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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그림자를 끌어안는 방법
작가 : 채영요
작품등록일 : 2018.9.13

이 세상의 끝에 외로이 자리한 나라, 영령(影靈)국. 그림자에서 태어난 태초신 무영이 창조한 이 세계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인간, 미루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무영이 수천 년간 찾아 헤맸던 사람이 바로 저 조그만 여인일지도 모른다. 감정이라곤 모르는 무영과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미루의 만남. 몽환적인 신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15장. 입맞춤
작성일 : 18-10-04 18:06     조회 : 272     추천 : 0     분량 : 7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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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미루가 무영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독을 뿌린 자가 누군지 알겠냐는 질문에 모르겠다 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미루가 당시에 누군가의 얼굴을 본 것도, 음성을 들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나 어딘가 짚이는 것은 있었다.

 처음에는 약간 긴가민가했으나, 나중에는 거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도 무영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미루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내가 직접 찾아와야 한다.’

 아마 독을 뿌린 자와 파련옥 팔찌를 가져간 자는 같은 인물일 것이다.

 파련옥 팔찌는 반드시 직접 찾아와야만 했다.

 잃어버린 것은 미루 자신이니, 찾아오는 것도 제 몫이라 생각했다.

 하여, 잠든 체 누워 무영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무영이 자리를 뜨지 않으면, 어떻게든 핑계라도 대서 밖으로 나갈 작정이었는데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무영이 누각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도 미루는 한참 그대로 누워있다 몸을 일으켰다.

 달이 어찌나 밝은지 한밤중인데도 누각 안이 은빛으로 환했다.

 계단을 향해 가는 미루의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혼자 있는데도 누구에게 들키기라도 할라, 발꿈치를 든 채였다.

 휘장을 걷어낸 미루는 차분하게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혹 무영이 정원에 있을까, 했지만 정원에는 쥐새끼 한 마리조차 없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잔디 위를 걸어 반구 형태의 장막 앞에 도착했다.

 미루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 나간담.”

 막상 뭔지 알 수 없는 이 장막 앞에 서니 막막했다.

 무영이 앞으로는 미루도 드나들 수 있을 거라고 했던 말만 듣고 막연히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미루는 옆으로 왔다 갔다 하며 어떻게 해야 나갈 수 있을지 고민에 잠겼다.

 “이거, 만져도 되나? 어라.”

 무심코 손을 들었던 미루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거두었다.

 아직 만지지도 않았는데 장막이 딱 미루가 지나갈 수 있을 만큼만 길게 세로로 갈라졌다.

 미루는 눈치를 보다가 그 틈으로 쏙 빠져나갔다.

 뒤를 돌아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장막은 다시 흔적도 없이 매끈해져 있었다.

 신기하긴 했지만 계속 구경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미루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무영에게 들키기 전에 얼른 팔찌를 찾아서 돌아가야 했다.

 무영을 속일 생각을 없었으나, 남들과 접촉하지 말라 했으니 분명 미루를 내보내주지 않을 터였다.

 이 넓디넓은 궁에서 미루가 생각하는 딱 한 명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자가 지금 어디 있는지는 미루가 알 턱이 없었다.

 그러나 미루에게도 생각이 있었다.

 미루는 우선 가장 한적하고 넓은 곳을 찾았다.

 몇 분 헤매고 나니 적당한 장소가 나타났다.

 다른 건물들 사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널찍한 정원이었다.

 커다란 연못이 있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우거진 곳이었지만 인적은 드문 듯 가장자리에 풀이 길게 자라 있었다.

 미루는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미루가 직접 찾지 않아도, 미루의 앞에 나타날 것이었다.

 꼿꼿이 선 미루의 머리 위로 흰 보름달이 은은한 빛을 한층 더 뿌렸다.

 미루의 발밑으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한줄기 바람이 살랑, 불며 미루의 긴 머리칼을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

 

 “아주 멀쩡해 보이는구나?”

 사근사근한 목소리에 미루가 고개를 돌렸다.

 “진월 님.”

 미루가 고개를 숙이자 진월이 싸늘한 미소를 띠었다.

 잠자리에서 급히 나왔는지 흰 말기치마 위에 어깨가 훤히 비치는 겉옷을 대충 걸치고 있었다.

 진월이 미루를 향해 다가오자 풀이 밟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여기는 어쩐 일이냐?”

 미루보다 키가 큰 진월이 가까이 서자 미루의 코앞에 진월의 턱 끝이 닿을 듯 했다.

