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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박쥐
작가 : 사각
작품등록일 : 2018.10.23

"기왕 죽을거면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서."
"타 죽고싶어."

 
5화
작성일 : 18-11-05 18:10     조회 : 235     추천 : 0     분량 : 8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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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만 움직이는게 좋을 거야.’

 

 ‘…………’

 

 ‘씹어먹어 버리고 싶으니까.’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가 나를 여기로 데려온 그가 맞을까? 나를 씹어먹고 싶다고 했던 그는, 분명 나른하지만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말투였다. 하지만 벌써 일주일째 나와 생활하고 있는 이 남자는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남자라기보단… 아기였다.

 

 

 

 매일 우유만 마시고 잠을 많이 자는 것이 가장 아기 같았는데, 그것 말고도 정해진 말만 반복적으로 내뱉는 것이라던가, 뱉는 말투는 날카롭기보단 둥글었고 발음도 살짝 어수룩했다.

 

 

 

 물론 가끔 나를 향해 '여기에 있어.'나 '마셔.'라고 명령을 할 땐 그 발음이 매우 단정했고, 나의 어떤 행동이 맘에 안 들면 팍 찌푸러드는 인상은 처음의 그를 떠올리게 했지만, 그것은 아기 같은 모습에… 드문드문 낀 이물 같은 느낌이었다.

 

 

 

 

 

 오늘 아침도 한결 같이 냉장고에서 우유를 따라 벌컥벌컥 마시는 남자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 째 내리 마신 우유의 비린내가 역겨워서 오늘은 그의 손을 거절했다. '괜찮아요.' 나의 말에 내 쪽으로 우유 잔을 내밀었던 그가 팔을 거두며 또 다시 내게 물었다.

 

 

 

 

 

 

 

 "이거 아니야?"

 

 

 

 

 정말 먼저 무언가를 묻기 싫었는데. 특히 이 질문만은 절대 안 하고 싶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고픈 배도, 이제는 역겨운 우유 비린내도, 고립된 생활도.

 

 

 

 

 "…날…… 왜 데려왔어요?"

 

 

 

 나의 질문에 거부당한 우유 잔을 빤히 내려다보던 그의 눈이 나에게 꽂혔다. 그의 눈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나는 꼭 쇠사슬이 둘둘 몸에 말린 사람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왜… 날 안 잡아먹어요? 박쥐들은……'다른' 박쥐들은 식인을 하잖아요."

 

 

 

 

 

 맨날… 우유만 먹고. 그 뒷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어쩐지 그를 무시하는 말처럼 들릴까봐. 그가 나의 말에 고개를 삐딱하게 숙여 나를 바라보았다. 이해를 못 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되려 전보다 조금 더 어른스러운 눈빛이 보여서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그가 손에 든 우유 잔을 살짝 찰랑이다 탁. 싱크대에 그것을 소리내어 내려놓았다. 식탁 의자를 잡은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남자가 다시 삐딱하게 고개를 숙여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눈에도 내가 '그것'들과 같아?"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네? 하고 되묻는 말을 하기엔 나는 이미 잔뜩 얼어버렸다. 그 질문을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나를 씹어먹고 싶다고 했던 그 목소리와 분위기가 비슷했다. 말이 없이 입만 벙긋거리는 나를 보며 그가 다시 한 번 물었다.

 

 

 

 

 

 "내가 널 잡아먹을 것 같아?"

 

 "…그러려고… 그러려고 데리고 온 것 아니에요?"

 

 "내가 왜?"

 

 "………"

 

 

 

 

 

 자꾸 그렇게 나한테 물어보아도 내가 그의 말에 답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냥, 그의 그 물음이 마치 '내가 그런 수고를 왜?'라는 말의 함축 같았다. 그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가 또다시 내게 물었다.

 

 

 

 

 

 "내가 널 먹었으면 좋겠어?"

 

 

 

 

 

 그 질문엔 확실히 대답할 수 있었다. 절박하게 고개를 가로저었고 그도 모자라 손까지 내저었다. 남자가 웃는 것이 보였다. 열심히 고개를 흔드느라 현기증이 난 나는 얼른 식탁 의자를 붙잡았다. 먹지도 않았는데 속에서 흰 우유가 넘실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세끼 꼬박꼬박 다 챙겨 먹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의 탄수화물과 단백질은 꼭 챙겨먹었던 내가 일주일 째 하루에 한 끼 혹은 두 끼를 내리 우유만 먹었으니 몸이 성할 리 없었다.

