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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그림자를 끌어안는 방법
작가 : 채영요
작품등록일 : 2018.9.13

이 세상의 끝에 외로이 자리한 나라, 영령(影靈)국. 그림자에서 태어난 태초신 무영이 창조한 이 세계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인간, 미루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무영이 수천 년간 찾아 헤맸던 사람이 바로 저 조그만 여인일지도 모른다. 감정이라곤 모르는 무영과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미루의 만남. 몽환적인 신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16장. 각자의 마음
작성일 : 18-10-05 18:02     조회 : 273     추천 : 0     분량 : 7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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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영의 입술도 딱 미루의 것만큼 벌어져있었다.

 촉촉이 물기를 머금은 미루의 입술에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완벽하게 입술을 포갰다.

 차분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미루의 입 안으로 숨을 불어 넣었다.

 자꾸만 무거운 고개가 뒤로 떨어지려 해 왼손을 들어 차가운 뺨을 단단히 붙잡았다.

 숨을 불어넣고, 입술을 떼고 미루의 반응을 살핀 후 다시 숨을 불어넣기를 여러 번.

 “콜록! 콜록!”

 별안간 미루가 인상을 찡그리며 왈칵 물을 토해냈다.

 투명한 액체가 턱 너머로 길게 흘러내렸다.

 무영은 잠자코 소매를 들어 얼굴의 물기를 닦아주었다.

 물은 토했지만 미루는 깨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얕은 숨만을 간신히 내쉬고 있었다.

 무영은 미루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자꾸만, 미루의 입술에 시선이 갔다.

 이제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으니 입을 맞대어야 할 필요는 없을 터인데.

 그런데 계속 미루의 입술에 제 입술을 겹치고 싶었다.

 끊임없이 미루의 입술에서 느꼈던 감촉과 향내를 탐하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말랑한 살을 짓누르고, 핥고, 간지럽히고 싶었다.

 여전히 작은 입술에 머물러있는 물기를 모조리 빨아들이고 싶었다.

 더 생각할 여유도 없이, 무영은 다시 고개를 숙여 미루에게 입을 맞추었다.

 거의 무의식중의 일이었다.

 다만 조금 전과는 입맞춤의 형태가 달랐다.

 적극적으로 미루의 입술을 벌리고, 혀를 뻗어 가지런하고 매끈한 치아를 훑었다.

 조금 더 파고들자 부드러운 둥근 살에 혀가 닿았다.

 뱀처럼 휘감아 여리고 통통한 과육을 잡아먹을 듯 탐했다.

 미루의 뺨을 붙잡았던 손에는 힘이 한껏 들어갔다.

 몸에 열이 올랐다.

 가지고 싶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데도 미루를 가지고 싶었다.

 몹시 맛이 좋은 과일은 한 번 맛을 보면 자꾸만 그 맛이 떠오른다 했던가.

 미루에게 입을 맞춘 이후로 무영의 머리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미루에게서 풍기는 향기, 보드라운 살결의 느낌, 점차로 가빠지는 숨결만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얼마 후 무영이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은은히 빛나는 은발의 긴 머리칼이 다소 흐트러져 있었으나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미루는 여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였으나, 무영과 같이 몸에 열이 올라 있었다.

 무영이 나지막이 웃었다.

 “적어도 이제 춥지는 않겠군.”

 무영은 미루의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넘겨주었다.

 그러고 보니, 미루는 여전히 푹 젖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몇 번 손가락을 흔들자 미루의 몸을 온통 적시고 있던 물기가 증발했다.

 금세 보송해진 옷 안에서, 미루가 편안해진 얼굴로 몸을 뒤틀었다.

 무영의 무릎을 베고 있던 머리가 무영의 몸을 향해 돌아갔다.

 무영의 흰 속눈썹이 부드럽게 깜빡였다.

 작은 코로 내쉬는 숨결이 무영의 옷을 꿰뚫고 맨 살에 와 닿는 것처럼 간질거렸다.

 이 기분이 어떤 감정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미루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눈에서 멀어지면 불안하고.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화부터 나고, 기뻐하는 얼굴이 보고 싶어서 자꾸만 뭘 주고 싶고.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이런 생각을 가져본 적 없었다.

 그러나 하나, 무영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미루를 잃고 싶지 않다. 다른 누군가에게 주고 싶지도 않다.

 “너는 내 것이다.”

 무영이 미루를 향해 속삭였다.

 매서운 눈매 속의 눈동자가, 전에 없이 부드럽게 풀어져 있었다.

 “너는 내 것이다.”

