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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그림자를 끌어안는 방법
작가 : 채영요
작품등록일 : 2018.9.13

이 세상의 끝에 외로이 자리한 나라, 영령(影靈)국. 그림자에서 태어난 태초신 무영이 창조한 이 세계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인간, 미루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무영이 수천 년간 찾아 헤맸던 사람이 바로 저 조그만 여인일지도 모른다. 감정이라곤 모르는 무영과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미루의 만남. 몽환적인 신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19장. 약속해 주세요.
작성일 : 18-10-12 18:00     조회 : 267     추천 : 0     분량 : 7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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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미루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단호했다.

 이제는 무환의 시선을 피하지도 않고 똑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무환의 얼굴이 풀어졌다.

 “이제야 나를 보네.”

 “무환 님.”

 “말 그대로야. 아가씨가 보고 싶어서 왔어. 아가씨는 나 별로 안 보고 싶었나?”

 어찌 대답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미루는 남녀 간 사정에 숙맥이기는 했으나,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니고 바보도 아니었다.

 무환이 어떤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미루도 무영을 보고 싶어 했지 않은가.

 왜 그런 기분으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왜 무영이 보고 싶었는지, 이제는 납득할 수 있었다.

 미루는 무영이 좋았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무영이 입을 맞추었을 때부터, 아니면 눈을 떴을 때 제 옆을 지키고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부터, 그것도 아니면 지하 감옥에서 구해주었을 때부터일 수도 있다.

 혹은 한밤중의 산에서 만월 밑에서 희게 빛나던 무영과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던, 그 꿈결 같은 미소를 얼핏 보았을 때부터일까.

 미루가 알지도 못하는 새, 무영에 대한 감정은 미루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미루는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무환은, 미루가 무영을 볼 때면 느끼는 감정을 미루에게 느끼고 있었다.

 때문에 더더욱 무환을 어찌 대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미루의 팔뚝을 붙들었던 무환의 손이 미끄러지듯 내려가 미루의 손을 잡았다.

 “무환 님.”

 미루는 무환에게 붙잡힌 손을 뒤틀었다.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무영에게가 아니라, 무영을 향한 제 스스로의 마음에게.

 그러나 무환은 그 움직임을 가볍게 무시하고 미루의 손에 깍지를 낀 제 손을 가슴팍에 갖다 대었다.

 “아가씨, 내가 영 싫어? 내가 눈에 띄지도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 말하면서, 미루보다 한참이나 큰 키로 올려다보는 듯 새끼 고양이처럼 애처로운 눈을 한다.

 “그것이 아니라…….”

 미루는 장난인 듯, 아닌 듯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무환 때문에 말꼬리를 흐렸다.

 무환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은 한편, 이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을 씻어내고 싶었다.

 미루는 애써 무환의 애절한 눈빛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제게 왜 이러십니까? 무환 님은 지금 저를 곤란하게 만들고 계세요.”

 “나 때문에 곤란해? 왜?”

 “…….”

 “아가씨가 무영을 사랑해서?”

 그 말에 미루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무환은 이미 모두 알고 있었던 거였다.

 미루마저도 알아차린 지 얼마 되지 않은 감정을, 무환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무환은 놀란 미루의 표정을 보고 씩 웃었다.

 눈이 시릴 정도로 멋진 미소였지만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소중하게 가슴에 품고 있던 미루의 손을 놓아주며, 무환이 말했다.

 “나는 아가씨가 좋아. 그래서 내가 아가씨를 곤란하게 만든다 해도, 나라고 내 감정을 그렇게 손쉽게 바꿀 수는 없잖아.”

 “무환 님, 저를 왜…….”

 무환이 다시 웃었다.

 “아가씨는, 무영이 왜 좋은지 말할 수 있어?”

 “…….”

 “난 그저 아가씨를 처음 봤을 때부터, 무영을 부르며 웃는 그 미소가 나를 향한 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왠지는 그 누구도 몰라.”

 말문이 막힌 미루의 뺨을 무환이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무영에게 뿐만 아니라 내게도 아가씨는 특별하거든. 더 있고 싶지만, 무영이 이제 눈치 챌 것 같아서 가볼게. 어서 들어가 봐. 밖에 나온 건 무영에게 비밀로 해 줄게.”

 눈을 찡긋한 무환이 서둘러 복도를 걸어가며 손을 살래살래 흔들었다.

 미루는 착잡한 심정으로, 무환이 복도 끝에서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무영의 뒤를 유기가 따르고 있었다.

 척 보아도 기분이 상당히 나빠 보이는 무영 때문에 유기까지 덩달아 축 처졌다.

