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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박쥐
작가 : 사각
작품등록일 : 2018.10.23

"기왕 죽을거면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서."
"타 죽고싶어."

 
6화
작성일 : 18-11-05 21:44     조회 : 199     추천 : 0     분량 : 8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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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부터 집 안에 그의 비명이 멎었다.

 

 도망쳤다 해도 결국 나는 이 집 안이었다. 이 집이 그리 넓은 것도 아닌데 나는 이 집 바깥으로 도망치지 못했다. 의자에 오도카니 앉아 있은 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소리도 없이 다가온 흰 가운이 식탁 앞에서 멈추었다. 고개를 들자 아주 가까이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의사가 보였다. 나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다. 난 어쩐지 이 의사가, 나 같은 인간이 아니라 그와 같은 박쥐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와 같은 박쥐. 박쥐… 박쥐?

 

 

 

 

 "잡아주길 바랐는데."

 

 

 뭐, 예상은 했지만.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 그의 말투가 시니컬하다. 그리고 나와 눈을 마주한 그가 말없이 내 반대편 의자를 잡아 빼 앉았다. 나의 시선은 그저 서 있던 그에게서 앉아있던 그에게로 넘어왔다.

 

 

 

 "며칠이나 됐나요."

 "…어떤…것이요."

 

 

 

 생각해보니 눈을 뜨고 처음 말을 뱉은 것이었다. 피가 굳은 목구멍을 뚫고 비집어 나온 목소리는 내 것 같지 않았다. 사실 지금 내 온 몸이 내 것 같지 않았지만.

 

 

 

 "당신이 여기 온 지, 며칠이나 됐냐는 겁니다."

 

 

 

 그는 답답해하지도 않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 질문을 들은 나는 잠시 생각한 뒤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시계도 없고, 달력도 없고, 내가 일월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그리고 누워있는 동안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나를 그가 빤히 바라보았다. 그 공허한 눈에 내가 담기는 것이 무서웠다. 꼭, 나를 다 읽히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나의 공포, 그리고 그런 감정을 품은 나도 이유를 모르는 나의 죄책과 나의 죄의식을.

 

 

 

 "그는 한 달 전까지 수면상태였습니다."

 

 

 

 그는 나를 한 번 더 채근하지 않고 제가 할 말을 내게 건넸다. 나를 채근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나를 배려해서일까, 아니면 나에게 거는 기대가 없어서일까. 그의 가운 안의 셔츠 단추 어딘가에 머물렀던 나의 시선이 다시 그의 턱과 인중 그리고 코를 넘어 그의 눈으로 올라섰다.

 

 

 

 "50년을 넘게 잠들어있다 깨어나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각성하여 더 그랬을 거예요.

 

 당신과 말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내 반수면 상태와 비수면 상태의 반복이었을 겁니다.“

 

 ”……“

 

 ”…제정신이 아니었단 소립니다. 당신에게 그 무슨 말을 했든, 그 무슨 행동을 했든."

 

 

 

 '씹어먹어 버리고 싶으니까.'

 '네 눈에도 내가 '그것'들과 같아?'

 '내가 널 먹었으면 좋겠어?'

 '먹을 게 많아서, 넌 안 먹어도 돼. 넌 안 먹을 거야.'

 '따듯해.'

 '바닥이 편해?‘

 '괜찮네.'

 

 

 

 

 

 나는 가족이 없는 곳에서 혼자 너무 많이 아팠었고, 나는 너무 혼자 있었다. 그래서, 그래서 그런 거야. 그래서 자꾸 그의 얼굴이 튀어나오는 거다. 사람 같던 그를 떠올리며, 사람을 그리워하는 거야.

 

 

 

 "몸 안도, 밖도 적응이 되질 않아 식사도 제대로 못 하였을 거고."

 

 

 

 의사의 말을 들으며 나는 가만히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림잡아 스물 다섯… 많아봤자 서른. 그런데 오십 년이라니. 박쥐는 나이를 먹지 않았었나… 몇 살일까… 식사를 하지 못해서 나를 먹지 않았나… 그래서 우유를… 그런데 그는 분명 나를 돌보고… 나를… 하는 무수히 많은 말줄임표 따위를 멍하니 생각하고 있었다.

