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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N의 밤
작가 : MrNerd
작품등록일 : 2016.8.22

격리된 구역, 생존자, 그리고 좀비

 
<1부 : 낙조> - 10장 : 죄와 벌
작성일 : 16-09-15 11:41     조회 : 551     추천 : 1     분량 : 6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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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은 어떤 형태일까?

 

 의사로부터 남편의 소식을 듣고 난 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간혹 이런 질문을 해도 마땅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다들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그들이 보기에 그녀는 이미 죽음을 보고 온 사람으로 여겨졌던 것이리라.

 

 하지만 잠들어 있던 동안 그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꿈 없는 잠처럼 그저 아무것도 없이 순식간에 지나갔을 뿐이었다.

 

 그녀의 죽음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머니가 말한 것처럼 검은 옷에 새하얀 얼굴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해골 머리에 큰 낫을 들고 다닐까?

 

 몇날 며칠을 고민해도 좀처럼 죽음의 형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운석이 떨어지자, 간신히 죽음의 형태가 어렴풋하게나마 보이는 듯했다.

 

 설마 생전에 그런 걸 보게 될 줄은 몰랐다.

 

 ***

 

 귀가 멍하다. 총알이 지나간 자리가 후끈하게 달아오른다. 미약하게나마 공기가 부풀어 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총알은 빗나갔다.

 

 묵묵히 서있는 창 밑으로 분수가 뿜어져 나온다. 창이 붉게 물들어갔다. 여자의 생명이 분수를 타고 흘러나온다. 소총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봐, 아까…….”

 

 건호가 소총을 주워 뒤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애꾸는 사라져 있었다.

 

 “영리한…… 녀석이군.”

 

 노인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좀 전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신경질적으로 쉰 목소리였다. 하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살아 있었나.”

 

 건호가 다가가자 노인이 그를 노려본다.

 

 “이제 와서 칭찬해줘도 아무 소용없어.”

 

 “하, 멍청하긴. 네놈에게 한 말이 아니…….”

 

 노인이 신음을 내뱉었다. 좀 전의 공격으로 허리가 삐긋한 모양이다.

 

 “힘들어 보이는군. 뭣하면 편하게 해줄-”

 

 “동정 하지 마, 애송이.”

 

 “그래, 알겠어.”

 

 건호는 가방을 챙겼다.

 

 “뭐 때문에 이런 일은 하는 거지?”

 

 “왜냐고? 이건 또…….”

 

 노인이 말을 잇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은 조금씩 고통스럽게 변했고, 이내 신음으로 끝났다.

 

 “너는 그럼 왜 여기 있지?”

 

 건호는 입을 다물었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마찬가지야. 사정없는 인간은 없어.”

 

 노인이 거칠게 숨을 내쉰다.

 

 “하지만 너는 대충 알 것 같은데.”

 

 노인이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미워하고 있군. 아닌가?”

 

 아내의 시체. 다시 썩은 내가 코 주위를 맴돈다.

 

 “대체 뭘 미워하고 있는 거지?”

 

 “시체.”

 

 건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건조하게 울린다.

 

 “그래서 사냥꾼이 되신 건가? 시체를 모조리 사냥하시려고?”

 

 건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노인의 표정을 살필수록 더욱 그랬다. 덫에 빠진. 갑갑한 느낌.

 

 “거짓말 하지 마. 내 나이…….”

 

 노인이 다시 신음을 흘린다.

 

 “내 나이 정도 되면 그 정도는 파악이 돼. 넌 사냥꾼이 아니야. 그냥 도살자지.”

 

 “아니 맞아.”

 

 “너 자신이잖아. 미운 건.”

 

 노인의 눈이 그를 노려본다. 기분 나쁜 눈이다. 노인의 눈알이 천천히 그의 옷을 벗겨낸다. 불쾌하다. 아니 수치스럽다.

 

 “닥쳐.”

 

 “정곡인가 보군.”

 

 “닥치라고.”

 

 “감정 때문에 있다니 꽤나 여유로운 녀석이군. 두렵지 않나?”

 

 “뭐가?”

 

 “빨간 눈.”

 

 마치 그 말에 회답하는 시체 울부짖는 소리가 백화점 마당에 울렸다. 여전히 하늘을 차지하고 있던 태양이 그 광경을 음산하게 밝혔다. 태양은 지금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왔군.”

 

 “저게 빨간 눈인가?”

 

 그의 질문에 노인이 다시 자지러지게 웃는다.

