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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마지막 축제
작가 : 럼럼
작품등록일 : 2018.11.2

귀신을 보는 유란과 귀신들의 왕

'…나는 당신의 것을 가볍게 손에 쥐었으나 당신이 내게 준 것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당신의 것들은 어느 하나 가벼운 게 없었다. 하나같이 무거웠다. 무겁다 못해 넘쳐났다. 넘치다 못해 흘러내렸다.'

 
7화
작성일 : 18-11-06 20:29     조회 : 205     추천 : 0     분량 : 4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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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

 

 천존이 하계를 만든 뒤 가장 먼저 발을 디뎠다는 초적산 봉우리에는 백 노인이 살고 있었다. 말이 노인이지, 신은 늙지 않는다. 인간처럼 자라나다 원하는 나이대에서 모습만 멈출 뿐.

 

 게다가 그 미색이 어찌나 대단한지, 상계의 신들 모두를 가져다 대어도 백 노인 하나만 못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 할 수 있겠다.

 

 그녀는 천존까지는 아니지만, 만물이 세 번 무너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것을 눈 뜨고 지켜보았던 장수 신중의 신이었다.

 

 오래 살았던 만큼 아는 것도 아주 많아, 그녀의 지식을 글로 써 보라거든 상계에 있던 종이가 부족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상계에 있던 백 노인은 하계의 네 왕이 빚어졌을 때 즈음 신의 자리를 내려놓고 하계를 방랑했다.

 

 이를 들은 동왕이 백 노인에게 초적산을 내어주며 말하길, 이제부터 나는 당신의 종이가 될 것이니 그대가 가진 모든 것을 내게 알려주게.

 

 탁.

 

 검은 연기가 담긴 그릇이 초적산 흙바닥 위로 놓였다. 초적산에 살고 있는 귀들에게서 걷어낸 악(惡)이었다.

 

 이를 본 묘운이 백 노인의 등을 긁으며 그것을 빨리 내 놓으라 아우성이었다. 그러다 길게 늘어지는 구불구불한 머리에 묘운의 발톱이 걸린다.

 

 밥그릇을 막아선 채 뒤를 돈 백 노인이 묘운의 발을 있는 힘껏 밟았다. 크앙. 묘운이 이빨을 드러내며 백 노인에게 덤빈다.

 

 “밥을 줘도 지랄이네, 이건.”

 

 평상 위에 놓여있던 부채로 묘운의 콧등을 톡 하고 두드리자 힘의 차이를 깨달은 묘운이 조용히 입을 닫고 꼬리를 내린다.

 

 장기판 위에 턱을 괴고 그 모습을 보던 동왕이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야 가장 좋아하는 것을 주니 그렇지.”

 

 “요즘 한가하오? 아니라면 좀 쉬었다 오시오. 저리 좋아하니 올 때마다 안 줄 수도 없고, 주자니 이 요괴 놈들 잡으러 다니기도 힘에 부치고.”

 

 부채를 내려놓으며 평상에 오르던 백노인이 턱 끝으로 동왕의 팔 아래 깔린 장기판을 가리켰다.

 

 그들은 그렇게 여느 때와 같이 장기를 두기 시작했다.

 

 “방법을 물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왜 또 오셨소.”

 

 곰방대를 물고 있던 동왕이 기다란 손가락으로 장기말을 움직였다.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

 

 "내 최근 동왕께 잘 못 한 게 있소?"

 

 "무슨 말이지."

 

 “그런 것이 아니라면 왜 이렇게 들들 볶냐 이 말이오. 궁금한 것이 있거든 알아낼 시간이나 주고 묻는 게 도리인 것을. 동왕님을 그리 가르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내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았나. 딴엔 아주 넉넉한 시간을 준 것이다."

 

 "그러나 그대. 얼마의 시간을 준들, 그것이 영원이라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오. 천존께서 괜히 천존이겠소.”

 

 “…….”

 

 “그냥 그 아이를 죽이시래도.”

 

 백 노인의 눈이 동왕의 뒤편에 있던 묘운에게로 향했다. 저것에 물리면 고통스럽기야 하겠소.

 

 “말고는.”

 

 “그러니 천존께서 동왕님더러 물러빠졌다 하시는 것이오.”