 미루는 물러서지 않고 대답했다.

 “진월 님은 어쩐 일이십니까?”

 “후후, 여전히 건방지구나. 묻는 말에는 답도 하지 않고.”

 진월이 미루를 훑어보듯 주위를 한바퀴 빙 돌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미루는 긴장으로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두 주먹을 꾹 쥐었다.

 빨리 용건만 말하고, 일을 해결해서 돌아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진월이 다시 미루의 앞에 돌아왔을 때, 미루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진월을 쏘아보았다.

 “진월 님. 제 파련옥 팔찌, 돌려주십시오.”

 “뭐?”

 “진월 님이 가져가신 제 팔찌 말입니다. 돌려주신다면 제게 독을 뿌리신 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네가 미친 게로구나? 어디 엄한 사람을 잡으려 들어?”

 진월은 전혀 당황한 기색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한껏 도도한 얼굴로 미루를 내려다보며 하찮다는 듯 고운 콧등을 찡그렸다.

 그러나 미루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는 왜 오셨습니까? 제가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아시고 찾아 오셨습니까?”

 “그걸 네가 알아서 뭣 하겠냐? 나는 밤 산책도 못 하느냐?”

 “여기가 산책할 만한 곳은 아닙니다. 그리고 진월 님께서 설마 그런 차림으로 산책을 다니신다고 말씀하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어깨가 다 비치는 제 옷차림을 내려다본 진월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옷섶을 여몄다.

 때를 놓치지 않고 미루가 말을 이었다.

 “제가 여기에 가만히 서 있었던 것은, 제가 찾지 않아도 진월 님이 오실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진월 님이 분명 저를 지켜보는 눈을 궁 안에 심어두셨을 테니, 제가 나타나면 그들이 진월 님께 알렸을 테지요.”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는구나.”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유기가 제 곁을 떠나자마자 진월 님이 제게 나타나서 독을 뿌릴 수 있었겠습니까?”

 “드, 듣자하니 정말 도를 넘는구나. 확실치도 않은 일을 가지고 지금 뭐 하는 것이냐?”

 진월은 표정관리는 나름대로 잘 하고 있었으나 목소리가 떨리고 말았다.

 미루는 담담하게 진월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월 님 말씀대로 제 손에 쥐어지는 물증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그날 쓰러지기 직전에 진월 님이 다가오셨다는 것은 분명 느꼈지요.”

 “난 네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더는 할 말 없으니 나는 이만 가보겠어.”

 “만일 진월 님이 향수만 바르지 않으셨다면 저도 영영토록 몰랐을 겁니다. 진월 님이 처음 저를 마주쳤을 때, 그리고 연회에 오셨을 때! 그때도 맡았던 향이 그날 쓰러지기 직전에도 그대로 났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향내가 진월 님에게서 풍깁니다.”

 “…….”

 “이제 발뺌은 그만 하세요. 제 부탁대로, 팔찌만 돌려주시면 독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겠습니다.”

 미루의 까만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진월을 향해 있었다.

 그 눈에 자신의 얼굴이 비치자 진월은 수치심마저 느꼈다.

 향수라니.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항상 버릇처럼 바르는 것이라 아무 생각이 없었다.

 모든 흔적은 완벽히 지웠는데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미루가 알아챌 줄은 몰랐다.

 그 이강마저 진월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하기에 완벽히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다.

 미루를 완전히 죽게 만들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한동안은 쓰러져 고생할 테니 화풀이는 했다고 좋아하던 참이었다.

 ‘이 인간 계집이. 생각보다 그렇게 멍청한 건 아닌가보군.’

 진월이 무섭게 노려보는데도 미루는 눈조차 돌리지 않는다.

 그 모습에 더 약이 올랐으나 당장은 어쩔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계속 잡아뗄 수밖에 없다.

 “없는 것을 어떻게 돌려준단 말이야?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이미 여러 번 말했다. 계속 모함한다면, 나도 가만있지 않겠어. 어디 무영 님께 알리겠다면 알려 봐.”

 진월이 이리도 당당히 구는 것에는 설마 무영 님이 자신을 벌할까 싶은 심정도 한몫했다.

 미루도 인정했다시피 확실한 증거는 없고, 아무리 미루를 무영이 남달리 대한다 해도 진월이 알고 지낸 시간이 훨씬 길었다.

 진월에게 애정을 준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간 무영에게 들인 정성이며 애교가 얼만데.

 ‘그리 쉽게 내 소행이라고 단정 짓지는 않을 것이다.’

