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웨딩홀 앞에 칠흑같이 검은 8인승 중형 차량이 부드럽게 멈췄다. 중앙의 문이 열리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4명이 내렸다.
남색의 머리카락과 오묘한 푸른색이 감도는 눈동자에 싸늘한 눈매를 가진 ‘서 민환’을 선두로 하여, 양복을 입었음에도 온 몸의 근육이 돋보이고 키가 굉장히 큰 ‘강 우목’, 눈을 살짝 덮는 보라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날카로운 인상의 ‘여 은국’이 이어서 내렸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시커먼 중절모를 쓴 남자, ‘홍 도담’이 내리며 차량의 문을 닫았다.
가장 먼저 내린 민환은 조수석으로 곧장 향해 문을 열었다.
그곳에선 마찬가지로 검은 양복을 입었지만, 4명의 남자들 보다는 훨씬 곱상하게 생긴 남자가 내렸다. 그의 이름은 ‘차 연호’로, 다른 네 사람의 상사였다.
“··여기야?”
연호는 차량을 운전해 온 진탁이 건넨 자신의 양복 자켓을 입으며 말했다. 누구에게 향한 건지 목적도 없는 물음이었지만, 민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수석의 문을 닫았다.
운전석에 앉은 진탁은 차를 움직이지 않고 시동만 꺼두었다. 주위는 조용해졌다.
“네, 형님. 부하 녀석들이 여기서 그 놈 조직의 사람들이 들어간 걸 봤답니다.” 민환이 말했다. 그는 연호에게서 비스듬한 뒤쪽에 서 있었다.
그들 중 가장 키가 큰 우목이 가장 굳은 얼굴을 하고 웨딩홀 입구를 노려보았다. 굉장히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웨딩홀 안으로 뛰어갈 듯 해보였다.
우목은 이내 넥타이가 없는 하얀 와이셔츠의 단추 두 개를 풀며 연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들어가자, 형. 피해가 더 생기기 전에 막아야지.” 우목이 말했다.
연호는 올곧은 눈을 한 우목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리고 민환이 건넨 검은 가죽장갑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래. 민환아, 담이 형. 서포트 부탁할게.” 연호가 장갑을 낀 손으로 민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자 민환은 빠른 걸음으로 무리의 가장 앞으로 나섰다. 그는 은색과 무광의 검은색으로 도색된 리볼버를 자켓 속의 숄더 홀스터(권총을 휴대하는 착용가능한 권총집)에서 빼내들었다.
이어 중절모를 쓴 도담도 아무 말 없이 피스톨을 꺼내들고 민환과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무거운 분위기의 정장 차림을 한 다섯 명의 남자들은 웨딩홀의 입구를 통과해 커다란 로비로 들어섰다.
밝은 오렌지 빛이 로비를 환히 비추고 있었다.
로비는 오늘 결혼식이 있는 장소 치고는 굉장히 조용했다.
데스크 외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데스크마저도 두 명의 여자가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민환은 그녀들에게 다가가 생사를 확인하는 듯, 부스럭거리며 팔을 움직였다. 하지만 이내 일어서서 자신의 동료들을 향해 고개를 저어보였다.
앞에는 민환과 도담, 뒤에는 우목과 은국을 두고 중간에서 주위를 살피고 있는 연호는 순간적으로 불길한 느낌이 온 몸을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그는 ‘신랑 현 휘원, 신부 이 은편’이라고 적힌 팻말을 발견했다.
“저기다.”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공중에서 마주쳤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곳을 향해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갔다.
“··· 다들 조심해.”
연호의 말에 모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침을 삼키며 식장으로 들어가는 화려한 문을 끼익 하고 열어젖히고 뛰어 들어갔다.
총을 든 손을 앞으로 내밀며 들어간 그는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어 따라 들어간 다른 이들도 미간을 찌푸리며 제자리에 서있게 되었다.
“··아···!”
연호는 탄식을 흘렸다. 이어 모두가 상황을 알아차려갔다.
조용한 결혼식장, 누군가의 절망스러운 울음소리, 짙은 피 냄새까지···.
그들은 한 발짝 늦었다.
“···”
“······”
모두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우목은 피스톨을 들고 있지 않은 오른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민환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중절모를 쓰고 있던 도담은 천천히 모자를 벗어들었다. 은국은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으로 식장을 천천히 둘러봤다.
