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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시간을 죽이는 남자
작가 : 암영
작품등록일 : 2018.11.1

살인을 하면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남자와 여형사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

 
17화 -그는 그녀를 구원했고, 그녀는 소녀를 구원했다-
작성일 : 18-11-01 11:16     조회 : 318     추천 : 0     분량 : 4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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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전 그냥 사람 우는 소리가 들려서 올라온 건데요. 해코지 하려는게 아닌데...”

 

 순간 연화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다. 그녀에 기억 속에 이 남자가 남은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경계한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대외상 그녀와 그는 초면이다.

 

 “아, 죄송합니다...못 볼 꼴을 보였네요.”

 

 연화는 소녀의 손을 잡고 황급히 그를 지나쳤다. 일단은 소녀를 다른 곳으로...

 

 “다 도망치자고 하는 짓인데,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아가씨를 죽일 리 없잖아?”

 

 그가 귀에 속삭이자, 연화가 얼어붙었다. 그러고는 마치 녹슨 기계처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는 그저 순수한 동네 아저씨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오싹했다.

 

 “장난이에요, 아가씨. 뭐, 아무튼 모쪼록 조심해서 가시길.”

 

 그는 그러고는 우산을 펼쳐 나간 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화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장난이라니, 분명 거짓말이다. 저 남자는 연화를 알고 있다.

 

 12월 14일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이연화, 너 꼴이 왜 그렇냐? 학생은 또 왜 젖었어?”

 

 “그냥...비 맞고 있길래 데려왔어요.”

 

 “네 나이가 몇인데 이렇게 비를 맞고 자빠졌냐? 아 됐다, 됐어. 너한테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프지.”

 

 김성호는 자기 코트를 덮어 주세현에게 덮어주었다.

 

 “학생은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던지 해요. 이연화 너도. 넌 어른이니까 그냥 들어가서 갈아입어라. 야, 그렇게 춥냐? 왜 그렇게 벌벌 떨어?”

 

 그제서야 연화는 자신이 미친듯이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춥긴 추웠지만 그보다도 극심한 공포감이 원인이었다. 결국 지금까지 꿈이라 치부한 모든 것들이 현실이 되어버렸으니까.

 

 “아...아 네. 조금 춥네요...”

 

 그녀와 소녀는 장례식장 내부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으려고 했다.

 

 “안...들어가?”

 

 소녀는 그녀를 쳐다보기는 않았지만, 노골적으로 증오심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저 바닥을 바라보며 발을 흔들다가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요.”

 

 “응? 미안, 못 들었어.”

 

 “갈아입을 옷 같은 거, 없어요. 애초에 언니 한 사람밖에 돈 버는 사람이 없는데, 옷이 별로 없는거야 당연하잖아요. 아니, 생각해보니 애초에 누가 장례식장에 여벌 옷을 가져와요?”

 

 “그럼 내 거 줄게. 나 솔직히 계란 같은 거 맞을 각오하고 온 거라, 세 벌 갖고 왔거든.”

 

 그녀가 티셔츠와 바지 한 장을 꺼내며 말했다.

 

 “그러면 왜 오셨어요.”

 

 “그래도, 이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어. 적어도 내 생각에는 말이야. 그런데 지금은...그것도 잘 모르겠어.”

 

 그들은 묵묵히 젖은 옷을 따로 챙긴 후 나와서 근처에 있던 벤치에 같이 앉았다. 둘은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소녀는 여전히 언니에 대해 생각하는 듯 했고, 연화는 진철원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까 소리지른 거는 사과할게요.”

 

 “아...그...괜찮아. 내가 할 말 없는 것도 사실이니까.”

 

 소녀는 물끄러미 바닥을 바라보았다. 연화는 과연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어떤 것들은 비밀로 남는 것이 좋으니까.

 

 “그러고 보니, 우리 내려올 때 그 아저씨가 무슨 말 한 거에요?”