 

 “왜 웃어?”

 

 “중심가는 처음인가 보군.”

 

 “그래, 소문만 들었을 뿐이야. 뭔진 몰라도 총을 쏘지 말라고.”

 

 “그래서 그렇게 여유를 부려댔군. 곧 알게 될 거야. 아쉽게 됐어.”

 

 “뭔 소리야?”“오늘 처음 왔는데 마지막이 된다니 말이야.”

 

 “시끄러워.”

 

 “마지막까지 열심히 죽여.”

 

 “닥쳐.”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라고!”

 

 노인이 웃었다. 히스테릭한 웃음이 기괴하게 거리에 퍼진다. 더 높게, 더 지독하게. 멈추지 않는 광기가 이리저리 비틀려 쏟아져 나온다.

 

 “너도 웃으라고, 도살자!”

 

 “닥쳐!”

 

 다음 순간 노인은 그의 말을 따랐다. 정확히는 ‘크게엑’이라는 정체불명의 단말마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살점 뜯기는 소리가 되려 꿈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생생히 들렸다. 녀석과 눈이 마주칠 대까지 그는 넋을 잃은 채, 노인이 다시 되살아나지도 못할 정도의 고깃덩이가 되어가는 걸 지켜봤다.

 

 분노한 듯 놈이 거칠게 팔을 휘두를 때마다 노인의 내장이 치솟고 살덩이가 으깨져 갔다. 어울리지 않게도 그는 그 때 아내와 봤던 서부극의 한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흑인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였는데 주인공이 총을 쏠 때마다 악당들의 살점이 큼지막하게 터져 나오곤 했었다. 마치 폭죽처럼.

 

 쾅. 쾅.

 

 노인의 두개골까지 완벽하게 으스러지자 시체가 고개를 들었다. 계속 코앞에 있던 그를 그제야 발견한 듯한 반응이었다. 방아쇠 당기는 것도 잊은 채 그 눈을 들여다봤다.

 

 빨간 눈이다.

 

 ***

 

 문이 충격과 함께 흔들린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다. 쇳덩이로 된 문짝이 그저 얄팍한 종잇장처럼 느껴진다.

 

 “열어!”

 

 누군지 모를 목소리들이 그렇게 명령한다. 어딘가 낯익은 목소리다.

 혼란 속에서도 뇌는 기어코 기억을 끄집어낸다. 아버지의 목소리다. 손에 몽둥이를 집어든 아버지의 목소리.

 

 “열라고!”

 

 다시 고함이 들리고 문이 흔들린다.

 

 민아는 구석에 숨겼다. 숨었다고 해도 구석에 앉아 있는 것뿐이다. 옥상이 좁아, 문에서 몇 걸음 되지도 않는다. 그게 그나마 있는 거리다. 죽음을 피하는 길이 아닌, 연장시켜주는 유일한 거리.

 

 출입구는 하나.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면, 죽는다. 그도 민아도.

 

 땅바닥에 닿은 부분에 냉기가 올라온다. 몸은 차가운데 심장은 요란하게 뛴다. 허파가 아무리 들이쉬어도 부족하다는 듯 게걸스레 공기를 빨아들인다.

 

 머리를 비우고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더듬는다. 하지만 머리는 비워지지 않았다. 민아는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죽음의 이미지가 멋대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천에 둘러싸인 어머니. 아기가 운다. 아기는 가벼웠다. 어머니보다 훨씬.

 

 검지에 묻은 방아쇠의 흔적이 옅어진다.

 

 마침내 문이 열린다.

 

 ***

 

 붉은 눈이다. 다른 시체들처럼 우윳빛의 흐릿한 눈이 아니었다. 분노를 태우듯 시뻘겋게 핏발이 선 눈은 금방이라도 터져 피눈물을 흘릴 성 싶었다.

 

 창백한 피부 위로는 검붉은 핏줄이 과도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꼴이 꼭 거미줄을 연상시켰다.

 노인의 으깨진 두개골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소리를 신호로 시체가 괴성을 지르더니, 그에게로 뛰어올랐다. 평소라면 도저히 생각하기 힘든 동작이었다.

 끈적거리는 침이 얼굴에 튀었다. 허공에서 녀석의 이빨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뒤엉켜 구르면서 건호는 아무렇게나 방아쇠를 당겼다.

 

 배, 가슴 어딘지 모를 부위에서 살점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짐승 같은 괴성과 총성의 불협화음 속에서 그는 탄창이 빌 대까지 방아쇠를 놓지 않았다. 세상이 수차례 뒤집히는 와중에 오직 총알 한 발만 놈의 머리통에 처박히길 빌었다.

