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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그림자를 끌어안는 방법
작가 : 채영요
작품등록일 : 2018.9.13

이 세상의 끝에 외로이 자리한 나라, 영령(影靈)국. 그림자에서 태어난 태초신 무영이 창조한 이 세계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인간, 미루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무영이 수천 년간 찾아 헤맸던 사람이 바로 저 조그만 여인일지도 모른다. 감정이라곤 모르는 무영과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미루의 만남. 몽환적인 신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21장. 저주가 풀리다
작성일 : 18-10-18 18:00     조회 : 250     추천 : 0     분량 : 7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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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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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영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서둘러 누각에서 내려와 정원에 섰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랫배가 꼬이는 것처럼 묘하고 썩 유쾌하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바로 앞에서 드러난 미루의 맨 살결.

 자꾸만 눈앞에 희고 둥글었던 어깨가 아른거렸다.

 무영은 저도 모르게 큰 보폭으로 걷기 시작했다.

 “조심성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낮고 빠르게 중얼거리며, 무영은 입매를 팽팽하게 당겼다.

 그래도 묘하고 낯선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아무리 다른 생각을 하려 해도, 등을 돌리고 서 있던 미루의 어깨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무영의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그러고 보니, 이와 같은 일련의 감정들을 느끼게 된 것은 미처 무영도 알아채지 못했던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요즘 들어 부쩍 이런 익숙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되는 일이 잦지 않았는가.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 떠올려 보니 미루에게 입을 맞추었던 것부터 그랬다.

 순간의 격한 충동을 견디지 못해 입을 맞추었고, 두 번의 입맞춤에서 모두 만족감을 느꼈다.

 그 충동은, 오늘 미루의 작은 어깨를 보았을 때 느꼈던 것과 동일했다.

 이러한 종류의 충동은 무영이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던 낯선 것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제 스스로가 그 충동에 당황해 먼저 자리를 피해버렸지 않은가.

 좋지 않았다. 정말 좋지 않았다.

 무영이 잇새로 내뱉듯이 중얼거렸다.

 “뭐가 마음에 든단 말인가.”

 어느새 제가 했던 생각까지 낯설게 느껴지고 있었다.

 미루의 반응을 살피는 것, 그 아이를 지켜보는 일이 재미있는 것.

 단지 미루와 함께 있으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즐겁다 하여, 마음에 든다고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무영은 변화에 익숙하지 못했다.

 때문에 미루를 만난 후의 낯선 제 모습을 변화가 아닌 균열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균열은 바로잡아 원래대로 되돌려야만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본디 미루는 오로지 무영의 저주를 풀기 위해…….

 “무영 님! 가만히 서서 뭐 하세요?”

 별안간 들려온 미루의 목소리에 무영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치켜들었다.

 미루는 흰 얼굴에 잘 어울리는 연보랏빛의 치마저고리로 갈아입고, 무영의 곁에 서서 맑은 미소를 얼굴 가득 머금고 있었다.

 제 스스로 빛을 내는 별처럼 반짝이는 동그란 눈에 무영의 얼굴이 고스란히 비쳐 보였다.

 환한 미루의 얼굴을 마주하자, 무영은 머릿속이 온통 어지럽게 흔들리는 듯한 기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순간 저주 따윈 이제 아무래도 좋다고, 그저 미루를 볼 때면 느껴지는 충동을 참지 않아도 된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치밀었다.

 그러다 무영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건 정말 좋지 않다.’

 무영은 이상할 정도로 눈을 떼기 힘든 미루의 얼굴에서 간신히 고개를 돌리며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애초에 미루는 무영이 제 저주를 풀기 위해 곁에 두었을 뿐인 인간이다.

 그 인간으로 인해 무영 본인이 흔들린다는 것을 스스로가 납득할 수 없었다.

 무영의 얼굴이 굳어버렸다는 것은 미처 눈치 채지 못했는지, 미루는 신이 난 목소리로 무영을 재촉했다.

 “이제 가면 됩니까? 무영 님은 혹 볼일이라도 있으셔서 나가시는 건가요? 그럼 전 오랜만에 혼자 궁 안에서 구경이나 해도 되나요?”

 “…….”

 무영이 대답 대신 쓴 표정을 지었다.

 여러 감정이 뒤엉켜서 혼란스럽고 괴로웠다.

 미루의 가벼운 목소리와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을 마주하자 마음이 편해지는 한편, 이제는 그리 느끼는 것에 의문이 생겨버렸다.