 

 

 

 

 

 위액이 솟구치는 느낌이 더러웠지만, 나는 안간힘을 써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그 순간 몸이 붕 떠올랐다. 그가 날 안아들었다. 집에 와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근데 자꾸만 머리가 어지러워서 나는 무어라 말도 못했다. 다시 한 번 말로 '먹지마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냥 그의 목깃을 꼭 잡았다.

 

 

 

 내가 잡은 제 옷깃을 내려다보던 그는 한 손으로 어렵지 않게 내 방 문고리를 돌려 열었다. 그가 나를 침대에 조심히 뉘였다. 그의 그 조심스런 행동이 나는 너무나도 이상했다. 이상하고. 이상하고. 또 이상하다는 생각들이 자꾸만 그가 무섭지 않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그가 그냥 사람 같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그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 흐트러진 머리부터, 힘없이 침대 바깥으로 뻗어나온 내 손을 훑어 내려갔는데 그 눈빛에 또 이상해졌다. 기분이. 그가 삐져나온 나의 손을 침대 안으로 넣어주었다. 그의 손은 언제 느껴도 참 찼다. 이 집의 온도처럼.

 

 

 

 어지러워. 박쥐인 그는 고기를 찾지도 않는데, 고기는 오히려 내가 더 먹고 싶었다. 감염이 되나. 박쥐 바이러스 이런 것이 있나. 어지러운 생각들 속에서 나는 어떻게든 정신줄을 붙잡으려 별 생각들을 다 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잔머리를 가볍게 쓸어넘긴 그가 무릎을 세우고 앉아 침대에 턱을 괴고 내게 말했다.

 

 

 

 

 

 "고기는 다 먹어. 사람이든, 짐승이든, 네가 말한 그 '박쥐'만 빼고."

 

 "…………"

 

 "먹을 게 많아서, 넌 안 먹어도 돼. 넌 안 먹을 거야."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꼭 도휘가 내게 '여긴 안전해. 여긴 안전하다고.'하고 말하던 것이 떠올랐다. 마치, 스스로에게 세뇌를 시키는듯한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내가 그를 너무 인간처럼 보고 있기 때문일까.

 

 

 

 그럼 날 왜 데리고 있어요? 그럼 당신은 대체 누구에요?

 

 

 

 묻고 싶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꼭 그만 물어달라고 하는 것 같아서, 아무것도 몰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 물을 기력이 없었다. 노란 스텐드 전등이 꼭 달처럼 밝았다. 그의 손바닥이 나의 눈가를 덮었다. 아주 차가웠지만 잠은 달아나지 않았고, 오히려 포근함을 느끼며 천천히 의식이 흐려졌다.

 

 

 

 

 

 

 The Bat

 

 

 

 

 

 

 

 

 도휘는 지호의 짐을 정리하는 현식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두툼한 군용 점퍼를 입고 지호의 침대 머리맡에 있는 액자를 들고 가만히 내려다보는 현식의 뒷모습이 작았다.

 

 

 현식에게 다가선 도휘가 그의 손에 들린 액자를 빼내어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현식의 공허한 눈이 도휘에게 닿았다.

 

 

 

 이 구역을 이끄는 대장이라고 사람들이 칭송을 해줄 때도 좋았으며, 시장이 직접 달아준 가슴팍의 훈장도 자랑스러웠다. 지호가 열흘마다 열리는 장에 다녀와서 퇴근을 한 저에게 달려와 두툼한 봉투를 펼쳐보이며 '대장님~ 홍이네 할머니가 대장님 드리라고 이만~큼이나 더 싸주셨네요~' 부러 아부 떠는 말을 할 때에도 '그러냐.'하고 무뚝뚝히 말하고 말았지만, 사실은 딸 앞에서 치켜세워진 체면에 어깨가 으쓱했다.

 

 

 근데 이젠 다 소용이 없다. 아무 소용도 없다. 현식에게 이 가슴팍에 달린 훈장은 그저 가족도 지키지 못한 무능한 가장의 표식일 뿐이었다.

 

 

 눈앞에서 현식은 박쥐에게 끌려가는 지호의 이름을 불러보지도 못하고 그 뒤를 놓쳤다. 그토록 빠르게 달리는 박쥐는 이제까지 본 적이 없어서 더 그랬다. 물론 그것 또한 변명이다.

