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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12시간의 그림자
작가 : 시냅스
작품등록일 : 2018.11.2

이 작품은 2차원의 그림자를 소재로 한 환타지 소설입니다.

그림자가 자신의 존재와 2차원 세계에 대해서 ‘그것만이 전부인가?’ ‘우리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기 위해 여행을 떠나 겪는 일들이 주 스토리라인이 되죠.

따라서 이 소설은 아침에 그림자가 생겨나 저녁에 그림자가 사라질 때 까지 12시간 정도의 시간이 세계 전체의 시간이 됩니다.

이 부분의 구성을 정합성 있게 맞추기 위해 초와 분 그리고 그림자세계에서의 날짜단위와 1년의 기준 등을 고려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소설의 주제와 의미를 산만하게 하고 그렇지 않아도 ‘재미’ 보다는 ‘의미’ 에 초점을 맞춘 다소 어려운 소설인데,그런 설정상의 이해까지 강요하는 것이 ‘옹색하다’ 라고 느껴 퇴고과정에서 그런 부분은 전부 배제되었습니다.

소재는 2차원과 그림자이지만, 현실에서의 2차원과 그림자와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애초에 그림자가 생각을 하고 말을 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되죠. 음성이란 공기의 진동과 고막의 수신이라는 전달과정에서 전해지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환타지 소설인 만큼 그 ‘의미’에 집중해서 감상해 주신다면 이 소설은 ‘재미’는 덜 하더라도 ‘생각해볼 어떤 것’은 독자 여러분께 충실히 던져드릴 것입니다.

 
12시간의 그림자 - 3화 뜻밖의 사건
작성일 : 18-11-03 09:21     조회 : 244     추천 : 2     분량 : 8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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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가 보자, 이거 흥미진진한걸?”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녀는 나의 손목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수라장이 된 그림자들이 나를 휙휙 지나쳤다. 얼마나 달렸을까? 그녀의 질주는 빠르긴 했지만, 전광석화와 같은 음영의 그것을 쫓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이 길이 맞긴 한 거야?”

 

  “훗, 우리 그림자들 사이에서 그 정도의 빠르기를 가진 자는 있을 수 없어. 그 녀석은 분명히 어떤 트릭을 쓴 거야. 그리고 트릭에는 반드시 흔적이 남기 마련이지.”

 

  걸음을 늦추는 나를 뒤돌아보며 그녀는 짐작하는 바가 틀림없다는 듯이 말했다.

 

  “트릭이라니?”

 

 “가령 시간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 하지만 그 능력은 무한대로 쓸 수는 없지 반드시 원래의 속도로 돌아오는 지점이 있고 다시 시간을 느리게 해서 자신의 속도를 가속시키는 사이에 반드시 흔적이 남아. 공간의 주름이랄까? 봐, 찾았다 그 녀석은 이쪽으로 갔어.”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는 분명히 흔적이 있었다. 이차원의 이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가로와 세로 이외의 어떤 공간적 변형이 선명하게 주름처럼 겹쳐져 있었다. 이 여자애는 도대체 뭐지? 그림자의 길이로 봐서는 아니지, 길이와 관계없이 우리는 거의 동시에 나서 동시에 사라지는 존재들이니, 나와 비슷한 또래인 녀석임에 분명한 데, 어떻게 이런 걸 알고 있는 거야? 거울에 대해서는 마을에 먼저 당도해서 들었다고 해도, 이런 것 까지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의심스러운 녀석이 분명했다. 하지만 당장은 캐묻지 않기로 했다. 나또한 납치된 여자 그림자의 행방이 궁금했고, 사실 거울에 비친 그 그림자의 내면의 모습에 매료된 터라 한번 더 그 여자 그림자를 만나고 싶어서, 일단은 이 녀석을 따라 납치범을 쫓는 게 우선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우리는 어떤 그림자 숲에 도착했다. 숲은 그다지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그에 비해서 나무 그림자는 촘촘히 서있었다. 숲의 반대쪽 끝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숲 중앙에서는 숲의 가장 자리가 한눈에 보일 것 같은 정도의 크기 였다. 우리는 숲 가운데를 향해서 조심스럽게 이동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두 그림자를 발견했다.