 

 연화가 움찔했다. 자세한 내용은 듣지 못한 듯 했지만 당연히 남자가 자신에게 속삭이는 것 정도는 보았을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겠지만...

 

 “별로, 그냥 무슨 일인지는 안 물어보겠다던데.”

 

 소녀는 별로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그다지 진실을 신경 쓰는 눈치도 아니었다. 소녀가 흥미를 잃었다는 듯이 고개를 다시 돌리자 연화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 잘못은 아니에요.”

 

 그녀가 말하자 연화가 고개를 돌렸다. 소녀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눈에는 이제 분노나 절망보다는 그리움이 차 있었다.

 

 “그렇긴 해도 솔직히 화가 나요. 지금은 이렇게 조용히 말해도...내일이면 다시 소리지르고 있을 수도 있겠죠. 아마 죽을 때까지 언니를 잊지는 못할 테고요. 오늘처럼 언니가 꿈에 계속 나올지도 모르죠.”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서글프게 웃었고, 눈에는 다시 눈물이 맺혔다. 아마 지금도 죽을만큼 괴롭겠지만, 그럼에도 고작 중학생인 이 소녀는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언니가 그랬어요. 사람이니까 나한테 나쁜 짓 한 사람한테는 화를 내도 되지만, 그냥 주위에 있는 사람들한테 열 내면 안 된다고. 언니가 그런 소리 할 때마다 애늙은이 같은 소리한다고 놀렸는데.”

 

 연화는 그저 말없이 소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현우같은 상담하고 아니고, 정신과 의사도 아니지만, 지금은 그저 들어주는 것이 가장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녀도 그랬으니까.

 

 “말이 언니니 사실 제 아빠이자 엄마이자 언니죠. 전 할 줄 아는게 별로 없었으니까. 그나마 언니보다 잘 하는 건 공부밖에 없었어요. 언니는 그래서 저한테 나중에는 내가 언니를 먹여살려야 된다고 거의 맨날 말했고요.”

 

 소녀가 눈을 다시 닦았지만, 눈물은 계속해서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모습에 연화는 경외심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아니, 어쩌면 그저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은 것을 잃어서 이제는 무언가를 잃는 것에 더 이상 분노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지쳐버린 걸까?

 

 “저도 그럴 때는 나만 믿으라고 허세부리고...다른 애들이랑 나가서 놀지는 못했지만, 잡담은 항상 몇 시간이고 떨었죠. 바보같이 얘기에 웃고...”

 

 연화는 그저 소녀를 끌어안았다. 과거의 자신과 닮았지만, 한없이 더 강한 조그만 소녀를.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힘들게나마 버티는 아이를.

 

 ‘웃기네. 정작 자신도 극복 못한 문제를 가진 아이를 네가 달래려고 하다니.’

 

 환청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연화는 그저 자신이 원했던 것을 소녀에게 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소녀가 원하는 것과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사실 처음에 기절한 뒤에는 실감이 안 났어요. 아니, 믿기 싫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마치 언제라도 그냥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다 뻥이었다고 말해줄 것 같았어요.”

 

 소녀는 별로 상관없는 듯, 안긴 채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제 주변 사람이 사라진 게 처음이 아니라 그런가, 현실은 금방 적응했어요. 그런데 너무 화가 났어요. 물론 화를 내야 할 사람은 언니를...언니를 그렇게 만든 살인자 새끼지만...정작 누군지를 모르니 얼굴을 아는 경찰 분들한테 정말 화가 너무 났어요. 아까 그 덩치 큰 아저씨는 진짜로 때렸어요.”

 

 연화는 김성호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 역시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그의 아내에게 담담히 화장해 달라고 부탁하고, 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한숨을 내쉴 것이다.