 

 

 

 "평생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굴더니 깨어나 며칠을 내리 시장을 활보하며

 

 평생 사지 않던 옷이나 덮지도 않는 이불을 사들였다기에 무슨 바람이 불었나 했더니."

 

 "…………"

 

 "바람이 아니고 폭풍을 끌고 돌아왔네요."

 

 

 

 어쩐지 날짜가 지나도 약도 찾으러 오지 않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역겨운 인간 냄새가 진동을 하더라니.

 

 

 

 그는 굳이 신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가 말한 그 폭풍은 오직 나이리라. 먹이 사슬 하위에 있는 먹잇감에게 폭풍이란 장대한 별명을 붙인 그의 의도를 모르겠어서 나는 무작정 '모르겠어요.'하고 말했다. 멍청이 같았을 것이다.

 

 

 

 

 "인간인 당신이 무엇을 아는 것이 더 이상한겁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는 거고."

 "…………"

 "그가 정말로 당신을 잡아먹기 전에."

 

 

 '넌 안 먹을거야.'

 

 

 

 "여기를 떠나요."

 

 

 

 

 의사는 마치 잡아먹히기라도 하면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고 하는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어쩐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위해서 하는 충고처럼 들렸다.

 

 

 떠나. 떠나다. 그가 뱉은 뒷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분명 떠나지 못해 이곳에 머물러있는 중이었다. 분명 그랬다. 근데 그는 분명이 내가 아프기 전에도 이곳을 자주 이탈했다. 어디론가 나타났다 해가 질 때가 되서야 돌아온 적도 있었고, 나는 그 시간동안 집 뒤의 벼랑을 기어 올라가는 방법도 있었고, 뼈 사이 사이를 으득으득 씹어먹히느니 차라리 벼랑에서 뛰어내려 한 줌의 파도가 될 수도 있었다.

 

 근데 왜? 나는 왜 떠나지 못했지? 그래. 난 누구보다 죽고 싶어 하면서도 삶에 대한 집착이 강했지. 살고 싶어 했지. 벼랑은 내가 살아서 올라가기엔 턱없이 가파랐고, 두 번이나 떨어질 뻔 했던 절벽은…

 

 

 

 '여긴 날개 없인 못 가.‘

 

 

 

 아… 그렇지.

 

 

 

 "날수가 없어서요… 나는…"

 

 

 

 멍하니 뱉어놓고 웃음이 나왔다. 당연한 소리를 했다. 인간이 어떻게 날 수 있겠어. 인간이 어떻게… 눈앞에 그가 검은 날개를 펼치던 순간이 스쳤다. 힘없는 웃음 끝에 고개를 떨구는 나를 보고 그가 말했다.

 

 

 

 "내가 인간이 사는 마을에 데려다 주겠습니다."

 

 

 

 의사가 나를 예민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의 등 뒤로 어두운 하늘을 담은 창문이 보였다.

 

 

 

 "……"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가 말했다.

 

 

 

 "내게 해가 뜨길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하진 않겠죠."

 

 

 

 

 나에게 태양이 얼마나 독인지 당신은 분명 배웠을 텐데. 나를 설마 인간으로 알았나?

 

 

 

 뾰족하게 모서리가 돋아난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젓곤 푹 숙였다. 그래, 그랬지. 박쥐에게 태양은 독이었지. 그가 태양 빛을 받으면서도 불에 타지 않아서 몰랐다.

 

 고작 며칠인데, 20년을 넘게 '그들이 햇빛에 나오는 그 1초의 순간 100도가 넘는 끓는 물에 담겼다 나온 토마토처럼 껍질이 벗겨지는 화상을 입고, 1분안에 뼈가 드러나며, 5분안에 불에 타 재로 변합니다.'라고 교육 받아온 것이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다음엔 약을 좀 더 세게 놓아야겠군."

 

 

 

 박쥐에 대한 교육의 역사를 뒤지고 있던 내가 뜬금없는 의사의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의사는 여전히 넋이 반쯤 나간 … 그와 같은 반수면 상태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부엌 입구를 돌아 나타나는 그의 모습에 딱딱하게 굳어져버렸다.

 

 

 마치 아까 전 내가 보았던 흉측한 상처들은 모두 다 환영이라는 듯 말끔해진 얼굴의 그가 나를 보며 부엌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또 이유 모를 죄의식이 나를 파고든다.