 

  “숙여! 저기에 그들이 있어”

 

  쾌활한 것은 좋았지만 뭔가 지시를 받는 느낌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고개를 숙이고 그녀와 함께 두 그림자를 훔쳐보았다. 이미 알고 있는 여자그림자를 제외하고 남자 그림자가 하나 더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 그림자는 숲의 나무 그림자와 팔이 연결된 채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고 잠시 후 나무 그림자에서 손을 빼냈다.

 

  “회복은 마쳤어?”

 

  여자 그림자는 남자 그림자를 옆에서 부축하고 무릎에 뉘었다. 마치 여자 그림자의 옆구리에서 머리 없는 그림자가 자라난 듯한 광경이었다.

 

  “응 이제 괜찮아.”

 

  “그렇게 무리를 하면 어떻게 해, 제사장의 점지는 피할 수 없다는 것 알잖아. 아무리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여도 신의 계시를 거스를 수는 없는 거라구.”

 

  대화로 미루어 보아 두 그림자는 연인이었던 모양이다. 뭐 그렇다면 운명에 대항하는 남자의 집념인가? 신파가 따로 없다고 생각한 순간 남자 그림자가 입을 열었다.

 

  “그게 정말로 신의 역사이고, 제사장이 정당하게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라면 네 말대로 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최근 어떤 비밀을 알게 됐어, 그동안 점지에 의해 결혼한 그림자들이 어떻게 된 줄 알아? 식이 끝나고 얼마 후 어디론가 신부들이 사라져,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데, 그 후로는 의지가 사라진 껍데기뿐인 식물그림자가 되는 것을 내가 직접 목격했다구, 그런데도 너를 점지에 의해 결혼하게 놔둘 수 있었을 것 같아?”

 

  단순한 신파는 아니었다. 이건 뭔가 음모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무그림자에 손을 넣어 뭔가를 하는 모습과 사연이 있는 듯한 이야기, 두 가지 모두 나의 흥미를 자극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좀 더 귀를 기울이는 순간 납치된 여자 그림자가 놀람에서 오는 약간의 흥분상태로 그에게 대답했다.

 

  “정말이야? 그럴 리가 없잖아! 제사장은 신의 대행자라구!”

 

  신이 모든 것을 창조했고 그 운행에도 관여한다고 믿는 그림자들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다른 여지없이 어떻게 확신할 수가 있지? 그런 확신은 고집 아닌가? 적어도 연인인 그가 보고 들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한 번 쯤 의심해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얼굴을 감싸고 혼란에 빠져있는 여자 그림자에게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제사장이 거짓행동을 해왔거나 둘 중 하나군. 너는 어느 쪽을 더 믿고 있는 거야?”

 

  그녀는 그를 감싸 안고 혼란스러운 생각을 정리하는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조금 전과는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그를 달래듯이 말했다.

 

  “나는 너를 사랑해, 너 또한 나를 사랑한다는 것 잘 알아. 하지만 네가 나를 정말 사랑했다면, 차라리 날 다른 자에게 보낼 수가 없어서 그랬다고 했어야 해. 신의 뜻을 피할 수 없다고 해도 끝까지 피할 거라고 솔직하게 말했어야 해. 네가 거짓말을 했다고 하긴 싫지만 너의 그 질문은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근원인 나의 신념을 의심하라고 말하는 거잖아. 그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그것을 받아들인 다면 이미 나는 네가 알고 있는 내가 아니게 돼. 무슨 뜻인지 알겠어?”

 

  “정말 답답한 아가씨네!”

 

  숨어서 지켜보던 내 옆의 그녀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벗어나 소리쳤다. 하, 이 녀석은 정말 제멋대로에다 끼어들기를 좋아하는 군, ‘이럴 거면 뭐 하러 숨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자 바보 같다고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납치된 그림자의 이야기가 나 역시도 답답하게 느껴졌기에, 조금은 시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나만 숨어있을 수도 없고 해서, 자리를 털고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너네! 제사장의 추격대냐?”

 

  그가 경계심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추궁해왔다. 이대로 다시 그가 달아난다면 얼마를 또 달려야 할까? 아니, 또다시 추격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녀가 쫓아가자고 해도 이제는 따라나서지 않을 참이었다.

 

  “긴장하지 마, 우리는 단지 여행자들이야. 우연히 당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뿐이야 추격은 무슨, 듣자하니 마을에서 큰 소동을 피운 모양인데......”

 

  “너희들이 관여할 바가 아니다. 여행자라면 가던 길 가시지.”

