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그림자를 끌어안는 방법
작가 : 채영요
작품등록일 : 2018.9.13

이 세상의 끝에 외로이 자리한 나라, 영령(影靈)국. 그림자에서 태어난 태초신 무영이 창조한 이 세계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인간, 미루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무영이 수천 년간 찾아 헤맸던 사람이 바로 저 조그만 여인일지도 모른다. 감정이라곤 모르는 무영과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미루의 만남. 몽환적인 신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17장. 꿈이 아니라면?
작성일 : 18-10-09 18:04     조회 : 588     추천 : 0     분량 : 714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왜 그래?”

 무영이 미루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미루가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자신을 바라보니 의아해 묻는 거였다.

 미루는 무영이 코앞까지 다가오는데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왜 그러냐니.

 ‘나도 모르겠단 말입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냥 기절해버리고 싶었다.

 이제껏 무영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지냈던 것도 아니고.

 매일같이 곁에서 시중까지 들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낯설고 새삼스럽게 보이는지.

 “아직, 아프냐?”

 무영이 허리를 숙여 미루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미루는 터질 듯 빨간 얼굴을 하고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그럼?”

 또 도리도리.

 무영이 살짝 인상을 썼지만 미루는 도저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말하겠는가.

 감히 무영과 입맞춤하는 꿈을 꾸고, 그게 꿈이 아니었으면 싶어 상상하다 보니 무영이 다르게 보인다고.

 왠지 가슴이 떨리고, 얼굴을 마주하기가 부끄럽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지금 같은 공간에 마주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 쉬는 것부터가 버거웠다.

 미루가 미동도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자 무영이 한숨을 쉬더니 손짓을 했다.

 그러자 의자 하나가 부드럽게 날아오더니 미루의 무릎 뒤를 툭 쳤다.

 “앗!”

 미루는 그대로 의자에 풀썩 쓰러지듯 앉았다.

 무영도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팔걸이에 팔꿈치를 올리더니 턱을 괴고 미루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미루는 흠칫 놀라 자꾸만 무영의 시선을 피했다.

 무영의 표정이 점점 구겨졌다.

 “왜?”

 “…….”

 “아픈 것도 아니라 하고. 무슨 일 있었냐?”

 미루는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네가 거짓말도 할 줄 아는구나. 네 표정은 그게 아닌데.”

 미루가 울상을 지었다.

 역시 남을 속이는 것도 많이 해 본 사람이나 잘 하는 법이다.

 암만 미루가 아니라 해도 무영은 믿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무영은 언제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미루의 입이 무언가 말할 듯, 뻐끔뻐끔 벌어졌다 다물어졌다.

 이쯤 되면 답답할 법도 한데, 무영은 재촉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려주었다.

 한참을 쭈뼛거리던 미루가 결국 입을 열었다.

 “무영 님. 저는 아무래도 다시 제 방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왜?”

 그리 말하는 무영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러나 미루는 눈치 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냥……. 계속 이렇게 있는 것도 민폐이옵고, 저 때문에 무영 님도 편하게 지내지 못하실 거고…….”

 “왜?”

 다시 묻는 말에 미루가 고개를 들었다.

 무영은 여전히 턱을 괸 채로 미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미루는 차갑게 빛나는 무영의 눈동자를 발견했다.

 얇은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왜?”

 “예? 무엇을 묻는 것인지…….”

 “다시 네 방으로 돌아가야 하겠다는 거 말이다. 왜?”

 “…….”

 “저 때문에…….”

 “왜?”

 미루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미루를 바라보는 무영의 입가에 조소가 걸렸다.

 “지금 네가 말한 것들은 이유가 되지 않는 것 같은데. 네게 제대로 된 이유가 없다면 난 네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 없다.”

 무영의 태도는 기가 질릴 정도로 단호했다.

 미루가 단지 핑계를 대고 있다는 것을 어쩜 이리도 쉽게 간파했는지.

 거기다 무영이 무작정 이유도 없이 미루를 붙잡아 놓은 것도 아니고, 몸이 다 나을 때까지만이라 했다.

 독에서 깨어나자마자 물에 빠져 정신을 잃었던 게 바로 하루 전이다.

 몸이 다 나았다는 말도 믿어줄 리가 만무하다.

 결국 사실대로 낱낱이 고해야만 했다.

 미루는 불안하게 제 양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려니 눈물마저 그렁하게 맺히기 시작했다.

 무영은 표정변화 없이 미루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저는…….”

 미루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고개를 숙인 채 눈만 들어 무영을 한 번 본 미루는, 눈을 질끈 감더니 개미만한 목소리로 울먹였다.

 “저는, 여기 무영 님과 함께 있으면 안 된단 말입니다. 불경한 사람이 되었단 말입니다!”

 “뭐?”