 거의 연회가 시작되자마자 바람을 쐬고 오겠다고 나갔던 무환은,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덕분에 연회가 무르익을수록 무영의 심기가 불편해진다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드러났다.

 가연까지 점점 침울해지기에 유기가 그 사이에 껴서 눈치를 보느라 아주 힘들었다.

 결국에는 예정된 시각보다 훨씬 일찍 연회를 마무리해버렸다.

 “무환 님 때문이시죠?”

 잠자코 무영의 뒤를 쫓던 유기가 불쑥 물었다.

 “잘 아는구나.”

 무영은 조금도 걸음을 늦추지 않고 대꾸했다.

 “그놈은 도대체 뭐하자는 거냐? 가연이 괜찮다는데도 제가 더 나서서 연회를 열자고 난리더니, 시작하자마자 나가서 돌아오지도 않고.”

 “그러게요. 가연 님 표정이 제가 다 안쓰러울 정도였습니다.”

 유기가 거의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이었던 가연의 얼굴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셨을까요? 무환 님이 아무리 제멋대로인 면이 있으시다 해도, 가연 님까지 그렇게 내버려두실 분은 아닌데…….”

 “뻔하지. 그놈의 속셈을 진작 알아채지 못한 내 불찰이다.”

 “네? 뻔하다니요?”

 “아직도 모르겠냐? 무환이 애초에 연회를 열자고 우긴 것도, 그 아이가 나를 따라올 것이라 생각해서 그런 거다. 그런데 연회에 따라오지 않은 걸 보고, 바로 나가버린 거다.”

 “무환 님이 왜, 가연 님도 있으신데…….”

 그때 유기의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예전에 한 번, 혹시나 했다가 말도 안 된다 싶어 떨쳐버렸던 생각.

 유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무환 님이 미루 님을 보려고 연회를 열자고 고집을 피우신 거란 말씀이세요?”

 “그게 아니고서야 그 놀기 좋아하는 놈이 안 돌아올 리가 없지.”

 세상에. 유기가 조용히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정말, 무환 님이 미루 님을 마음에 두고 계신단 말야? 그럼 가연 님은?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가연과 떠나버린 후 일절 아무런 소식도 없다가, 별안간 혼자 돌아오지를 않나.

 잠깐 온 건가 싶었는데 아예 다시 눌러앉을 것처럼 떠날 기미는 보이지도 않고.

 가연에 대한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는데, 가연 또한 갑자기 무환을 따라 돌아왔다.

 곰곰이 생각을 곱씹던 유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무영 님, 어쩌면 무환 님과 가연 님, 두 분 사이가 처음부터……. 앗!”

 유기가 생각에 잠긴 동안 어느새 도착한 별채의 안으로, 무영이 장막을 뚫고 사라진 후였다.

 제게 기별도 없이 혼자 사라진 무영에게, 유기는 들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큰 소리로 투덜댔다.

 “무영 님! 말씀도 안 하시고. 미루 님께 다 말할 거예요!”

 

 ***

 

 미루는 누각 안으로 돌아와 얌전히 앉아 있다가, 느껴지는 기척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영이 막 누각의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무영 님 오셨어요.”

 미루는 반갑기도 하고, 기분이 썩 좋지 않기도 해서 크게 무영을 반기지 못했다.

 무환과 있었던 일이 아직도 신경이 쓰이는데다가, 무영을 보니 그에 대한 제 감정까지도 계속해서 생각이 났다.

 거기다, 꽤 오랜 시간 동안이나 미루를 홀로 두고 밖에서 돌아오지 않은 무영에게 서운한 마음이 컸다.

 ‘내게는 여기 가만히 있으라고 하셔 놓고, 혼자 어디서 뭘 하고 오신 거야.’

 그리 생각하니 절로 볼이 불만으로 부어오르고 입술이 튀어나왔다.

 자신을 보고도 미적미적 인사하는 미루의 반응에 무영이 즉각 눈썹을 치켜 올렸다.

 “무슨 인사가 그러냐?”

 “아니, 뭐…….”

 미루는 말꼬리를 흐리며 무영의 눈을 피했다.

 집요하게 자신을 쫓는 무영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미루는 괜히 큰 동작으로 침대에 눕는 시늉을 했다.

 “무영 님이 너무 늦게 오셔서. 먼저 자려다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기다렸거든요. 이제 오셨으니 저는 이만 자겠습니다.”

 “잠을 못 자서 기분이 나쁜 것이냐?”

 아무렇지 않은 듯한 무영의 반응에 미루의 얼굴이 더 부어올랐다.

