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는 그 이후로도 나랑 점심을 같이 먹어주었다.
점심을 같이 먹는것이 뭐가 어렵겠냐만,모르는 사람은 그 심정을 모른다.
홀로그 커다란 급식실에서 줄을 서고 급식을 받고 의자에 덩그러니 앉아서 혼자먹는,
누군가 쳐다보는 것은 아닐까?왜 나는 혼자먹나 의아하진 않을까?내 행동이 이상할까?
온갖 뇌내망상을 하면서 정신이 뽑아버리고 싶은 그 심정을 모른다.
밥도 못먹고 허구언날 점심시간마다 책상에 엎드려서 자는 척하며 굶고 참는 그 심정을 모른다.
그래서 맨날 혼자인 여학생에게 점심을 같이 먹을 수 있는 친구가 생기는 그런 기적같은 일들은 울고 싶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며 소희랑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됐고,
소희랑 친하던 친구들도 하나같이 착하디 착한 성격의 애들이여서 나에게도 친구가 됄 수 있었고
소희랑 공부도 꾸준히 하며 할머니가 바라신대로 걱정없이 성적도 오르며 학교 생활은 나쁠게 없었다.
"소희야 고마워..너 덕분에 성적 올랐더라..헤헤"
"솔아,그건 너가 열심히해서 올라간거지 내가 잘한게 아냐"
"그래도..!너가 가르쳐주고 고민해준 덕분에 올라간거야.."
"너가 할 마음 같은게 없었으면 난 신경도 안썼을꺼야 너가 잘한거야 그건"
"고마워..헤헤..."
우리는 어느덧 고등학생 2학년이 되었다.
소희랑도 사이가 여전히 아니,오히려 더 좋아졌고 소희 주변 친구들도 꺼리김없이 다가와서 걱정할게 없어졌다.
나는'얼굴이 안돼면 공부라도 친구답게 가자'라는 마인드로 전교 2등을 따놨고,
소희는 여전히 1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중간 고사를 마친 우리는 소희와 소희의 친구로 친해진 아연이도 껴서 스트레스를 풀 노래방으로 향하는 길이였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솔아!이 언니가 가서 노래 지대루 뽑아준다!!"
"넌 항상 그러고선 가서 60점 받잖아 히히"
"그건 기계가 잘못한거지!내 잘못이 하냐!그치 소희야??"
"그치그치 그건 너 잘못이 아니지"
"그렇지!여윽시 소희가 뭘 좀 아네!!"
"그렇지..그건 아연이 성대가 잘못한거지"
"크크큭.."
어느 때와 다름없이 이야기를 하며 건너고 있었고 어느 때와 다름없이 재밌었다.
그런데,
"소희야!!피해!!"
"어...어....?!"
아,내가 너무 느렸던걸까?
이게 아닌데?이게 아닌데?
왜 소희랑 내 몸도 같이 뜨는거지?
소희도 박았다고?
이게 아닌데?이게 아닌데!!!!!!!!!!!!
할머니는 어떡하지?소희는 어떡하지?나는 어떡하지?너무 억울하잖아.이건 아니잖아.
일어나보니 멀쩡하게 걷고 있었고,
몸도 너무 깨끗했다.
일절에 고통도 없이.
역시 사람이란 적응에 동물인가?
'아 죽었구나'란 생각이 드는 동시에 죽었음에도 가슴을 찌르는 고통을 느끼고 눈물이 나는 기현상을 겪었다.
나에겐 할머니가 우선 순위였다.
'누굴 제일 지키고 싶으냐'라고 물어보신다면 할머니이며,
'누굴 제일 행복하게 하고 싶으냐'라고 물어보신다면 할머니이다.
소희는 두번째였다.그런데 나는 왜 그랬을까?
할머니를 먼저 생각했어야 된다.
어리석다.억울하다.무모하다.사무친다.
슬프다.심장이 아플 정도로 슬프다.
'할머니한테 돌아가야돼는데..이러면 안돼는데...!!할머니가 내 모습을 보고 놀라면 어떡하지?아냐!!!죽지 않았을지도 몰라.."
죽지 않긴 이미 죽었는데 저기 내 모습이 천에 덮히는게 보인다.
외면하고 싶다.
할머니다.할머니가 우시네?울면 안돼는데.닦아드려야 되는데.안아드리고'할머니 손녀 아직 안죽었어요'라고 말해 드려야 되는데.
내 목소리가,내 숨결리,내 촉감이, 내 얼굴이,내 감정이 안보이시나보다.안돼는데.