그곳에는··.
피와 시체로 가득한 결혼식장에는 하늘빛 원피스를 입은 한 여자의 물기 가득한 울음소리가 쌓여가고 있었다.
.
.
혼돈 속의 그녀는 결혼식장의 문이 세게 열리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5명의 남자들을 발견하지도 못한 건지 식어가는 시체를 끌어안고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그녀에게 가장 가까이 연호는 자신이 들고 있는 새하얗게 칠해진 피스톨을 민환에게 조용히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연호는 여자의 앞에 있는 시체들이 누군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여자가 끌어안은 시체는 순백 같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결혼식의 주인공인 은편이었다. 그 옆에는 멋스러운 턱시도를 입은 휘원도 있었다.
다정함이 묻어나는 따뜻한 빛을 가진 눈동자가 차갑게 식어갔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심장이 욱신거려왔다.
자신의 소중했던 두 친구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휘원의 이야기 속 주인공은 아직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웃음이 많고 착한 휘원의 동생, 현 다휘.
연호는 끼고 있던 가죽장갑도 벗어 대충 뒤로 던지고서, 은편과 휘원을 안고 울고 있는 소녀를 향해 몸을 숙였다.
“··· 괜찮니?”
“!!”
갑자기 들린 누군가의 목소리에 놀란 탓인지, 크게 숨을 들이키며 그녀는 시체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바닥에 반쯤 누워있는 자세로 연호를 덜덜 떨며 올려다봤다.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그녀의 표정만으로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해낸 연호는 그녀를 향해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네가·· 다휘구나. 나는 너를 도와주러 왔어. 우리와 함께 가자.”
연호는 그녀를, 다휘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다휘는 자신의 코앞에 있는 그의 손을 선뜻 잡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두려움에 가득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 누구세요? 누구신데, 저를·· 도우러 오셨어요?” 그렇게 묻는 그녀의 눈가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다휘의 물음에 연호는 잠시 망설였다.
오랫동안 그녀를 몰래 지켜봐왔고 이 만남을 기다려왔지만,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 오빠의 결혼식에서 가족을 잃었다.
누군가를 쉽사리 믿지 못할 상태인 게 분명했고, 다휘의 입장에서 자신은 불청객 또는 수상한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는 다휘가 휘원에게서 자신의 이름을 한 번 이라도 들어봤기를 바라며 서글픈 미소를 떠올렸다.
“나는·· 내 이름은 차 연호야. 나는 휘원이, 은편이랑 대학 동기였고, 휘원이는··· 내 가장 친한 친구야. 휘원이에게 네 얘기는 많이 들었어. 뒤에는 내, 음·· 동료들이야. 여기는 일단 위험하니까 나가자. 여기는··· 내 동료들이 수습해 줄 거야.”
연호가 다휘에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뒤로 힐끗 돌아봐 민환을 보며 턱짓을 했다.
민환은 연호의 뜻을 알아차렸는지,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며 식장에서 나갔다.
민환이 나간 것을 확인한 연호는 다시 고개를 돌려 다휘를 바라봤다.
그리고 안타까운 일을 당한 소녀에게 안심을 시켜주고 싶었다. 그의 올곧은 눈이 다휘를 향했다.
“네 집도 안전하지는 않을 거야. 이런 일이 생겼는데, 혼자 살고 있는 여자아이를··· 혼자 있게 할 수는 없어.”
그의 단호한 어조에 다휘는 어딘가 편안함을 느꼈다.
그가 왜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지, 어떻게 자신이 혼자 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지는 지금은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다휘는 그가 내민 손을 향해 천천히 팔을 뻗었다.
누구라도 좋았다. 연호라는 이름은 한 번 쯤은 두 사람에게서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그거면 됐다.
기댈 곳을 잃어 위태롭고 불안정한 마음에 편안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합리화시켰다.
연호는 다가오는 다휘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녀의 손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손끝에 묻어있는 누군가의 붉은 피가 눈에 들어왔다.
손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을 보며 은편의 하얀 드레스가 붉게 물든 것을 발견한 연호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져갔다.
절대,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이런 일을 저지른 죗값을 꼭 치르게 할 거야. 그의 다짐은 그의 커다란 손에서 드러났다.
따뜻하고 커다란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