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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그림자를 끌어안는 방법
작가 : 채영요
작품등록일 : 2018.9.13

이 세상의 끝에 외로이 자리한 나라, 영령(影靈)국. 그림자에서 태어난 태초신 무영이 창조한 이 세계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인간, 미루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무영이 수천 년간 찾아 헤맸던 사람이 바로 저 조그만 여인일지도 모른다. 감정이라곤 모르는 무영과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미루의 만남. 몽환적인 신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24장. 그 마음이 내게 향했더라면…….
작성일 : 18-10-25 18:10     조회 : 249     추천 : 0     분량 : 7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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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아아! 으아아악! 고성이 하늘을 뒤흔들었다.

 눈 깜짝할 새 팔 하나가 부러진 남자가 바닥을 뒹굴며 내지르는 소리였다.

 제 팔을 붙잡고 있다 바닥으로 넘어지는 통에 함께 쓰러진 미루가 상체를 일으켰다.

 어두운 골목 안.

 온 몸으로 사나운 기세를 뿜어내는 길쭉한 인영 하나가 바닥을 뒹구는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루는 그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물러서 있어.”

 다급하게 무환에게 다가가려던 미루가 멈칫했다.

 가까이 다가서지 않은 미루에게도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운 때문이었다.

 미루를 등지고 선 무환의 몸을 타고 검은 기운이 일렁이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마치 무환의 머리칼처럼 아주 깊은 검은색의, 끈끈해 보이는 기체가 뱀처럼 무환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으으으, 내, 내 팔…….”

 “아아, 팔이 아픈가?”

 “으으…….”

 “그렇다면 다른 곳에 신경이 쏠리게 만들어주면 되겠지.”

 나지막한 무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언가 찢어지는 섬뜩한 소리가 나더니 남자의 비명이 한층 고통스러워졌다.

 “아아아악! 아아아! 살려 줘!”

 “아, 시끄러워. 입도 다물어.”

 뚝. 순식간에 남자의 목소리가 끊어지고 골목 안을 정적이 메웠다.

 아직 성한 팔 한쪽으로 피가 철철 흐르는 귀를 붙잡은 남자는, 이제 딱 달라붙어버린 입을 벌리지 못해 그저 눈물만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미루는 끔찍한 광경을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어디를 더 고쳐준담.”

 그러나 광기마저 어린 듯한 무환의 목소리에 미루는 다시 눈을 번쩍 떴다.

 무환은 아주 가뿐한 걸음으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남자의 주위를 천천히 돌고 있었다.

 그 유려한 몸짓이 사냥감을 물어뜯어놓고 숨통이 끊어지기만을 여유롭게 기다리는 맹수 같았다.

 “아가씨를 건드린 팔은 못 쓰게 잘 다듬어주었고. 아가씨의 비명 소리를 궁금해 하던 귀도 손보았고.”

 무환의 붉은 입술이 길게 말려 올라가며 미소를 그렸다.

 평소와 다름없는 멋진 미소였으나 어딘가 섬짓했다.

 “아아, 그래. 가장 중요한 걸 내가 모르고 있었군. 아가씨를 보았던 눈도 거두어 줄게.”

 여전히 웃음을 지우지 않은 무환의 회녹색 눈동자에 빛이 번뜩였다.

 곧이어 끔찍한 장면이 뒤따를 것이라는 걸 직감한 미루가 두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았다.

 더 이상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미루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무환 님! 그러지 마세요!”

 그 순간, 미루는 자신을 감싸는 따뜻한 온기에 질끈 감았던 눈을 살짝 떴다.

 눈앞은 무언가에 가로막혀 어두웠다.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얼어버린 미루를 단단한 팔뚝이 답삭 끌어안았다.

 “알았어. 안 할게.”

 미루를 끌어안은 채, 부드러운 음성으로 귓가에 속삭이는 것은 무환이었다.

 언제 미루에게로 왔는지, 무환은 방금까지 무섭도록 유린하던 남자를 버려두고 미루를 소중하게 가슴팍에 품어 안고 있었다.

 “무, 무환 님.”

 “아가씨가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안 할게. 그게 무엇이든.”

 무환이 미루를 안은 손에 더 힘을 주었다.

 미루는 자신을 안은 무환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미루의 어깨 위로 고개를 푹 숙인 채 긴 머리칼을 늘어뜨리고 몸을 떨고 있었다.