 

 얼마나 구른 걸까? 드디어 놈의 움직임이 멈췄다. 낮게 욕설을 내뱉으며 자기 위에 엎드린 시체를 옆으로 치웠다. 머리통에 난 구멍으로 피가 깨진 술병처럼 쏟아져 나왔다.

 

 몸을 일으키자 노인의 시신이 보였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붉은 고깃덩이 속에서 누런 이가 빛났다. 얼굴 없는 남자가 웃는 꼴이었다.

 

 “그만 웃어.”

 

 그는 탄창을 갈아 낀 뒤 운 좋게 죽인 시체를 발로 뒤집었다. 아까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소방복을 입고 있다. 때가 탄 검은 빛깔 탓에 여기저기 튄 핏자국이 선명해 보였다. 머리 뒤를 내리 쪼아대는 햇빛이 유독 따갑게 느껴졌다.

 

 빨간 눈.

 

 예전에 연구원들이 하는 말을 엿들은 적이 있었다.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어 도시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미 죽은 채로 걷거나 살아서 밖으로 나간 뒤였다.

 

 그 내용인즉슨 운석 근처는 아직 연구하기에는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크레이터 주변에 낮에도 활동적인 시체들이 있으며, 다른 시체들과는 비교 불가능한 공격성을 띄고 있다고 했다. 그러한 시체를 ‘1차 감염자’라느니 ‘직접 감염자’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또한 지금 운석에 다가갔다간 자칫 자신들 역시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더 생각하기도 전에 또 다른 녀석이 백화점 건물 뒤편에서 뛰어나왔다. 회상은 나중이다. 옛날 생각하다가 지금 죽을 순 없다.

 

 그는 왔던 길을 뛰어 갔다. 다른 녀석이 참가했는지 괴성이 조금 늘었다. 밥 먹을 땐 사이좋군, 씹할 놈들.

 

 정보를 얻으러 온 것치곤 대가가 너무 크다. 이래선 여우 잡으려다 호랑이굴에 온 셈이다. 아니 호랑이 밥그릇인가.

 얼마 못가 짐승소리가 온 도시를 채웠다. 조잡한 플라스틱 대게가 붙어있는 어느 가게를 지나칠 즈음에는 시체 하나가 그를 향해 달려왔다. 가게 맞은편 도로변에서 뛰쳐 온 녀석은 속도를 늦추지 못하고 그대로 가게 유리창을 들이받았다. 냄빈지 뭔지 모를 금속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레 그의 심장을 부채질했다. 소란이 가라앉기도 전에 또 다른 녀석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총성이 울리고, 놈의 몸뚱이가 바닥을 굴렀다. 빛바랜 횡단보도에 선혈이 흩뿌려졌다.

 

 화약 냄새가 코로 스며들자 그제야 총을 쓰는 게 현명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살하고 싶으면 중심가에서 총을 쏘라. 어느 조직이 농담처럼 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

 

 노인을 죽였던 시체는 분명 갑자기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보통 시체라면 그런 식으로 덤비진 않는다. 가까이서 공격하지 않는 한, 일반적으로 낮에는 시체들이 공격해오는 일이 좀처럼 없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백주 대낮에 멀리서 느긋하게 총을 갈겨도, 시체가 그에게 몰려드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다르다. 공격은커녕 존재 자체도 알지 못했는데 먼저 달려들었다. 그제야 왜 총을 쏘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가 간다.

 

 답은 하나. 이 녀석들에게는 밤낮이 없다. 어쩌면 녀석들에게는 무한히 밤이 계속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날 밤이 계속해서.

 

 벤치를 발판삼아 시체 둘이 차례로 뛰어올랐다. 반사적으로 다시 방아쇠를 당기고 욕설을 내뱉었다. 습관이란 무서우리만치 강력하다.

 

 적당히 총을 어깨에 메고 장도리를 꺼내 쥐었다. 급하게 움직인 탓에, 가방끈이 다친 어깨에 닿았다. 잠시 잊고 있었던 통증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통을 잊기도 전에 이번엔 앞에서 시체가 나타났다. 반팔의 경찰복을 입고 있던 녀석은 그대로 그에게 달려왔다.

 

 장도리가 녀석의 머리에 박혔다. 동시에 팔에 엄청난 힘이 가해진다. 녀석과 함께 그의 몸이 뒤로 휙 쏠렸다. 뒤늦게 장도리를 빼내려 했지만 자세 때문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질 않았다. 장도리가 빠지지 않는다.