 

 

 

 

 "랴오위, 약에 무슨 짓을 했어.“

 

 ”인간이라면 영원히 잠들었을 짓?“

 

 

 의사가 어깨를 으쓱이며 무서운 말을 천역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의 그런 모습과, 그런 목소리를 듣고 나니, 그제야 나는 '씹어먹고 버리고 싶으니까.'라고 하던 다른 사람 같던 그의 모습을 ’같은' 그에게서 찾아낼 수 있었다.

 

 

 ‘당신과 말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내 반수면 상태와 비수면 상태의 반복이었을 겁니다.’

 

 ‘제정신이 아니었단 소립니다. 당신에게 그 무슨 말을 했든, 그 무슨 행동을 했든’

 

 

 

 

 '이게 아니야?'하고 어수룩히 물어오던 그는 여기 없다.

 

 

 내 앞에 있는 것은 날렵한 몸짓으로 나를 낚아채 박쥐에게서 나를 구해냈지만 우리 가족에게서 나를 빼앗은 그저 또다른 ‘박쥐’.

 

 

 

 ”이게 다 널 위해서야.“

 

 

 ‘그가 정말로 당신을 잡아먹기 전에.’

 ‘여기를 떠나요.’

 

 

 날 위해서, 혹은 그를 위해서.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들이 얽혀 어지러웠다. 알고 있던 사실은 진실이 아닐 때가 있고, 깨달은 그 진실 또한…

 

 

 

 "얜 안 가."

 

 "네가 못 가게 하는 거겠지. 정신 차려 카인.

 

 영문도 모르고 감금되어 있는 이 여자한테 넌 그냥 살인귀일 뿐이야. 언젠가 날 잡아먹을!"

 

 

 낮은 시야 속 의사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그가 내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왔다. 눈앞에 나를 향해 뻗어있는 그의 손바닥이 보였다. 나에게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나를 살게 할 사람에게서 나를 지키려고 하는 이 상황이 지나치게 모순적이다.

 

 

 나는 이제야 그의 이름을 들은 것 같았다. 함께 머무른지 오래되었는데 생각해보니 나는 그에게 이름이 무엇인지도 물어본 적이 없다. 물론 그도 나에게 그랬다. 어쩐지 가슴께가 서늘했다.

 

 카인. 나는 짧은 지식 안에 카인이란 이름이 종교 서적 어딘가에서 봤던 것 같은 기억이 났다.

 

 

 "안 먹어.“

 

 

 그의 목소리가 더욱 더 낮게 떨어졌다. 그런데 이를 으득 깨문 그 낮은 목소리가 어쩐지 무섭지 않다.

 

 

 

 

 "저 여자 생각도 같을까?"

 

 

 의사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우스운 일이다. 카인보다 의사의 시선이 더 두려웠다. 나를 구하려고 하는 그의 시선이. 그리고 의사는 그런 나의 속을 눈치챈 듯 더 살벌한 분위기를 풍겼다.

 

 카인이 아예 나의 앞을 막아섰다. 나는 더 이상 의사가 보이지 않았다. 그에 의사의 목소리가 더 날카롭게 변했다.

 

 

 "놀고들 있군."

 

 "그만."

 

 

 그의 목소리가 더 낮게 가라앉았다.

 

 

 

 "이 여자는 아무데도 안 가."

 

 

 

 마치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고개를 돌려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처럼.

 

 

 

 

 "이건 반복일 뿐이야. 또 똑같은 반복일 뿐이라고!"

 

 

 

 욱! 나는 결국 고개를 옆으로 틀어 바닥에 속을 게워냈다. 아니 게워내려 했지만 먹은 것이 없어 역한 헛구역질만 반복했다. '가엾은 인간.' 의사가 나를 향해 말했다. 그의 말이 아니라, 부정할 수 없는 나의 나약함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로 머릿속까지 복잡해져서 어지러웠고, 메스꺼웠다.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내 뒷머리로 향하던 그의 손이 멈칫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카인."

 "꺼져."

 "역시 저 여자를 데리고 나가야겠어."

 

 

 의사가 식탁에 나뒹굴고 있는 나의 손목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곧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얀 가운이 펄럭였다. 쾅! 찬장에 강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며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 충격에 쏟아진 가냘픈 것들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쳐 산산이 부서진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본래 바라던 죽음이다. 산산이, 햇볕처럼 부서져 죽는 것.