 

 연기를 뱉던 동왕이 고개를 삐뚜룸히 두며 백 노인을 보았다. 은근한 눈칫밥이 날아오지만 백 노인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그 아이를 죽이지 못하는 이유라도 있는 것이오? 직접 죽이지는 못해도 간접으로라도 죽일 수 있는 것 아니오.”

 

 동왕의 손이 잠깐 동안 멈추었다.

 

 “…이름을 빼앗겼을 때.”

 

 백 노인 또한 숨죽인 채 동왕과 눈을 맞췄다.

 

 "두려움을 느꼈다. 내게서 두려움이라, 재밌지 않는가. 그 아이의 눈을 보고 있는데 소름이 돋더군. 표식이 걸린 목은 욱신거리고, 그 아이의 눈짓 하나하나에 몸이 빳빳해지는 것이다.”

 

 어린 유란의 맑은 눈을 떠올리던 동왕이 조소를 흘렸다. 천존의 규율은 그만큼이나 대단한 것이었다.

 

 “그 아이의 눈동자가 어땠는지 아느냐.”

 

 “모르지.”

 

 “순수 외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것을 두고 두려움이라.”

 

 정말 그랬다. 작은 아이가, 그것도 고작 인간 따위 뭐 그리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허나 그뿐. 흥미가 일만 했다는 것은 알겠으나 그것이 모든 이유는 아니지 않소?”

 

 동왕의 눈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백 노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만물을 오래 겪어보았다는 것은, 상대의 눈만 들여다보아도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가진만큼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나 요력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겪고, 또 겪어 자연히 터득하는 것이었지.

 

 “동왕님에게 속이고 감추는 것은 어울리지 않소. 누구든 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하지. 그래야 넘어지지 않거든.”

 

 “꼭 피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

 

 “어째, 답지 않은 말을 하시오.”

 

 “아이에겐 아이의 삶이 있다.”

 

 “동왕께서 왕으로 빚어져 살아가듯, 그 아이도 나름의 생이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오?”

 

 “그래. 그것을 멋대로 해쳐서야 되겠는가. 고작 인간이 아닌가.”

 

 이번 것은 참이었다. 백 노인은 그래서 더욱 믿기지가 않았다.

 

 “동왕.”

 

 “…….”

 

 “아이가 그대의 이름을 손에 넣은 이상 그 아이는 고작 인간이 아니오.”

 

 “…….”

 

 “하계의 동쪽 왕의 이름씩이나 가진 인간이지.”

 

 말을 끝내던 백 노인의 얼굴이 한껏 매서웠다. 고작 인간이라면서, 고작 인간의 목숨을 거두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이리 답답하게 구는 것인지.

 

 그동안 동왕의 손에 베어진 귀들이 몇이던가.

 

 분명 상황에 맞는 살육이었지만 그가 죽인 귀들의 시체들을 쌓으면 상계에까지도 닿을 수 있을 것이었다. 시체에서 흐른 피는 동쪽을 두르고 있던 맑디 맑은 무의천을 범람했다. 그곳은 아직도 정화되지 못한 채 그들에게서 새어난 검은 피가 흘렀다.

 

 제게 반하는 귀들을 잘도 죽이며 살아와놓고, 어디 이게 동왕의 입에서 나올법한 소리란 말인가.

 

 “아이가 기억을 찾지 못하는 지금이 적기오.”

 

 “…….”

 

 “잘 생각하시오. 동왕께서는 천존의 자리를 놓고 형제들과 싸워야 하지요. 인간 따위에게 이름이 매여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오.”

 

 백 노인은 동왕을 살폈다. 평소와 같이 시큰둥하고 무심한 얼굴이었지만 별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제 말을 머릿속에 새기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쯧쯧. 백 노인이 이번에는 혀를 차 냈다.

 

 “쓸데없는 자비를 베풀지 말라 그리 일러드렸거늘.”

 

 “…….”

 

 “신부는 어찌 되었소.”

 

 “…아직.”

 

 “나기 그 요망한 것이 천존의 소식은 제대로 들고 오나 보오. 하지만 그 자를 믿으면 안 된다는 것 절대 명심하시오.”

 

 눈앞의 어린 왕은 똑똑하지만 어리석다. 잔인하지만 자비롭고 매정하지만 인정 있었다. 그래서 천존이 동왕을 성에 차지 않아 하는 것이다.