 무영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으나 미루는 이제 흑흑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양 소매로는 바쁘게 눈가를 문질러 닦으며 미루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자꾸 무영 님을 가까이서 보다 보니 이상한 꿈을 꾸고, 그게 실제일까 상상까지 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가슴이 아파서 무영 님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도 없게 됐단 말입니다. 전 무영 님과 함께 지내면 안 됩니다. 방으로 돌아가게 해 주셔요.”

 “이상한 꿈?”

 언제 자리에서 일어났는지, 무영이 미루의 앞에 서 있었다.

 미루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몸을 뺐지만, 무영의 손이 의자를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무영 님. 저는 돌아가겠습니다.”

 무영이 가까이 다가오자 다시 심장이 아프게 쿵쾅대기 시작했다.

 미루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훌쩍거렸다.

 “무슨 꿈을 꾸었는데?”

 귓가에 무영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상하게 평소와 똑같은 그 목소리가 사근사근하게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다.

 미루는 여전히 얼굴을 가린 채로 울음과 함께 내뱉었다.

 “무영 님과 입맞추는 꿈을 꾸었습니다. 정말 저는 나쁜 아이입니다, 정말 나쁩니다. 어떻게 그런 불경한 꿈을…….”

 순간 미루는 말을 멈추었다.

 무영이 미루의 두 손을 붙잡아 아래로 내렸던 것이다.

 미루의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무영의 눈동자가 가볍게 훑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냉랭했던 눈빛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심지어는 살짝 웃는 것처럼 은빛의 속눈썹이 아내로 휘늘어져 있었다.

 “꿈이 아니라면?”

 “네? 그게 무슨……?”

 미루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무영의 차가운 입술이, 미루의 입술 위로 다가와 있었다.

 

 ***

 

 두 번째 입맞춤은 축축했다.

 그리고 재미있었고.

 미루가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처음 했던 입맞춤과는 달리 미루의 반응이 따라왔다.

 무영이 아랫입술을 깨물면 온 몸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입술을 벌리고 가지런한 치아를 지나 살짝 파고들면, 미루는 겁에 질린 사냥감처럼 뒤로 자꾸만 도망쳤다.

 집요하게 따라가 옭아매면 언제 도망쳤냐는 듯 정신없이 얽혀들었다.

 어느새 미루의 작은 두 팔이 무영의 목덜미에 걸려 있었다.

 미루는 무영이 이끄는 대로 잘 따라오는가 싶으면,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 무영의 애를 태웠다.

 “으음.”

 무영의 미간이 찡그려지며 신음과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미루가 앉은 의자의 등받이를 짚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정신없이 미루의 향기를 탐하고, 부드럽게 손에 감겨드는 머리칼을 헤집었다.

 “무, 무영 님!”

 자신을 부르는 미루의 목소리에 무영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미루의 입술에서 벗어나 있었다.

 제 입술은 미루의 흰 목덜미에 가 닿아 있었다.

 미루가 당황스러워하는 것이 단번에 느껴졌다.

 무영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언제부터 이렇게 정신없이 미루와의 입맞춤에 빠져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혼자 착각에 빠져 눈물까지 보이는 미루가 귀여워서, 조금 놀려줄 생각이었다.

 미루는 역시나 정말 거짓말을 못 했다.

 말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 하면서, 느껴지는 감정은 대폭 크게 일렁였다.

 그 감정과 똑 닮은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보니, 우습기도 한 한편, 짜증이 나기도 했다.

 미루는 분명히 무영을 불편해하고 있었다.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피하는 눈과, 무영의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내가 제게 뭘 했다고.’

 다 죽어가는 것을 몇 번이나 살려내 놨더니 은근슬쩍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그러면서 제 방으로 돌아간다기에, 기분은 한층 더 가라앉았다.

 이상할 정도로 이 방에서 내보내기가 싫었다.

 미루는 평생을 갇혀 지냈으니 당연히 어딘가에 붙잡혀 지내는 것을 싫어할 터이고, 스스로가 몸 상태에 대해 확신이 있다면 충분히 돌아가겠다고 할 수도 있는 법인데 기분이 너무나 나빴다.

 그래서 허튼소리라도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 옆에 묶어두려 했는데.

 고작 한다는 소리가, 불경한 꿈을 꾸었단다.

 무영의 얼굴을 자꾸만 가까이서 보았기 때문이란다.

 그게 무슨 그리 대단한 얼굴이라고, 결국 울음까지 터뜨리기에 절로 웃음이 났다.

 언제 기분이 상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유쾌해졌다.

 그 기분에 휩쓸려, 반쯤은 충동적으로 입을 맞추고 말았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온 정신을 빼앗겨 미루에게 휩쓸리고 말았다니.

 “무영 님.”

 미루가 조심스럽게 제 이름을 부르자 무영이 버릇처럼 긴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가지고 놀아 보려다, 도리어 내가 장난감이 되어 버린 꼴이군.’