 

 발끝에 치이는 나의 조각들을 홀린 듯 힘주어 밟았다. 섬칫 고통 끝에 나의 조각을 밟아선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죽여 달라고 피까지 흘리고 용을 쓰는 군."

 

 

 내게 말하는 의사의 비아냥대는 목소리가 어딘가 억눌려있다. 아마도, 그에게 억눌려 있겠지. 지난날 나를 잡아채 들어 올리던 그 강력한 힘에. 그 또한 억눌려 있겠지. 나는 쳐다보지 않고 그저 발밑에 나뒹구는 나의 조각, 아니 찬장의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다시 한 번 작게 쾅! 하는 소리 뒤로 그가 의사에게 말했다.

 

 

 "눈알을 파내기 전에 그만 보는 게 좋을 거야."

 

 "넌 후회할거야."

 

 "………"

 

 "며칠이나 갈까. 내가 떠난 뒤에. 하루? 이틀? 그녀의 목숨이 줄어드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네."

 

 "닥쳐!"

 

 "인간은 신이 사랑하는 존재다. 더는 신에게 밉보이지 마."

 

 

 

 이제 찾아오는 일 없어. 뒤지든 말든. 네 맘대로 해.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땐 막 의사가 그의 손을 뿌리친 다음이었다. 의사의 멱살을 놓은 그가 바로 내게 다가왔다. 보지도 않아놓고 상처가 난 내 발을 바로 집어들 수 있다. 이것 또한 그가 인간의 몇 십 배 혹은 몇 백 배의 후각을 가진 박쥐이기 때문일 테지.

 

 의사가 부엌 입구에 놓인 외투를 들고 뒤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내 살과 뼈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눈빛에 몸이 아리다. 휙 고개를 돌린 그가 말없이 집을 나섰다. 그에게도 날개가 있을까? 박쥐에게 날개가 있을까. 있었나. … 교육받고 자라온 모든 것이 의문 속에 잠긴다.

 

 

 

 내 발목을 움켜쥔 그의 손아귀 힘에 어깨를 움츠리며 그를 돌아보았다. 가만히 제 손에 묻은 나의 피를 내려다보던 그의 턱이 불툭해졌다. 뒤이어 긴 한숨이 그의 입을 비집고 나왔다.

 

 

 

 "…랴오위가 가자고 했을 때, 넌 고민하면 안됐어."

 "………"

 "그 찰나가 널 여기에 있게 한 거야."

 "………"

 "…도망칠 기회는 한 번이면 됐어."

 

 

 이젠 없어.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조용히 내 가느다란 발목을 손에 쥔 그를 바라보았다.

 

 

 “…왜?”

 

 

 내 목소리는 꼭 그 앞의 내 목숨처럼 하찮게 작아졌다. 쥐어짜내는 듯한 내 목소리에 그의 몸이 정지했다. 그리고 곧 조용히 내 피가 묻은 저의 손을 펼쳤다가 다시 주먹 쥐었다.

 

 

 

 “왜… 나를 먹지 않아요?”

 …

 “왜 나를 데려왔어요? 왜 나를 걱정해요? 왜 나를 …”

 …

 “왜…”

 

 

 

 그동안 묻지 못했던 말들이 흐름을 타고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사실 이것 말고도 그동안 묻고 싶은 말들은 더 많았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요? 내가 있는 동안에도 사람을 먹었나요? 하지만 묻고 싶은 말을 모두 하기엔 내 뇌는 너무 더디게 움직였다.

 

 

 그는 손이 닿는 거리에 있던 타올을 집어 나의 발을 감싸쥐었다. 차가운 타올의 감촉이 차갑게 얼어있는 발에 닿아 까끌거렸다.

 

 내 발을 감싸쥔 그가 전과 달리 초연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가지고 싶었어.”

 

 “……”

 

 “그뿐이야.”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어쩐지 아주 외로워보였다.

 

 “가고 싶나?…”

 

 “……”

 

 “돌아가고 싶어?”

 

 

 

 그의 망설이는 기색이 완연한 그 질문을 받으며 나는 이곳에 온 뒤 처음으로 그의 눈동자를 가장 똑바로 바라보았다.

 

 

 ‘가지마’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눈동자를.

