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여기까지인가.’
칼이 심장을 꿰뚫고 벽에 박혔다. 지금 나는 마치 벽에 박제된 것 마냥 축 늘어져 있었다.
“아무리 해봐야 결국 그게 네 한계다.”
눈 앞에 있는 12명의 남녀. 드레스, 양복, 티셔츠 다양한 복장이었지만 옷의 색은 모두 검정이었다.
‘어울리는 군.’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 장례식 옷차림으로는 적당했다. 게다가 무려 12명이나 내 장례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감탄만 나오는군요.”
“신기방기, 신기방기!”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이들의 심장에 칼을 박기는커녕 손 끝 하나대지 못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존나 맑네.’
살고자 추하게 발버둥치고 올라왔다.
내 인생을 세 마디로 요약하면 이것이다.
죽이고, 거짓말하고, 배신한다.
그 중 가장 많이 한 건 거짓말이지만 가장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건 배신이었다. 나의 배신 한 번으로 수 천, 수 만의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래도 인정할 수 밖에 없겠지. 최후에 살아남은 자가 너라는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으니까. 비록 그 과정이 추악한 배신 투성이라 할지라도 말야.”
“그래. 나도 ‘무특성자’가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는걸?”
무특성자.
지구가 뭐같이 바뀌고 난 이후, 모든 사람들은 특성이라는 것을 가지게 된다. 그 중에서 운이 뭐같이 없는 놈,년들이 무특성자다.
태어난 시대도 더럽게 운이 나쁜데, 그들 중에서도 운이 더럽게 없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어떻게 보면 현명한 새끼지. 자기 주제를 가장 먼저 파악하고 컨셉 확실하게 잡았으니까.”
나는 약했다. 누구는 특성으로 번개를 뿜어대고 레이저 빔을 쏴대고 핵폭발을 일으키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살아남고 싶었다. 끝까지 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죽더라도 끝까지 살고 싶었다. 그렇게 살아남았고, 이제는 나 혼자만 남았다.
“만약 특성만 S급? 아니 최소한 A급만 있었어도 훨씬 편했을 텐데. 아니, 어쩌면 우리들까지 뛰어넘었을지도?”
“그건 오버지. 아무리 이 애가 대단해도 우리를 뛰어넘다니. SSS급이어도 불가능.~~”
“그 말이 맞다. 우리를 뛰어넘는 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더 특별한 힘이 있다. 블랙 블러드, 검은 피라는 힘이 말이다.”
Black Blood. 검은 피.
SSS등급을 너머 EX등급을 너머 ‘초월’등급도 넘어선 모든 특성의 종착점이자 최종 단계의 힘.
“크윽.”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부상을 당했다. 이제 웬만한 부상은 웃으며 넘길 수 있다고 자부할 수준은 되었는데, 이건 좀 많이 아팠다.
“이제 가려는 모양이네요.”
“업보가 있으니 지옥에서 제일 깊은 곳으로 처박히겠지.”
“끝이군.”
나는 웃었다.
“끝.....끝이.....아니야......”
눈을 감았다.
“그게 무슨 소리지?”
“죽기 직전에 헛소리하는 거겠지.”
심장이 멈춘다. 의식이 거의 흐릿해졌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그동안, 거의 평생 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비밀을 말했다.
“이....제 시....작이다......”
‘이제는 아무도 버리지 않을 거다.’
의식이 끊기는 순간, 내 머리 속에 문장이 박힌다.
[최수현 사망 확인, 사망 확인.......]
[특성 발동 조건 충족. 특성이 자동으로 발동됩니다.]
[최수현의 능력 ‘회귀(등급:?)’가 발동됩니다. 3.....2.....1.....발동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