 “무환 님. 괜찮으십니까?”

 “아니…….”

 무환이 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무서웠겠구나.”

 “…….”

 “그런데 나는,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저 놈에게 붙잡힌 아가씨의 얼굴을 보자마자, 참을 수가…….”

 미루를 안은 무환의 팔에 힘이 빠졌다.

 미루는 조심스럽게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얼굴을 바라보았다.

 얼굴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칼에 가려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미루가 손을 뻗어 여전히 떨고 있는 무환의 머리칼을 넘겼다.

 무엇이 그렇게 힘겨운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무환은 이를 앙다물고 있었다.

 “괜찮아요.”

 안개가 스러지듯 희미한 목소리에 무환이 고개를 들었다.

 미루가 또렷한 눈으로 무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지 않습니까.”

 “…….”

 “전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그래…….”

 무환이 간신히 대답하자 미루는 작은 손을 들어 무환의 손등을 토닥였다.

 미루가 차분하게 무환을 다독임에 따라 차츰, 몸의 떨림이 잦아들고 있었다.

 

 ***

 

 미루와 무환은 한 뼘 정도의 거리로 떨어져서 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미루에게 수작질을 하려던 낯선 남자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대로 내버려둔 채였다.

 미루는 아무리 못된 의도를 가지고 제게 접근한 사람이라지만, 크게 다친 저대로 두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았지만 무환은 단호했다.

 “살려둔 게 어디야.”

 사납게 이를 갈며 말하는 통에 미루는 어쩔 수 없이 그 자리를 떠야 했다.

 남자에게 떠밀려 쓰러졌던 유기는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무환이 사람을 불러 궁으로 먼저 돌려보냈다.

 미루는 유기가 맥없이 무환의 시종에게 업혀가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맴돌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덕분에 미루는 입도 좀처럼 열지 않고 표정도 어두웠는데, 그 곁에서 무환이 홀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결국 침묵을 견디다 못한 무환이 조심스레 운을 뗐다.

 “아가씨.”

 “네?”

 유기의 생각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던 미루가 고개를 돌렸다.

 무환은 우물쭈물 말을 고르며 미루의 눈치를 보다,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미안해.”

 “무엇을 말입니까?”

 “아가씨를 무섭게 만든 거…….”

 미루는 제 눈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는 무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확실히, 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모습이었다.

 언제나 쾌활하고 밝은 모습만 보았는데.

 스스럼없이 제 앞의 사람의 몸을 부러뜨리고 찢었다.

 미루가 제때 무환을 부르지 않았다면 두 눈마저 뽑혔을 것이다.

 아직도 그 골목에서 잔인하게 날뛰던 무환을 떠올리면 미루는 등허리에 소름이 오스스 돋았다.

 어쩌면 그것이 무환의 진짜 얼굴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허면, 내가 원래 알던 무환 님은 가짜란 말인가.’

 미루가 부르자 곧장 다가와 무서운 광경이 보이지 않게 보듬어 안던 무환이 떠올랐다.

 또, 미루가 하지 말라는 일은 무엇이든 하지 않겠다고 말하던 무환.

 미루를 무섭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책망하며 떨던 무환.

 ‘그리고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던…….’

 미루는 이제 거의 울기 직전의 얼굴이 된 무환을 보았다.

 그 모든 것들이 무환의 가짜 모습일 리가 없었다.

 그것도 분명 무환의 진짜 얼굴일 터였다.

 문득 미루는 바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살짝 웃고 말았다.

 미루가 웃자 무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에 띄게 불안해했다.

 “왜, 왜, 왜 웃어? 내가 하는 말이 역시 형편없다고 여기는구나. 그래, 그렇겠지. 일은 쳐 놓고, 이제 와 사죄하는 꼴이라니…….”

 “그게 아니에요.”

 미루가 고개를 살래살래 젓자 침울하게 중얼거리던 무환이 입을 다물었다.

 미루는 미소를 머금고 무환을 바라보았다.

 “저를 도와주신 건 고맙습니다.”

 “아가씨…….”

 “허나, 앞으로는 그런 방법은 아니 됩니다. 무환 님, 아시겠지요?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안 됩니다. 그건 옳지 않아요.”

 “하지만 그 놈이 아가씨에게 무슨 짓을 할지…….”