 

  그는 필요 이상으로 단호히 말했다. 하긴 쫓기고 있다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의 말대로 하는 것은 지시에 따르는 것 같아 썩 내키지 않았지만, 발각된 이상 그 자리에 더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몸을 돌려 가려던 순간, 내 옆의 그녀는 그대로 서서 그에게 말했다.

 

  “호오 그래? 그럼 우리가 마을에 가서 여기 있었던 일들을 알려도 된다는 말이지? 잘은 모르지만 네가 그림자 나무에서 회복한 사실을 제사장이 알게 되면 너를 추적 할 방법도 알게 될 것 같은데?”

 

  그는 순간 움찔했다. 그녀는 나에게 손가락을 까딱하며 신호를 보냈고 그때야 뒤 돌아 섰다. 하, 이 녀석은 대체 나를 어디까지 끌어들이려는 속셈일까? 원래는 그냥 가버릴 생각이었지만, 막상 그녀가 뭔가 계획하고 뒤돌아섰다고 생각하니, 이번에는 순순히 그녀의 작전에 따르고 싶지 않았다.

 

  “우린 여행자가 맞아, 당신 말대로 관여할 바가 아닌 것도 맞지. 하지만 제사장에 대한 당신의 이야기가 맞는다면, 그런 일이 계속 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엿듣게 된 건 미안하게 생각 되지만, 확인하고 싶어. 그게 사실이라면 이 마을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닐 테니까 전혀 무관한 일도 아니게 되지, 어때요 아가씨? 아가씨의 신념이 맞더라도 제사장만큼은 사기꾼일 수도 있으니까 그의 말의 진위를 확인해 보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내 옆에서 뒤돌아 서있던 그녀는 이런 멍청이 라고 말하는 듯, 나를 한번 흘낏 쳐다보고는 다시 몸을 돌려 세웠다.

 

  “좋아, 네 말이 설득력은 없지만, 이대로 너희를 돌려보낼 수도 없군, 저 여자의 말대로 우연히 이곳에 있다가 엿들은 거라는 건 믿을 수 없지만, 여기까지 쫓아온 걸 보면 추적의 방법을 아는듯하니 제사장에게 그것을 말해도 곤란하고 말이야. 너희가 원하는 것은 뭐냐?”

 

  팔을 들어 뒤통수를 긁적이던 동행이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솔직히 말하지 난 이 고지식한 녀석처럼 이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이 이 마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둥 하는 데에는 관심 없지만, 보시다 시피 여행자야, 여행자라면 뭘 원하겠어? 애초에 거울의 소문을 듣고 이 마을을 방문한 것도, 너희를 쫓아온 것도 순전히 흥미 때문이었어. 하지만 재미없는 이 녀석 과의 동행도 너의 그 답답한 아가씨와의 사연도 더 이상 흥미가 없어 졌어, 난 이 쯤에서 빠져도 되겠지? 마을로 되돌아가진 않을 테니 걱정 마, 여행자는 원래 흥미를 잃은 곳을 다시 가진 않거든. 그럼 안녕.”

 

  몸을 돌려 빠져나가려는 그녀의 앞을 재빨리 그가 가로막았다.

 

  “이대로 너희를 돌려 보낼 수는 없다고 했을 텐데, 내 말이 우스워? 좋든 싫든 너는 나를 추적했고 내가 알고 있는 비밀을 들었어. 그런데 마을로 되돌아 가지 않겠다는 말 한마디를 믿고 나더러 너를 그냥 보내란 말이냐?”

 

  “그럼 어쩔 건데? 죽여서 입이라도 막으시게? 해가 떨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죽지 않는 다는 사실을 모르나?”

 

  위협을 당하면서도 도리어 그녀는 당당하게 행동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가 우리에게 매달리게 하려는 속셈이었나? 그런 것 이었다면, 찡긋 하고 신호를 보낸다 한 들 내가 알 턱이 없잖아? 라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빛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죽지 않지, 하지만 사방에서 빛이 쏘이면 태양이 있어도 증발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모르나봐?”

 

  그녀 못지않게 당당히 말하는 그를 제외한 세 그림자는 순간 놀랐다. 나는 거울에 이어 그림자가 증발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납치 되었던 그림자는 그의 이전 이야기가 맞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거칠 것 없다는 태도를 보였던 그녀도 그 순간 만큼은 움찔했다.