 

 

 

 이제 그에겐 돌이키고 싶은 하루가 하나 더 생겼다. 하루는 지호가 제 사무실로 찾아와 부탁하였을 때 조금 더 강력하게 막지 않았던 이주 전의 그날이었고, 하루는 우울증이 심한 아내의 폭포수 같은 감정을 받아내기 힘들어 안양의 장모님께 보내기로 결심한 7년 전의 그 날이었다.

 

 

 멍하니 손을 떨군 채 도휘가 올려놓은 액자 속의 아내와 지호를 바라보는 현식의 어깨를 잡았다. 현식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돌아갔다.

 

 

 

 

 

 

 The Bat

 

 

 

 

 그 뒤로 나는 며칠을 앓았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눈을 뜨면 하는 일이라곤 맨 바닥에 구역질해 그가 억지로 떠넘긴 물이나 우유로 추정되는 멀건 액체들을 뱉어내는 것 뿐이었다. 그가 그 며칠간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떼는 것을 드문드문 느꼈고, 낮게 욕을 중얼거리거나 어수선히 침대 앞을 왔다갔다하는 것들을 순간순간 느꼈다. 내가 바닥에 토해낸 것들을 닦는 소리도 가끔 들렸다.

 

 

 아파서 앓아눕기 전에 그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넌 안 먹을 거야.' 왜요? 그럼 날 왜 데려왔는데요. 묻고 싶었던 말들을 벌써 며칠째 못 하고 있었다. 그에게 먹을 수 있는 짐승을 아사시켜 박제하는 질 나쁜 취미가 있는 걸까.

 

 

 대체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열흘은 넘었나. 아빠는 내가 죽은 줄 알 거야. 하지만 내가 죽은 것과 다른 것이 무엇일까. 내 장례는 치뤘을까. 김도휘는 계속 우리 아빠랑 살아줄까. 그래주었으면 좋겠는데. 아빠가 나가라고 해도, 아무도 없는 외로운 아빠 곁에 남아주었으면 좋겠는데. 김도휘가 아빠에게 조금만 더 살갑게……

 

 정신없는 와중에도 마치 유서를 쓰듯 그렇게 중얼중얼 머릿속으로 글자를 적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느꼈다. 아주 오랜시간동안 그가 내게 오지 않고 있음을. 내 입에 억지로 무언가를 떠넘기려고 하지 않고, 내 이마의 열을 재어보지 않고, 아픈 나를 내려다보며 욕지거리를 내뱉거나, 손톱을 딱딱 물어뜯지 않는다는 것을. 분에 넘치는 간호라 생각했는데 막상 그가 나타나지 않으니 그 자리가 허했다.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 부재였던가? 이틀? 삼 일? 아니면 누구에겐 고작 하루이지만 내게는 너무나도 긴 스물네 시간 동안의 부재일수도 있겠다.

 

 

 힘겹게 눈을 떴다. 눈알 사이사이에 모래가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목도, 입도, 혀도, 눈도, 피부도- 전부 다 갈증에 목말라있었다. 나는 뻣뻣하게 고개를 돌렸다. 방 안이 온통 새카맸다. 저녁이다. 혹은 아주 늦은 밤이거나 새벽일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눈을 떴을 때 해가 지면 늘 그가 연노란빛의 조명을 켜주고 나간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오늘은 그마저도 캄캄하게 꺼져있었다. 천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에 창밖의 나무들의 그림자가 천장에 일렁였다.

 

 

 

 왜. 아니라곤 했지만 잡아 먹으려고 데려온 짐승의 병간호가 이제 지겨울 때가 됐나.

 

 아니, 병든 짐승은 먹기가 싫어진걸까. 옆방에 나 말고 다른 먹이가 들어온 것은 아닐까. 조금 더 건강하고… 조금 더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여자가. 그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 여자에게 모자가 달린 망토를 선물하고…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 나는 다시 질끈 눈을 감았다. 생각의 방향이 점점 잘못된 곳으로 가고 있었기에.

 

 

 눈을 뜰 때 집이 아니라면, 차라리 그가 눈앞에 없기를 바라놓고 고작 결과가 박쥐를 그리워하는 일이라니.

 

 

 그래, 난 너무 혼자 있었다. 사실 난 아빠도 보고 싶고, 마을 회관의 할머니들도, 영이언니도, 김도휘도 다 보고 싶었다. 근데 그냥 제일 먼저 그가 떠올랐을 뿐이다. 그를 제일 최근에 본 사람이기에.

 

 

 사람? 사람…사람.

 

 

 창문을 두드리는 나뭇가지의 노크를 들으며 나는 몽롱하게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그는 집에 없을까. 그 생각에 또다시 눈을 힘주어 감았다.