 무환이 저도 할 말이 많다는 듯 대꾸했지만 미루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게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그 때문에 누군가를 해 입혀서는 안 됩니다. 저뿐 아니라 누구의 일이라도요.”

 미루가 눈썹까지 찡그리며 심각한 척 당부하자 결국 무환이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약속하시겠어요?”

 무환은 미루가 내민 새끼손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나 마주 손가락을 걸 기미가 없자 미루는 어깨를 으쓱하며 재촉했다.

 그 모습에 무환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접혔다.

 미루가 내민 손을 붙잡아 아래로 내리면서, 무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런 건 필요 없어. 아까도 말했잖아. 아가씨가 하라는 건 하고,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겠다고. 그냥 한 말 아니야.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게. 그게 아가씨가 내게 바라는 거라면…….”

 진중한 얼굴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하는 말에 미루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럴 때면, 무환은 무영과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느껴졌다.

 머리칼 색이 아니라면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똑같은 얼굴이지만 노력하지 않아도 달리 보였다.

 무환은 이토록 진실 되고 애정이 가득한 얼굴로 미루를 보곤 한다.

 과연 내가 받아도 될까 걱정이 될 정도로 곱고 간절한 마음.

 미루는 무환에게 미안한 마음이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진심어린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무환에게서, 미루는 끊임없이 무영을 찾고 있었다.

 무영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떻게 다른지, 또 비슷한 점이 있다면 어떻게 비슷한지.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자꾸만 무영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미루는 무환을 계속해서 마주보고 있자니 왠지 가슴이 먹먹하고 따끔거려서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아, 완전히 잊을 뻔했네.”

 그때 무환이 무언가 품에서 주섬주섬 꺼내들었다.

 “사실 이걸 아가씨에게 사주고 싶어서 장에 나왔던 거였어.”

 무환의 손에는 묘한 푸른빛이 흐르는 나무로 깎아 만든 작은 새가 놓여 있었다.

 어찌나 정교하게 잘 만들었는지 금방이라도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요새 아가씨가 기운이 없어 보여서. 이건 물나무로 깎아 만든 건데, 그 주변에만 둥지를 틀고 사는 새를 만든 거래. 아주 순수한 물만 먹고 자라는 물나무에 산다 하여 순수한 마음의 수호자라고 불리우기도 하고.”

 미루는 나무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두 손을 펼쳐 받아들었다.

 “아가씨의 마음은 순수해. 티끌 하나 없이 순수하고, 그렇기에 그만큼 강하지. 그 마음을 지키라고 주는 선물이야.”

 “가, 감사합니다.”

 “감사는 됐어. 자, 이제 들어가 봐.”

 어느새 미루의 방이 있는 복도 앞이었다.

 무영이 걸음을 멈추더니 뒷짐을 지고 빙그레 웃었다.

 미루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꾸벅 하고, 소중히 나무새를 들고 방으로 향했다.

 미루가 방문을 열고 안으로 쏙 사라지는 것까지를 모두 지켜보던 무환의 낯빛이 문득 달라졌다.

 웃음기는 사라지고, 어딘가 아픈 사람처럼 괴로운 얼굴이었다.

 그만큼 절절한 목소리가, 공중에 속삭이듯 흩어졌다.

 “그 마음이 내게 향했더라면…….”

 

 ***

 

 미루는 방에 돌아와 탁자 위에 나무새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볼수록 정말 살아있는 것 같구나.”

 나무 특유의 빛깔인 듯 보이는 푸른빛이 감돌고 있어서인지, 도무지 나무를 깎아 만든 깃털로 보이지는 않았다.

 “순수한 마음의 수호자라…….”

 그리 되뇌며 나무새의 등을 어루만지자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앞으로 나와 잘 지내보자꾸나, 귀여운 새야.”

 정말 살아있는 것 같은 새에게 인사를 하고, 미루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헌데, 멈칫.

 미루는 살짝 열린 창밖으로 무언가를 언뜻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미루는 창으로 와락 달려들었다.

 창틀 너머로 몸이 고꾸라질 정도로 목을 쭉 빼고서 황급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창에서 내려온 미루는 뒷마당을 향해 뚫린 미닫이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신도 신지 못한 버선발이 이슬을 잔뜩 머금은 잔디를 밟았다.

 사위는 고요하고 평온한데, 미루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주위를 살폈다.

