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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마지막 축제
작가 : 럼럼
작품등록일 : 2018.11.2

귀신을 보는 유란과 귀신들의 왕

'…나는 당신의 것을 가볍게 손에 쥐었으나 당신이 내게 준 것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당신의 것들은 어느 하나 가벼운 게 없었다. 하나같이 무거웠다. 무겁다 못해 넘쳐났다. 넘치다 못해 흘러내렸다.'

 
8화
작성일 : 18-11-07 16:03     조회 : 187     추천 : 0     분량 : 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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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

 

 유란은 복도를 쿵쿵거리며 달렸다. 초적산에서 동왕이 돌아왔다는 소하리의 귀띔이 전해진 것이다.

 

 곳곳에 세워졌던 등이 유란의 발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미세하게 진동했다. 유란은 아주 빠르게 계단을 내려 정원에 있던 누각으로 향했다.

 

 저 멀리로 왕의 모습이 보인다. 유란은 천천히 걸음을 늦추었다. 뜀을 멈춘 그녀의 짧은 머리칼이 턱 끝을 스치고 있었다. 가슴팍이 몇 번이나 크게 들어올려졌다 가라앉는다.

 

 “…일단 오긴 했는데.”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서 왕의 옆얼굴을 보고 있던 그녀는 게걸음을 쳐 수국 뒤로 몸을 숨겼다. 어제 코앞에서 느꼈던 왕의 기가 떠올라 마주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괜스레 겁이 덜컥 났다.

 

 ‘오늘도 저 앞에서 주저앉으면 어떡하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망설이던 유란이 누각을 향해 발을 떼어냈다.

 

 "앉으면 앉는 거고, 매일 마주하다 보면 서있는 날도 있고 그러겠지."

 

 유란은 씩씩하게 다가가 누각의 밖에 있던 하설 옆에 섰다.

 

 후들후들, 다리가 떨리고 있었으나 그래도 왕과 붙어 있는 것은 아니라서 나름 버틸만했다.

 

 인기척에, 누각 위에 앉아있던 왕이 고개를 들었다.

 

 “뭐 하는 것이지.”

 

 그가 곰방대를 내려놓고 유란을 응시했다. 하설의 옆에서 잔뜩 기합이 든 채 서있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비집고 나올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입은 왜 저리 꾹 다물고 있는 것이며 다리 옆으로 주먹은 왜 쥐고 있는 것일까.

 

 “장수 같구나.”

 

 “뭐라고!?”

 

 “…….”

 

 “…요.”

 

 호기롭게 내뱉은 반말은 왕의 눈빛 한 번에 끝을 늘렸다. 침묵이 주는 위협을 알아듣고 재빨리 말을 고친 것이다. 우물쭈물, 목소리가 개미 기어 다니는 소리만큼이나 작았다. 유란은 온몸을 휘감는 치욕감에 이빨을 뿌득였다.

 

 “어찌 그리 서서 나를 보느냐.”

 

 “기억해내라면서. 이렇게 보다 보면 기억이 나지 않을까 해서 그러는 거니 상관하지 말아요.”

 

 왕이 잔 위로 하얀 사기 주전자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투명한 액체가 주둥이를 타고 가볍게 미끄러진다.

 

 “그래서 내 얼굴만 그리 쳐다보고 있어보겠다.”

 

 “네.”

 

 대답을 하자마자 어디 마음껏 보라는 듯 얼굴을 처든다. 왕의 흰 피부가 달빛을 받아 더 희게 보였다.

 

 유란은 천천히 눈을 굴려가며 그의 얼굴을 훑었다. 아주 얇게 진 쌍꺼풀, 미간부터 높게 솟은 코.

 

 참 신기한 얼굴이었다. 선이 가는 듯하면서도 강하고 강한듯하면서도 가는,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눈, 코, 입 모두가 자꾸만 눈길을 당긴다. 유란은 겨우 눈을 돌려내며 천천히 누각으로 다가갔다.

 

 “그전에 좀 앉아서 볼게요.”

 

 보라 하기에 보긴 했지만, 계속 보다 보니 그가 뿜어내던 기에 압살당해 또다시 왕의 앞에서 다리가 풀릴 것 같았다.

 

 누각에 엉덩이를 붙이던 유란이 몸을 굽혀 신발을 벗었다. 유란아, 잘 했어. 자연스러웠어.

 

 스스로를 칭찬하는 찰나 머리 위에서 왕의 낮은 목소리가 쏟아진다.

 

 “안 그래도 다리를 하도 떨어대기에 차라리 앉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볼 참이었다.”