 미루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툴툴거렸다.

 “네! 아주 기분이 나쁩니다! 이만 잘 테니 무영 님도 얼른 주무셔요.”

 “내 침대인데?”

 응? 뭐라고?

 미루는 살그머니 이불을 눈 밑까지 끌어내렸다.

 팔짱을 단단히 낀 채 미루를 내려다보고 있던 무영이 다시 한 번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내 침대라고.”

 “네? 그럼 그간 무영 님은…….”

 “당연히 네 옆에 누워서 잤지. 여기에 침대라고는 하나뿐인데, 여지껏 그 생각을 못 했느냐?”

 정말 무영이 말이 맞았다.

 침대는 하나뿐인데, 왜 무영의 생각은 하지 못하고 당연스레 여기 누워서 잔거지?

 게다가 항상 미루가 오랜 시간 자다 깨어나거나, 먼저 잠들고 나중에 일어났으니 무영이 어디서 자는지 알 턱이 없었다.

 순식간에 미루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불로 가린 눈 밑은 보이지 않았으나, 귀와 이마까지 새빨개진 얼굴은 흰 이불에 대비되어 더 눈에 띄었다.

 아무리 미루가 좋아하는 무영이래도, 저도 모르는 새 건장한 남자와 한 침대에서 잤다니.

 미루는 애써 목소리를 쥐어짜내 한 마디 했다.

 “거, 거짓말 마세요!”

 “그래.”

 그렇게 말하면서 무영은 침대로 다가오더니 미루가 누운 옆에 걸터앉았다.

 미루는 누운 채로 주춤 물러나면서, 되물었다.

 “그래, 라니요?”

 “거짓말 안 하겠다고. 네 옆에서 잤다는 거 거짓말이다. 난 궁에 있는 내 방에 가서 잤어.”

 “무영 님! 진짜!”

 갑자기 미루가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무영은 미루의 반응이 재밌어서 슬쩍 웃다가, 깜짝 놀라 미루의 얼굴을 보았다.

 미루는 아직 붉은 기가 가시지 않은 작은 얼굴에 이슬 같은 눈물방울을 매달고 있었다.

 “울어? 왜?”

 당황한 무영이 손을 뻗었으나 미루가 고개를 돌려 무영의 손을 피했다.

 난생 처음 보는 무영의 당황한 모습이건만, 미루는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결국 맺혔던 눈물을 아래로 떨구면서 미루가 투정을 늘어놓았다.

 “무영 님, 정말 너무하세요. 저는 여기서 혼자, 언제 오실지도 모르는 무영 님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무영 님은 어찌 그렇게 평온하세요? 무영 님이 저더러 나가지 말라 하셨잖아요! 그런데 어디 가셔서 뭘 하셨는지도 말씀 안 해 주시고, 놀리기만 하시고. 정말 너무하십니다.”

 무영은 우는 미루를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 허공에 손을 든 채 굳었다.

 미루는 계속해서 울먹였다.

 “얼른 말씀해 주세요! 어디 가셨기에 그렇게 오래 자리를 비우셨습니까?”

 “……연회가 있었다.”

 “연회요?”

 갑자기 미루는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무영은 그 모습에 왠지 가슴에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살짝 인상을 썼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미루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연회에 참석하느라 이리 늦게 오신 겁니까? 왜 제게는 말 안하셨습니까?”

 “그건, 네 몸이 아직…….”

 “저는 무영 님이 연회에 가는 거 싫단 말입니다! 누가 무영 님 옆에 앉을지, 무슨 일이 있을지 불안하단 말입니다.”

 “…….”

 “저는, 무환 님이 찾아오신 것도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서 힘들었는데, 무영 님은 속 편하게 연회에 다녀오시고…….”

 “뭐?”

 급작스럽게 무영이 말을 끊는 바람에 미루가 딸꾹질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좀 전의 당황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무영이 사나운 음성으로 말했다.

 “무환이 여길 어떻게 찾아와? 들어오지 못할 터인데?”

 “그, 그것이, 사실 제가 무영 님을 기다리다가.”

 “그래서? 네가 나가서 무환을 만났다는 말이냐?”

 무영의 눈이 점차 분노로 물드는 것이 보였다.

 미루는 침을 꼴깍 삼키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대체 왜 내 말을 안 들어?”

 무영이 거세게 일어서며 소리쳤다.

 진심으로 화가 난 듯한 무영의 모습에 미루는 울었던 것도 잊고 눈치를 보았다.

 “왜 네가 나서서 무환을 만나냔 말이야? 내가 널 괜히 여기에 둔 것 같으냐? 그리 쉽게 무환과 만날 수 있을 것 같으면 여기 두지도 않았다.”