 

 천존이 네 왕에게 바라는 이상은 인내 없고 포악하며 무자비로 칼을 휘둘러 피를 뒤집어쓴 채 제 몫을 지켜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어린 왕은 상황에 따라, 멍청한 척 똑똑하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것에는 베풀고 잔인할 것에는 잔인했으며 매정해야 하는 순간과 인정을 보여야 할 선을 적절하게 넘어 다녔다.

 

 “나기는 뱀이오. 그냥 뱀이더이까. 대 요괴 임라가 부리던 뱀이었소. 제 주인을 벤 동왕님을 그냥 둘 리는 없고.”

 

 백 노인의 청아한 미성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가 혹 다른 형제들에게 그 아이의 이야기를 한다면, 아이를 홀려 그 이름으로 동왕님의 소멸을 바란다면.”

 

 장기판을 사이에 두고 잠깐 동안 시선이 오고 갔다. 침묵을 깬 쪽은 백 노인이었다. 장기말을 세게 내려놓은 그녀가 씨익 웃었다.

 

 “오늘도 내가 이겼소.”

 

 그와 동시에 동왕이 장기판을 뒤엎었다.

 

 놀란 기색 하나 없이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있던 백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왕을 올려다보았다.

 

 “그때는 평소처럼 그냥 베어버린다고 끝나지 않는다는 것.”

 

 “…….”

 

 “지금은 자비와 인정을 베풀 때가 아니라는 것. 명심하시오.”

 

 “다시 오지.”

 

 자리가 파했다는 것을 깨달은 묘운이 잽싸게 일어나 앞서가는 동왕의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을 보던 백 노인은 멀어지는 동왕의 뒤통수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죽이지 않겠다. 허면 남은 것은 하나지. 인간 신부를 꼬여내 천존의 자리에 올라 끊어내는 수밖에.”

 

 *

 

 누각 위에 자리를 깔고 앉은 동왕의 손에는 언제나처럼 기다란 곰방대가 들려있었다. 숨을 들이켜고 내쉴 때마다 그의 호흡을 따라 하얀 연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초적산에 다녀온 뒤로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환락초를 평소보다 더 많이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어있던 표정은 여전했다.

 

 분명 저도 알고 있었다. 지금 어떻게 행동해야 맞는 것인지.

 

 백 노인의 말대로, 자신은 지금 인간 따위에게 이름이 매여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무리 천존에게서 아직 신부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고는 하나 세상 일이란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러니 평소같이 냉정하게 행동하면 되는 아주 쉬운 문제였다. 하지만.

 

 백 노인에게는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아이가 커가는 동안 귀와 마주치기를 여러 번, 목에 걸린 표식에 이끌려 수경을 내다보았던 것 또한 수십 번이었다.

 

 보다 보니 눈에 익고, 눈에 익다 보니 익숙하고, 익숙하다 보니.

 

 ….

 

 생각을 거듭하던 왕이 아랫입술을 말아 물었다. 곧 뒤에 있던 하설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린다. 섬섬옥수라는 말이 딱 어울리듯 희고 기다란 손가락이었다.

 

 “하설.”

 

 “예.”

 

 “너도 내가 아이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

 

 “그것이 맞다 생각하겠지.”

 

 “맞다 한들, 아니라 한들 제게서 얻어 가실 정답은 없습니다. 그저 왕께서 내리시는 모든 결정이 정답일 뿐.”

 

 “그래, 그렇지. 내가 결정하는 것이 나의 답이지.”

 

 “그 누가 왕께서 내어놓은 답에 반기를 들겠습니까.”

 

 “말을 포장하는 기술이 갈수록 느는구나.”

 

 “과찬이십니다.”

 

 하설의 말에 동왕이 큭큭거렸다. 그러길 잠깐, 표정을 갈무리하고 누각의 기둥에 등을 기댄다.

 

 멍하게 있자 또 한 번 백 노인의 음성이 귓가에 들려왔다.

 

 ‘잘 생각하시오. 동왕께서는 천존의 자리를 놓고 형제들과 싸워야 하지요. 인간 따위에게 이름이 매여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오.’

 

 평소엔 그토록 머리에 새기고 마음에 새겼던 백 노인의 조언이 어째서인지 이번만은 썩 내키지 않았다. 새기기는커녕 곱씹을수록 기분에 생채기만 만들고 있었다.

 

 “시종들을 시켜 술을 내어오너라. 네 포장 기술에도 기분이 도통 나아지질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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