 

 입을 헤 벌린 채, 녀석의 몸뚱이가 허공에 뜬다. 뒤에서 반갑다는 듯 딱딱 거리는 수많은 이빨이 순간 눈에 들어온다.

 

 젠장, 또냐. 그는 장도리를 놓았다. 곧바로 녀석이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달려오던 시체들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뒤엉키면서 또 다시 괴성을 지른다.

 

 오래는 못 버틴다. 이젠 쓸 수 있는 무기도 없다. 숨이 차오른다. 뭔가, 뭔가를 해야 한다.

 

 건물에 숨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근처 건물의 2층 유리창이 깨진다. 여자 시체와 남자 시체가 사이좋게 거기서 뛰쳐나온다.

 

 개새끼들.

 

 좀만 쉬자고. 가슴이 괴롭다. 폐가 늑골을 부수고 뛰쳐나올 것 같다. 크레이터에서 멀어질수록 짐승 소리가 약해지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 얼마나 더 달려야 하지?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얼마가 됐건 지금 체력으론 어림없다.

 뒤를 보니 여전히 끈질기게 쫓아오는 시체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 수는 처음보다 확실히 줄어들어 있었다. 거리도 상당히 벌어졌다.

 

 조금 안도했다. 속도를 약간 늦춰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결정적인 실수가 되었다.

 

 괴성과 함께 상처 입은 어깨에 타는 듯한 통증이 파고들었다. 진압복의 시체가 그의 등 뒤에 바싹 붙어있었다.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건호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스팔트의 거친 감촉을 느끼기도 전에, 어깨의 통증이 더욱 그의 속으로 파고들어온다.

 

 새어나오는 비명을 이 악물고서 가까이에 있는 가로수로 몸을 날렸다. 진압복의 몸이 가로수에 부딪치자 묵직한 타격감과 함께 척추가 으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시체의 이빨은 여전히 어깨에 단단히 박힌 채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빨이 더욱 더 살점을 파고든다. 통증에 머리가 새하얘질 것만 같았다. 잘 알고 있는 통증이다. 이런 걸 뭐라 하지? 데자뷰? 통증과 허무가 차례로 점멸하는 와중에 그런 생각들이 빠르게 스쳤다. 통증이 진해져간다. 어렴풋이 아내가 보인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아내다. 그녀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살려달라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자상하게 아내를 안아주었다. 아내의 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시체 썩는 냄새다. 아내가 말했다. 사랑한다고. 고통 속에서 그도 답해주었다.

 

 죽어.

 

 있는 힘껏 시체의 머리칼을 잡아채 그대로 당겼다. 깊숙이 박힌 이빨이 살점을 헤집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 순간 싸늘하게 식은 피가 그의 귀와 뺨에 흘러내렸다.

 

 그러나 주먹은 진압복의 코만 부러트렸을 뿐 뇌에는 아무런 타격도 입히지 못했다. 그는 다시 한 번 힘을 그러모아 주먹을 휘둘렀다. 시체의 코에서 질척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 동시에 녀석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시체가 비명을 질렀다. 그는 녀석의 머리칼을 더 꽉 쥐었다. 시체가 다시 물기 전에 놈의 머리통을 잡고 바닥에 내리꽂았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녀석의 머리통이 바닥에 으깨진다. 흡사 나비가 날개를 펼치듯, 핏자국이 튀었다. 녀석의 움직임이 멈췄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곧바로 피로가 몰려온다.

 

 아스팔트 대신 차가운 감촉과 썩은 내가 피부에 와 닿는다. 시체다. 세력다툼으로 죽어나간 시체들이 그의 주변에 힘없이 누워있었다. 같은 시첸데 어쩜 이리 얌전할까. 처음으로 시체가 예뻐 보인다.

 

 드디어 나도 맛이 갔구나.

 

 짐승들의 괴성이 아득하게 들려온다. 공기가 달콤하게 느껴진다. 자면 안 되는데……. 알면서도 순식간에 눈이 감긴다. 일단 지혈을 하고, 일어나서, 일어나서…….

 

 조금씩 의식이 흐려진다. 여기까지구나. 어차피 이젠 더 뛰려고 해도 뛸 수도 없다.

 

 입에서 헛웃음이 흐른다. 빨간 눈이 커다란 점이 되어 다가온다.

 

 눈이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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