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싸움의 상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종운의 볼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서러움이 쏟아지며 흐느낌이 되었다. 종운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나 돌의 눈가에 뜨거움이 흘렀다. 그러면서 굵은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렸다.
“뭐해, 빨리 차 빼!”
사내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두 사람이 화단에서 하는 짓을 보면서 명령했다. 종운과 나 철은 서로를 안고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사내가 화단을 향해 가는데, 아파트 입구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서 경찰차가 사내 옆에 섰다. 사내가 걸음을 멈추고 차에서 내리는 경찰 쪽으로 몸을 돌렸다. 경찰은 큰 덩치의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신고 받고 왔습니다, 서수복씨 또 사람을 때렸습니까?”
“누가 신고 했어, 주차 교육 쫌 했지.”
“공무중인 경찰에게 반말 하지 마십시오!”
경찰의 키도 일반인보다는 컸지만, 서수복이라는 사내 앞에서는 작아 보였다. 수복이 경찰 앞에 한 발 다가서자, 경찰 둘이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때렸잖아요?”
검정 원피스에 작은 키의 민지가 사내 옆에 서며 따졌다.
머리를 수건으로 둘러 올렸지만, 조그만 얼굴에 뽀얀 피부는 불빛을 받아 빛났다. 검정 눈동자가 눈을 가득 채워 순수를 풍겼다. 얼굴에 어울리는 선이 가는 코와 조그만 붉은 입술이 수줍었다.
“언제?”
수복은 고개를 돌려 올려보는 민지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돌렸다. 수복은 민지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했다. 경찰이 수복과 민지를 번갈아 보고 난 후, 화단에서 걸어 나온 종운과 나 돌에게 물었다.
“폭력행위가 있었습니까?”
“아니요!”
종운이 단호하게 경찰이 의도한 질문과 반대의 답변을 던졌다. 민지가 당황해서 앞으로 나서 종운과 나 돌을 보고 난 후, 경찰에게 진술했다.
“뭔 말이야? 내가 3층에서 다 봤는데, 미쳤어? 이 사람이 우리 아들 때렸어요, 이 사람은 맞아도 싸니까 상관없어요.”
민지는 ‘종운은 맞아도 싸다’고 하면서 흘겼다. 종운이 나 돌의 손을 잡아 나서지 말라고 신호를 보내고 한마디 덧붙였다.
“주차 질서에 대해 논하긴 했습니다, 그리고 실수로 앞차를 박기도 했는데, 맞지는 않았 습니다, 그렇다고 말해 돌이야!”
종운은 윗집 사는 수복을 곤경에 빠트리면, 밑에 집에 살아야 하는 나 돌과 민지가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상하리 만큼 몸 어디에도 아픈 곳이 없었다. 수복이 화단에 던져서 바닥에 뒹굴기도, 뺨을 맞기도 했지만, 뚜렷하게 내세우게 아픈 곳이 없었다. 나 돌이 맞았다고 나서지만 않으면, 차는 보험 처리하면 해결 될 일이었다.
“맞기는 했지만, 우리끼리 알아서 할 거니까 경찰한테 신고는 안 할거에요.”
나 돌도 종운의 말에 동의했다. 민지는 두 사람의 진술에 당황스러워 거들었다.
“맞았으면 맞았다고 해, 뭐가 무서워서 거짓말을 쳐, 사실대로 말해!”
“괜찮아 엄마, 맞은 만큼 갚아 주면 되지.”
경찰이 옆에서 듣다가, 싱겁게 끝날 일이라는 걸 예측하고 중재에 나섰다.
“두 분 폭행당한 적 없습니까?”
종운과 나 돌이 끄덕였다. 수복은 두 사람이 끄덕이는 거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경찰은 앞 차 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종운은 수리비 견적을 낸다고 보험사에 전화를 했고 민지는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 돌과 종운이 하는 걸 지켜보았다.
“내가 찾아 갈게요, 정식으로 한 판 뜨자고요.”
“흐 흠, 비린내 난다..... 언제든지 와!”
수복은 쫌 전 보다는 누그러진 목소리로 나 돌의 말을 받아 주었다.