 

 

 양계장 닭이 나와 무엇이 다를까. 먹이를 주고, 따듯하게 온도를 맞춰주는 주인을 보고 혹시 그가 이대로 나를 계속 키워줄지도 몰라. 나를 살려줄지도 몰라. 나를 안 먹을지도 몰라. 하고 희망고문을 당하는 가엾은 닭과 내가 다를 바가 무엇일까.

 

 

 그리고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이젠 소리만으로도 저 소리가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돌아왔나? 이 방에 들리려나. 문을 바라보던 나는 가까워져 오는 발소리에 필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궁.궁.궁. 묵직한 발소리가 내 방문 앞에 잠시 멈칫 멈추어섰다. 하지만 곧 지나친다. 발걸음은 복도 끝, 그의 방 앞에 멈추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닫힌다. 그가 그냥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천천히 눈을 떴다. 머리 위에서 여전히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일렁였고, 나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창밖의 나뭇가지가 거칠게 요동치는 것이 보였다. 빈 뱃가죽을 울리는 그 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을 바짝 주었다.

 

 

 -아아아아악!!!!

 

 

 

 그의 목소리였다. 아니다. 그의 비명. 아니다. 그의 포효. 그것이 셋 중 무엇이든 간에 나는 필사적으로 목을 들어 보이지 않는 그의 방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방은 역시나 보이지 않고 그곳엔 까맣게 죽은 스탠드만이 그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쿵! 하고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 묵직한 고동은 세 번이상 반복됐다.

 

 까맣게 죽은 스탠드가 비스듬히 테이블 위에서 방향을 틀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보고 말한다.

 

 

 「 일어나! 」

 

 

 

 

 나는 아직 일어날 여력이 되질 않았다. 하지만 일어섰다. 천천히 팔꿈치를 세워 상체를 일으키고 내 몸보다 무거운 것처럼 느껴지는 두꺼운 이불을 걷었다. 바닥엔 카펫이 없었다. 내가 며칠을 내리 카펫 위에 속을 게워내 그가 치워놓은 듯 했다. 바닥에 발을 디디자 발바닥의 근육이 동시에 수축했다. 그 근육의 움직이는 고통이 있고 나서야 나는 그래도 살아는 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다. 이전까진 겨우 몸을 움직이는 좀비 같았으니까.

 

 

 문 앞에 섰다. 용기가 없어 열지 못하고 망설이기를 몇 분, 다시 한 번 바닥을 울리는 고동과 괴로워 보이는 그의 쇤 목소리에 입술을 앙다물고 문을 열었다. 집 안엔 한기가 가득했다. 경련이 오는 어깨를 끌어안고 걸었다. 그의 방까지 가는 복도가 길었다.

 

 

 그의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 귀를 대어 볼 용기가 나질 않아 그냥 무작정 손을 뻗었다. 손잡이로 향하는 손이 떨려서 잠시 다른 손으로 손목을 꼭 잡아 손을 주물거렸다. 가만히 손잡이 위에 손을 얹었다. 침이 마른 식도를 타고 넘어가 찌릿거렸다. 어딘가 갈라져서 피가 났는지, 쇠 맛이 비릿하게 입 안을 감돌았다.

 

 

 쿵!

 

 아아아아악!!!

 

 "!"

 

 

 

 가만히 손잡이를 잡고 있기만 했지만, 방 가까이에 오니 더 강하게 느껴지는 충격에 저절로 손이 떨려 문고리가 돌아갔다. 문이 열리는 그 모습이 영화의 극적인 장면같이 슬로우모션 효과를 준 것처럼 보였다. 그 안을 본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목이 긴 검은 의자에 그가 묶여 있었다. 몸통뿐 아니라 그의 목, 팔, 다리가 모두 결박당한 상태였다. 하지만 끈은 죄다 기능을 상실하고 뜯어진 상태였다. 그런 그의 몸을 결박하고 있는 또다른 것… 처음 보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컴컴하고 습한 방 안과 어울리지 않는 깨끗하고 보송해 보이는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그의 목을 뒤에서 끌어안은 상태로 주사를 들고 서 있었다.

 

 

 내가 입을 틀어막았던 것은, 그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를 보아서도 아니었고, 그가 묶여있는 것을 보아서도 아니었다.