 무영은 가장 처음, 미루를 데려왔던 이유를 곱씹는 수밖에 없었다.

 ‘그저 내 저주를 풀기 위해…….’

 그것만 해결된다면,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는 감정에 휘둘릴 일도 없게 될 것이다.

 이제는 약간 의아한 얼굴로 무영을 올려다보는 미루를 뒤로하고, 무영이 걸음을 옮겼다.

 무영이 가까이 다가가자 장막이 자연히 열렸다.

 무영의 뒤를 서둘러 쫓아온 미루가 걱정스럽게 무영을 올려다보았다.

 삽시간에 차갑게 굳어버린 얼굴에 당황한 듯, 무영을 따라 장막 밖으로 나서며 미루가 입을 열었다.

 “무영 님, 괜찮으십니까?”

 “…….”

 무영이 여전히 말없이 딱딱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자 미루의 어깨가 축 처졌다.

 눈에 띄게 풀이 죽은 모습에 무영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으나, 지금은 미루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무영은 조용히, 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무영이 제자리에 멈추자 미루도 멈칫 무영의 뒤에 섰다.

 미루는 차분해 보이는 무영의 은빛 뒤통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볼 일이 있다.”

 “아, 그러십니까?”

 미루가 조심스레 물었으나 무영은 고개조차 끄덕이지 않았다.

 대신 미루를 등진 그대로, 망설임 없이 휙 떠나 버렸다.

 미루가 미처 무영을 붙잡기도 전이었다.

 그 뒤에 남은 미루는 그저 황망히 뻗었던 손을 거둘 뿐이었다.

 

 ***

 

 미루는 긴 복도를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당연히 함께 가시는 줄 알았는데.’

 또 미루의 착각이었다.

 당연하지 않은 일을 당연하다 여긴 미루의 잘못이었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영에게 섭섭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 미루가 혼자 기대하고, 바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얼마 전부터 미루는 무영이 어딘가 달라졌다고 느꼈다.

 어떻게 달라졌느냐 물으면, 적어도 이전보다 훨씬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고는 말할 수 있었다.

 그건 정말로 미루의 착각이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말 갑자기 다른 사람인 양 표정이 달라져서 미루를 본 척도 하지 않으니.

 미루로써도 어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알지 못하는 게 너무 많다.’

 아주 오랜만에 밖에 나와 햇볕을 쬐는 것인데도, 영 기분이 나아지지를 않았다.

 결국 미루는 걷다 말고 옆길로 샜다.

 더 이상 산책을 할 기분은 들지 않았고, 그저 가만히 앉아있고 싶었다.

 때마침 작은 마당을 발견했다.

 어디 앉을 자리를 살필 겨를도 없이, 미루는 푸른 잔디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유기가 보았다면 옷에 풀물이 든다고 한바탕 잔소리를 했겠지.’

 힘없는 웃음이 피식 새어나왔다.

 유기를 보지 못한 지도 참 오래되었다.

 그래도 무영이 곁에 있으니 하나도 외롭지 않았는데.

 햇살이 머리 위로 따뜻하게 내리쬐고 있는데도 기분은 울적하기 그지없었다.

 미루가 무릎을 세우고 얼굴을 기대자 보드라운 볼이 눌려 올라갔다.

 그대로 한숨을 폭 내쉬는 미루에게, 가볍고 조용한 발걸음이 다가왔다.

 “여기 귀여운 아가씨는 뉘신지요? 처음 뵙는데.”

 꿀이 흐르듯 달콤한 목소리에 미루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미루가 처음 보는 여인이 방긋 웃음을 띠고 있었다.

 ‘와. 정말 예쁘다.’

 말 그대로 미루는 넋을 놓고 그 여인을 바라보았다.

 빛을 받는 부분만 녹색이 비쳐 보이는 검은 머리칼을 늘어뜨린 여인은, 진한 감색의 긴 옷을 입었는데 마치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옷인 것처럼 잘 어울렸다.

 희고 갸름한 얼굴에 자리 잡은 크고 유순한 눈망울과 오똑한 코, 도톰하고 붉은 입술은 단아한 분위기를 풍겼다.

 “저, 저는 미루…….”

 미루가 여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데, 여인이 우아한 몸짓으로 다가오더니 미소를 던졌다.

 “곁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네, 네? 아아, 아무렴요. 전 괜찮습니다.”

 “그럼, 실례.”

 여인은 미루의 곁에 앉았다.

