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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마지막 축제
작가 : 럼럼
작품등록일 : 2018.11.2

귀신을 보는 유란과 귀신들의 왕

'…나는 당신의 것을 가볍게 손에 쥐었으나 당신이 내게 준 것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당신의 것들은 어느 하나 가벼운 게 없었다. 하나같이 무거웠다. 무겁다 못해 넘쳐났다. 넘치다 못해 흘러내렸다.'

 
4화
작성일 : 18-11-04 18:29     조회 : 205     추천 : 0     분량 : 3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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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할 말이 있어서 온 것 아니었나."

 

 호랑이가 그려진 병풍 앞, 의자에 한 쪽 다리를 세우고 앉아있던 동왕이 손에 쥔 곰방대를 입에 가져다 대었다. 사방에 깔려있던 연기는 모두 그의 입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당신이 여기의 왕이야?"

 

 마음을 진정시킨 유란이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며 물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겁을 먹고 있다는 걸 들킬 것 같았다. 그럼에도 겨우 내뱉었던 한 문장이 통째로 흔들렸던 것은 여과 없는 사실이었다.

 

 "문 앞에서 이곳까지 한 걸음에 다가오던 호기는 어디 가고…"

 

 동왕이 책상에 놓여있던 접시 위로 곰방대를 뒤집었다.

 

 "어찌 그리 벌벌 떠는가."

 

 "……."

 

 "그래, 내가 동쪽의 왕이다."

 

 탁탁, 그가 곰방대의 막대를 치자 머리 부분에서 담뱃잎이 쏟아져 나온다. 느리게 이어지는 손길을 보던 유란은 다시 한 번 입을 떼어냈다.

 

 "날 왜 이곳으로 데려온 거지?"

 

 "너는 멍청한 것인가, 무식한 것인가."

 

 "무슨 소리야."

 

 탁ㅡ. 왕이 곰방대를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대접을 받을 텐데 그마저도 못하는 것을 보니 멍청한 것도 같고."

 

 "……."

 

 "감히 내 앞에서 큰 소리를 내며 목을 뻣뻣이 쳐들고 있는 것을 보면 무식한 것도 같고."

 

 왕의 건조한 눈이 유란을 향했다. 시선이 맞물린다.

 

 동시에 유란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그가 뿜어내던 위압감을 이기지 못해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것이다. 철퍼덕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왕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비죽 늘어진다.

 

 “둘 다구나, 너는.”

 

 표정이 삐딱한 것이, 분명한 비웃음이었다.

 

 “물은 거에 대답이나 해. 내가 왜 여기에 있냐고.”

 

 “원인을 제공한 것은 너인데, 거기까지 설명을 해줘야 하나 보군.”

 

 “너 이거 납치야, 알아?”

 

 그 사이 동왕이 자세를 고쳐앉았다. 사뿐하고 가벼운 몸짓을 보던 유란은 생각했다. 굳이 소하리에게 설명을 듣지 않고 이 앞에 섰다고 해도 앞에 있던 놈이 귀신이라는 것은 금세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방에서 나던 담배 냄새 덕에 귀신들 특유의 향이 지워졌지만 당장이라도 사람의 혼을 빼어놓을 듯 품고 있던 분위기가 그러했다.

 

 “납치라. 그럼 너는 도둑질을 한 것이 되나.”

 

 “도둑질?”

 

 왕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이곳에서 살려면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없도록 말을 엿같이 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왕을 마주하면 궁금증이 해소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머릿속만 더 난잡해졌다. 퍼즐은 완성되지 못하고 조각만 더 늘어가고 있었다.

 

 이해가 어려운 상황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귀신을 마주하는 것이 처음도 아니었고, 겁이 나긴 하나 답을 찾고 싶었다. 그것이 혹여 저를 잡아먹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유란은 마음을 다잡았다.

 

 “다시 물을게.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알아듣게 설명해.”

 

 “일러주었잖아. 조모의 물건을 정리하라고.”

 

 “………뭐?”

 

 “분명히 말해 주었잖아. 다른 말은 잘도 듣더니, 이번엔 왜 지키지 않았지?”

 

 왕은 어딘가 모르게 화가 나 보였다. 왜? 유란이 의문을 품은 채 예민함이 가득 깔린 왕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덕분에 네 조모가 제 물건들에 흘린 기를 빨아먹으러 귀들이 잔뜩 꼬일 것이다. 네가 정신을 잃기 전에 보았던 놈들도 그중 하나였지.”

 

 “…….”

 

 “왜 이곳에 있는 거냐고 물었던가, 그야.”

 

 너를 놈들에게서 숨기기 위해서다. 이어지는 왕의 말을 들으며 유란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토해냈다.

 

 “나를 숨겨? 누가, 귀신이? 당신 귀신이라며. 그리고 여긴 귀신의 세상이라며.”

 

 “…….”

 

 같은 귀신한테서 날 숨기기 위해 데려왔대. 귀신이. 귀신들의 왕이. 귀신의 세상으로.

 

 아, 정말이지 늘어놓는 모든 단어에 혐오가 들끓어 견딜 수가 없었다.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 어느새 발화점을 넘어 뜨겁게 타올랐다. 유란은 이를 꽉 깨물며 속을 진정시켰다.

 

 "날 내가 살던 곳으로 데려다 놔."

 

 "돌아가고 싶은가."

 

 "당연하잖아."