 

 씨발. 유란은 마음속으로 욕을 지껄였다.

 

 “보다 보면 기억이 나지 않을까 해서라니. 내 앞에만 서면 그리 떨어대는 네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일 리는 없고.”

 

 탁. 왕이 또 한 번 술잔을 내려놓았다.

 

 “나기를 만났느냐.”

 

 “어떻게 알았어요!? 완전 귀신같네.”

 

 “…….”

 

 “…아….”

 

 맞다, 얘 귀신이지….

 

 “같이 하겠느냐?”

 

 왕이 주전자를 손으로 톡톡 치며 묻는다.

 

 아니요. 거절하려던 유란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왕을 만취시켜 저 입에서 이름을 받아내야겠다는 발칙한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인계에서 술을 즐겨 했는가.”

 

 “자랑은 아니지만 좀 마셔요.”

 

 좀이 아니다. 유란은 술을 아주 잘 했다. 매일같이 입속에 술을 털어 넣던 조모와, 그런 조모의 술친구였던 것이 그녀였다.

 

 술 하면 또 나지. 다가올 내기의 승리를 생각하던 유란의 얼굴로 웃음이 번졌다. 왕 또한 잘 마신다고 해도, 아까부터 술잔을 쉬지 않고 홀짝거리던 저놈이 취하기 전까지는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설아.”

 

 “예.”

 

 “잔을 하나 더 가져오거라. 아, 술도. 아주 많이.”

 

 오호. 유란이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며 효과음을 냈다. 너도 좀 하나 보네? 괜스레 승부욕이 발동했다.

 

 “하지만…”

 

 “괜찮다.”

 

 동왕이 하설의 말을 끊었다. 알겠습니다. 대답을 흘린 하설이 시종들에게 향한다.

 

 곧 쟁반 위에 주전자를 가득 올린 시종들이 여럿 왔다 가기 시작했다.

 

 동왕의 명령은 주전자로 탑을 쌓을 수 있을 때쯤에야 거둬졌다.

 

 “그만하면 되었다. 먼저 돌아가거라.”

 

 이어진 명령에 하설마저 허리를 굽힌 뒤 사라졌다.

 

 “거절할 줄 알았는데, 의외군.”

 

 “뻔하면 재미없죠.”

 

 “술은 각자 따라 마시는 걸로.”

 

 유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전자를 기울였다. 그리하여 첫 모금을 넘겼을 때, 목으로 퍼지는 알싸한 향을 느끼던 그녀는 제 승리를 직감했다. 인계에서 마시던 것보다 도수가 약했기 때문이다.

 

 한데, 이 술 뭐지. 톡 쏘는 듯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에 유란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여긴 꼭 맛집 같네요.”

 

 “맛집?”

 

 “귀신들 땅이라서 좀 께름칙했거든요. 찝찝하고. 근데 밥도 맛있고 차도 맛있더니 이젠 술까지 맛있네요.”

 

 끌려온 것치고 이곳에 있는 것들은 마음에 드는 구석이 많았다. 제가 왕의 손님이라 하여 특별 대접을 받는 것이겠지만, 시종까지 붙여주며 귀한 취급을 해 주는데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있나.

 

 “칭찬인가.”

 

 “그렇죠, 뭐.”

 

 유란이 눈을 반으로 휘었다.

 

 귀신 세상에 있는 술 주제에 맛이 좋고, 술의 힘을 빌려 왕이 누구인지 알아낼 생각을 하니 기분도 좋고, 무엇보다도 눈앞에 있던 잘난 낯짝과 정원의 그림 같던 풍경에 눈까지 즐거웠다.

 

 그렇게 하계의 동쪽 성, 그 정원에 있던 누각 위에서 귀신과 인간의 술판이 막을 올렸다.

 

 한참 동안 탁자와 손을 오고 가던 술잔은 그들이 각 세 개의 주전자를 비웠을 때쯤에야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탁, 또 하나의 주전자를 바닥에 내려놓던 동왕이 멍한 얼굴로 앞에 있던 유란을 빤히 응시했다.

 

 “기분이 이상하군.”

 

 “뭐가요.”

 

 유란이 턱을 괴며 물었다. 왕이 저를 보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데, 또 저를 보고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저를 보며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너와 이리 술을 하고 있는 것이.”

 

 무슨 소리인가 싶어 눈만 깜빡거리는데, 아까는 선명하던 왕의 얼굴이 자꾸만 흐리게 보였다.

 

 빛이 번지듯, 제 기능을 바로 하지 못하던 눈알이 주량의 한계치에 가까워졌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뭐가.”