 진월은 마지막으로 미루를 한 번 흘겨보고 몸을 돌렸다.

 그런데.

 “진월 님! 이대로 보내드릴 수는 없습니다!”

 미루가 돌아서는 진월의 손목을 덥석 붙잡으며 외쳤다.

 그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진월은 순간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진월이 앞으로 몸이 확 쏠렸다 간신히 몸을 바로 세우는데, 품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가 튀어나왔다.

 “안 돼!”

 진월이 새된 목소리와 함께 손을 뻗었지만 주머니는 잔디밭으로 툭 떨어지고 말았다.

 미루의 눈이 바닥에 힘없이 떨어지는 천 주머니를, 그리고 그 안에서 굴러 나오는 빛나는 구슬 몇 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제기랄, 저리 꺼져!”

 진월이 욕설을 내뱉으며 미루를 거칠게 밀어내고 주머니로 달려들었다.

 진월의 심장이 거세게 쿵쾅거렸다.

 ‘이를 어찌한다? 아, 정말 어찌한단 말이야?’

 파련옥이 워낙 진귀한 보석이기에, 방에 그저 내버려두기 불안해서 언제나 몸에 품고 다닌 것이 사단이었다.

 진월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래도 팔찌가 아니니 잡아떼면 넘어갈 수도 있다. 네 팔찌가 아니라고, 내가 따로 지니고 있던 보석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팔찌를 그대로 하고 다니기에는 무영의 눈이 두려워, 새로 목걸이든 귀걸이든 만들려고 끈을 끊어 파련옥만 따로 모아두었다.

 진월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주머니에 굴러 나온 파련옥을 다시 잘 담아서 몸을 일으켰다.

 미루는 무섭도록 말이 없었다.

 진월은 목을 가다듬으며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이, 이건. 네가 찾는 게 아니다. 너도 봤다시피 팔찌가 아니지 않느냐? 내가 새로 사 둔 파련옥이니라. 너도 봤으니 알겠지. 나는 이만 가보겠다.”

 그러나 진월은 떠날 수 없었다.

 미루가 어느새 진월의 팔뚝에 달라붙어 힘을 쓰고 있었다.

 “이리 주세요!”

 “뭐야? 이거 놓지 못해? 네 팔찌가 아니래도!”

 “거짓말 마세요. 유기가, 제 팔찌는 유달리 파련옥의 크기가 크다고 했습니다. 그리 큰 건 유기도 처음 본다고 했어요!”

 “에잇, 이거 놓으라니까! 나도 이 파련옥이 하도 크기에 귀한 것이다 싶어 사 놓은 것이다. 놔!”

 “그리하면 제가 직접 살펴보겠습니다. 정말 제 것이 아니라면, 제가 직접 보고 돌려드리면 될 거 아닙니까!”

 미루는 집요했다.

 저보다 키도 크고 몸도 단단한 진월에게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진월이 아무리 주머니를 쥔 손을 피해도 미루는 끝까지 주머니를 빼앗을 작정이었다.

 결국은 몸싸움으로 번지고 말았다.

 진월은 점점 미루를 밀어내기가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이, 이 계집 미친 거 아니야?’

 분명 독에 중독되었다 깨어났으니 몸상태가 온전치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눈에는 눈물마저 맺혀 죽을힘을 다해 달려드는 미루를 그저 피하기만 할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는 파련옥이 든 주머니를 빼앗겨버릴 게 뻔했다.

 순간 미루의 손이 진월이 들고 있던 주머니에 가 닿았다.

 진월은 깜짝 놀라 비명과 함께 미루를 강하게 밀쳐냈다.

 “꺅! 저, 저리 비켜!”

 “앗!”

 어찌나 세게 밀었는지 미루가 저만치 날아가다시피 나동그라졌다.

 그런데, 하필이면 미루가 떠밀린 곳이 연못 근처였다.

 그대로 비틀거리다 뒤로 고꾸라진 미루는 연못 안으로 풍덩 빠지고 말았다.

 “아, 안 돼!”

 진월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다급하게 연못 근처까지 뛰어간 진월은 어두운 연못의 표면을 내려다보았다.

 제 일그러진 얼굴만 비칠 뿐, 연못의 안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나, 나는…….”

 겁에 질려 뒤로 비척비척 물러난 진월은 문득 사방을 미친 듯이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뭐가 빠지기라도 했냐는 듯 고요한 연못을 뒤로한 채, 진월은 부리나케 달아나고 말았다.

