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아, 안 돼. 고개를 흔들었다.

 

 

 

 내 고개짓에 아직 젖은 머리카락이 미역처럼 내 얼굴에 달라붙었다. 내가 얼굴에 붙은 머리를 떼어내니 그가 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내 반대편 뺨의 머리카락을 떼어준다.

 

 

 그 손길에 내가 흠칫 그에게 물러섰다. 그의 손이 눈에 띄게 흠칫거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스윽 그에게서 멀어진 채 그에게 물었다. 이런 기회가 생겼으니 그에게 다 물어야 한다고, 이런 이상한 감정에 휩싸일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마을 사람들은요?"

 

 "…무슨 말이야?"

 

 "먹었… 먹었어요? 40대 남자, 30대 여자, 10대 남자…"

 

 

 

 

 

 더듬거리는 내 말에 그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그에 나의 몸도 굳었다. 내 머리카락을 떼어주느라 허공에 떠있던 손이 다리 위로 힘없이 떨어진다.

 

 

 

 

 

 “랴오위가 말 안했나보군.”

 

 “…뭘요?”

 

 “그 기간엔 난 아무것도 먹지 않아. 수분만 섭취해.”

 

 

 

 

 

 그에 그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마셔댔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내가 며칠전 냉장고에 그가 사온 재료들을 집어넣다 계속 그대로인 우유 양에 이제 우유는 안 먹느냐고 물었었다.

 

 

 그가 아주 간단히 ‘안 먹어.’하고 대답하곤 내 궁금해 하는 눈빛에 ‘그건 랴오위가 채워놓은 거야. 난 싫어해.’ 하고 말했다.

 

 

 

 수분만 섭취하는 그를 위해 랴오위가 영양가 있는 우유를 준비했던 건가.

 

 

 

 

 그의 말은 내가 이제까지 봐온 게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있었지만, 갑자기 대낮에 사라진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의문이었다.

 

 

 혹시 먹으려고 데려간 게 아니라 그냥… 내 눈빛을 읽기라도 한 듯 그가 조금 펴졌던 미간을 다시 찌푸렸다.

 

 

 

 

 

 “무례하군.”

 

 

 

 

 

 내 무례를 직접적으로 꼬집는 그의 말투에 너무도 진심이 느껴져서 ‘미안해요.’하며 고개를 숙였다.

 

 

 

 

 “가족이라도 잡혀갔나?”

 

 

 

 걱정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잡혀간 이를 걱정하는 말투가 아니라 그냥 내가 걱정을 하니 그런 나를 걱정하는 뉘앙스였다.

 

 

 

 

 

 “아뇨 그건 아니지만…”

 

 “거기에 놈들이 많았어. 마음만 먹으면 세 명 끌고 가는 건 5분도 안 걸리겠더군.”

 

 

 

 

 

 가족이 아니라고 하니 별 것도 아니라 생각했는지 내뱉는 그의 말이 거침없었다. 그에게 가족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아니면 누구든 잡혀가서 없어져도 상관없다 생각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나는 별 것 아닌게 아니었다. 그의 말에 숨이 턱 막혀오는 것 같았다.

 

 

 

 “많다고요…?”

 

 “몰랐나?”

 

 

 

 

 그의 말에 언제 내가 물러섰냐는 듯 무릎을 꿇고 엉금엉금 그에게 다가갔다.

 

 

 

 

 

 “많았다고요? 낮, 낮에요?”

 

 “낮은 모르겠군. …그날 밤 군인들이 숨어있던 근처에는 많았다. 다섯, 여섯쯤…

 

 거긴 인간이 살기에 좀 위험해 보였지. 아마…”

 

 

 

 

 

 그는 내가 겁을 먹은 것을 눈치 챈 듯 말을 줄였다. 내 실례되는 행동에 딱딱하고 조금 퉁명스러워졌던 말투가 누그러지고 어느덧 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왜요…? 우리 동네는 그래도 사고도 별로 일어나지 않았는데…”

 

 

 

 

 

 박쥐인 그가 그렇게 느꼈다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둡던데. 인간들이 설치해놓은 그 조명 말이야. 별로 없었어.”

 

 

 

 

 

 그래, 그날 밤은 그랬을 수 있다. 빛에 우리 군인들이 들통날까봐 자외선 압축기를 군데군데 꺼놓았으니까.

 

 

 그래도 모두 총을 들고 있었으니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다. 괜찮을 거야. 세뇌시키듯 중얼거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정도 드문드문 빛나는 건 놈들에게 별로 위협이 되지 않아.”

 

 “…네?”

 

 

 

 

 

 

 툭 던지듯이 내뱉은 그의 말에 또다시 심장이 쿵 떨어진다. 그는 내 표정을 보면서도 내가 왜 그런 걱정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가족도 아니라면서 왜이렇게 걱정해?’하고 묻는 것 같은 표정. 잡혀간 이는 가족이 아니었지만 그 안에 아버지가 있었고, 아버지를 지켜줄 김도휘도 있었다. 그것 뿐만 아니라 잡혀간 혁이 아저씨도, 영미씨도, 준환이도… 오래도록 함께했던 사람들이었다.

 

 

 

 

 

 “모르겠나?”

 

 

 

 

 

 그의 물음에 내가 절박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곧 그가 고개를 들어 쇼파 옆의 스텐드를 바라보았다.

 

 

 

 곧 몸에 한기가 들었다.

 

 

 

 그가 내 어깨를 덮어주었던 담요를 잡아채 그 스텐드 위로 휙 던졌기 때문에.

 

 

 담요를 덮어쓰고 휘청이던 스텐드의 불빛이 곧 담요에 의해 차단됐다. 거실 한켠을 암흑이 까맣게 메웠다.

 

 

 

 

 

 "박쥐는 좀비가 아니야."

 

 ……

 

 "지능이 있는 놈들이지."

 

 

 

 

 

 

 

 비명이 터져나올 것 같아 나는 급하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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