 그러나,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입가에 웃음마저 피식 새어나온다.

 큰 눈으로 제 얼굴을 올려다보는 미루 때문에 자꾸만 웃음이 났다.

 “네가, 보통 인간과 같지 않은 인간이긴 한가 보구나.”

 “네? 무슨 말씀이세요?”

 “이제 꿈인지 생시인지는 구별이 되느냐? 이것도 꿈같으냐?”

 “그것이…….”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는 것을 보니 대답은 듣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그럼, 아직도 네 방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따로 있나?”

 “…….”

 미루는 가만히 고개만 저었다.

 그러더니 사뭇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래도, 몸이 다 나으면 돌아가겠습니다! 제가 실례를 범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쯧.”

 무영은 대답 대신 짧게 혀를 한 번 찼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제게 느껴지는 미루의 감정이 한결 편안해졌기에 우선은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분홍빛으로 상기된 얼굴로 가만히 무영의 눈치를 보던 미루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뭔가를 들고 무영에게 다가왔다.

 “무영 님! 저, 팔찌를 찾았습니다!”

 “팔찌?”

 “아, 실은 팔찌가 아니라 보석만 찾은 거지만……. 제가 이걸 찾으려고 무영 님 몰래 나갔더랬습니다. 용서해 주셔요.”

 무영은 미루가 내민 천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진월이군.’

 미루가 되찾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테니, 당연히 주머니에 묻어난 제 기운도 미처 지우지 못했을 것이다.

 파련옥이 담긴 천 주머니에서는 진월의 기운이 너무나 명확히도 느껴졌다.

 그러나 무영은 짐짓 모른 척, 미루에게 물었다.

 “누가 가지고 있더냐?”

 “네? 아, 그것이…….”

 미루는 눈에 보이게 우물쭈물 거렸다.

 도톰한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렸다가 잘근잘근 씹기도 하고, 커다란 눈망울은 무영을 보았다가 또 다른 곳으로 서둘러 돌린다.

 ‘하여간 거짓말에는 정말 소질이 없군.’

 무영은 또 웃음이 비집고 올라오려는 것을 참았다.

 미루가 어떤 대답을 할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찰나의 고민을 거친 미루가 나름 대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것이, 제 방 뒤에 있는 정원 있잖습니까. 제가 쓰러진 곳이요! 혹시나 해서 가 보니, 거기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끈은 왜 없지?”

 무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미루는 흠칫 놀라더니 다시 입술을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아, 이제는 정말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무영은 미루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떨어트리면서, 어딘가에 걸려 끊어졌나보지?”

 “네, 네! 그랬습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다 아는 법이 있느니라.”

 미루가 화색을 띠자 무영이 슬쩍 웃었다.

 가늘게 떴던 눈이 곱게 휘어지자 미루가 순간 넋을 놓았다.

 아무리 미색이 고운 여인이라 할지라도, 무영에 비하면 길가의 돌만 못한 처지가 되어버릴 미모였다.

 미루가 다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무영이 큰 보폭으로 걸어가 휘장을 걷었다.

 “다시 끈을 꿰라고 맡기고 오마.”

 “아, 잠시만요!”

 미루가 의미 없는 부름을 외쳤다.

 단지 무영이 웃는 얼굴을 좀 더 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던 것이다.

 그러나 무영은 이미 휘장을 걷고 밖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미루는 홀로 누각 안에 남아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

 

 밖으로 나오자마자 무영의 표정이 삽시간에 달라졌다.

 미루에게는 팔찌를 맡기러 간다 말하고 나왔으나 향하는 곳은 달랐다.

 이강에게, 앞으로의 일은 알아서 할 테니 물러가라 말했던 것은 이강이 무환의 뒤를 밟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강은 물론 기척을 숨기고 재빨리 움직이는 것에 특화된 자.

 그렇기에 무영이 자신의 가장 가까운 심복으로 삼았으나, 무환에게는 전부 소용없었다.

 무환이라면 다른 자들에게 진월과 제가 있는 곳이 텅 빈 곳으로 보이게 만들 수도 있었을 터.

 때문인지, 이 넓은 궁에 진월이 무환에게 된통 당했다는 사실은 단 한 명도 모르는 듯 했다.

 “나야 무환이 무슨 짓을 했을지 눈에 훤하지.”

 남들이 무환에 대해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다.

 대개, 무영이 항상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에 비해 무환은 다가가기 쉽고 서글서글한 성격이라고들 말한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속인지, 멍청해 보일 정도로 웃고 다니지만 무환은 절대 가벼운 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무환은…….

 “무영 님.”

 무영이 우뚝 멈춰 섰다.

 “너무 오랜만입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저만치에서 무영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무영이 흥미롭다는 듯,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가연 아니냐.”