 

 ***

 

 물 안에 수십 개의 팔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미루는 꼼짝도 하지 않는데 끊임없이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물 안에도 누가 사나봐.’

 누가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무겁게 가라앉을 리가 없었다.

 미루는 간신히 눈을 떠 제 손아귀를 바라보았다.

 진월에게 떠밀리기 전 빼앗은 조그만 천 주머니가 꼭 쥐어져 있었다.

 ‘그래도 찾았다. 내 팔찌…….’

 미루는 점점 숨이 막혀왔다.

 미루의 입에서 큰 공기방울이 터져 나왔다.

 ‘수영을 배워둘걸.’

 그러다 속으로 웃음이 터졌다.

 깊은 물에 들어가 볼 기회도 없이 집 안에서만 살았는데 수영은 무슨 수영.

 하다못해 물에 빠져본 적이라도 있다면 어떻게 움직여야 물에 뜨는지 정도는 알지 않았을까.

 ‘할머니. 집 밖으로 나가면 위험한 것들이 너무 많다고 하셨죠. 위험에도 처해본 적이 있어야 다음번에 헤쳐 나갈 수 있는 건가 봐요.’

 저 멀리 수면이 보였다.

 어두운 방 안에 홀로 매달린 등롱처럼, 달이 동그랗게 떠 있었다.

 이제 머리 안에서 자그만 기포들이 팡팡 터지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숨을 들이쉬기 위해 미루가 저도 모르게 버둥거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몸뚱이가 축 늘어졌다.

 누군가 물에 풍덩 뛰어든 것은 미루가 완전히 정신을 잃고 난 후였다.

 

 ***

 

 “무영 님!”

 다급한 이강의 목소리에도 무영은 아무렇지 않게 연못에서 걸어 나왔다.

 이강은 무어라 말을 덧붙이려다 관두었다.

 무영의 얼굴이 절로 한기가 들 정도로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있던 무영이 갑자기 이 외진 정원으로 향하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이강이 차마 말릴 새도 없었다.

 아니 무엇보다, 무영이 이강을 곁에 두고서도 직접 물에 뛰어들었다는 것이 믿을 수가 없었다.

 이강이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무영이 순식간에 완전히 물에 푹 젖은 미루를 끌어안고 나왔다.

 품에 안았던 미루를 잔디에 내려놓은 무영이 이강에게 시선을 돌렸다.

 미루와는 대조적으로 물 한 방울조차 무영을 적시지 못했다.

 이강은 그 무시무시할 정도로 흐트러짐 없는 모습에 살짝 어깨를 떨었다.

 무영이 차게 식은 눈으로 눈을 감은 미루를 내려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강. 이번에는 흔적이 남아 있겠지.”

 “예. 쫓아가겠습니다.”

 이강이 서둘러 사라졌다.

 무영은 여전히 미루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이제는 화가 치밀 지경이었다.

 “넌, 도대체 왜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거냐?”

 한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왜 내 눈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면 위험한 상황에 빠져있는 거냐?”

 무영의 아름다운 얼굴이 잔뜩 그늘져 있었다.

 잠시 심각한 얼굴로 미루를 내려다보던 무영은 미루의 곁에 사뿐히 앉았다.

 이 얼굴은 그만 보고 싶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있는 창백한 미루의 얼굴.

 새카맣고 숱이 많은 머리칼과 속눈썹 때문에 얼굴은 더 백짓장처럼 희어 보인다.

 왜 아주 잠깐이라도 혼자 내버려두면 이런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미루의 작은 머리통에 무영의 손가락이 가 닿았다.

 잠시 이마를 어루만지는 듯 하던 무영이 미루의 머리를 살짝 들어 제 무릎에 놓았다.

 물기 어린 얼굴이 달빛을 받아 도자기처럼 빛났다.

 무영이 미루의 턱을 잡아 가볍게 아래로 당겼다.

 자연히 입술이 벌어지고, 그 사이로 가지런한 이와 통통하고 둥근 혀가 드러났다.

 무영이 허리를 숙였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은빛 머리칼이 폭포처럼 앞으로 쏟아졌다.

 흰 속눈썹이 몇 번 깜빡이는가 했는데, 어느새 미루의 코와 맞닿을 정도로 얼굴이 가까웠다.

 조용히, 미루의 벌어진 입술에 무영의 입술이 포개졌다.

 그와 동시에 무영의 눈꺼풀도 감겼다.

 무영의 긴 손가락이 어느새 미루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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