 선녀의 날개옷처럼 가뿐히 내려앉는 옷자락을 보고서야 미루가 정신을 차렸다.

 여인의 외모도 그렇고, 입은 옷도 그렇고 보통 신분이 아닌 듯 보였다.

 그런데 이런 잔디에 그냥 앉게 한다니.

 미루의 옷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 여인의 옷에는 풀물이 들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미루가 주위를 살피며 안절부절못하자 여인이 고개를 갸웃하고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 그것이, 옷에 풀물이 드실 것 같아서……. 어디 깔고 앉으실 게 없나, 하여. 아, 급한 대로, 제 옷이라도…….”

 미루가 금방이라도 제 겉옷을 벗으려는 듯 하자 여인이 깜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아니, 괜찮습니다! 제가 왜 아가씨 옷을 깔고 앉겠습니까. 옷 따위야 조금 버려도 좋아요.”

 “아아…….”

 다시 한 번 고운 얼굴에 피어난 기품 있는 미소에 미루가 넋을 놓았다.

 그러고 보니 미루 자신은 이 여인에 비하면 너무 못난 것 같아 괜스레 얼굴이 붉어졌다.

 미루가 여인의 눈을 피해 민망함에 고개를 푹 숙이자, 여인이 가볍게 웃었다.

 “볼수록 귀여운 아가씨로군요. 미루라고 하셨나요? 여기서 무얼 하십니까? 날이 좋아서 나들이라도 나오셨습니까?”

 “나, 나들이라 할 건 아니옵고……. 산책을 하다가.”

 “아, 그러십니까. 헌데…….”

 문득 여인이 미루와 그녀의 발밑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훑어보았다.

 풍성한 속눈썹에 둘러싸인 눈이 놀라움으로 살짝 커졌다.

 “인간이시군요? 인간이 예까지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그것이…….”

 미루는 순간 당황해 말을 얼버무렸다.

 이곳에 온 이래로 아무도 제 그림자를 관심 있게 보지 않기에 조금은 잊고 지냈었나 보다.

 모든 사정을 설명하는 것은 과하다 싶어, 미루는 간단하게 말하기로 했다.

 “원래 살던 곳에서 조금 일이 있어, 무영 님을 따라 오게 되었습니다.”

 “무영 님을 따라 오셨다고요? 아아, 그럼 아가씨가 그 소문의 인간이시군요?”

 “네? 소문이라니요?”

 “후후, 모르시는가 봅니다. 무영 님께서 아주 아끼시는 인간이 있다고들 하더군요.”

 “그럴 리가요…….”

 미루는 말꼬리를 흐리며 생각에 잠겼다.

 무영이 미루를 아낀다니.

 물론 이전까지는 그리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무영이 미루에게 파련옥 팔찌를 보냈을 때나, 미루가 있는 곳이 어디이든 나타났던 때나.

 그리고 언제나 미루의 곁을 지켜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잘 모르겠다.

 아까 마주한 무영의 차갑게 굳어있던 얼굴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하하, 헛소문일지도 모릅니다. 무영 님이 저를 아끼신다니요.”

 미루는 괜히 과장되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름다운 여인은 놀랍다는 듯 눈을 깜빡이며 다시 물었다.

 “어머, 정말 그리 생각하십니까? 제가 보기에는, 헛소문은 아닌 듯 하더이다.”

 “에이, 아닐 거여요.”

 “흐음.”

 의중을 알 수 없는 콧소리를 내며 여인이 미루를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

 미루도 그저 마주 웃었다.

 그런데 별안간, 여인의 곱게 접힌 눈에 무언가 번쩍이는 것이 스치는 듯 했다.

 미루가 잘못 보았나 싶어 눈을 비비는데, 여인이 운을 뗐다.

 “허면, 무환 님은 어떠십니까? 제가 듣기로는 무환 님도 여기 계시는 인간 아가씨를 상당히 아끼신다고 하던데.”

 “무, 무환 님이요?”

 무환의 이름이 나오자 미루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에,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미루를 올려다보고, 미루의 손을 가슴에 꼭 붙잡던 무환이 떠올랐다.

 ‘무환 님은, 무환 님은 나를…….’

 분명 좋아한다고 말하셨다.

 그러나 미루는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환이 미루를 타오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본 순간부터, 미루는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 그건 더 아닙니다. 무환 님이 저를 아끼실 리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잘못 들으신 게 아닐까요?”

 미루가 얼른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그런가요…….”