 

  “어때 이정도면 흥미가 생겨?”

 

  그는 승기를 잡은 자의 빈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녀 역시 빈정스레 대꾸했다.

  “좋아, 계속해봐, 그런데 이 손 놓지 않을래? 네 짝은 내가 아니라 그녀잖아?”

 

  달아나는 것을 잡으려고 꽉 쥐었던 손목을 겸연쩍게 놓자 그녀는 짜증스러운 듯이 그의 손에서 자신의 팔을 낚아채듯 거둬 들였고, 그는 그런 그녀의 태도에 상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동안 제사장의 점지에 의해 결혼한 그림자들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행적이 묘연한 것을 추적하다가 마을 북쪽에 제사장의 비밀 제단이 있는 것을 알았어.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숨어서 지켜봤지. 그 제단은 원형으로 가장자리는 온통 빛이었는데 그림자들이 그 안에 들어가면 형체도 없이 사라지더군, 그리고서 다시 제단 밖으로 나왔을 때는 아무 의지도 갖지 않은 그림자가 돼서 사제들에게 어디론가 끌려가는 걸 똑똑히 봤어. 나는 최근 이것을 알고 다음 희생자가 생기기 전에 제사장을 사로잡아 그 제단에 집어넣을 생각이었어. 제사장이 의지를 잃게 되면 더 이상의 희생자는 나오지 않겠지, 그런데 마침 결혼식이 있었고, 상황을 살피기 위해 잡입했는데 뜻밖에도 그녀가 점지되자 구출한 거야.”

 

  나는 의아한 점이 생겼다. ‘제사장과 마을의 대중이 있는 곳에서 모습을 드러낼 게 아니라, 은밀히 구출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서 그대로 그에게 물었다.

 

  “당신 말대로라면 식이 끝났다고 해서 바로 어떻게 되는 게 아닌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비밀의 제단으로 향할 때 은밀히 구출 하는 게 나았지 않아? 마을에서 그녀를 구출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섣불렀던 것 같은데? 제사장이 이제 당신을 경계할 거잖아.”

 

  그는 내 앞으로 다가와 허리춤에 손을 얹고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너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구나?”

 

  그랬다.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제사장의 만행을 막는 것보다도 그에게는 그가 사랑하는 그녀가 어떻게 되는가? 또는 위험해지는가가 최우선인 것이 당연했다.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이 ‘나는 무엇인가’ 에만 골똘해 있던 내가, 일의 효율에만 집중한 나머지 한 말에 대한 그의 질문에, 정곡이 찍힌 것 같아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래 어떻게 된 사정인지는 대강 알았어, 그래서 이제부턴 어쩔 거야? 제사장을 잡으려면 계획이 필요하겠지? 우리가 도와줄까?”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는 사이를 가로채고 그녀가 말했다. 그러자 그가 정색했다.

 

  “착각하지 마, 너희는 포로야, 나를 추적할 수 있고 비밀을 알고 있는 이상 순순히 놔줄 수 없고 죽이는 것도 여기서는 불가능 하니까 흥미를 불러일으킨 것뿐이라구.”

 

  “하하, 포로 치고는 너무 관대한데? 포로에게 그렇게 내막을 술술 불고 포박조차 하지 않다니 너무 허술한 거 아니야?”

 

  그녀의 지적은 일리가 있었지만, 그녀 역시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야기를 이쪽에서 알려 줄 필요는 없지 않는가?

 

  “나의 신속을 사용하면 너희를 포박하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야, 하지만 포박하면? 발악하겠지? 너희를 이 숲 어딘가에 묶어놓는다고 해도 마을 주민이 발견하게 되면 곤란해져. 그렇다고 질질 끌고 다니기에는 짐이고, 그래서 네 호기심을 채워 주기로 했다. 단, 내 일을 방해하 면 그땐 그 제단에 쳐 넣어주지.”

 

  그가 당장 우리를 구속할 마음이 없다는 건 다행이었지만, 이렇게 되면 묶이지 않더라도 스스로 포로가 되어야 할 판국이 된 것은 불행이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역시 도움이 필요 한 거 같은데? 좋아, 어차피 놔 줄 생각도 없는 것 같으니 기왕 동행하는 거 도와주지.”