 “죄, 죄송…….”

 얼른 사과를 하려다, 미루는 제 입을 두 손으로 가렸다.

 왜 이래? 지금 웃을 때야?

 그러나 아무리 참아보려 해도 슬금슬금 웃음이 비집고 올라왔다.

 설마 무영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지금 이리 화를 내는 건 미루가 무환을 만난 것을 질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전에 미루가 밖에 나갔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

 진월을 만났을 때는 이렇게 화 내지 않으셨는데.

 ‘아닐 거야. 무영 님이 내게 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미루는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미루는 최선을 다해 웃음이 나오는 입을 가렸다.

 그러나 무영의 매서운 눈길을 피할 수는 없었다.

 “웃어? 도대체 뭐가 우스워서 웃는 거냐?”

 “아, 안 웃었어요.”

 미루는 얼른 입을 가렸던 손을 내리고 정색을 했다.

 그러나 입을 아무리 일자로 다물어도 웃음의 기색을 모두 지울 수는 없었다.

 그 모습이 황당한 듯, 무영이 혀를 차며 미루를 보다, 신경질적으로 눈앞에 늘어진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때를 놓치지 않고 미루가 냉큼 끼어들었다.

 “어, 어쨌든 이게 다 무영 님이 제게 말도 없이 늦도록 안 오셨기 때문 아닙니까. 저는 무영 님을 기다리다가 우연히 마주친 거란 말입니다!”

 “너…….”

 무영은 무환이 네 앞에 나타난 건 우연이 아니라고 말하려다 관두었다.

 괜한 말로 무환에게 좋은 일을 해 줄 필요가 없었다.

 결국 무영이 화를 누그러뜨리고 다시 미루의 곁에 걸터앉았다.

 생각을 정리하는 듯 조용히 앉아있던 무영이 입을 열었다.

 “무환이 네게 무슨 얘기를 했느냐?”

 “그냥 언제나처럼 장난치시고…….”

 미루는 거짓말은 아니지 않느냐고, 스스로 납득시켰다.

 무환이 미루가 좋다고, 자신에게 미루가 특별하다고 말했다는 것은 말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행히 무영은 별 말 없이 한숨을 길게 쉬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네 말대로 내 잘못도 있는 것 같구나. 그러니…….”

 무영이 눈을 들어 미루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길게 늘어진 흰 속눈썹 밑으로 아름다운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자 미루는 가슴이 뛰었다.

 미루는 정말,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무영을 좋아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런 미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영이 마저 말을 이었다.

 “앞으로는 울지 마라. 네가 우니까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미루는 결국 참던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헤헤. 알겠습니다. 대신 약속해 주세요. 앞으로는 제가 모르는 일은 만들지 않는 걸로.”

 미루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무영이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고 미루를 보았으나, 군말 없이 제 새끼손가락도 내밀었다.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끼리 도장도 찍었다.

 그것만으로도 미루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가슴 속에 무언가 가득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

 

 일찍 파한 연회 후, 진월은 홀로 어두운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무환에게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무영에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수치를 당했다.

 모두 한낱 유약한 인간 계집 때문에!

 그것이 어떻게 무영과 무환 둘 다를 홀렸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온 이후로 진월의 앞길은 꼬이기만 했다.

 정말 그 계집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어떻게든 복수할 수만 있다면 제 모든 것을 바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도 억울하십니까? 그 한을 풀어드리려는데, 한 번 들어보시렵니까?”

 “누구얏!”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음성에 진월이 날카롭게 외치며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제 주인님께서 진월 님께 도움을 드릴 수 있다 하십니다. 그 분의 도움을 받으면, 진월 님의 바라시는 바를 이루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

 수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처음 듣는 음성에, 제 모습은 드러내지도 않는데다 진월이 무엇을 바라는지는 또 어떻게 알고 있는지.

 진월이 말이 없자 의문의 목소리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저희 주인님도 바쁘신 몸이라, 진월 님이 사양하신다면 재깍 돌아오라 명하셨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자, 잠깐!”

 정말 떠나려는 듯한 목소리에 진월이 다급하게 외쳤다.

 수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상대가 미련 없이 떠나려 하자 마음이 급해졌다.

 “정말, 내게는 도움만 준다는 게지? 아무 탈도 없이?”

 “믿으셔도 좋을 겁니다.”

 웃음기를 머금은 그 목소리에 진월이 꿀꺽 침을 삼켰다.

 마침내 결심한 듯, 진월이 음성이 들려오는 어둠 속으로 몸을 내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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