체념하고 병원 복도를 걷는다.소희를 찾아서.
소희도 나랑 같이 수술을 받으러 왔을꺼다.
나완 다르게 중앙에 안박혀서 살 수 있을꺼고 괜찮을꺼다.
잠깐.소희다.
'어?왜 너도 나랑 똑같은 모습이야?'
'너라도 그러면 안돼잖아'
왜 그러십니까.
하느님 아니,우리를 보고 계신 신님.
저한테 왜 그러십니까.
정처없이 떠돌고 떠돌고 복도를 걷다가 할머니의 모습을 보았다가,
소희의 부모님이라는 분들을 봤다가,
그 이후에 소희의 영혼을 찾아봤다가 나 이외엔 다른 영혼도 안보여서 그냥 돌아댕겼다가,
아연이가 할머니에게 상황을 말해주어 할머니가 소희의 부모님에게 한을 쏟아내면서 욕을 하시다가 쓰러지시는것도 보다가
의사들에 표정을 보고 간호사들에 표정을 보고 나처럼 돌아가시는 다른 분들의 가족들을 보고
마침내 소희의 얼굴을 보다가
울었다.눈물이 안나오는데 감정으로 울었다.몇시간이고 꺽꺽대며 울었다.
내 손이 안닿는걸 알면서 할머니를 안아 감싸며 울었다.감정으로.
나의 제사를 내 눈으로 보는데
할머니가 우시는 모습도 알면식이 살찍있는 할머니 지인분들도,
친척들이라고 부르는 새끼들이 와서 술마시고 깽판치는 모습도,
소희랑 친해지며 친해진 주위 친구들 중 가장 친한 아연이 등 다른 친구들의 모습도,
조의금을 내는 슬픈 표정을 한 소수의 모습도,
마지막으로 소희의 부모님이 잠시나마 죄송하다며 사과하고 절하고 가는 모습도 보았다.
'소희야 넌 잘못한거 없어 소희네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에요'
'절 살게 해준게 두번째로 소희인데 죄인처럼 굴지 마세요 제가 자의로 한 일이니깐'
들릴 일은 없지만 한번 뱉어본다.
잠시나마 속이 후련하게.
이틀째는 항상 오는 사람들이 와서 한번씩 할머니에게 이야기도 하며 식사하시라고 얘기도 하신다.
제일 친하던 친구들도 꾸준히 온다.아마도 학교를 빠지고 오나보다.
첫날빼곤 소희네 부모님들은 안오신다.
소희의 장례식도 치뤄야돼서그렇다.
소희는 친구들도 말고 부모님도 계시고 성격도 좋아서 많이 오시겠지?
할머니도 이젠 우시진 않는다.
아마도 현실을 받아드리신 모양이시다.힘드시긴 하시겠지만.
제사가 지나고 나도 체념한체 주위를 서성거린다.
'왜 나는 안데려갈까'
'이렇게 영혼이 나온채로 되돌아가진 않을텐데 이상하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다시 생각나는 소희의 첫 만남과 할머니가 해주신 말씀 등을 생각하다보니 괜시리 울적해진다.
할머니가 이사오기전에 나한테 이렇게 말씀해주신적이 있으셨다.
"솔아..할미는 가끔 생각나 너의 엄마,아빠가 돌아가신 그날이 생각나.근데 할미도 그때 오죽 힘들었는데 솔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할미가 예전에 듣던 얘기가 있는데 들려줄께 나중에 너의 애기한테 들려주려무나"
'나는 슬프게 살지언정 너는 슬프게 하지 않으리라'
'나는 힘들게 살지언정 너는 힘들게 하지 않으리라'
'나는 고통스럽게 갈지언정 너는 편안하게 가리가'
'그러니 아가야 너는 힘들지 말거라,엄마가 해주는 모든것은 너의 것이니라'
'그 슬픔을 안고 가지 말거라,그 절망을 안고 가지 말거라,그 고난을 안고 가지 말거라,그 고통을 안고 가지 말거라'
'너가 아버지가,어머니가 돼는 그날까지 그 모든것을 부모님이 안고 가리라.그러니 너는 방해없이 날아가리라'
"나중에..할미가 없고 솔이가 엄마가 돼는 그날에,너의 짐은 엄마에게 남기고 너는 애기들에 짐을 들어주거라 그게 소원이다 이 할미는"
그렇게 나한테 말씀해주셨다.
그 생각을 끝으로 나는 형체를 잃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