 되풀이되는 말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미루의 손 안에, 파련옥이 담긴 천 주머니가 꼭 쥐어져 있었다.

 

 ***

 

 이강이 돌아오지 않는다.

 이미 돌아오고도 한참 남았을 시간인데, 이상했다.

 결국 무영은 미루를 안고 별채로 돌아갔다.

 밤이 깊어가면서 공기가 점점 차지는데 미루를 마냥 바깥에 눕혀둘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강 정도라면 무슨 일을 당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고, 단지 무슨 연고가 있으리라 판단했다.

 이강은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나타났다.

 이강의 기척을 느낀 무영이 장막을 걷고 바깥으로 나오자 이강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무영 님. 늦게 돌아와 죄송합니다.”

 “…….”

 무영은 대답 대신 이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아챈 이강이 설명을 시작했다.

 “도망친 자의 흔적을 뒤쫓다, 문제가 생겨 확인하느라 늦어졌습니다.”

 “문제라니?”

 “그것이, 좀 이상합니다. 이전에는 작정하고 흔적을 지운 듯한 티가 나 제가 찾지 못했다면, 이번에는 중간에 흔적이 갑자기 뚝 끊겼습니다.”

 이강의 소년 같은 얼굴에 심각한 표정이 어렸다.

 “제 생각에는, 미루 님을 밀친 자가 아닌 다른 제삼자가 갑자기 끼어들어 흔적을 지운 것 같습니다. 덕분에 남아있던 흔적 또한 미미해 확실치 않았고, 결국은 어디로 도망을 쳤는지 끝까지 행적을 쫓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환이군.”

 대번에 무영이 중얼거렸다.

 맹수가 사냥감을 노리듯, 위협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무환 님이요?”

 “네가 전혀 알아내지 못할 정도로 묘한 술수로 그리 말끔하게 흔적을 지워버릴 정도면 무환 밖에 없지. 다른 신이 어설프게 중간에 끼어든 거라면 네가 알아챌 수 있었을 거다.”

 무영은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은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루를 두 번이나 죽을 고비에 밀어 넣은 자를 드디어 찾나 했더니 무환이 끼어들어 망쳐버린 것이다.

 ‘도대체 그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무환이 도망친 자를 보호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환이 직접 사주한 게 아니고서야 그럴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무영이 해결하려 하는 일을 중간에 제가 가로채려는 것일 텐데…….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무환이 미루에게 직접 접근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미루의 일에 참견하는 것부터가 불쾌하다.

 “앞으로의 일은 내가 알아서 하마. 이강, 넌 물러가도 좋다. 수고했다.”

 “예.”

 이강을 보내고, 무영은 미루가 누워있는 별채로 돌아갔다.

 

 ***

 

 진월은 제 침소에 숨어들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당장이라도 누가 들이닥쳐서 진월을 잡아 내몰 것만 같았다.

 방 안을 산만하게 왔다 갔다 하며 손톱을 물어뜯던 진월이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그 인간 계집, 죽은 걸까? 죽었겠지? 죽었어야 할 텐데.”

 죽지 않았다면 더 곤란하다.

 미루가 물에 빠진 후,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도망을 쳤지 않는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미루를 밀쳐 연못에 빠뜨리고도 도망친 죄는 누구라도 물을 것이다.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거, 미루가 죽어버렸다면 일처리가 더 쉬워질 수도 있다.

 “시체는 말을 못 하니 내가 범인인지는 찾는 게 쉽지 않겠지.”

 그 장면을 본 것은 진월의 심복들밖에 없을 터였다.

 다른 자가 있었다면 그들이 진월에게 즉각 알렸을 것이다.

 그러니 주위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심복들의 입단속만 단단히 시키면 된다.

 맨입으로 안 된다면 패물이든 지위든 안겨 주고, 그래도 안 된다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면 되지.

 진월은 아예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무영 님이 나를 벌하려면 진작 하셨을 텐데, 아침이 밝도록 그럴 기미도 안 보이는 걸 보아 내 짓인지 모르시는 게 분명하다.’

 그리 생각하자 억지로나마 웃음을 지을 수도 있게 되었다.

 진월은 가벼운 걸음으로 화장대 앞에 앉아 문밖을 향해 거세게 짜증을 부렸다.

 “야! 시간이 이렇게나 됐는데 무얼 하는 거야? 어서 들어와서 단장하지 못해?”

 “죄, 죄송합니다!”

 방문을 열고 시녀들 여럿이 들어오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생각할 것이 많다며, 부를 때까지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더니 그새 또 변덕이었다.

 진월이 지금은 거울을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지만, 언제 또 돌변해 닥치는 대로 시녀를 들들 볶을지 모르기에 방 안의 분위기는 살얼음판이었다.