 무언가를 찾는 두 눈에 애절함이 담겨 있었다.

 ‘설마, 설마.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다. 정말 잘못 본 것이 아니란 말이다.’

 미루는 어떤 흔적이라도 찾으려는 듯 사방을 샅샅이 뒤졌다.

 한참을 서성이던 미루가 마침내 천천히 멈추어 섰다.

 희었던 버선은 새파란 풀물이 들어 축축했다.

 그새 숨이 가빠 가슴이 위아래로 들썩이고, 찬 공기에도 불구하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스르르. 미루가 무너지듯 잔디 위로 주저앉았다.

 ‘결국은 그저 잘못 본 것이었단 말인가. 허깨비였단 말인가.’

 미루는 허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두 팔을 무릎 위에 올리고 얼굴을 파묻었다.

 허나 미루는 창틈으로 분명 보았다.

 정말 허깨비였다기에는 너무나도 선명히 보았다.

 때문에 미루는 그가 직접 미루를 찾아온 줄만 알았다.

 그러나 찾아도 찾아도 주위에는 개미 한 마리도 얼쩡거리지 않았다.

 하다못해 누군가 서 있었다는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미루는 가슴이 갑갑해 견딜 수가 없어, 고개를 한껏 더 깊숙이 숙이고 눈을 감았다.

 ‘나는, 분명 무영 님의 은색 머리칼이 흩날리는 것을 창밖으로 보았는데…….’

 

 ***

 

 무환과 미루가 자리를 뜨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골목에 누군가 나타났다.

 그 검은 인영은 발등까지를 덮은 긴 옷자락을 가뿐히 차며, 골목 안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그를 유심히 살피던 인영이 허리를 숙이고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기괴한 웃음을 웃기 시작했다.

 “크크크크크. 크하하하하하하!”

 웃다 못해 배를 부여잡고 허리를 뒤로 꺾자, 어둠에 가려 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그런데. 사람의 얼굴이 아닌 동물의 얼굴이 달라붙어 있었다.

 눈매가 축 처져 다 늙은 형상의 원숭이 가면을 쓴 자는, 한참이나 웃어젖히더니 차츰 진정했다.

 “아아, 간만에 실컷 웃었구나.”

 다소 높은 목소리가 가면 밑에서 새어나왔다.

 시커멓게 뻥 뚫린 원숭이의 눈구멍 안으로 누군가의 눈이 보일 듯 하다 이내 가려졌다.

 “그 인간 계집을 위해 직접 손까지 더럽히셨다.”

 원숭이 가면을 쓴 자가 골목 안에 쓰러진 사내를 그토록 오래 들여다보았던 것은, 언제 숨이 끊어졌느냐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미 숨통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

 그렇다면 무환이 그에게 단지 벌만 주었느냐, 아니면 직접 목숨까지 앗았느냐 살펴보았더니.

 사내는 서서히 죽어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이해 단숨에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제가 생명을 주어 놓고, 또 제 손으로 그 생명을 앗아갔단 말이지.”

 원숭이 가면이 우습다는 듯 중얼거렸다.

 혹 무환이 떠난 후 다른 자가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물론 했다.

 그러나 사내의 시체에서 무환 이외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무환이 죽였다고 보아야 했다.

 “이게 생명의 신이 하실 짓인가, 그래? 제가 준 생명으로 태어난 것도 아닌 인간 계집 하나 때문에?”

 자조적인 웃음을 웃던 원숭이 가면은 문득 차갑게 식은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쯧쯧. 그러게, 그리 신나서 하겠다고 할 일이 아니라 하지 않았느냐?”

 죽을병에 걸렸으나 치료할 돈이 없었던 이 사내는, 하루하루를 술로 보내며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나 금은보화를 보여주며 미루의 인상착의를 알려주고 가볍게 해코지를 할 것을 사주했더니, 패물에 눈이 멀어 선뜻 그러고마 하였다.

 “나는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도 경고했다. 어차피 버릴 목숨,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상관없다 한 것은 너였으니 나를 원망치는 말거라.”

 원숭이 가면을 쓴 자는 미련 없이 시체를 두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가벼운 해코지라…….”

 무거운 걸음걸이와는 다른 가늘고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인간을 위해 무환이 이렇게까지 행동한다는 말이지.

 “가벼운 해코지 가지고는 안 되겠구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천을 두른 원숭이 가면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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