 

 알콜에 가득 적셔진 뇌 덕에 말 끝이 다시 짧아졌다. 술이 들어간 유란은 현재 겁대가리를 상실한 상태가 되었다. 동왕의 기에 눌려 다리를 떨 때는 언제고, 좀 취했다고 다시 반말이 슬금슬금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게 있다.”

 

 “왜 말을 하다 말아? 사람 기분 나쁘게.”

 

 “…글쎄….”

 

 왕 또한 말이 점점 느려졌다. 입을 열기까지 잠깐의 틈이 생겼으며, 자꾸만 흐리멍덩한 눈으로 허공을 주시하는 것이 그 또한 유란과 같은 상태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기분 나쁜 거 또 있어.”

 

 그렇게 말하며 유란이 턱을 받치고 있던 한 쪽 손목을 꺾어 검지로 동왕을 가리켰다.

 

 “너.”

 

 “…….”

 

 “나기가 그러는데, 네가 내 기억 뺏었다며? 그래놓고 내기를 하자고, 진짜 더럽고 치사해서.”

 

 튀어나오는 불만에도 왕은 가만히 앉아 그녀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었다. 와중에 바로 앉아있기가 힘이 든지 몸을 있는 대로 휘청인다.

 

 유란은 마음속으로 나이스를 외쳤다. 지 욕하는데 가만히 듣고만 있는 거 봐라. 반말을 찍찍 내뱉는 그녀를 향해 경고를 던지거나 흘겨보기는커녕 던지는 말에 꼬박꼬박 잘도 대답을 하고 있었다.

 

 “내 기억 왜 뺏어갔어?”

 

 “…그야 나를, 그리고 너를 위해서였지….”

 

 “나?”

 

 “그래…. 네가 조금은 평범한 것이 낫겠다 싶어서….”

 

 “안 평범해. 어떻게 평범해.”

 

 “…….”

 

 “이 눈을 하고 평범할 수는 없어. 무슨 말인지 알아?”

 

 “안다.”

 

 아니야! 유란이 손가락을 휘휘 저었다.

 

 “네가 어떻게 알아. 몰라.”

 

 알긴 개뿔. 동왕을 향해 구시렁거리던 유란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우우우.

 

 “있잖아, 나는 되게 평범하고 싶어. 남들이 볼 수 있는 것까지만 보고 싶고, 남들이 들을 수 있는 것까지만 듣고 싶고 그냥 남들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싶어. 근데 그걸 못해서 너무너무 싫어. 귀신들은 자꾸만 나를 홀리려고 하고, 이번에는 네가 막 여기로 나 데려와가지고 또 싫어. 너는 귀신이고, 나한테 눈도 막 찢고.”

 

 자세를 바로 세운 유란이 어제 저를 바라보던 동왕을 흉내 냈다. 이렇게, 막 눈을 이렇게. 하찮은 거 보듯이, 네가 그랬어.

 

 “근데 나는 그렇다. 물론 너도 싫은데 여기가 더 싫어. 막 귀신 냄새도 너무 많이 나고. 귀신도 너무 많고, 막 다 싫고 막 그래.”

 

 횡설수설 정리되지 못한 말들이 두서없이 쏟아졌다. 입으로 뱉고 있는 스스도 놀랄 만큼. 뭐, 모든 이야기의 주는 귀신이 싫다는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다행이지. 너네 귀신들이 냄새만 안 풍겼어도 나 벌써 귀신한테 잡아먹혔을걸."

 

 "냄새."

 

 "응. 너네들 냄새나. 그것도 엄청나."

 

 되묻던 동왕이 옅게 웃었다. 지한테서 냄새난다는데 뭘 웃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던 유란은 벌떡 일어나 탁자를 돌았다.

 

 “그러니까, 동왕님아ㅡ.”

 

 누각의 나무 바닥에 발바닥이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여러 번 들려왔다.

 

 왕의 앞에 쪼그리고 앉은 유란이 팔을 뻗어 그의 얼굴을 잡아 아래로 끌었다.

 

 약간의 틈을 두고 두 시선이 맞닿는다.

 

 아, 새끼. 잘나긴 했네. 유란은 왕의 눈 코 입을 빠르게 훑었다. 동왕이 느리게 눈을 꿈뻑인다. 눈앞이 흐린 듯, 꿈뻑, 또 꿈뻑.

 

 “동왕님아, 너 누구야?”

 

 “……나는.”

 

 꿀꺽. 유란이 침을 꿀떡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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