 진월이 시녀들이 공들여 틀어 올린 머리를 거울을 통해 이리저리 살피는데, 밖에서 기척이 들렸다.

 “진월 님. 전갈입니다.”

 진월이 순식간에 얼굴을 굳히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목덜미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 계집이 살았나? 무, 무영 님이 결국 모두 알아채신 건가.’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은 의외였다.

 “무환 님이 조반을 함께 하자 하십니다. 아침부터 반주도 하려 하시는데, 말동무가 필요해 진월 님을 찾는다 전하라 하셨습니다.”

 “무, 무환 님이?”

 불안하게 뛰던 가슴이 차츰 잦아들었다.

 무영도 아니고, 무환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술과 잔치를 좋아하는 무환은 궁을 떠나기 전 진월과 술친구로 자주 어울리곤 했으니.

 다시 돌아오고서도 그때와 같은 이유로 진월을 찾는 것이리라.

 거기다 미루에게 일어났던 며칠 전의 사건과 어제의 일을 무환이 알 리도 없었다.

 진월은 여유를 되찾고 방을 나섰다.

 “진월, 여기야.”

 진월의 방에서 조금 떨어진 정원에 지어진 야트막한 정자에 무환이 앉아 손을 흔들고 있었다.

 “무환 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진월은 어여쁜 얼굴에 눈웃음을 흘리며 인사했다.

 무환도 진월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짓했다.

 “그럼, 어서 이리 올라와. 우리 간만에 술이나 한 잔 하지.”

 “후후, 이리 이른 시간부터 저를 찾아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아, 그저 나처럼 이 시간에도 술을 마셔줄만한 건 진월 뿐이라 그런 거지. 너를 괴롭히려는 건 아냐.”

 “괴롭히신다니요. 전혀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월은 길게 늘어진 소매를 살짝 걷고 무환이 따라주는 술잔을 받았다.

 과실주인 듯 향은 감미로웠으나, 한입에 털어 마시자 목을 태우는 느낌이 상당히 독한 술인 듯 했다.

 그런 진월에게 무환은 다정히 안주를 직접 집어 주었다.

 “어머, 무환 님.”

 진월은 부끄러운 듯 살짝 얼굴을 붉히고는 얼른 무환이 내미는 안주를 받아먹었다.

 ‘그래, 무환 님도 좋지. 얼굴이야 무영 님과 똑같으시고. 성격도 훨씬 유들유들하시니. 오히려 무환 님의 눈에 드는 게 나을지도 몰라.’

 진월은 한껏 더 눈웃음을 지으면서 무환의 술잔을 채웠다.

 잔에 찰랑이도록 채워지는 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무환이, 문득 입을 열었다.

 “그래, 진월. 인간을 죽이고 먹는 술맛은 어때?”

 “네, 네?”

 쨍그랑! 진월이 들고 있던 술병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술이 온통 진월에게 튀었으나 진월은 술병이 깨진 것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그, 그게, 무슨…….”

 “진월. 내가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 무환은 살며시 몸을 숙여 진월의 턱을 붙잡았다.

 새카만 속눈썹 밑으로 보석처럼 반짝이는 회녹색 눈동자가 진월을 똑바로 향했다.

 무환의 아름다운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이런 와중에도 진월은 가슴이 설레었다.

 “무, 무환 님…….”

 “진월, 너는 참 볼수록 곱단 말이지. 이 얼굴이며, 몸가짐이며. 어느 하나 모난 것이 없이 아름다워. 타고난 미인이라 칭송할 법 하구나.”

 “…….”

 “네 성품도 얼굴만큼 고왔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리 말하는 무환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식었다.

 진월이 어깨를 눈에 보일 정도로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추웠다. 사방에 햇볕이 쨍쨍한데 이상하리만치 무환과 앉아있는 이 정자 안만 사무치게 추웠다.

 제 턱을 붙잡은 손에서 공포가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진월의 턱을 그대로 으스러뜨릴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위화감이 느껴졌다.

 “무, 무…….”

 진월은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무환의 무겁게 가라앉은 얼굴.

 언제나 차가운 표정의 무영과는 차원이 달랐다.

 손바닥 뒤집듯 완전히 달라진 표정에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감이 흘렀다.

 그저 조용히 바라보기만 할 뿐인데 진월은 당장이라도 숨통이 끊길 것만 같았다.

 죽음. 죽음 그 자체의 기운이었다.

 “표정 풀어. 죽이는 건 무영의 일이지, 내 일이 아냐.”