 

  내 의사 따위는 아무 상관없는 것인가? 그와 흥정하듯 거침없이 대화하는 그녀가 아니꼽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것을 따지고 든다면 그의 말대로 포박을 당해 질질 끌려갈 지도 모를 일이기에 참았다. 손발이 안 맞는 동행 덕에 여행 시작부터 자발적 포로 신세라니.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의 신속을 눈으로 본 이상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나는 아직 믿지 못 하겠어요”

 

  그와 동행, 그리고 내가 옥신각신 하는 내내 조용히 있던 여자 그림자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하마터면 그녀가 있다는 것은 잊힐 정도로 존재감 없던 그녀의 한마디는 셋의 과열된 대화를 잠시 멈추기에 충분했다.

 

  “현아, 날 그렇게 못 믿겠어? 내가 뭐 때문에 네게 거짓말을 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너무 엄청난 일이라서......”

 

  ‘현아’라고 불리는 그림자가 말끝을 흐리자, 아니나 다를까 내 옆의 그녀가 나섰다.

 

  “현아씨? 그럼 일단 반만 믿고 확인하면 되잖아요? 사랑하는 이를 위해 그쯤은 해줄 수 있겠죠? 더구나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얼마후 현아씨는 의지를 잃게 된다구요 본인에게도 중요한 일이에요.”

 

  상황을 곤란하게 만든 그녀의 제멋대로인 행동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제안은 명확했다. 이 자리에 있는 그림자들 중 그 사실을 확인했다고 하는 그림자는 신속을 사용하는 그 한명 뿐 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녀 말대로 현아라고 불리는 그림자 본인에게 관련된 중요한 일이지, 사랑을 위하고 말고는 부수적인 문제였다. 더구나 그녀의 제안은 우리를 경계하던 그의 편이 된 얘기였기에, 이번에는 그도 발끈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그녀의 설득이 조금은 효과가 있었는지, 잠시 고민하던 현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요. 그런데, 제 이름은 현아가 아니고 ‘이현’이에요 다른 분들은 그렇게 불러주세요.”

 

  이 와중에 저런 말을 하다니, 현아란 이름은 그들만의 애칭이었나 보다. 이 아가씨의 성격이 묻어났다. 사랑하는 연인을 두고서도 신탁에 의한 숙명을 따르려는 자세를 미루어보면 능동적인 부분이 적은 소극적 성격이겠지.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름은 제대로 전하려는 걸 보면 고집스러운 면도 있나 보구나. 특히 믿음에 대해서는 완고한 것 같았다. 하긴 그러니까 그의 이야기를 쉽게 믿을 수 없는 것이겠지.

 

  “아, 이름이 ‘이현’이군요, 난 설아에요. 납치범씨는 이름이 뭐?”

 

  “통성명은 무슨......”

 

  “그럼 뭐 계속 납치범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이거지? 그러고 보니 아직 그쪽 이름도 모르잖아? 그쪽은 이름이 뭐야?”

 

  나를 바라보며 그녀가 물었다. 조금 우스웠다. 만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함께 숨어서 엿듣다가 우린 여행자라고 소개한 주제에 서로 이름도 몰랐다니, 게다가 이젠 함께 포로 신세인데 이제야 통성명을 하는 게 얼마나 우습게 비춰질까? 하지만 두 그림자의 이름을 들은 이상 나 역시 납치범처럼 입 다물고 있기도 우스웠다.

 

  “현우야”

 

  “크크, 바보 같은 검은 그림자라서 현우야?”

 

  바보 같기는 설아도 마찬가지였다. 이 상황에 그런 농이나 하고 웃음이 나오나? 그런데 건너편에서 이현도 웃음을 참는 눈치였다. 둘 다 어떻게들 된 건가? 설아야 그렇다 치고 이현의 반응은 상당히 의외였다. 상황이 얼마나 진중한지 인식하지 못하는 건가? 라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였다. 서쪽에서 무언가 다가오고 있는 걸 발견 했는지, 그가 수신호를 하며 우리 모두에게 말했다.

 

  “쉿 모두 조용히 해.”

 
작가의 말
 

 이번 회차는 조금 길군요. 하지만, 분량때문에 끊을 만큼 재미있는 사건이 두가지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통으로 올렸습니다. 작품소개에 말슴드렸듯이 각 화는 "내용상의 흐름" 으로 끊었으므로, 짧은 화도 있을 수 있고 긴 화도 있을 수 있으니 널리 양해 바랍니다.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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