 호리호리한 몸매의 여인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살짝 허리를 숙였다.

 가녀린 목덜미와 어깨를 타고, 아주 짙어 검은빛으로 보이는 녹색 머리칼이 흘러내렸다.

 “네가 여기는 웬일이냐?”

 “그러게 말입니다. 이게 다 갑자기 궁에 돌아오신 무환 님 때문 아니겠어요?”

 그리 말하면서 가연은 시원스레 웃었다.

 무환의 정혼자로, 백여 년 전 무환과 함께 궁을 떠났던 가연.

 계절의 신인 가연은 어느 날 무환과 자신이 운명으로 이어져 있다는 예언에 따라, 혼인을 하기 위해 떠났었다.

 그런데 어쩐 이유인지, 혼인은 하지 않고 무환 혼자 돌아왔었다.

 무영은 그 이유가 의문스럽기는 했으나, 무환의 일이니 묻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가연까지 돌아왔다.

 “이상하군.”

 “무엇이 말입니까?”

 “너와 무환이 하는 짓이 말이다.”

 “그러신가요? 후후, 하긴 제가 생각해도 우습습니다. 저도 무환 님께 여쭐 게 많습니다. 만나면 아주 혼쭐을 내 드려야겠어요.”

 가연이 주먹마저 불끈 쥐어 보이며 말했다.

 이런 성격 덕분에, 가연은 언제나 인기가 많았다.

 밝고 활발한데다 기품까지 넘치고, 미모야 두말하면 입이 아픈 가연이 무환과 떠날 때 가슴을 치고 슬퍼한 남자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영은 피식 웃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넌 여전하구나. 마침 나도 무환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잘 되었다.”

 가연이 무영의 곁을 따르며 물었다.

 “무영 님은 그간 별 일 없으셨습니까? 무환 님이 성가시게 하지는 않으셨고요?”

 “무환이 하는 일이야 늘 그렇지. 지금도 너무 성가셔 죽겠으니, 얼른 데리고 떠나버려.”

 “후후, 무환 님이 오랜만에 오셔서 도대체 어찌 괴롭히시기에?”

 무영은 대답하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무환에게 직접 물어봐.”

 무영이 가리킨 곳에 무환이 서 있었다.

 “무환 님!”

 가연이 달려가 무환의 목에 매달렸다.

 복도 끝에 서 있던 무환의 얼굴에 황당함이 스쳤다.

 “무환 님, 도무지 안 돌아오시기에 제가 왔습니다. 여기서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무환은 가연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무영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무영, 네가 가연을 불렀냐?”

 아주 낯선 표정이 무환의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5 24장. 그 마음이 내게 향했더라면……. 2018 / 10 / 25 249 0 7150   
24 23장. 어디를 가? 2018 / 10 / 23 251 0 7105   
23 22장. 연모하고 있습니다. 2018 / 10 / 19 231 0 7177   
22 21장. 저주가 풀리다 2018 / 10 / 18 250 0 7323   
21 20장. 모두 마음에 든다. 2018 / 10 / 16 261 0 7440   
20 19장. 약속해 주세요. 2018 / 10 / 12 267 0 7578   
19 18장. 아가씨를 보고 싶어서 온 건 나잖아. 2018 / 10 / 11 250 0 7202   
18 17장. 꿈이 아니라면? 2018 / 10 / 9 589 0 7143   
17 16장. 각자의 마음 2018 / 10 / 5 274 0 7402   
16 15장. 입맞춤 2018 / 10 / 4 273 0 7160   
15 14장. 나와 지내는 것이 싫으냐? 2018 / 10 / 2 262 0 7591   
14 13장. 네 옷을 벗겨야겠다. 2018 / 9 / 28 269 0 7604   
13 12장. 사라진 파련옥 2018 / 9 / 27 277 0 7490   
12 11장. 절대 빼지 말거라. 2018 / 9 / 25 256 0 7410   
11 10장. 그렇게 시중을 들고 싶으냔 말이다. 2018 / 9 / 21 246 0 7665   
10 9장. 연회 2018 / 9 / 20 239 0 7373   
9 8장. 옷을 직접 갈아입히라니. 2018 / 9 / 18 262 0 7740   
8 7장. 내 손을 잡으란 말이다. 2018 / 9 / 13 246 0 7255   
7 6장. 예쁜 아가씨 2018 / 9 / 13 256 0 6834   
6 5장. 신계(2) 2018 / 9 / 13 248 0 8391   
5 4장. 신계(1) 2018 / 9 / 13 250 0 7177   
4 3장. 미루, 사라지다 2018 / 9 / 13 265 0 7495   
3 2장. 오늘 다시 오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2018 / 9 / 13 234 0 7652   
2 1장. 가자. 2018 / 9 / 13 254 0 7578   
1 프롤로그. 2018 / 9 / 13 438 0 736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