 미루를 유심히 보던 여인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미루와 여인의 사이에는 저 멀리 어딘가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뿐이었다.

 그 정적을 깬 것은 여전히 고운 얼굴에 미소를 띤 여인이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미루에게 인사를 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말동무가 되어 주어서 고마워요.”

 “아, 네! 저도 감사했습니다. 저…….”

 그러고 보니 미루는 이 여인의 이름도 듣지 못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루가 인사를 마치지 못하고 미적거리자, 여인이 활짝 웃더니 악수를 청했다.

 봄날의 첫 복사꽃이 피어나듯 화사하고 미려한 미소였다.

 미루가 그녀가 내민 손을 맞잡자 선이 고운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제 이름은 가연입니다. 산책, 잘 하시길 바랍니다.”

 미루는 참으로 예쁘지 않은 구석이 없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네, 가연 님. 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미루 아가씨.”

 가연은 군더더기 없는 몸짓으로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완전히 가연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었던 미루는 홀로 감탄과 비슷한 말을 중얼거렸다.

 “완벽한 사람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

 

 무영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만치서 조그만 체구의 누군가가 바쁜 걸음으로 다가왔다.

 “무영 님!”

 급히 이름까지 부르면서 무영의 앞에 선 것은 유기였다.

 유기는 은근히 기대에 찬 얼굴로 무영을 보았다.

 “어쩐 일로 저를 따로 부르십니까? 혹시, 미루 님 일입니까?”

 “그래.”

 “만세!”

 무영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유기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더니 무영의 눈치도 보지 않고 펄쩍 펄쩍 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미루 님을 뵙는군요! 저, 아주 그냥 미루 님이 그리워서 상사병에 걸릴 뻔했습니다. 아, 우리 미루 님. 잘 계셨을까.”

 이제는 거의 춤을 출 작정인 듯 가만히 있지 못하던 유기는, 이상하게 조용한 무영을 눈치 챘다.

 이쯤이면 까불지 말라고 한 소리를 들을 때도 되었는데,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던 것이다.

 “무영 님. 왜 그러십니까?”

 “…….”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미루 님과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던 겁니까? 무슨 일입니까? 분명 무영 님이 잘못하신 게지요?”

 이렇게까지 물어도 무영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며칠 전의 무영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에 유기가 의아해 고개를 갸웃했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유기를 바라보던 무영의 입이 그제야 열렸다.

 “유기, 그 아이에게 가 보아라.”

 “저 혼자요? 미루 님, 지금 혼자 계십니까?”

 “그래.”

 “아니, 왜요?”

 “그건 네가 알 거 없다. 그저 가보라면 가 봐.”

 “으음.”

 유기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신음을 한 번 흘리고 생각에 잠겼다.

 유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끄러미 바라보던 무영은 별안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순간, 무영은 허리를 따라 차갑고 끈적한 액체가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무영은 다시 유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제까지 알아채지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로 기시감이 느껴졌다.

 ‘이럴 수가.’

 무영은 저도 모르게 손을 말아 쥐고 힘을 꾹 주었다.

 무영이 그러든지 말든지, 무언가 고민을 마친 유기가 활기차게 대답을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미루 님께 가보겠습니다.”

 “……그래.”

 무영이 간신히 대답하자 유기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리를 떴다.

 무영은 기척을 숨기고 그 뒤를 쫓기 시작했다.

 궁 안의 지리에는 도가 튼 유기는, 얼마간 여기저기를 들여다보고 다니더니 금세 미루를 발견했다.

 “미루 님!”

 꺅 소리와 함께 좁은 마당에 앉아있는 미루에게 와락 달려든 유기가 미루를 끌어안는 것이 보였다.

 “세상에, 미루 님! 얼굴이 왜 이렇게 상하셨어요? 거기다, 팔이고 다리고 죄다 부러지게 생기셨습니다.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지내신 겁니까?”

 “유, 유기…….”

 무영은 유기가 놀란 미루의 볼을 찹쌀떡 주무르듯 만져대는 것을 지켜보았다.

 여전히, 유기를 보고 느꼈던 기시감은 그대로였다.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아니, 도대체 왜 아직까지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을까.

 무영은 긴장으로 두근대는 가슴을 붙잡고, 다시 유기와 미루를 바라보았다.

 아무 것도, 그 어떤 것도 무영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미루를 만난 유기의 기쁨도, 반가움도, 안타까움도.

 아니, 그뿐만 아니라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영의 저주는, 이미 풀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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