 무환이 싱긋 웃자 진월이 눈물까지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다만, 진월 네가 아직도 살아있는 건 인간 아가씨가 죽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둬. 죽은 줄 알았나? 아니면, 죽기를 바라고 도망친 건가?”

 “…….”

 “네게만 눈이 있고 귀가 있는 것 같지? 조심해. 너보다 훨씬 멀리 보고 크게 듣는 자가 많다는 걸 명심해.”

 “…….”

 “네가 당장에 죽는 건 나도 원치 않아서, 무영에게 네 기운을 숨겨 준 거야. 너도 무영을 만나느니 나를 만나는 게 나았지?”

 아니었다. 결단코 아니었다.

 그러나 진월은 꼼짝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무환이 진월의 얼굴을 놓아주었다.

 느긋한 동작으로 술잔을 들어 단숨에 마신 무환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으로, 더 가까이서 너를 지켜볼 거야. 또 아가씨를 죽이려 든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진월, 네가 찬찬히 생각해 봐.”

 무환이 휙 떠나버리고, 진월 홀로 정자 안에 남았다.

 술과 깨진 도자기 파편으로 옷이 엉망이 되어 있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참 뒤 진월이 부리는 시녀들이 달려와 부축해 일으킬 때까지, 진월은 넋이 나간 채로 주저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

 

 미루는 무영이 자리를 비웠을 때 벌써 일어나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미루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파련옥이었다.

 “내, 내 팔찌.”

 황급히 확인한 제 손아귀 안에는 천 주머니가 얌전히 쥐여져 있었다.

 그제야 미루가 몸에 힘을 풀고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다행이다…….”

 이것 때문에 무영 몰래 밖으로 나가 진월을 만났는데.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면 너무 억울하고 슬펐을 것 같다.

 그런데, 또다시 무영의 별채로 돌아온 것을 보니.

 “또 무영 님이 나를 구해주셨구나.”

 연못에 빠져 그대로 죽는 줄 알았는데.

 무영이 어떻게 미루를 발견해 물에서 건져내고, 다시 데려온 것이 분명했다.

 미루의 얼굴이 시무룩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민폐만 끼치는구나.”

 팔찌만큼은 스스로 찾아오겠다고 다짐해 일을 벌였는데, 결국은 무영의 도움을 받아 살아나지 않았는가.

 무영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러고 보니 무영은 미루가 어디에 있든 귀신처럼 나타난다.

 영령국에 있었을 때도, 신들이 사는 이곳에 와서도 언제나 그랬다.

 이제는 미루가 무영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영을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하고 말랑말랑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간지럽기도 하고 조금은 불편하기도 한 기분이었지만 좋았다.

 무영이 없을 때면 그립고 함께 있을 때면 더 심해지는 이상한 현상이었다.

 문득, 미루는 얕은 잠결에 꾸었던 것 같은 꿈을 떠올렸다.

 ‘무영 님과 내가…….’

 입을 맞추는 꿈을 꾸었다.

 미루는 괜스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손부채질을 했다.

 어쩌자고 이런 꿈을 꾼 건지.

 꿈속에서, 미루는 무영을 원했다.

 무영이 미루에게 입을 맞추고, 부드럽게 입 안을 헤집는 것을 끊임없이 원했다.

 그리고 무영도 미루를 그만큼 원하는 것 같았다.

 한낱 꿈이었으나, 너무 생생해서 미루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렸다.

 ‘진짜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핫!’

 순간 미루는 화들짝 놀라 제 스스로 손뼉을 짝 쳤다.

 “미쳤어? 미쳤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미루는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머릿속에서 무영과의 입맞춤이 떠나지 않았다.

 “뭘 하고 있는 거냐?”

 급작스럽게 들려온 무영의 목소리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돌아다니던 미루의 발이 멈추었다.

 “무, 무영 님 오셨어요.”

 미루는 멋쩍게 웃으며 무영의 음성이 들린 방향을 향해 몸을 틀었다.

 무영이 휘장을 반쯤 걷어 팔에 걸친 채로, 난간에 기대어 비스듬하게 서 있었다.

 “춤이라도 추는 거냐? 어디, 계속해 보거라.”

 미끈한 입가에 재미있다는 듯 미소가 걸렸다.

 그러나 미루는 웃지 못했다.

 딱딱하게 굳어 무영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무영의 얼굴을 바라보자, 삐딱하게 웃고 있는 그의 입술을 보자 모든 생각이 휘발되어 날아가 버렸다.

 미루의 몸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심장뿐이었다.

 뱃속까지 울릴 정도로 아프게 뛰고 있었다.

 내, 내가 왜 이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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