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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꽃바람이 불면
작가 : 찐따왕과해오름달
작품등록일 : 2018.11.1

일제 강점기 시절, 문둥병이 걸린 이들이 소록도에 격리된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비극과 참극. 소록도라는 비극의 섬에 꽃바람이 불길.그리고 많은 아픔과 또 다르게 찾는 웃음. "꽃바람이 불면 이미 내 육신은 이곳에 발 딛고 서 있지 못할 것이고 영혼 또한 하늘 어딘가로 흩어지지 않겠으리까. 그래도 그때 나 대신 많은 이들이 웃을 수 있다면 내 기꺼이 눈을 감으리다. 꽃바람을 내 미처 느끼지 못하더라도 좋은 것임을 알 수 있기에. 얼른 꽃과 함께 불어오길, 소망해야겠지요."

 
1화 - 서은로(徐恩路) 원장 (상)
작성일 : 18-11-02 20:30     조회 : 477     추천 : 0     분량 : 2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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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오늘도 눈을 떴구나. 루는 매일 아침 그런 생각과 함께 눈을 떴다. 억지로 눈을 뜨지 않아도 몸에 느껴져 오는 서늘한 공기의 흐름은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는 문둥병 환자였지만 시한부라 할 만큼 위독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늘 삶의 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죽으면 죽는 거고 살면 사는 거겠지. 싶은 생각으로 오늘도 원치 않은, 원할 수도 있는 남은 생을 마저 살아보려 했다.

 

 

 "루, 그거 알아?"

 

 "...뭘요?"

 

 

  의료부장, 이하현(李夏賢)이 갑자기 차창의 커튼을 펼쳐냈다. 그러자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에 눈살을 찌푸린 루는 벌떡 침소에 일어나 앉았다. 종잇장처럼 얼굴을 구긴 루의 모습에 하현은 아이처럼 까르르, 웃었다.

 

 

  "방금 전에 새로운 원장님이 오셨어. 근데 부임식을 안하겠다고 하시더라."

 

  "그래요?"

 

 

  루는 얼굴도 알지 못하는 원장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갔다. 아직도 눈부신 듯 눈을 깜박이다 이내 하현을 보며 살짝 미소를 띠웠다. 나이 대에 맞는 천진한 미소에 하현은 제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햇빛에 비친 그의 피부는 촉촉한 듯 잡티 하나 없이 말끔했다. 단지 가끔 일어나는 얼굴의 경련만 아니라면 더할 나위 없이 남녀노소 좋아할 미남이었다.

 

  하현은 다음에 사내로 태어나면 루 같은 얼굴을 가지겠다고 생각하며 침소 가장자리에서 일어섰다. 콧잔등을 타고 내려온 안경을 올리는 것을 보니, 원장에게 인사라고 칭하지만 사실은 아부를 하러 가는 것 같았다.

 

  그녀의 특기는 상사에 대한 존경을 포장한 아부였다. 그녀의 사회생활에 나쁠 건 없었기에 루는 간섭을 하지는 않았지만 때론 그녀가 피곤하게 산다고 생각했다.

 

  루는 오래전부터 문드러져가는 오른 엄지발가락 때문에 자연스레 절음발이 신세가 되어버렸다. 허연 뼈가 드러날 정도로 근육조직과 함께 살이 문드러져, 저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정도였다. 어제 저녁도 거른 그는 아침도 가뿐히 넘겨버린 채 늑동항(勒洞港)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의 발걸음보다 현저히 느렸기에 시간은 배로 걸렸다. 병원에서 겨우 스무 걸음 정도 걸어 나왔을 때, 병원의 대각선 위치에 자리한 미감아 보육소에서 명랑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루 아저씨!!"