 

 

 그의 뺨과 입가에 가득히 들어찬 결결이 그어진 벌어진 상처들 때문이었다. 그가 비명을 내지를 때마다 그것들이 마치 물고기의 아가미처럼 더 넓게 벌어졌다. 그가 뿜어내는 힘을 견디지 못하는 그의 연약한 피부가 가엾다. 나는 그가 그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공포스러웠다.

 

 

 이는 그가 날 죽이지 않을지도 몰라. 하고 생각하던 닭이 제 친구의 목을 비틀어 데려가는 주인을 보는 순간의 감정이며, 감정의 순간이다.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묶여있는 그가 천장을 보고 깊은 숨을 내쉬다 꽁꽁 묶인 왼발을 쿵! 바닥에 굴리며 다시 괴로운 비명을 내뱉는다. 강하게 묶였던 매듭은 그의 발버둥에도 풀리지 않고 그의 발목에 붉은 상처를 남겼다. 짐승과 같은 씩씩거림 뒤에 천천히 그가 고개를 들다 문 앞에 선 나를 발견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채 나는 점점 뒤로 물러서다 벽에 등을 바싹 붙이고 섰다. 현기증에 벽이 늪처럼 고동치는 느낌이었으나 벽은 늪처럼 나를 벽 안으로 빨아들이지는 못했다. 할 수만 있다면 벽 안으로 숨어버리고 싶었던 나는 이 벽이 늪처럼 나를 삼켜주길 바랐는데.

 

 

 

 "…가."

 "…………"

 "저리 안 꺼져!!!!!!!!"

 

 

 

 그가 꼭 의자에 묶인 채 상체를 바싹 일으키며 내게 소리쳤다. 그가 앞으로 튕겨져 나오니 올가미처럼 그의 목을 조이고 있던 남자의 팔 또한 훅 조여든다. 땅에 닿은 그의 다리가 덜덜 떨렸다. 그리고 입을 가린 나의 손 끝 또한 그의 다리처럼 덜덜 떨렸다.

 

 

 눈을 깜빡이는 순간에도 그 찰나의 어둠 속에 그의 흉칙한 얼굴이 완연했다. 다른 팔로 주사로 약물을 뽑아낸 의사가 고개만 돌려 그의 시선 끝에 매달린 나를 바라보았다. 하얗게 질린 듯한 그의 얼굴이 지나치게 멀끔했다. 나를 본 의사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금세 풀었다. 그리곤 고개를 다시 돌려 여전히 화가 난 짐승의 얼굴로 나를 보고 있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냄새가 지독하다 싶더니.“

 

 ”………“

 

 ”둘다 제 처지도 모르는 것들이군."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 했다. 나는 그렇다쳐도 그가 제 처지를 모르다니? 나를 노려보던 남자가 눈만 들어 의사를 바라보았다. 닥쳐. 그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하자 결대로 찢어진 그의 뺨이 불툭 튀어나와 혐오스러웠다.

 

 

 그리고 그가 또다시 윽!하며 몸부림치더니 몸을 웅크리곤 쾅! 발을 굴렀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번엔 고개를 푹 수그리고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의사의 눈이 지독하게 아무것도 없이 비었다.

 

 

 

 "네가 데려와 놓고, 왜 꺼지래. 들어와요. 어디 앉아 있던가, 누워 있든가, 아니면 좀 잡고 있어주던가."

 

 "…랴오위."

 

 "잡고 있어 줬으면 좋겠지만… 비위가 약한 편인 것 같으니. 편할 대로 해요."

 

 

 

 의사의 말을 들은 그의 고개가 죄수마냥 곤두박질쳤다. 나는 의사가 말한 것 중 어떠한 것도 행동 할 수 없었다. 이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게처럼 옆으로 한 발 걸었다. 나를 보지 않는 그가 나의 움직임을 느낀듯 정수리가 움찔거렸다. 의사는 나를 그냥 바라만 보았다. 여전히 지독히도 텅 빈 얼굴로.

 

 

 나는 그대로 도망쳤다. 복도에 나의 요란한 뜀박질 소리가 가득했다. 그가 비명을 지를 때 그의 뺨처럼 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튀어나온 그의 눈알이 꼭 나를 뒤따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걷잡을 수 없는 공포심 이후 나를 목 죄어 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죄책감이었다.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은촛대를 훔친 장발장? 부부싸움을 하다 우발적으로 아내를 죽인 남편? 그 무엇이든 … 지금 나의 목을 죄어 오는 이 뒤엉킨 감정들은… 죄를 지은 자들의 것이었다.

 

 

 내가 그에게 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저 토막을 앞에 둔 닭일 뿐인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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