 

 

 

 

 

 

 

 

 

 The Bat

 

 

 

 

 

 

 그 뒤 며칠이 지나자 목을 죄어오던 감기 같은 느낌은 씻은 듯 사라졌다. 몸엔 여전히 힘이 없었지만.

 

 

 그 또한 더는 뺨을 찢으며 괴성을 질러대는 고통스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가끔 인상을 팍 찌푸리곤 밖으로 달려나가 어디론가 말없이 휙 날아가거나, 하루 종일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방 안에 처박혀 있는 날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어디론가 날아간 날엔 그는 꼭 양손 가득 무언가를 사들고 나타났다. 마치 그것을 위해 떠났던 사람처럼. 아니 그것을 위해 떠났던 사람처럼 보이기 위함 이려나.

 

 

 사람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가축의 고기, 내가 살던 곳에서는 볼 수 없던 값 비싸고 질 좋은 야채 등등. 아직까지는 모두 다 냉장고에 처박혀 있고 여전히 우린 우유나 먹는 아가 신세이지만, 언젠가 그것을 쓰는 날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가 방에서 나오지 않는 날이면 나는 나의 방에서 그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집중하며 거실에서 가져온 내용 모를 어려운 책들을 읽는다. 열흘을 기다려 장을 보는 것이 일상이 아니라 이젠 이것이 나의 일상이다.

 

 혼자 있더라도 나는 어쩐지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전처럼 집 뒤의 벼랑을 기어 올라가 보기라도 할까? 하는 생각도 없었다.

 

 

 소설책 속에서 박쥐에게서 끝까지 도망치다 후엔 추가 다린 쇠사슬이 감긴 발목을 자르기까지 했던 용기 있는 앨리를 우상으로 삼았던 나는 더는 이곳에 없다.

 

 나는 늘 쳇바퀴 굴러가듯 무감각하고 잔잔한 삶이 싫어 햇볕처럼 산산이 부서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통이 있고 나서야 늘 살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나의 인생에 그는 나를 깨워낸 자극…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통각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밤이 되면 가끔 마음속으로 유서를 썼다. 김도휘가 아버지 곁에 있을까, 나의 장례는 치뤄졌을까… 그렇게 손으로는 쓰지 못할, 그리고 누군가에게 전해지지도 못할 유서를 마음속으로 쓰다보면 종착은 그 유서를 스스로 찢는 것에 있다.

 

 

 ‘그 찰나가 널 여기에 있게 한 거야.’

 

 

 아니다. 그가 정해준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답이었다. 사랑, 연민, 모성애… 한글 사전에 있는 어떠한 단어도 내가 그에게 느끼는 이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하나로 정리하지 못한다. 호기심? 그것의 비중도 물론 있겠지만, 호기심으로 나의 모든 것을 걸기엔 나는 너무 커버렸다.

 

 

 

 ‘날수가 없어서요… 나는…’

 

 

 나는 내 스스로 나의 발목에 쇠사슬을 걸었다. 발목을 자르고 도망갈지, 잡힌 채 죽을 지는 나중의 일이며 그것 또한 나의 선택이다.

 

 

 

 ‘결국 저질렀구나. 네가.’

 ‘그는 한 달 전까지 수면상태였습니다.’

 ‘평생 사지 않던 옷이나 덮지도 않는 이불을 사들였다기에 무슨 바람이 불었나 했더니’

 ‘가엾은 인간.’

 ‘…도망칠 기회는 한 번이면 됐어.’

 ‘이건 반복일 뿐이야. 또 똑같은 반복일 뿐이라고!’

 

 

 

 아직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모를 수도 있고, 죽기 직전이 돼서야 모든 것을 알게 될 수도 있지만, 일단 나는 그가 내게 주는 자극에 충실히 반응 할 것이다.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을 가로지르는 조급하지만 무거운 발소리. 그것은 지난번과 달리 나의 방문 앞에 정확히 멈추었고, 그는 늘 그렇듯 예의 없이 벌컥 문을 열어젖힌다. 문 앞에 선 그와 침대에 앉아있던 나의 눈이 충돌한다.

 

 

 

 

 ‘돌아가고 싶어?’

 

 

 

 나는 결국 그에게 대답을 들려주지 못했다.

 

 

 

 "나."

 "…………"

 "어디 안 가요."

 

 

 

 하지만 나는 그의 곁에 남았다. 발목의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찰랑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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