 

 

  그의 이름을 누구한테 들은 것일까. 작은 창살로 얼굴을 빼꼼 내민 여자 아이가 곱게 땋은 머리를 연신 좌우로 흔들며 손도 같이 흔들었다. 그런 아이의 밝은 인사에도 그는 매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아이의 이름, 겨울. 겨울이 같은 아이에게 마음을 주었다가 크게 후회했었던 과거의 자신을 마주한 그는 다시는 아이에게 정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랬기에 겨울의 애타는 부름에도 무심한 시선을 한번 툭 던져주고는 느린 발걸음을 재촉했다.

 

  겨울은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 한번이라도 닿는다면 그가 말로 답을 해주지 않아도 아무렴 좋은 것 같았다. 겨울의 얼굴에 어여쁜 복사꽃이 피어올랐다. 풋풋한 짝사랑일까. 아니면 그저 외로운 탓일까. 루가 보육소와 현저히 멀어지자 겨울도 창살에서 몸을 때어내며 표정을 굳혔다.

 

  10살 남짓의 어린 숙녀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바로 기분이 안 좋아진 것인지. 방금 전의 것은 연기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곱게 땋아 내린 머리는 멀리서 봐도 아이인 것을 알려주었기에 그렇게 웃어넘겼다. 아이일 것이라고.

 

 

  "몸은 괜찮소?"

 

 

  늑동항(勒洞港) 해안 근처 가장자리로 서늘하게 불어오는 초여름 바람을 느끼고 있던 루에게 흰 와이셔츠 차림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루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남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듯 작게 손사래를 쳤다.

 

 

  "오늘 새로 부임한 서은로(徐恩路) 원장이요. 소개도 없이 안부를 물어 미안하구만."

 

 

  원장은 루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처럼 계속해서 허허 웃음을 지었다. 그의 얼굴을 빤히 보던 루는 이름의 뜻을 추측해나갔다. 은혜로운 길. 그런 뜻이 아닐까. 다시금 원장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 루는 이름과 꽤나 어울리는 인상이라고 생각했다.

 

  42살의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서은로 원장은 얼굴의 주름도 손에 꼽을 만큼 많지 않았고 머리를 뒤로 넘긴 헤어스타일은 나이에 맞는 중후함을 보이게 했다. 그리고 늘 슬며시 올라가있는 입꼬리와 동시에 반달처럼 접히는 그의 눈가는 잘 올라갈 일이 없는 루의 입꼬리도 잠시 움찔하게 만들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부임식을 안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필요 없는 치례는 건너뛰기로 했소. 나도 피곤하고 사람들도 피곤할 테니 첫날부터 미움 받고 싶지는 않았소. 질타는 사양이요. 하하."

 

  "근데 아까, 의료부장님께서 원장님을 뵈러 가시는 것 같던데 왜 원장실에 계시지 않고 항구에 나오셨습니까?"

 

 

  루는 어색함을 무릅쓰고 없는 말재주까지 만들어내어 대화를 이어갔다.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원장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무표정일 때가 없어 보일 정도로 늘 미소가 가득했다.

 

 

  "내가 지내고 버텨낼 곳이라, 바람이 많이 불어오는 곳부터 찾았소. 저 바람이 내게는 아주 큰 시련이거든."

 

 

  루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원장의 말에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의 눈동자에는 많은 아픔이 서려있는 듯 했고 그것을 차마 모른 척 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예. 부디 이 소록도에서 편히 지내시길 바랍니다. 환자들에게 너무 정을 주지마세요. 되려, 상처받을지도 모릅니다."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던 루는 그 말을 끝으로 먼저 발길을 돌려 병원으로 향했다. 원장의 따스한 웃음을 봤을 때, 자신도 하마터면 같이 미소를 지을 뻔 했을 때. 잠시나마 엄지발가락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병원으로 가는 길을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 부르며 매일 죽상이었던 그는 지금, 병원으로 가는 길임에도 입꼬리가 평소보다 올라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서늘한 바람 뒤에 따스한 바람이 오는 것을 그토록 기다린 보람이 빛을 바라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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