 

 “그래도 화가 안 풀리니까...경찰 언니한테도 소리를 지른 거에요. 그런 다음에는 그냥...멍하니 언니랑 찍은 동영상 같은 걸 돌려봤어요. 적어도 그때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진짜로 죽고 싶어져 버리더라고요. 추억이라는게 참 무서워요. 고작 영상 하나 봤다고 사람을 그렇게 만들다니.”

 

 “너한테는 중요한 거니까.”

 

 “하필 우울하게 비도 내리고...그냥 어차피 나한테는 남은 것도 없는데 죽어버리자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살짝 연화를 밀어내어 다시 등은 곧게 하고 앉았다.

 

 “아까는 왜 방해하냐고 짜증냈지만...고마워요. 절 잡아줘서.”

 

 그렇게 말하며 소녀가 살짝 웃었다. 기쁜 웃음보다는 감사와 평온이 담긴 미소에 가까웠다. 여전히 소녀의 얼굴에는 슬픔과 그리움이 있었지만, 그렇다 한들 이 소녀는...

 

 “...정말 강한 아이구나.”

 

 “네?”

 

 연화가 씁쓸하게 웃었다.

 

 “난, 너처럼 하지 못했거든. 물론 난 너랑은 다르지만...글쎄, 그냥 난 더 상태가 나빠졌었어.”

 

 “잘 못 들었어요? 지금도 화 났다고요. 그냥, 흥분만 가라앉은 거에요. 영화처럼 한번에 극복할 수는 없다고요.”

 “나라면 용서도 뭐고 주먹부터 나갔을 걸. 실제로 그랬고. 그래서 그냥...네가 대단해 보여. 그것 뿐이야.”

 

 소녀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연화는 그저 그런 소녀를 바라보며 약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굳이 묻지는 않을게요. 나도 누가 억지로 언니 얘기 꺼내는 거 싫어하니까.”

 

 소녀가 마침내 울음을 그치고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제 됐어요. 그만 가 보세요. 전 다시 식장에 돌아갈래요.”

 

 “그래. 안녕.”

 

 소녀가 일어나자 연화도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연화가 멈춰섰다. 그녀가 뒤돌아 보았을 땐, 소녀가 어색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그, 어...전화번호 주실 수 있으세요...?”

 

 “응?”

 

 “분명...아직도 슬프고 화도 나고 소리도 지르고 싶지만...가끔은, 언니랑 얘기하고 싶어요. 자주 전화하지는 않을게요. 그래도...가끔은 우리 언니랑 말하고 있다고, 그런 척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때, 연화는 본능적으로 확신했다. 분명 이 아이는 영원히 언니를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두번 다시 자살을 시도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직감이 말했다. 언니를 잃은 것에 대한 슬픔에 잠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언니는 죽은 이후에도 소녀를 지탱해 주고 있었다.

 

 “물론. 사실, 나도 비슷한 짓 했거든. 내 남자친구한테.”

 

 그녀가 웃으며 자신의 휴대전화도 꺼내 들고는 입력을 시작했다. 그녀의 번호를 저장한 뒤, 그녀는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소녀도 희미하게 웃었다.

 

 “아마도 저, 전화하면서 진짜 화낼 거에요. 아직도 못 잡았냐고. 뭐 하냐고.”

 

 “그래.”

 

 “소리 지를지도 몰라요. 아까처럼 언니 탓을 할 지도 모르고요.”

 

 “알아. 다 나도 해본 짓들인걸.”

 

 “그래도 전화 걸어도 돼요? 그냥 언니가 밉다고 하는 말만 하더라도?”

 

 연화가 정말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평소에는 고고하면서도 강인한 분위기를 가진 그녀였지만, 지금처럼 웃을 때는 그저 순수한 모습이었다. 마치 비가 내리던 날 전처럼.

 

 “언제라도.”

 

 그러자 소녀도 연화의 앞에서는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마치 그가 그녀에게 처음 손을 내밀었을 때처럼.

 

 밖은 어느새, 소나기가 그치고 태양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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