 

 "네 집은 자정마다 귀가 다녀갈 것이다. 이번엔 둘이었지만 다음엔 넷, 그다음엔 수가 곱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래도 돌아가고 싶다고.”

 

 “적어도 여기보단 낫겠지. 거긴 귀신의 세상이 아니라 사람의 세상이니까.”

 

 “귀에게 먹히고 싶은 것인가.”

 

 “…….”

 

 “그런 것이 아니라면 돌아가고 싶다 대답이 나와선 안되지.”

 

 “그게 뭐. 내가 죽든 말든, 당신이랑 상관있어?”

 

 “……상관.”

 

 “그래! 내가 죽는 게 당신이 죽는 것도 아닌데, 왜 참견이야!”

 

 유란이 큰 소리를 냄과 동시에 왕이 팔을 휘두른다. 그의 손길에 앞에 있던 낮은 탁상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을 굴렀다. 위에 올려졌던 것들이 와르르 떨어졌다.

 

 눈으로 그것을 쫓는데, 동왕의 큰 손이 유란의 목을 틀어쥐었다.

 

 놀란 얼굴로 동왕을 돌아보던 유란은 반사적으로 그의 팔 위에 제 손을 올렸다.

 

 “너는 아직 멋대로 죽을 수 없다.”

 

 “…….”

 

 "왜냐고 묻고 싶겠지. 그야.”

 

 “…….”

 

 “내 것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맞닿은 피부를 타고 오소소 한기가 느껴졌다. 유란은 그의 체온에 놀라고, 그의 목을 감고 밝게 빛나던 빛을 보며 또 한 번 놀랐다.

 

 “이리 족쇄를 채워놓고, 왜 참견을 하냐고.”

 

 목을 붙들린 것은 유란인데 어째서 왕이 괴로운 얼굴이었다. 그의 매끈하던 이마 위로 핏줄이 길게 서 있었다.

 

 "손만 대었을 뿐인데 이리 야단이군."

 

 낮게 조소를 뱉던 왕이 유란의 얼굴에 제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짙은 눈동자가 유란과 진득이 마주한다.

 

 유란은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말아 물었다. 목을 쥐고 있던 왕의 손에는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았으나 이상하게 겁이 났다. 아마도 그가 귀신이라서 일 테지.

 

 건조한 눈빛이 보내오는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유란의 눈에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

 

 "……."

 

 짧은 시간 말없이 시선이 오갔다. 유란의 눈을 빤히 보던 왕이 팔을 거두었다. 매끈하던 손가락이 유란의 목에서 달아난다.

 

 "그럼 이렇게 하지. 나와 내기를 하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기억해내. 그럼 돌아갈 방법을 알려 줄 테니."

 

 "나는 지금 당신을 처음 봐. 근데 당신이 누구인지 기억해내라는 건 말이 안 되지."

 

 “처음이 아니다.”

 

 “…당신을 만난 적이 있다고?”

 

 “그래.”

 

 “아니야. 없어.”

 

 왕은 초면이었다. 분명 분명 초면이 분명했다. 만나긴커녕 오히려 다른 사람과 자신을 착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답답했던 유란이 마음속으로 욕을 지껄였다. 미친놈. 귀신이 미쳤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너와 나는 만난 적이 있다. 확실해."

 

 "언제!?"

 

 "잘 한 번 생각해 보아라."

 

 하설. 뒤이어 왕이 문 쪽으로 말을 던지자 하설이 재빠르게 걸어들어온다. 왕은 턱짓으로 유란을 가리켰다. 당장이라도 눈앞에서 치우라는 듯이.

 

 분위기를 읽어낸 유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왕을 꼴았다.

 

 "나도 발 있어. 알아서 나갈 거야."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꼭 모양이 끌려나가기 직전의 대역죄인이 된 것 같았다. 사실상 정말 죄를 지은 것은 저를 이 땅에 강제로 데려온 저 왕놈이 아닌가.

 

 "약속 꼭 지켜. 당신을 기억해내면 돌아갈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그 약속 말이야."

 

 "그전에 그 건방진 말투부터."

 

 "……."

 

 "여긴 하계의 동국이다. 내 땅. 고로 나는 너 따위가 함부로 낮춰 부를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지."

 

 유란은 대답 없이 몸을 휙 돌려세웠다. 그래 너 잘났다. 너 왕이다. 한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마음속으로 뒤에 있던 왕을 신랄하게 까내렸다.

 

 잠시 후, 문밖으로 나오자마자 저 멀리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어우, 재수 없게."

 

 그녀가 욕을 하는 것은 까마귀일까 왕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구시렁거리는 유란의 앞으로 소하리가 손을 방방 거리며 다가왔다.

 

 “아가씨,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그리 가시면 어떡해요. 안에서 무슨 일이 나지 않을까 싶어 얼마나 마음 졸였다고요. 앞으론 그러지 마세요. 왕께선 예의 없는 것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그러는 자기는 뭐 예의가 썩어 넘치는 바람에 멋대로 날 여기로 데려왔대요?”

 

 유란이 안에 있던 왕의 귀에까지 닿으라는 듯 목에 핏대를 세우고 외쳤다.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돼? 사람을 이상한데 끌고 와서는, 기억에도 없는 제가 누구인지 알아내라는 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

 

 “그만하시고 이만 몸 정돈을 하러 가요. 아직 욕탕의 물이 식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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