*..*
나 돌은 수복에게 일방적으로 맞은 걸, 이성을 잃어서 그랬다고 믿었다. 어려서부터 자주 싸웠지만 일방적으로 얻어터지지는 않았다. 민지를 닮아 작은 키의 나 돌은 남달리 승부욕이 강했다. 초교 입학하는 날 뒷줄에 선 키 큰 아이가 놀렸다.
“유치원인 줄 아냐?”
“뭐?”
“유치원 아니다, 쪼그만 게.....”
초교 3학년 쯤 되어 보이는 맨 뒷줄 아이의 면상을 주먹으로 갈겼다. 그리고 엉겨 붙어 싸웠다. 선생님이 처음에는 두어대 때리다가, 밑에 깔려 맞는 나 돌을 떼어 놓았다. 큰 아이 코에서는 빨간 피가 흘렀다.
“기집애 마냥 뭐하냐?”
초교 4학년 때 키 큰 아이는 모래로 성을 만드느라 정성을 드리는 나 돌을 빈정거리며 놀렸다. 점심시간이 끝 날 무렵이라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 돌은 모래성에서 눈을 떼고 위로 올려다보았다. 해를 등진 아이는 어른 같았다.
“뭐라고?”
“못 들었으면 마, 쪼다 같은 게.....”
그러면서 큰 아이는 손에 들어 있던 신발에 모래를 담았다. 나 돌은 온 신경을 모았다. 큰아이는 모래를 담은 신발을 나 돌의 머리위에서 박수를 치면서 털었다. 나 돌의 머리 위로 모래가 쏟아졌다. 나 돌은 솟듯이 뛰어 올라 큰 아이의 턱을 머리로 박았다. 큰 아이는 나 돌의 급작스런 공격에 모래에 뒹굴었다. 나 돌은 쓰러진 큰 아이가 일어나면 맞을 걸 알고, 일어나지 못하게 발로 면상을 갈겼다. 큰 아이의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까불면 죽어!”
나 돌은 쓰러진 큰 아이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큰 아이 주변을 돌면서 발이 가는대로 찼다.
“어이쿠, 억, 죽인다!”
큰 아이가 나 돌이 휘두른 발을 어렵게 잡아 당겼다. 나 돌은 바닥에 벌러덩 쓰러졌다. 큰 아이가 위에 올라타고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다. 나 돌은 맞으면서도 외쳤다.
“죽어, 죽여 버린다!”
“덤벼, 까불어!”
둘은 엉겨 붙어 싸웠지만, 처음에 일방적으로 유리했던 나 돌은, 발이 잡혀 쓰러지고 난 뒤로는 큰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맞았다. 운동장에 나온 체육 선생님이 둘을 뜯어말렸다.
“운 좋은 줄 알아!”
얼굴이 온통 멍든 나 돌이 큰 아이를 봐 주는 것처럼 대했다.
“두고 보자, 죽을 줄 알아!”
6학년이 되면서, 큰 아이는 전교에서 일짱이 되었다. 아이들은 큰 아이에게 다소곳했다. 나 돌은 큰 아이와 한 반이 되었다. 나 돌은 언젠가는 큰 아이와 한 판 하게 될 거라고 각오하고 있었다. 먼저 덤비기에는 버거운 큰 아이였다.
“맛있겠다.”
학년 초였다. 큰 아이가 점심시간에 나 돌의 식판에 놓인 제육볶음을 젓가락으로 집으며 도발해 왔다. 나 돌이 고개를 올려 째려보면서 경고를 던졌다.
“치워, 젓가락 치워라!”
“안 치우면, 못 치운다, 어쩔?”
나 돌이 식판으로 큰 아이의 면상을 덮었다. 큰 아이는 눈에 짠 소금기가 들어가 눈을 뜨지 못했다. 나 돌은 허리를 구부린 큰 아이의 등을 팔꿈치로 찍었다. 그리고 무릎으로 큰 아이의 면상을 갈겼다. 큰 아이는 결사적으로 나 돌을 잡으려고 손을 휘둘렀다. 나 돌은 책상위로 올라가 피하면서, 발로 큰 아이를 찼다. 큰 아이가 바닥에 쓰러졌다.
“까불지 말라고 했지, 죽어!”
나 돌은 큰 아이의 옆구리를 연달아 발로 가격했다. 큰 아이가 의자를 잡아 휘둘러 나 돌이 휘청거렸다. 큰 아이가 나 돌의 목을 뒤에서 잡고 쓰러트렸다. 나 돌은 밑에 깔려 큰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맞았다.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들어 왔다.
“고만, 그만해!”
선한 얼굴의 여자 담임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표정으로 말렸다. 나 돌과 큰아이의 얼굴은 피로 범벅이었다. 담임은 둘을 만지지도 못하면서, 옆에서 하지 말라고 울먹였다. 나 돌과 큰 아이는 싸움을 멈추었다.
“어쩌니, 어쩌면 좋아.....”
담임선생님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선생님 괜찮아요, 봐요!”
나 돌은 손으로 피가 쏟아지는 코를 막으면서, 선생님을 안심시키려고 웃었다.
“씻고 올게요!”
나 돌은 착한 담임선생님을 괴롭히기 싫었다. 미안한 마음에 씻으러 화장실을 가면서 큰 아이와의 싸움은 끝났다. 키가 작다는 이유로 괴롭히는 아이들에게는 가차 없이 덤볐지만, 다른 친구들과는 잘 지냈다.
외할아버지 집은 꽤 큰 슈퍼를 했다. 외할아버지 집은 2층이었다. 나 돌네 식구는 1층 슈퍼 뒤에 딸린 집에서 살았다. 아빠는 건설회사에 다녔다. 아이엠에프 때문에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넘기느라, 외할아버지네와 합쳐서 살게 되었다. 엄마는 외할아버지의 외동딸이었다. 슈퍼에는 맛난 것들이 많았고, 나 돌은 마음껏 먹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가 슈퍼를 볼 때는 친한 친구들을 슈퍼에 데리고 와, 인심을 쓰곤 했다.
“돌이야, 너네 집 가자!”
친구들이 학교 마치고 집에 가자고 조르면, 우르르 데리고 와 아이스크림을 주었다.
꼭 인심을 잘 써서 친구들이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나 돌은 축구를 전교에서 제일 잘 했다. 다른 학교 축구부 감독이 나 돌을 축구 선수하라고 데려간 적도 있었다.
“뒤로, 앞으로!”
나 돌은 좋다고 따라간 축구부에서 앞으로, 뒤로 달리기만 하는 것에 질려서 이틀 만에 그만두었다. 학교 대표로 달리기라면 지겹도록 했었다. 나 돌에게는 축구는 축구고, 달리기는 달리기라는 확고한 철학이 있었다. 달리기 대회를 위해서 연습을 하는 건 납득이 되었지만, 축구 하라고 데려가 놓고, 달리기만 시키는 것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축구 하러 안가니?”
“그만뒀어!”
포기도 빨랐다. 재미없으면 그만두었다. 그 대신, 하고 싶은 걸 못하면, 견디지를 못했다. 인터넷 게임도 친구들 중에서는 제일 잘했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분주했다.
“얄짤없다, 다리를 분질러 줄까?”
수복은 종운을 따라가는 나 돌에게 경고했다. 나 돌도 지지 않았다.
“쫒밥!”
아무렇지 않게 수복을 도발하고, 종운의 뒤를 따라갔다.
*..*
쾅!
민지가 현관문을 세게 닫았다. 거실에 먼저 들어 온 나 돌과 종운은 문소리에 움칠하며 현관에 서 있는 민지를 보았다. 민지는 신발을 아무렇게 벗어 던지고, 싱크대로 갔다.
“내 말이 우습지, 내가 우스워!”
싱크대 위에 말리려고 늘어 세워 논 그릇을, 두 손으로 쓸었다.
쨍, 째, 쨍!
하얀 사기그릇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단단한 밥그릇은 바닥을 뒹굴었다.
“엄마, 하지 마!”
“가면 될 거 아냐, 잠깐만.....”
민지는 입술을 깨물고 싱크대 앞에서 종운을 노려보았다.
“뭘 잠깐? 뭘!”
민지는 손을 뻗어 싱크대 위에 매달려 있던 가위를 잡았다. 종운과 나 돌은 민지가 뭘 할지 몰라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가, 안가면 던진다!”
“알았어, 쫌만 있다 갈게.....”
종운이 손을 앞으로 내밀어 던지지 말라고 막으며, 사정조로 졸랐다.
“가!”
민지가 손을 뒤로 했다, 앞으로 하면서 가위를 던졌다.
“쉬~익!”
가위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왔다.
3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